나는 영어라는 언어를 좋아한다. 어떻게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단단한 영어공부_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의 기본, 김성우 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영어학습 자서전을 써 본다.
3년 터울의 언니와 방을 함께 썼다. 언니의 영어공부 방식이 EBS라디오를 듣고 따라 하거나, 교과서의 내용을 소리 내 읽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생에게 본의 아니게 영어 ‘강제노출’의 기회를 제공한 거다. 알아듣지 못하는 동생에게 마치 대화하듯 이것저것 이야기하며 자기만의 공부를 했다. 그때는 굉장히 귀찮고 시끄럽고 싫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영어라는 언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었던 기회였다. 게다가 외국어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소리내 말하고 연습하기의 기본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된 기회가 아니었을까?
중학교 입학 전 알파벳은커녕 대소문자를 구분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입학하고 만난 영어 선생님은 “너희가 아무리 다 배워왔다고 해도 나는 처음부터, 원칙대로 가르친다.”는 소신을 가진 분이었다. 알파벳부터 차근차근 출발할 수 있었다. 새로 배우는 언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기본을 중시했던 영어선생님은 최대한 영어교과서에 충실하게 대화를 먼저 듣고 여러 번 따라 읽게 하고 암기까지 하도록 지도했다. 소위 ‘티키타카’를 먼저 익히게 되면서 내가 하는 말이 대화가 된다는 것에 큰 재미를 느꼈다. 독해에선 워낙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해놓기도 하고 외우라는 단어를 외웠더니 영어로 읽는 이야기들이 우리말 읽기 못지 않게 흥미로운 일이란 걸 발견했다.
영어를 좋아하다보니 행운도 잇따랐다
고등학교 가서는 야간자율 학습 시간 마다 꾸준히 열심히 외웠던 단어 덕에 편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교재는 지금 봐도 참 괜찮은 거 같다(능률 voca 어원편_이찬승) 단어를 무작정 외우는 게 아니라 어원을 살피고, 구조를 쪼개고, 동의어, 파생어, 문장까지 함께 외우도록 구성된 책이었다. 우선 단어를 많이 알고 있으니 크게 복잡하지 않던 고등학교 독해의 문장 구조의 대략 의미를 알아 맞추기는 어렵지 않았다. 운 좋게도 영어과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영어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방식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문장을 적고 난 후 “동사 몇 개?” 질문한다. 문장이 아무리 길어도 한 문장에선 동사가 한 개 일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수능 독해를 풀어내기- 재빨리 문장구조 파악하고 읽어내기, 의미파악하기에 유용한 학습법이었다.
대학에 가니 영어는 선택사항이었다. 소통도구로서 영어를 좋아했던 나는 말하고, 사용할 기회를 찾아 다녔다. 영문과 전공수업을 기웃거렸다. 작문 전공수업에 들어갔다가 첫 에세이 제출하고 엄청 혼난 후 수업을 포기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태도로 내 글에 빨간 줄을 죽죽 그으셨다. 돌이켜보면 천둥벌거숭이 타과 학생이 전공 수업에 들어와서 까부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한참 국제화 바람이 불어 미국교수님이 초빙되어 온다는 과목은 일부러 찾아 듣기도 하면서 영어와의 접점을 늘렸다. 영어로 수업하는 마케팅 수업도 들었다. 10명도 안 되는 학생들끼리 아주 오붓하게 수업했다. 수업도 널널했고, 학점도 잘 받았다. 마케팅 공부를 제대로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시험을 위한 영어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시험은 쉽지 않았다. 대학생 모두가 준비한다는 토익을 하면서부터는 밑천이 좀 달렸다. 아무래도 말하기나 듣기보다 읽기나 문법에는 시간을 쓰지 않았으니까. 유명하다는 어학원을 다녀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800점 정도만 간신히 만들고 졸업했다. 분명히 나는 외국인 친구와 말도 잘하는데, 시험을 보면 왜 안 돼지? 대화는 재미있는데 왜 녹음기 소리는 안 들리지? 왜 빨리 안 읽히지? 좌절의 경험이었다. 시험을 위한 공부, 평가를 위한 공부는 방식과 방법에서 접근이 다르다는 것을 이제는 경험적으로 알지만 그때는 잘 몰랐다.
영어를 계속 접하고 영어 덕분에 직장 생활에서 관련 직무로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밑바탕에 결국 ‘흥미’였다. 아무도, 강제로, 억지로 공부하라 하지 않았고, 시험이나 평가들이 학교 공부나 학교 선생님들의 가르침 안에서 해결 가능했다. 영어가 소통의 도구로서 기능하니 나름대로 즐거움을 일찌감치 깨닫게 된 것 역시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생각을 듣고, 내 의견을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영어. 우리말에서 영어로 확장 될 때의 재미가 배가되는 것, 전혀 다른 느낌, 전율을 느껴볼 수 있는다는 감각. 여전히 영어를 재미있게 느끼고 계속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그저 암기하고 시험 보는 과목으로써 영어라면 이렇게 여전히 좋아하는 언어로 남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