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경주시 전국독후감 공모 (대상수상)
고통스런 삶속에서 아름다움의 꽃은 핀다.
-정지아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아버지의 해방일지” 라는 소설 제목이 함축 하고 있듯이 6·25 전쟁이후 저자의 아버지가 빨지산이라는 멍에를 안고 살아온 이야기를 쓴 글이다. 나도 6·25를 경험한 세대이기에 관심이 갔다. 그동안 6·25 전쟁을 토대로 한 많은 소설이 나왔다. 이제 70년이 지난 요즘에는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은 뜸 해 졌고 관심도 멀어져 갔다.
삶의 아름다움은 생존이다. 작가는 생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위해 누구나 끄덕일만한 것을 찾아야 했다. 대상은 아버지였다. 신선한 충격을 주거나 낯설어서 한참동안 숙고하게 만들어 깊은 고뇌에 빠지게 하는 그런 소재가 아니다. 가정생활에서 아버지나 어머니는 가장 친근한 소재이기에 흥미와 재미를 가져다준다. 정지아 작가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방법을 아버지의 해방일지 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그려놓고 주변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진정한 아버지 모습을 찾은 것 같다. 해방일지라는 주제가 암울하고 쌀쌀하지만 저자의 특유한 전라도 사투리로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했다. “긍게 사람이제” 한마디로 굳게 닫혔던 입을 빙긋이 열게 해주었다. “긍께 ”라는 말은 내가 즐겨 쓰는 말이다. 앞사람의 말을 일단 수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적절할 때 씀으로써 더 읽도록 유도하였다. 이런 부류의 소설은 아무라도 쓸 수 있으나 누구도 이런 착상을 할 수 없다. 저자(정지아)만의 유려한 필체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의 재능이다. 독자는 저자의 필력대로 읽고 따라가는 존재다. 이미 정지아 소설가는 김유정 문학상,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서 스타작가이기도 하다. .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소설은 전쟁이후 잊혀 진 세대의 마지막 주자답게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인권주의자로서 거대한 꿈을 실현시키고자 쓴 글은 아니다. 아버지는 국가권력으로 감옥살이를 하였고 이로 인해 시민들의 배척과 냉대를 받은 빨갱이 집안 이라는 무서운 형벌을 받은 죄인이다. 빨갱이라는 용어는 알고 보면 6 25이후의 사회에서는 으스스하고 치가 떨리는 금기 용어다. 정지아 작가는 그런 이미지의 용어를 일상생활 속에서 구례지방의 사투리로 녹여 냈다. “조석으로 드나들면 고거이 애인이제 뭣이 애인인디? ”문턱이 닿게 드나들긴 했지만 나보러 왔가니 쐬주 보러 왔제.“ 능청스럽고 뜨듯하고 재밌게 빨갱이라는 무서운 이미지를‘부드럽고 자상스런 아버지’라는 이미지로 되살렸다. 내 성격의 결점은 친구들과 대화할 때 직설적인 어법으로 상대방을 어렵게 해서 더 이상의 말을 할 수 없게 단정적인 말로 끝낸다. 그러기에 상대방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부드럽고 유연하게 말을 잘하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것이 내 삶의 최대의 과제이었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찾았다. 적절한 비유를 유체이탈이라는 특유의 분위기로 조성하는 것이 직접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서의 묘미는 자아성찰이다. 이를 통해서 조금씩 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책장의 첫째 줄에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되었다. 그러니 궁금증이 생긴다. “어떻게 죽은 것인가? 책장을 넘길 때 마다 마술에 걸린 듯해서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다.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아버지의 농촌에서의 삶은 서투른 농사솜씨를 알고 어머니는 ”알고 봉께 당신은 사회주의자가 아니구먼“ 하고 고시랑 고시랑거리는 어머니의 말씀도 보통은 아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행태를 이어가다가 다음 장에서는 장례식장에서 어머니의 유물론에 버금할 정도의 말로 사회주의자를 힐난했다. ” 아이 죽으면 썩어문드러질 몸땡이 , 비싼 꽃으로 처바르면 뭐 할 것이냐? 하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사회주의자 아버지” 라는 표제에서 알았다. 저자의 아버지는 “진정한 사회주의가자가 아니다.” 라는 것을 세상에 은근히 알리는 깃발이었다. .
역설적인 방법으로 아버지를 미화한 경우도 한 가지 사례라 할 수 있다. 인간미가 넘치는 아버지가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을 드나들고 가족과 형제는 물론 친구 친척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것은 사회적 모순이고 인권파괴다. 정지아 작가는 이를 역설적으로 되받아 “빨갱이가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로 썼다. 아무리 근거를 들어 설명을 해도 퇴색된 사상이기에 변명으로 치부해버리는 세태에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간략하게 “기억이라도 해두자”는 화법을 통해 떳떳하게 “사회주의자 아버지” “유물론 아버지” 라고 머리에 관형사를 붙였다. 역설적인 말이 오히려 진실을 강하게 대변해주는 경우가 일상생활에서는 흔하다. 독자는 저자의 그 숨은 의도를 알아챘기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사회주의자 아버지” 라는 독특한 패턴으로 아버지 생애를 회상하면서 가족과 친지의 그리고 지리산 전투에서의 얘기를 추억의 형식으로 삽입하여 긴장을 놓치지 않게 했다.
사건 전개가 장례식장으로 한정되어 있어 단순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과거의 시간과 장소를 현재로 불러와서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갔다. 더구나 장례식장을 찾아오는 가족 친척 친구 마을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대화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연결하는 재능을 보였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단순히 흥미 위주로 쓴 글이라기보다는 저자의 개성적이고 타고난 문학적 재능을 바탕으로 씌어졌기에 누구라도 쉽게 읽어볼 가치가 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해방이후의 혼란했던 시대상을 나열한 책”이라는 선입견이 들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그동안 빨지산 후예이기에 연좌제라는 법망에서 핍박을 받아 온 저자의 사회에 대한 간접적인 항변이다. 그런 아버지에 대해 어머니는 “입만 열면 옳은 말 잘하고 똑똑한 양반, 빨갱이 짓 하다가 집안 말아먹은 양반”이었다고 정곡을 찔렀다. 그리고 저자는 “아버지는 고씨 집안의 자랑인 동시에 고씨 집안 몰락의 원흉”이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성장기에 당한 몸부림을 작가로서 당시의 사회를 고발하면서도 아버지와 주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내면의 인간적인 면모를 밝히려고 애썼다. “살벌하고 무서운 빨갱이”라는 선입견을 불식시키고자 주변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부드럽고 박학다식한 아버지의 진정한 인간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지리산속에서 국군과의 전투를 하다가 최후항전을 했지만 동료들은 다 죽고 겨우 목숨만을 건지고 살아 돌아온 행운아였다. 그렇지만 그 경력 때문에 남은 것은 빨갱이라는 말로 가족은 물론 주위 사촌에 이르기 까지 사회적 냉대와 멸시 속에서 저자는 성장을 하였다. 저자가 어릴 적 작은 아버지 집을 눈 오는 날 갔을 때 작은 어머니는 “저 집 종자는 꼴도 보기 싫응게 치와라!” 하고 뜨거운 물을 뿌렸다. 빨지산 아버지를 둔 연좌제 탓이라는 것을 저자는 훗날에야 비로소 알았다. 빨갱이의 딸이라고 사촌 오빠는 그런 나를 살갑게 대하지 않았고 모른척했다. 이렇게도 형제간의 사랑을 만리장성처럼 간격을 두게 하는 것은 사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가를 살필 수 있다.
저자는 아버지의 행위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도 대변하였다. “ 유물론자답게 자기의 주검을 위해 묘지를 쓰는 것보다 화장을 택한 것은 당시의 사회에서 볼 수 없는 획기적인 사례였다” 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동네사람들의 대소사를 살피거나 어려움에 닥쳤을 때 항상 ”오죽흐면 그러갰느냐, 하는 마음으로 모든 잘잘못을 허용했다.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그러기에 동네사람들은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품지 않고 마을의 어른으로 대접했다. 빨지산을 소탕하고 마을에 돌아온 경찰들이 빨지산 협조자를 파악하여 처벌하고자 했지만 저자의 아버지를 숨겨주고 목숨을 구해주는 고향사람들의 따뜻한 인정미를 볼 수 있었다. 동네사람들에게 평소에 무소불위하게 베푼 은덕을 기억하는 사람들 때문에 떳떳이 돌아와 정착한 아버지를 그려보면서 한편으로 애틋한 마음을 가졌다. 지옥 같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어머니 형제간 이웃 간에 정을 나누는 흐뭇한 정경은 나로 하여금 깊은 고뇌에 빠져 들게 하였다.
사상이란 것이 무엇인가? 같은 피를 나눈 형제였지만 그들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아버지의 사상이었다. 아버지로 인해 핍박을 받은 동생은 평생 동안 철천지한이었다. 혈육을 나눈 형이 빨지산이라는 죄명으로 감옥살이를 하고 났지만 동생은 그로인해 취업도 할 수 없어서 겪은 그 고통은 오직 형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으로 적개심을 가졌다. 여기까지는 6·25를 겪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사정이다. 심리학에서는 큰 깊은 상처를 받은 경험과 사건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형 때문에 빨갱이 동생이라는 겪은 트라우마는 치료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남남처럼 지냈다. 훗날 형의 장례식에도 동네 사람들의 눈치에 못 이겨 늦은 방문을 했지만 참회의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사상이란 이처럼 무서운 가 보다.
어쩜 내 아버지의 일생과 똑 닮은 것 같은 느낌에 단숨에 읽어나갔다. 물론 내 아버지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자본주의자도 아니고 낭만주의자에 가깝다. 낭만주의자인 아버지로 대변하면서 한 장 넘기고 두 장 넘기다 보니 책을 그대로 놓을 수가 없었다.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소재의 전개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아. 독자들에게 잔잔한 흥미를 주었다. 태백산맥을 읽을 때 한 달 동안 몸부림치면서 읽은 기억이 새롭다. 완독했다는 그 즐거움이 있었지만 그 줄거리의 흐름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래도 완독했다는 끈기만은 자랑하고 싶었다. 그에 비해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손에서 떼지 않고 읽었기에 저자가 쓴 의도를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책 한권을 읽고 먹먹한 가슴을 어쩌지 못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한참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윤여정의 말을 한 번 더 씹어보고 무릎은 치고 말았다. “ 나이 60이 되어도 몰라요”
낭만주의자를 가리켜 한량주의자 라고도 사람들은 말한다. 끼니를 걱정하지 않고 땀 흘려 일하기를 꺼려하는 사람 즉 놀고먹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량주의자인 아버지 때문에 여섯 식구가 버티고 살아나가기엔 우리 집의 가난은 다른 집보다 심했다. 그러기에 오직 가난으로 인해 고통을 입었던 원인은 오직 한량의식을 가진 아버지 때문이라는 생각을 버린 적 없다. 그런 피해의식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 땅 한 평 없이 살아가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날품팔이로 인한 하루 생활은 비참 그대로 이었다. 어머니는 가끔 집에 들러 돈을 타가는 아버지의 행태에 못 마땅하지만 비위에 맞지 않은 말로 타박을 할 때 “쪼까 일찍 나와서 일 쪼간 거들어주면 안되나 ? 하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공격을 하면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답이 궁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영양실조로 몇 번이나 쓰러지기도 하였고 가난의 대명사로 부르는 피부병 -옴 -으로 인해 친구들의 따돌림도 받았다. 어릴 때 소원은 흰쌀밥을 먹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다. 요즘 두 끼니만을 먹는 아동에게는 결식아동이라고 한다. 나는 결식아동이었다. 요즘은 건강식이라고 하지만 보리밥에 쑥을 넣었다. 한 끼라도 더 아껴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해방이후 우리 집안은 속칭 지주집안이라고 해서 멸시도 받았고 6·25 중에는 사상적으로 의심받아 반공산주의자로 낙인 되어 공개처형대상자로 아버지는 사형 당할 뻔 했다. 그리고 자유당 치하에서는 동아일보 독자라고 해서 요주의 집안으로 지적되어 무서운 사찰도 받았다. 이러한 과정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고스란히 그대로 닮았다.
꿈을 꾸는 세상은 아름답다 그 꿈속에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이가 든 이후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젊어서는 살아내느라 힘들었다. 결코 치열하고 뜨거운 삶이 좋은 게 아니다. 행복은 고즈넉한 개인의 삶속에 존재한다. 나는 지금 80대 나이로 살면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평온을 느낀다. 삶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면서 소소한 일상생활 속에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다. 행복은 그곳에서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나를 찾는 기회가 되었다. 주변의 가까운 친구들이 다 가버리고 겨우 두 서명의 친구들이 나를 찾을 뿐이다. 기쁨 슬픔 사랑과 괴로움 온갖 감정이 삶에 촘촘하게 수 놓아진 뒤에야 삶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나의 처지를 되돌아보았다. 가족을 돌보지 않고 한량으로 살아가는 아버지 , 그러나 죽음의 기회를 몇 번 넘고 겨우 살아 온 아버지, 전혀 다르지만 그게 그거다. 지리산과 서울이라는 것밖에 차이가 없고 다만 살아가는 과정에서 기생들과 국군들과 총을 들고 싸우는 것, 다른 차이가 없다. 우리 아버지는 일본의 압박받는 시절에도 속칭 천 석궁 집안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았다. 저자의 아버지와 대비되는 점은 저자의 아버지는 6·25라는 전쟁을 겪으면서 빨갱이 집안이라는 고통 속에서 지낸 세월을 회상하면서도 애틋한 마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항변을 그대로 그려놓았다. 필자는 반대로 온갖 부(富)를 누리면서 자기 자신의 안위와 향락으로 재산을 탕진한 아버지를 온갖 불행의 씨앗이라고 보았다. 그로 인한 고통은 모두 “아버지 때문” 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기에 빨갱이자식이라는 멍에를 지고 살았으면서도 미움이나 증오를 하지 않은 저자의 마음에 그만 가슴을 치고 말았다.
“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살아보았으면서도 실감이 되지 않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보여주는 가족애에 나는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책을 덮고 말았다. “아버지의 삶과 다를 게 없는데….”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죽음의 기회를 몇 번 넘고 겨우 살아온 것이나 사랑방에서 기생들과 향락을 하면서 즐기는 것이나 삶의 방식이 다를 뿐 피장파장인 것을 ... 지리산과 서울이라는 지역차이, 무기는 총과 술로 싸우는 것, 그러한 차이 밖에 없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행복이란 대상에서 찾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과연 아버지만의 탓일까? “어릴 적의 삶은 결코 아버지가 물려 준 가난이 아니었음을”몸으로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머리로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아버지를 떠올랐고 지난날을 대입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알았다. 무능력한 아버지가 아닌 시대적 배경을 알아차리지 못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기에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은 아버지말씀대로 후회하고 있는 거다. 저자의 말처럼 “긍게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