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화에 관한 시모음 5)
수련 연꽃.. /伸佑 조충생..
우리 정원 작은 연못에 핀
수련 연꽃 잎에는.
뜨거운 햇살 빛에 반사되는
낮 햇살이..
살포시 핀 연꽃 위에서
더 더욱 아름답네..
살며시 희돌아 부는
소슬 바람에 .
작은 정자에 앉아 더위를 피하며
연꽃을 감상하는 이 시인은..
투박한 질 그릇에
가득 채운 막걸리 한잔에.
시 한수와 연꽃 한잎 띄워 마시네..
수련의 밤 /배한봉
푸른빛 물의 종이는 밤이 쓴 검은 문장에 덮여 있다.
새는 수련의 잎을 딛고 서 있다.
수련은, 가끔씩 흰 손길로 다가오는 달의 다정한 속삭임이 들릴 때만 둥근 육체의 윤곽을 가녀리게 보여줄 뿐이다.
물에 녹아 있는 언어가 뽀글뽀글 물방울로 솟아오를 때 새는,
수련의 뜨겁고도 아픈 사랑의 속말들로 노래를 만든다.
노래는 물의 종이에 쓰인 언어들을 공중으로 밀어올린다.,
공중으로 솟구친 노래가 노란 입술로 천공天空 곳곳을 키스할 때 물의 종이는 수런거리는 눈부신 별들로 가득 차고 밤이 쓴 문장은 비로소 완성된다.
수련의 꿈은 이제 공기와 섞여 있다
숨 쉴 때마다 우리 폐 속으로 흡입되는 수련의 언어들, 그 꿈을 먹고 나도 수련 꽃봉오리처럼 배가 자꾸 불러지고 싶은, 푸르게 캄캄한 밤이다.
수련睡蓮 /권도중
1
L 선생은 백합 같았다
늪은 빠지지 말라는 주의를
깊이를 보여주지 않음으로 L 선생은 수련睡蓮이었다
늪에 빠진 바닥 진흙이 수련으로 피는 소설〈K의 편지〉를 쓰던 그 무렵 이었다 늪에 빠지면 안개를 피운다는 확신 같은 것이 큰 치마를 펴서 다 덮고 있는 것을 보았다 떠난 소문이 잠긴 모르는 꿈이었다 걷혀지면 거기 있고 빠지면 죽는다고 안개가 알려주었다
구름을 읽고 수업한 책에서는 K선생님, 구름은 중독성이 강해요, 했다 그러면 안개를 물리치고 일상으로 온다 햇볕 아래서는 긴 다리를 물 속에 두고 있었다 들어가지는 못하는 곳이므로 속을 보여주지 않지만 물 속에서 가만히 당기면 늪에서만 볼 수 있는 수련睡蓮 이었다
2
큰 잎 물 위에 띄우고 나는 그 큰 잎 위에 단어들을 생선회처럼 올려놓았다
늪의 욕망이 흰 안개로 부드럽게 퍼지면서
늪을 뒤덮을 때는 더 아름다운 늪이곤 했다
물 속 미끄러운 물고기들
말하지 않아서 내가 수련이기도 했으므로 물 위에 떠 있었다 나중에는 물고기가 되어서 수련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가기도 했다
갖혀야 삭혀지는 간절함이 있다
죄는 갖혀야 삭히듯이 睡蓮에게는, 있다
수련 /박영근
물 위로 꽃을
올리지 못한 봉우리 하나
봄이 얼마나 썩어야
자궁이 열릴까
숨을 틔울 바람
한 점 없는 저 물속에서
꽃도 뿌리도 없이
내가 꿈꾸는 것
수련 /박은정
아침은 붉고 연못은 파르스름했다
두 다리가 젖을수록 치마는 부풀어 오르고, 얼굴에서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풀어진 이목구비들
많은 방들이 나타났다 두 무릎을 당기면 사방이 사라지는, 굴절되는 천장의 소리, 검은 아가일 무늬
너의 손을 잡고 꽃을 꺾었지 산 자가 죽은 자의 모습을 닮고 죽은 자가 산 자의 모습을 닮아가는 붉은 뺨에 취해
이 야만은 무엇인가요 불은 얼굴을 휘감던 수초들의 이상한 무표정, 문을 두드리면 낯선 인기척이 꿈처럼 흩어지는 동공을 부수는 한 뼘의 단조로운 빛
절기를 지나 휜 나무들의 병색이 짙어지고, 손톱의 반달이 사라졌다 불길한 징조처럼 어떤 인사도 없이 더 깊은 곳으로 침잠하는 파사(破事)의 주소
차고 희고 막막한 바람 뒤로, 따뜻한 침대와 아름다운 복사뼈가 흔들리고, 모든 것을 수포로 만드는 자세로 나는 울었다
거미줄 사이로 흔들리는 아침
천 개의 유리로 덮인 꿈을 꾸었다 세상의 끝에서, 물장군의 슬픈 밤을 읽는 사람의 목소리로 또 하나의 이름을 지우려는 자 꿈에서 깨어나니 나는 없었다
한없이 지느러미를 흔들며 지나는 물고기들과 평온한 이마를 드러낸 채 흔들리던 뿌리들 한 마리의 잠자리가 수련 주위를 맴돈다
손을 내밀면
가만히 떠오르는 그 무엇.
수련(睡蓮) /장철문
열나흘 달빛 타고 순천만에 갔다
자전거 타고 갔다
풀벌렛소리 굴려 갔다
구름 사이로
수련이 한 채 떠서 갔다
농로가 끝나는 곳까지 가서
갈대숲에 가로막혔다
똥이 마려워
똥을 쌌다
엉덩이를 농로 난간에 걸쳐놓고
수련을 안고 쌌다
바람이 밑을 슬슬 베어갔다
흐흐흐
내 샅이 오랜만에 호강을 했다
바지를 끌어 올리다가
엉덩이가 또 묵시근해서
세 발짝 걸어가서 또 한 무드레기 쌌다
벼 베러 와서
눈살 찌푸릴까 봐 미안했다
터놓고 일보는 사이에
수련을 두고 내외할 것은 없었다
엉덩이를 까고 앉아서
풀 대궁이라도 안고 돌고 싶은 밤이었다
능선을 타고 내려온 여우와 함께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건너뛰고 싶은 밤이었다
헐거운 바지를 끌어 올리고
풀벌렛소리 굴려 왔다
잔바람 타고 왔다
하늘의 수련이라도 쓸어안고 싶은 밤이었다
수 련 /강희창
태생이 천하다고 어느 누가 그카더냐
매무새 가다듬어 살포시 비춰보네
곱기야 이만 할라구 받쳐 올린 법열송
세상을 밝히겠다 물 밑에 숨은 결사
탁하기만 한 이 땅 밤도 아닌 대낮에
내 마음 어딜 건드려 청불홍불 환한가
아침의 영광 /정일근
여름비 밤새 내리다 그친 새벽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 찾아온다
조용조용 하얀 맨발이
풀잎 이슬을 밟고 오는 소리
누구신가 문 열고 나가보니
여름비에 몸 씻은 마당으로
푸른 화엄들 고요히 뜨겁고
물항아리 위로 수련이 피었다
하얀 꽃 한 송이 활짝 피었다
수련은 내 마음에 사시는 그분의 꽃
우리 집으로 찾아오신 그분께
오체투지로 세 번 절하고
찻물 끓여 차 한 잔 올린다
수련에게 찬 한 잔 권하는 아침
나는 참으로 영광스럽다
수 련 /임충빈
꿈을 긷는 당신의 못(池) 속에
수줍은 듯 떠다니는
한 송이 수련으로 살게 하소서
아침 이슬 속에 피어나서
오후 햇볕 속에 잠드는 당신
다소곳한 한 송이 수련이 되어
당신의 꽃으로 살게 하소서
겹겹이 쌓인 평생의 그리움
푸른 물 위에 풀어놓고
밤마다 별을 안고 합창하는
어두움의 심연에서 건져내게 하소서
수련 /안도현
수련 잎사귀 위에
일광욕하러 나온 물뱀
물뱀 지나간 자리
꿰맬 수 없어
빨간약을 구할 데 없어
수직의 수련이 울고 있다
수련 /김경자
흐린 물 속에서도 맑게 살아나는
너의 이름이다
못의 진홁 속 뿌리 두고
어둔 땅 속 줄기 두고도
영혼은 하늘 소리 듣는 세상 살고 싶어
참 살고 싶어
길 캄캄함 아프도록 헤집고 살아오르는
희디흰 표정
풀밭 속 나비로 꿈꾸는
너의 이름이다.
첫물 수련 /문성해
수련이 언제 이리 피었나
흙탕물 논물 위에 첫 수련이 돋았구나
오늘 아침 세수도 못하고 짓무른 눈가 비비며 보는데
누가 지어주나 이름도 기다리지 않고
수련이 작년의 이름으로 내 곁에 왔네
첫 수련의 주둥이가
막막한 수면을 뚫고 나오는 그 힘으로
드넓은 고추밭에 첫 고추가 매달리고
아이 몸에 첫 두드러기가 돋고
마른하늘에선 첫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야
그다음엔
후득후득 일제히 돋아나면 되는 것
터져나오면 되는 것
그 힘으로
희부윰한 새벽을 찢으며
첫 기러기떼가 날아오르는 것이야
수련꽃 /박상희
매미소리 산새소리 아름다움에
술 취한 듯 호수 위 떠 있느냐
달과 별 햇살 먹고
이토록 아름다움 피워 지더냐.
함지산 운암 저수지 물위에
신비의 여신처럼 깨끗한 수련
긴 긴 여름 그리움
보랏빛 사랑으로 터트린 꽃망울
함지산 너 부러워 호수에 몸 담그고
해가지니 바르르 떠는구나.
수련 /김승기
수련이 피었다
터 잡을 곳이 그렇게도 없었던가
수많은 땅을 놔두고,
살아가는 세월만큼
썩어 가는 물 위에 둥둥 떠서
애 태우며 피워내는 선홍빛 웃음
땅 위에서는 결코 피울 수 없는 일인가
더러운 물에서
빛을 내는 순결
세파에 타협하지 않는다는 고집을
과시하고픈 자랑은 아닐까
갈수록 연못은 흐려지는데
진정 아름다운 호수를 만들겠다는 사명감이
사람들 사랑 가로채는 수단은 아니었을까
‘네가 더러워야 내가 더 깨끗해 보인다’고 믿는
털끝만큼이라도 위선은 없었을까
모든 것을 비우며 살겠다는 마음공부
오히려 욕심은 아닌지
뒤돌아보는 여름 한낮
수련이 피어 있다
수련(睡蓮) /유희봉
뿌리는 물아래 흙 속에 있지만
깊이에 따라 조절하는 키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고
순수함으로 가득 찬 수련
순진한 마음씨를 바르게 간직
오염된 물에서도 깨끗한 옷 빛깔
물 속의 잡초더미 사이로
이끼 낀 물 위에 한 폭의 그림
꽃이 떨어지면 열매가 되고
무르익으면 꽃줄기가 구부러져
물 속 깊이 남긴 씨앗이 트더니
여름철 연못에서 빼어난 자태
물의 여신 백조의 날개처럼
햇볕이 없는 밤에는 깊은 잠
아침 일찍 눈을 뜬 백설 같은
자오련이란 또 하나의 이름
태양 빛 열기아래 굴하지 아니하고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한결같이
홀로 고고하게 살아가던 곱고 작은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그대
수련화 /임상섭
탁한 수면 위로, 시간은
고뇌를 안고 있었네
연약한 생명 줄기
셀 수 없는 몸살을 앓고
의지(意志) 없는 기억들로
가슴앓이 하였네
수초들의 연민
이슬로 포개진
엷은 꽃잎 살며시 문을 열면
수줍은 미소는 생각에 잠기네
혼탁한 연못 위에
천연(天然)으로 피어 올린 수련화
오! 아름다운 자존심.
수련睡蓮꽃 /하운 김남열
청순한 마음
아침에 활짝 피운
향기조차 부끄러워
수줍은 색시처럼
마음 상하랴
얼른 얼굴 감추고
고기는 물을 얻어 헤엄치나
물을 잊듯
새는 바람 타고 날건만
바람 있음을 모르 듯
꽃은 물을 먹고 피어야 하지만
물이 있어야 함을 모르 듯
“내가 나 이다.” 라는
시끄러운 세상에서
아름다움 실추 없이
잠자더라도
의식意識의 꽃피우니
참으로 다행이며
꿈속에서도 깨어있어
작은 그릇에는 작은 물이
큰 그릇에는 큰물이 담기듯
자기 의지대로
물 위에서 물 같은 마음으로
꽃 피울 수 있으니
삶의 터전을 떠난 거북이가
토끼와 경주하게 만드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의
땅위에서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어찌 부러워하리
* 수련: 잠자는 연꽃이란 말
낮에 피었다가 밤에는 꽃잎을 오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