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극복하고, 백지 윗부분에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닌 책의 첫머리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를 쓸 수 있었다.
또한 어머니의 사진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센 강가에서 찍은 사진 하나에서는 어머니가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 있다.
흑백사진이지만 어머니의 다갈색 머리카락과 검은색 알파카로 지은 정장의 광채가 보이는 것만 같다.
나는 어머니에 관한 글을 계속 써나가겠다.
어머니는 내게 진정 중요했던 유일한 여자이고, 2년 전부터는 치매 환자였다.
기억의 분석을 보다 쉽게 해줄 시간적 거리를 확보하자면, 아버지의 죽음과 남편과의 헤어짐이 그랬듯 어머니의 병과 죽음이 내 삶의 지나간 흐름 속으로 녹아들 때를 기다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다른 것은 할 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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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가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어머니가 살아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이다.
가끔씩 집에서 어머니가 소유했던 물건들과 맞닥뜨리는 일이 벌어진다.
그저께는, 밧줄 제조 공장에서 기계 때문에 휘어 버린 손가락에 끼었던 골무였다.
곧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의식이 밀려들며, 나는 어머니가 결코 다시는 존재할 수 없는 진짜 시간 속에 놓인다.
그러한 상황에서 책을 〈낸다〉는 것은 돌이 킬 수 없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의미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미소를 지으며 <다음 번 책은 언제쯤 나올 건가요?>, 묻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싶은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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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더더기 없이 정확한 그 동작들 앞에서, 그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뜨리라는 걸 그녀가 늘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첫날 저녁, 그녀는 여전히 그의 옆자리에서 잠을 청했다.
그녀는 장의사가 시신을 옮길 때까지, 그가 병상에 있었던 나흘 동안과 마찬가지로 고객들을 맞는 사이사이 그를 보러 올라갔다.
매장 직후 그녀는 지치고 슬퍼 보였고, 이렇게 털어놨다.
「반려자를 잃는다는 건 힘든 일이구나.」
그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장사를 계속했다.
(신문에서 <절망은 사치다〉라는 글귀를 막 읽었다.
나는 책을 쓸 시간과 형편이 되니, 어머니를 잃고 난 뒤 쓰고 있는 이 책 또한 사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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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야기는, 세상에 그녀의 자리가 있었던 시기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멈춘다.
그녀는 정신이 나갔다. 그것은 알츠하이머병이라고 불린다.
의사들은 일종의 노망에 그런 이름을 붙여 주었다.
며칠 전부터 글 쓰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 순간에 결코 도달하지 않기를 바라서이리라.
하지만, 나이 들어 노망난 여자와 젊어서 힘차고 빛이 났던 여자를 글쓰기를 통해 합쳐 놓지 않고서는 내가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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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또 다른 겨울을 났다.
부활절 다음 일요일에 개나리를 안고 그녀를 보러 갔다.
날이 우중충하고 추웠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식당에 있었다.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는 내게 웃음을 보냈다.
방까지 휠체어를 밀고 갔다.
화병에 개나리를 가지런히 꽂았다. 곁에 앉아 초콜릿을 먹으라고 주었다.
병원 직원들이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갈색 털양말을 신기고, 삐쩍 마른 허벅지가 내보일 정도로 너무 짧은 가운을 입혀 놨다.
손과 입을 씻겨 줬는데, 피부가 미지근했다.
어느 순간엔가, 그녀가 개나리 가지들을 잡으려고 했다.
얼마 있다가 그녀를 식당에 데려다 줬는데, 텔레비전에서는 자크 마르탱이 사회를 보는 「팬들의 학교』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키스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녀는 다음 날 죽음을 맞았다.
그 주 내내, 그녀가 살아 있던 그 일요일이, 갈색 털양말, 개나리, 그녀의 몸짓들, 작별 인사를 건넸을 때 짓던 그 미소가 떠올랐고, 잇달아 그녀가 침대에 누워 숨을 거둔 그 월요일이 떠올랐다.
나는 그 두 날을 이어 보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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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써내려간 10개월 동안 나는 거의 밤마다 어머니 꿈을 꾸었다.
한번은 내가 강 한가운 데에 누워 있었고, 내 양옆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 배에서부터, 그리고 계집아이의 성기처럼 다시 매끈해진 내 성기에서부터 식물들이 구불구불 자라나 흐느적흐느적 떠다녔다.
그것은 단지 나의 성기만이 아니었고, 내 어머니의 성기이기도 했다.
가끔은, 그녀가 여전히 살아서 집에 함께 있던 때, 병원으로 떠나기 전의 시간 속에 있는 것만 같다.
그녀의 죽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녀가 계단을 내려와 바느질 상자를 가지고 거실
에 자리 잡는 모습을 보리라고 찰나이나마 기대한다.
가공의 존재로서의 어머니가 실질적 부재로서의 어머니보다 더 강하게 다가오는 그 느낌이 아마도 망각의 첫 번째 형태이리라.
나는 이 책의 처음 몇 장을 다시 읽어 봤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전화를 하던 장의사 직원, 슈퍼마켓 벽에 타르로 써 있던 글씨 등, 벌써 꽤 많은 자잘한 사항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니 어안이 벙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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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전기도, 물론 소설도 아니다. 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리라.
어머니의 열망대로 내가 자리를 옮겨 온 이곳, 말과 관념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스스로의 외로움과 부자연스러움을 덜 느끼자면, 지배당하는 계층에서 태어났고 그 계층에서 탈출하기를 원했던 나의 어머니가 역사가 되어야 했다.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1986년 4월 20일 일요일~1987년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