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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비 산악회 2017, 해파랑길 2,000리-겸사 겸사
친구들!
내가 참 좋아하는 변호사님이 한 분 계셔.
좋아하는 변호사들이야 참 많지만, 내 딱 한 분만 꼽는 거야.
임창진 변호사님을 두고 하는 말이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내가 지금의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전신인 서울지방검찰청동부지청에서 검찰수사관으로 근무할 때, 주임검사로서 나를 업무적으로 지휘했던 인연이야.
내 그 분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
곧 믿음이야.
나를 믿어준다는 말이지.
내가 그 분 검사시절에 딱 1년 참여수사관을 했었는데, 내가 수사한 모든 사건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을 한 적이 없어.
그래서 내가 혐의가 있다하면 기소를 하고, 혐의가 없다하면 무혐의로 종결하고는 했었지.
심지어는 혐의가 있어도 용서를 해주는 ‘기소유예’도 대체적으로 내 의견을 존중해줬었어.
그러니 내 그 분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요즈음도 그런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때도 적지 않은 검사들이 자기 휘하에 있는 소속 수사관들을 믿지를 못해서, 의혹의 시선을 가지고 사건 관계인들을 따로 수사하고는 했었지.
믿음이 없는데, 소속 수사관들도 심정적으로 지휘 검사를 따를 수는 없는 것이고, 그런 검사실은 번번이 수사 낭패의 경우를 당하게 되는 거였어.
친구들!
엊그제도 그 분을 만났어.
세월이 많이 많이 흘렀지만, 우리들 정은 옛날 그대로야.
SNS 페이스북 친구이기도 해서, 요즈음 내 하는 짓을 훤히 꿰뚫어 알고 있기까지 해.
만났다 하면, 우리들 어제의 만남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술 한 잔 하면서 인간사 세상사를 놓고 노닥거리는 거지.
문득 그 분 생각이 나서, 오후 4시쯤에 전화를 했었지.
그래서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 인근의 단골집인 ‘포항물회’에서 저녁 6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어.
그런데 그렇게 막 약속을 하고 난 뒤에, 친구들도 잘 아는 우리 검찰수사관 후배인 임채균 친구가 전화를 해왔었어.
이래더라고.
“형님, 오늘 저녁 좀 사주세요.”
아마 선약이 있다고 안 된다고 답했을 거라고 생각할 거야.
아니야.
나는 웬만해서 ‘No’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야.
물론 돈 빌려달라는 부탁에는 당연이 ‘No’라고 하지.
하도 많이 떼어먹혀 봐서 그래.
친구들도 잘 아는 우리 검찰수사관 선배에게도 떼어먹혀 봤고, 집안에도 떼어먹혀 봤고, 친구에게도 떼어먹혀 봤어.
현실에서 안 떼어먹을 사람은 죽어서 떼어먹고 말더라고.
결국 돈 떼이고 사람도 다 잃고 말았지.
이야기가 딴 길로 빠져들었네.
다시 바로 잡네.
임채균 친구가 밥 사달라는 그 부탁, 내 당연히 좋다고 했지.
먼저 저녁 약속을 한 임창진 변호사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내 그리 답을 한 거야.
바로 겸사 겸사를 생각한 거야.
임 변호사님도 내 그 마음을 충분히 알 것이라 믿었고, 임채균 친구도 그런 선약에 끼어드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 믿은 거지.
누군가 내 그런 처신을 싫어한다면, 그와는 더 이상 한 자리에서 안 어울리면 그만인 거고.
그것이 내 세상 살아가는 방식이야.
친구들!
이번에 해파랑길 마지막 도전 일정에서도 그랬어.
지난날 고래잡이 항구로 명성이 높았던 울산 장생포에서, 2,000리 해파랑길의 시작점이자 끝점인 부산 오륙도까지의 300여리가, 이번 일정에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었지.
길이 멀어서 카니발 승합차로 일단 울산까지 가기로 했었어.
그때 내 문득 생각한 것이 겸사 겸사였어.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김종태 친구의 얼굴을 떠올린 거야.
색소폰을 잘 부는 친구로, 지난여름부터인가 해서 대구 경산 임당역 구내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고 있는데, 이 추위에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하는 그 생각을 했었지.
그리고 그 친구와 한 지붕 아래 한 솥밥 먹고사는 공보살이라는 여인의 애타는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지.
그러니 내 그 얼굴 보러 가줘야겠더라고.
친구들!
그대들이라면 어찌했을까.
어제 그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하나 보고 싶다고, 그 먼 길 멀다 하지 않고, 그리고 그 추위 춥다하지 않고, 서초동 우리 사무소까지 달려온 것으로 봐서, 내 생각하고 하나 다르지 않았을 거야.
정작 고마운 것은 아내였어.
내가 그 친구 만나러 거기 임당역으로 가봐야겠다고 한들, 아내가 ‘그 사람 학벌도 없이 색소폰만 부는데 왜 만나려고 그러세요.’라거나 ‘우리 갈 길도 바쁜데 왜 쓸데없는 짓을 하세요.’라거나 해서, 내 마음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면, 난들 별 수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지.
그런데 아내가 선뜻 따라나서 주더라고.
딱히 부탁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랬어.
그러니 내 고마울 수밖에.
친구들!
내 그래서 아내에게 작은 보답을 했지.
큰 보답이 아니었어.
아주 작은 보답이었어.
아내는 지금도 그것이 내 보답인 줄도 몰라.
바로 점심 한 그릇이었지.
김종태 친구가 색소폰을 연주한다는 임당역에 다다랐을 때가, 낮 12시쯤으로 마침 점심때였는데, 그 친구를 만나기 전에 먼저 점심부터 먹자고 한 거야.
그래서 임당역 바로 인근의 ‘교동냉면’집으로 찾아들어, 냉면에 갈비탕 해서 점심을 먹은 거야.
그 밥값도 아내가 냈어.
그랬으니 그 점심이 내 보답인 줄을 모를 수밖에 없는 거고.
사실은 김종태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점심을 같이 하자고 제의를 할 수도 있었고, 그렇게 제의를 하게 되면, 그 친구가 먹고 싶은 점심을 해야 하기에, 아내 좋아하는 냉면을 챙겨줄 수 없을 수도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내 그 친구에게 점심 먹자는 전화를 아예 하지 않고, 우리끼리 먼저 점심을 먹자고 한 거지.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으로, 이 또한 겸사 겸사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