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문화관광코스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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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체험 > 문화체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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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 생가 이 집은 우리나라 현대문학 개척자의 한사람으로 초창기 시단을 빛낸 시인 용아 박용철(1904∼1938) 선생의 생가이다. 선생은 이 곳에서 새로운 문명을 소개하고 자주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기도 하였다. 선생은 광주 공립 보통학교와 서울의 배재고등학교에서 배웠고 동경 청산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김영랑과 사귀게 되었다. 졸업 후 다시 외국어학교 독문과에서 수학한 후 연희전문학교를 수학하고 고향에 돌아와 문학활동에 전념하였다. 김영랑 ,정지용, 정인보, 변영로 등과 문학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30년 「문예월간」을 창간하여 외국문학을 소개하였다. 1931년에는 김영랑, 정지용 등과 함께 순수시 전문지인 「시문학」을 발간하여 창간호에 대표작인 「떠나가는 배」「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등을 발간 하였고, 극예술연구회의 동인으로 신극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해외 시의 이론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문단은 프로문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나, 그는 김영랑등과 함께 순수시 운동을 펼쳤다. 정렬적이고 남성적인 그의 시세계는 30년대 서정시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선생이 시를 통하여 마음을 가다듬어 곱게 바치려 한 것은 티끌없이 향 맑은 시혼의 순정세계였다. 그러나 그는 1938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 하였다. 1939년 「박용철 전집」을 간행하였는데, 서두에는 그의 대표작 「떠나가는 배」가 실려 있다. 후에 그의 아름다운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후배들이 광주 공원에 시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다. 용아의 생가는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초가지붕을 시멘트 기와와 슬레이트등으로 개량하였으나 1995년 문화재 복원 사업을 실시, 다시 초가 지붕으로 복원하여 관리 하고 있다. 본채와 사랑채, 행랑채, 사당, 서재 등이 남아 있다.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높다란 막돌 기단 위에 세웠다. 왼쪽은 부엌이며, 중앙 2칸은 방인데, 4개로 나누어 열리는 문을 갖고 있다. 나머지 2칸은 2개로 열리는 정자 살문이다. 사랑채도 5칸인데 ... mor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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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영당 송호영당은 1728년에 건립된 곳으로 눌제 박상(朴祥)과 사암 박순(朴淳)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곳이다. 눌제 박상(1472∼1530)은 연산군 7년(1501)에 정시을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를 시작으로 중종24년(1529) 나주목사를 마치기까지 약 29년간 조정에 몸담았다. 사암 박순(1523∼1548)은 그의 조카로 조선중기의 문인학자이다. 사암은 명종 8년(1553)에 정시문과에 장원한 뒤 예문관전적을 시작으로 약 35년간 조정에 있었다.
송호영당에는 사암과 눌제의 문집도 보관되고 있다. 이곳은 1995년 12월 22일부터 1996년 4월 16일까지 사당, 담장, 진입계단의 보수공사가 이루어졌고, 1997년 10월 12일부터 1998년 1월 16일까지 효자각을 건립하였다. 이후 1998년 9월 2일부터 10월 14일까지 사우석축을 보수하였다.
이 영당의 기단은 시멘트 기단위에 중앙은 영정봉안장소로 사용되고 좌우에는 온돌방을 만들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하였다. 뒤쪽벽에는 창방소로 장혀위에 납도리를 걸쳤고 전면에는 단청을 하였으나 퇴락하였다. 창호는 분합문이며 빗살(교살) 창살으로 되어있고 주두위의 포작은 익공식을 따르고 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담징을 붉은 벽돌로 쌓았으며 대문은 평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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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등산 어등산(338m)은 광산구 행정의 중심지인 송정의 진산(鎭山:도시의 뒤쪽에 있는 그곳을 지키는 산)으로 우리 광산구를 상징(象徵:나타내는)하는 名山이기도 하다.
이 산은 등성이 깊고 골짜기가 길어 한말(韓末)때 우리 의병(義兵)들과 왜병(倭兵)이 자주싸운 전터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산에는 옛날 불교(佛敎)의 영지(靈地:신령스러운 곳)로서 절터가 많으며 그 가운데 보광사(普廣寺) 천운사(天雲寺)등은 한때 번창했으나 지금은 헐리고 또는 옮겨가서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이밖에 이 산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명소(名所:유명한 곳)를 살펴보면 양씨 삼강문(梁氏 三綱門)이 있는데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때 나라위해 목숨을 바친 제주양씨 일가(濟州梁氏 一家) 일곱분의 충절(忠節:충성스러운절개)을 기리기위해 나라의 명령에 의해서 세운 정문(旌門)으로서 어등산 서쪽 산자락 박메마을 앞에 있으며 같은구역 노동마을 앞에 광산김씨 효렬정문(孝列旌門)이 있는바 조선조 선조(宣祖)때의 학자 사물당 김응기(四勿堂 金應期)선생이 그 어려운 과거에 들고도 부모님의 봉양을 위해 벼슬을 하지않고 아버지의 병환이 위중하자 단지(斷指: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임)를 하고 끝내 상을 당하자 3년간 시묘살이(侍墓:돌아가신 부모님 무덤 옆에 막을 짓고 지냄) 를 하는 등 지극한 효행(孝行)과 그 손자며느리 나주나씨가 시집을 위해 자결한 곧은 행위를 기려 세운 정문이다.
어등산 남쪽골짜기 깊숙한 곳에 고즈너기 자리한 절골마을에는 연화약수(蓮花藥水)라는 석간수(石澗水:돌샘)가 있어 위장병과 성인병(成人病:고혈암 동맥경화등 노년기에 문제되는 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사시사철 이곳을 찾는 도시민(都市民)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 또, 어등산 남동쪽 산자락에 자리한 선암(仙岩)마을에 세가지의 값진 문화유적(文化遺蹟:문화적인 흔적)이 있는데 그중 하나인 삼층석탑(三層石塔)은 일명 선암탑이라고 하며 구전(口傳:기록은 없고 입으로... mor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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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강 황룡강은 장성에서 임곡을 거쳐 광산 용진산과 어등산 사이를지나 어등산 남쪽을 흐르다가 송정을 지나 나주로 흐르는 강이다. 황룡마을은 요세지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 이라 한다. 황룡강 石崖아래 깊은 물에서 목욕하는 군장을 일컬어 鳳凰淵에 龍이 살았다는 전설로 굳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황룡강의 유래는 황룡마을로부터 나왔을 것이며, 황룡마을의 이름은 이지역을 지배하는 군장을 일컫는 황룡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鳳凰淵(池)라는 이름도 역시 이 지역을 지배하는 군장과의 관련하에 명명되었을 것으로 결국 황룡강의 강명은 鳳凰淵과 관계속에서 해명된다. [세부자료] 1. 황룡강의 개요 황룡강은 전남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 입암산성 서북쪽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북하천, 장성호를 거쳐 장성소재지 황룡면, 광주 광산구 임곡동 송산교, 호남대를지나 송정시가지를 사이에 두고 광산구 평동 송대에서 영산강 본류인 극락강과 합류한다. 장성에서 황룡강에 합류하는 하천으로는 북하천·약수천·대악천·덕진천·장성천·개천·북이천·조양천·모현천·북일천·서삼천·추암천·통안천·관동천·단광천·동화천·구룡천 등 17개의 하천이 있다. 광산구에서는 사호천·왕동천·평림천·삼계천·침천·북산천·오운천·송산천·서봉천·선암천·운수천·평동천 등 12개의 하천이 있다. 장성 북하천에서 평동천까지 연장 61.9㎞, 유역면적 547.34㎢, 동서간 최대길이 29.5㎞, 남서간 최대길이 42.8㎞, 유역평균 폭8.8㎞에 유역 평균고도 해발 138.8m에 형성된 강이다. 장성군 북하면의 입암산과 담양의 병동산에서 발원해 광산구 동곡동에서 영산강 본류에 합해지는 황룡강은 59.21㎞의 물줄기 주변에 펼쳐진 5만71㎢의 유역면적 가운데 70~80%가 산림이다. 영산강 본류 구간에 비해 유역의 농경지 면적이 현저히 적고, 시가화 면적도 강 상류에 자리잡은 장성읍과 강 하류의 광산구 일부지역만이 인접하고 있다. 또 그만큼 사람의 간섭도 적어 4개의 소화천을 포함한... mor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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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 삼강문(제주양씨 문중) 이 삼강문은 임진 왜란때 진주성전투에서 순국한 충민공 양산수 일가 7인의 충효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인조 13년(1635)에 건립하였다. 이 곳에는 양산숙을 비롯하여 효자, 열녀, 절부 각 두명씩을 모셨으나, 현재는 나주의 회진임씨문중에 출가하여 순절한 양산룡의 딸을 임씨문중에서 따로 정려를 모시고 있어 6위의 정려만 모셔져 있다. 충민공 외에 충민공의 형제 양산룡과 양산수 , 이들 형제의 어머니 죽산박씨 , 누이인 김광운의 처 양씨, 양산숙의 처 광산이씨 등이다. 충민공의 아버지는 양응정이며 할아버지는 양팽손이다. 이곳은 이들이 생전에 살았던 박뫼마을 앞 산기슭으로 삼강문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평범한 건물로 각 기둥 사이에 홍살문을 달아 외부로부터 차단하였다. 외삼문은 평삼문이며 「梁氏三綱門」이란 현판은 1803년 이헌중이 썼다. 양산숙은 김천일 장군을 도와 의병을 일으켜 강화도에 진을 친 다음 고경명 장군의 밀서를 가지고 의주행재소로 가서 선조에게 의병의 활동과 적의 동태를 보고 하였다. 이에 선조는 즉석에서 그를 공조좌랑에 임명하고 교지를 내려 군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듬해 진주성 싸움에서 성이 무너지자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 등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양산룡도 김천일 장군을 도와 의병에 가담하여 진이 강화도에 머무르고 있을 때, 호남 지방에서 재물과 곡식을 모아 만여명의 군량을 조달하는데 앞장 섰다. 그는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가족들을 피난 시키기 위하여 나주 삼향포에서 뱃길로 떠나려고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적들이 나타나자 그와 어머니 박씨부인을 비롯한 가족들이 모두 바닷물에 몸을 던져 지조와 정조를 지켰다. 정려는 여러차례 정문소초를 올린 끝에 인조 13년 생원 홍탁의 상소로 세워지게 되었다.
▷ 절부 : 양응정의 처 죽산박씨, 양산구의 처 지산이씨 ▷ 효자 : 양산룡, 양산축 삼향포에서 왜적을 만나 어머니를 구하려다가 순절 ▷ 충신 : 양산숙은 임진왜란때... mor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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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정 * 연혁 정자(임유정)은 조선조 명종때 병조좌랑 임형수(林亨秀)공의 후손들이 선생의 뜻을 받들어 어등산자락 우담봉(牛膽峯)에 임유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시문을짓고 노래하던 곳으로 그 유래와 전통을 계승코자 그 자리에 다시 복원하여 조상의 업적을 기리고 후손에 계승시키고자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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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병조형 유허비 취병선생의 유허비는 화강석 1매를 이용하여 비(碑)의 자붕과 몸체를 동시에 조성하였으며 기단석(基壇石)은 별개이다. 형태는 높이가 너비보다 낮고 지붕석의 처마가 심한 반전을 이루어 형태면에서는 그리 우수하지 않으나 비명(碑銘)의 내용이 취병 연구 뿐 아니라 지방사 연구와 금석학 등 관련 학문연구에 도움이 된다. 취병조형(1606~1679)은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취병은 호이며 40여년간 관리생활을 하였으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그는 벼슬이 대사헌(大司憲)에 올랐으며, 또 일본 제4대장군 도쿠가와 이에츠나(德川家網)의 습직(襲職)을 축하하기 위한 제14차 통신사행(通信使行)의 정사(正使)를 맡았다. 조형(趙珩)이 1665년 4월 한양을 떠나 이듬해 2월에 다시 한양에 돌아와 11개월간 일본여행의 전말을 기록한「부상일기(扶桑日記)」는 17세기 한일(韓日)관계사의 중요자료로 평가된다.
유허비가 있는 이곳은 취병이 태어난 곳으로 지명(地名)을 천곡(泉谷)이라 했으며 호남의 선비들이 모두 추존했던 칠졸재 박창우가 학문을 닦던 옛집이었다. 그러나 후대에 오면서 모든 자취가 사라졌던 것을 취병의 6세손 조운환이 광주 목사에 부임하면서 옛터를 살펴보고 박창우의 장손을 찾아서 취병의 행적을 캐고 문서 등에 밝혀내 이곳에 대(臺)를 쌓고 기록을 남긴 것이다. 취병선생 유허비는 광산구 비아동에 위치한 작은 공원내에 있다. 비(碑)의 형식은 화강석 1매에 비(碑)의 지붕과 몸체[碑身]를 함께 조성하였고 기단은 별개의 돌이다.
특징은 높이보다 너비가 긴 가로형태의 양식인 점이다. 즉 비의 총높이 95cm, 너비 120cm,두께 28cm이며 문기(文記)는 모두 346자(字)로 음각문(陰刻文)이다. 조형(趙珩)(1606∼1679년)은 조선시대 현종(顯宗)때의 문신으로 자(字)는 군헌(君獻), 호(號)는 충정(忠貞)이며 본관(本貫)은 풍괴(豊壞)이다. 1630년(인조8년) 명경관(明經科)에 급제하여 사국(史局)에 재임할 때 허목(許穆... mor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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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암공원 1만2천평의 드넓은 호수! 시원하게 내뿜는 여덟 개의 부유폭기!
선홍빛과 백색으로 4만2천평의 공원을 물들이는 철쭉꽃. 광산구 첨단지구내 광주과학기술원 앞에서 세계 어는곳에 내놔도 전혀 손색이 없는 쌍암공원이 있다. 한가운데 자리잡아 운치를 더해주는 광활한 호수 때문에 일명 호수공원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가보는 이 마다 이곳이 프랑스의 공원? 아니면 미국의 어느공원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북구와 광산구를 구분하는 지점에 위치한 이공원은 우선 들어서는 입구부터 시원시원하다. 드넓은 주차장, 탁트인 시야, 호수주변을 따라 잘 조성된 철쭉꽃 숲들과 소나무숲들, 그아래 고풍스런 색조로 단장된 벤치들...
저 끝이 아스라이 보이는 호수의 한가운데는 푸르디 푸른 소나무 숲과 철쭉숲의 섬이 떠 있고 하늘을 향해 내뿜는 부유폭기는 상쾌함과 시원함을 더해준다.
호수 속에서는 시커먼 물고기 떼가 오는 이를 반기고 듬성듬성조화를 이룬 물풀들은 자연미를 한껏 더해준다. 유럽의 여느 공원의 가로등 같이 우아하고 고전미 넘치는 96개의 가로등은 밤의 광원을 환상으로 물들인다. 공원 한쪽의 철쭉꽃과 소나무숲으로 단장된 그늘 아래에는 멀리 남구의 봉선동에서 온 40~50대의 아주머니들 이 모여 앉아 집에서 싸온 음식들을 펼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고,시원한 분수가 하늘을 가르는 호수 옆 벤치에서 오후 한때를 즐기는 20대의 아가씨들도 눈에 뛴다.
"이들은 쌍암공원은 너무 좋다. 우리광산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 줄 미쳐 몰랐다. 자주 올 것" 이라고 말한다. 아쉬움이 있다면 넓은 호수에서 조각배를 띄워 놓고 즐길수있게 했으면 좋겠단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나누다가 공원으로 발길을 옮겨 호수가벤치에서 깔깔대는 3.40대의 주부들 한적하고 쭉 뻗은 호숫가 산책길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환한 미소로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고 잘가꾸어진 느티나무아래 잔디밭에서는... mor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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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동 장고분 월계동 장고분은 영산강 상류의 충적평야를 낀 낮은 구릉지대의 장구촌 마을에 있으 며, 인근에 신창동 유적(사적 제375호)이 있다. 발달된 방부(方部)와 방패현 주호(周濠), 크게 벌어 진 나팔형 토기 등이 특징으로 옛 무덤 발달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일본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기원과 관련하여 고대 한일관계사를 밝히는데도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광주 첨단산업기지 조성 계획에 의하여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1993년과 1995년 두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① 1호분 : 일제시대에 도굴되었으며 봉토가 깍여나가 단애면을 이루고 있었다. 복원된 봉분의 전체 길이는 45.3m, 높이 2.8∼6.1m이며, 주호는 너비 14.2m∼5.5m 깊이는 1.5m 내외이다. 봉분은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동시에 판축 성토 되었으며, 장축 방향은 원부가 동남동에 방부가 서북서에 있다. 널길이 있는 횡혈식(橫穴式) 석실로 원부의 한쪽에 치우쳐 원부와 함께 축조 되었다. 석실의 방향은 널방이 동북동, 널길이 서남서에 있다. 석실벽은 할석(割石)을 벽돌처럼 쌓고 판석으로 천장을 덮었으며, 바닥은 큰 할석을 깐 다음 맨 위에 강자갈을 깔고 석관을 설치 하였다. 석실의 크기는 널방 길이 4.5m, 너비2.8m, 높이2.7m이며, 널길은 현길이 2.8m, 너비1.4m, 높이1.6m 내외이다. 석실 내부는 도굴 되었으나 귀고리 1점, 철제 화살촉 1점, 토기편 등 약간의 유물이 출토 되었으며, 주호에는 적갈색 원통형 토기, 나팔형 토기, 유공광구호(有孔廣口壺)등의 많은 토기들이 파괴된 채 출토되었다.
② 2호분: 경작과 도굴로 많은 부분이 유실되어 원부 정상에는 판석 일부가 노출되어 있었다. 복원된 봉분의 전체 길이 34.5m, 높이1.5m∼3.5m이며, 주호는 너비 4.5m∼8.5m, 깊이 1m 내외이다. 봉분은 몇 개로 나누어 판축하였으며 방부를 원부에 붙여 축조 하였다. 장축 방향은 원부가 동쪽에, 방부가 서쪽에 있다. 횡혈식 석실로 원부... mor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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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양서원 무양서원은 1927년에 탐진최씨 문중이 전국 유림의 호응을 얻어 세운 서원으로 고려 인종 때의 어의이자 명신인 장경공 최사전을 비롯하여 그의 후손인 손암 최윤덕, 금남 최부와 문절공 유희춘, 충열공 나덕헌 등 다섯분을 모시고 매년 음력 9월 6일에 제향하고 있다. 광주의 옛이름 무진의 볕[무진지양]이라는 뜻에서 무양서원으로 이름지었다. 구조를 보면 강당인 이택당의 좌우에 합의문과 합인문이 있으며, 합인문이 일반적인 통용문이다. 합의문을 지나면 오른쪽에 동재인 성지재가 있으며 왼쪽에는 서재인 낙호재가 있다. 이어 높은 대지 위에 담장을 돌린 무양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내삼문인 삼오문이 있어 사우안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삼오문 좌우측 문작 위에는 귀면이 조각되어 있다. 원래 사원이 명현을 제사하는 사와 교육을 담당하는 재로 나누어진 점을 생각하여 탐진최씨 문중에서는 1945년 광산구 쌍암동에 무양중학교(현 비아중학교)를 설립, 지금까지 교육기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무양서원에 배향된 다섯분의 업적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장경공은 이자겸이 척준경등과 난을 일으키자 척준경을 설득하여 이자겸을 제거하게 하였다. 이 공으로 추충위사공신이 되어 병부상서에 올랐고 후에 수태아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에 이르렀다. 묘지석이 출토되어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기탁 소장되어 있다. 손암은 조선이 건국되자 두문불출하고 벼슬을 물리쳐 광산으로 귀양보내졌다. 광산에 내려온 손암은 후손들에게 벼슬하지 말것, 집안에 사당을 세우지 말것, 토지를 많이 두지 말것 등을 가르쳤다. 금남(1454~1504)은 성종대의 문장가로 1488년 제주에서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돌아오다 풍파를 만나 중국 대주까지 표류하고 돌아온 뒤 왕명으로 표해록을 저술하였다. 문절공(1513~1577)은 금남의 외손으로 을사사화(1545년)에 관련되어 제주 등지에서 20여년간 귀양살이를 하였다. 선조 때 풀려 나와 다양한 직책을 맡았으며 미암일기를 남겼다. 충열공(157... mor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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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영정 선창산과 극락강이 마주치는 강변 대지 위에 있다. 지금은 강물과 강너비가 줄어들어 운치가 옛날같지 않으나 멀리 보이는 무등산의 위용은 장관이다. 풍영정은 명종 15년(1560) 승문원판교를 지낸 김언거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에 돌아와 지금의 극락강인 칠천 상류에 지은 정자이다. 하서 김인후, 퇴계 이황, 고봉 기대승 등 많은 학자들이 이곳에서 함께 학문을 논하였고, 한석봉이 쓴 제일호산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김언거의 자는 계진, 호는 칠계, 본관은 광산이며, 김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525년(중종 20) 사마시에 올랐고, 1531년 문과병과에 오른 뒤 옥당에 뽑혀 교리, 응교, 봉상시정 등의 내직을 거쳐 상주, 연안 등의 군수를 역임하였다. 승문원판교를 끝으로 고향으로 내려왔으며, 저서로는 죽와휘어, 송사절요, 역대명신간소초, 가례초 등이 있다. 풍영정에서는 하서, 퇴계, 고봉, 제봉 고경명, 한음 이덕형 등 많은 문인들의 제영현판이 잇으며, 풍영정원운은 병조판서 조계원이 이곳을 지나면서 지은 것으로 그의 6대손 광주목사 조진민이 새겨서 걸었다. 1948년 후손들이 지붕을 수리하였는데, 당시의 기록이 풍영정수리후추모서실 현판으로 남아 있다.
선창산과 극락강이 마주치는 강변의 언덕위에 세워진 정자이며 지금은 강물과 강폭이 줄어들어 운치가 옛같지 않으나 멀리 광주시가지 너머로 바라보이는 무등산의 위용은 여전히 장관이다.또 남서쪽으로는 광주시내에서 하남공업단지로 뚫린 시원한 포장도로가 눈앞에 전개되어 시대의 변천상을 느끼게 한다.
풍영정은 1560년(명종15년) 승문원 판교 김언거가 벼슬을 하직한 뒤 고향에 돌아와서 극락강 상류에 지은 정자이며 김인후, 퇴계이황, 고봉 기대승등 거유들과 함께 노닐던 곳이다. 김언거의 자는 계진(季珍), 호는 칠계(漆溪),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1503년 증사헌부집의 김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중종 20년 사마시에 올랐고 1531년 문과중시에 오른뒤 옥당에 뽑혀 교리, ... mor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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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공원
송정주민과 광산구민의 휴식공간인 송정공원은 왜정때 日人들이 금봉산(金鳳山) 자락 일대를 다듬어서 신사(神社 : 일본이 자기 황실의 조상이나 국가에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를 세웠는데 해방후 그것이 헐리고 그자리에 아담한 절간(金仙寺와白羊寺 포교소)이 들어섰다.
일본의 왕조 천조대신(天照大神)과 불교의 開祖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자리바꿈을 한 셈이다.
그리고 우리구의 영지(靈地 : 신령스러운 땅)로서 현충탑(顯忠塔)이 들어서고 노인당이 있고 지역주민의 지식의 산실(産室)인 공립 송정도서관이 있으며 봄이면 온산을 벚꽃이 뒤덮어 상춘객(賞春客 : 봄의 경치를 보고 즐기는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으며 여름에는 녹음이 좋고 가을단풍 또한 버릴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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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지 |
업소명 |
분 류 |
연락처 |
[광주시 광산구]쌍암공원 |
함평한우촌 |
광주1등맛집 |
062-972-92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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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생가 찾아가는 길
광산구 소촌동에 소촌공당쪽에 위치해 있다.
▣용아생가 -> 송호영당(1km)
▣송호영당 -> 어등산(6km)
▣어등산 -> 황룡강(2km)
▣황룡강 -> 양씨 삼강문(3km)
▣양씨 삼강문 -> 임유정(4km)
▣임유정 -> 취병조형 유허비(12km)
▣취병조형 유허비 -> 쌍암공원(km)
▣쌍암공원 -> 월계동 장고분(2km)
▣월계동 장고분 -> 무양서원(3km)
▣무양서원 -> 풍영정(4km)
▣풍영정 -> 송정공원(10km)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