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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방 스크랩 (영화) 왕의 남자!
청년담당~ 추천 0 조회 44 06.02.05 15:1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머니투데이가 만드는 리얼타임 연예뉴스 보도에 따르면 "감우성 정진영 이준기 주연의 영화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ㆍ제작 이글픽처스)가 17일 전국 500만 관객동원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왕의 남자]는 연산통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왕을 소재로 광대놀음을 하던 두 광대 장생(감우성 분), 공길(이준기 분)의 이야기를 그린 웰메이드 사극. 주연배우 감우성 정진영 이준기 그리고 조연 유해진의 연기가 호평을 이끌어 내며 관객의 발길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모으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왕의 남자]를 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제 딸 슬기의 권면때문이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이 영화를 보면서(1월 17일 오후 4시 40분 충주 TTC에서) 흥미진진함과 아울러 깊은 교훈을 받았습니다.
이 시대의 이슈가 되는 '섹스, 권력, 돈(영화 속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이 밑 바탕에 흐르면서 역사적인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갈등을 교묘하게 그린 이 작품은 웃음과 두려움과 독선적 정치가의 비극적 종말을 동시에 깨닫게 하는 꽤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제게 던진 몇 가지 교훈입니다.

첫째, 어린 시절의 상처가 무의식(혹은 잠재의식)에 숨어 일평생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입니다. 연산군의 어린 시절은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연산군이 어렸을 때 연산군의 생모가 사약을 받고 죽게 된 사건, 이 사건으로 인해 연산군이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시점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나게 됨으로 인해 찾아든 심리적 상처, 억압된 분노감정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는 지를 보여줍니다.
대왕대비나 선왕의 후궁들은 연산군이 왕의 자리에 앉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공길이 앞에서 연산군이 인형극을 하게 함으로써 전혀 해결되지 않은 연산군의 상처 입은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연산군은 어머니 없이 자라며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할 때 마다 윽박지르고 달래던 과거의 사건을 인형극에 올리며 슬퍼하는 장면을 통해 일종의 '게슈탈트 심리치료'를 동원해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지그룹이 필요합니다. 물론 공길이가 공감을 갖고 연산군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으로 등장하지만 신하들을 비롯하여 광대의 머리인 장생마저 공감하지 못하고, 단지 자기와 깊은 우정 상대(혹은 동성애자?)인 공길이를 희롱하는 왕으로 이해하고 맙니다(물론 왕이 술에 취해 성폭행을 하고 동성애적 행동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따라서 연산군의 심리치료는 실패합니다.
연산군은 광대를 통해 신하들의 위선, 대비와 선왕의 후궁들의 모함 때문에 자신의 생모가 죽었음을 알고 모두 죽여버리지만 정작 자기의 잘못을 가르쳐 주려고 연기하는 장생의 대사나 공길의 인형극 대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으로 영화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연산군의 삶을 운전하는 운전기사는 잠재의식에 잠겨둔 어린시절의 상처로 인해 폭발하는 분노와 살상 그리고 그 어두운 마음을 잠시간의 광대들의 놀이에 빠져 웃어넘겨버려는 힘겨운 노력을 통해 잘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둘째, 권력의 허무함입니다.
연산군은 조선시대 최고의 권좌에 앉지만 삶의 평화가 없습니다. 이는 죄악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앉아 권력을 휘두른다고 해도 행복이 없는 연산군을 봅니다. 수많은 신하들도 자기의 자리에 앉아 부정축재, 윤리적 부패 등을 자행합니다.
진정한 권력은 섬김에서 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와 섬김을 받는 자 중에 섬김을 받는 자가 세상에서는 크다고 말씀하셨지만 자신은 섬기는 자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하늘나라 백성들은 섬기는 자리를 더 크게 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산군이나 신하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에 빌붙어 권력을 얻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권력은 허무합니다. 인류 역사를 들여다 보아도 권력이 허무하지않은 적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셋째, 성적인 순결함이 참된 삶을 지속시키는 길입니다.
장생이 기존 광대들과 결별하게 된 이유는 공길이를 권력자의 남창으로 보내는 데 대한 반감때문이었습니다. 장생은 공길이가 남자, 여자를 떠나 사람답게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물론 장생의 공길에 대한 사랑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보다 더 극진했습니다. 그 사랑은 육적인 사랑을 넘어 고귀한 사랑, 아가페적 사랑까지 꿈꾸게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궁궐에 들어갔을 때 왕과 장록수의 부폐된 사랑, 사랑을 빙자해 권력을 휘두르는 장록수의 모습은 건전한 사랑, 희생적인 사랑과 대조를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 다다를 때 밧줄 타기 사랑은 장생과 공길의 우정과 사랑을 잘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성적인 순결함에 대한 사고방식이 유린되고 있는 현대 풍조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순결함을 지키는 것이 미련함으로 치부되는 시대가 오늘날입니다. 더구나 정상적인 남녀관계를 떠나서 동성애적 사랑과 결혼이 합법적이라는 추세로 나아가는 이 시점에서 건전한 사랑, 순결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람인 우리들이 성적으로 순결하도록 이 시대를 이끌어야 합니다.
넷째, 정치적인 풍자가 많이 포함된 시대물입니다.
뇌물, 성상납, 부정축재 그리고 정치적 부패로 인한 충신과 간신의 난무로 인한 충신과 간신의 개념에 대한 혼란이 그것입니다.
내관에 의해 궁궐로 들어간 장생과 공길 일행에 비추어진 정치권자들의 부정부패상은 곧바로 광대들의 연극재료가 되었고, 이 일로 인해 왕은 신하들의 잘못을 응징함으로써 정치의 주도권을 잡아나간다는 웃지못할 비극을 연출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잘못된 지도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당하고 있는 지를 보여줌으로써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을 은근히 꼬집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부정부패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감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다섯째, 인간 내면에 흐르는 사랑의 욕구와 평화의 갈망을 보여준 영화입니다.
연산군이 가진 내면의 상처를 성적으로 풀어내려는 욕망으로 장록수를 왕후에 앉히게 했습니다. 그러나 육적인 욕망을 채웠다고 해서 사랑받지 못한 어린시절의 아픔을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왕은 광대들의 연극과 그 내용을 듣고 보면서 자신을 찾아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찾아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결정을 하게 한 결과만 낳았습니다. 연산군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연산군은 사랑에 목말라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록수는 연산군의 허기진 사랑을 육체적으로만 채워주려고 했습니다. 연산군은 여자처럼 생긴 공길이의 매력에 빠집니다. 공길이는 하루 아침에 왕의 남자가 됩니다. 연산군은 공길이와 있을 때 마음의 편안함을 느낍니다. 공길이는 왕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해주기 때문입니다. 불쌍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공감의 능력을 발휘해야 할 사람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렇지만 연산군은 정상적인 왕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인간에게 받는 감동은 그 능력에 있어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을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장록수, 신하들 그리고 광대들 모두 사랑이 목말라 있습니다. 평화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것을 풀어줄 장치가 없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결국 모두 죽는 것으로 궁궐을 피로 물들게 하고야 맙니다. 비극입니다. 인간의 죄성이 가져다 주는 것은 결국 영원한 죽음입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절망만을 보여준 것은 아닙니다. 사랑 없는 왕, 신하 그리고 반역 속에서도,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군사들의 창, 칼 위로 휙 날아 오른 장생과 공길의 사랑의 줄타기를 통해 그래도 이 세상에는 아직도 소망이 있음을 보여주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루터기 같은 그리스도인, 소수의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그래도 이 세상에 소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던져준 [왕의 남자] 한 번들 관람하심이 어떠신지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한 번 비뚤어지면 다시 돌리기가 왜 그렇게 어려울까?" "아마 비뚤어진 마음이 고착화되어 화석처럼 굳어져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란 고정관념 속에 화석화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자신에게 주어진 이념, 사상, 철학, 신앙적 교리는 심리적 고정관념을 형성하고 그 고정관념은 역사와 시대 그리고 사람을 해석하는 틀을 형성합니다. 그 틀은 자신의 인생을 타인과 구별된 독특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타인과 화목할 수 없는 독불장군식 태도도 형성하기때문에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따라서 [왕의 남자]에 나오는 연산군은 독불장군식 삶 때문에 비극적인 무덤을 스스로 파버린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주님, 우리들에게 형성된 잘못된 이념, 사상, 철학, 고정관념, 화석화된 신앙 교리들이 성령에 의해, 말씀에 의해, 사랑이 넘치는 주님의 마음으로 부드럽게 해 주시옵소서!

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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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6.02.05 15:15

    첫댓글 이거 보기 전에는 별로 였는데... 이거 보고 나서 나도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이런 의미로 보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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