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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산행 후기방♠ 스크랩 2010년 6월 5일 경북 영주 소백산
바위산 추천 0 조회 191 10.06.06 18:51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2010 65일 경북 영주 소백산

코스: 희방사 입구-희방사-연화봉-비로봉-어의곡리

 

산을 가는 작은 이유 중에 하나는 내가 워낙 산만해서

집에 있으면 분주하기만 하지 실지로 한 게 아무것도 없게 된다.

일년에 두어 권 읽어내는 책을 읽는 곳이 산에 가는 버스 안이다.

달리 할 게 없으니 그럴 수 밖에……

 

7년 전에 나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는 책

다른 사람들은 오래 전에 읽었을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를 지금 읽고 있다.

흥미와 감동으로 눈을 뗄 수가 없어 소백산을 가는 차 안에서 거의 다 읽었다.

엄청난 수확이다.

집에 있었으면 분명 마음만 바빳지 분명 빈둥거렸을 것이다.

거기다 푸른 초원에 연분홍 철쭉이 흩어진 소백산까지 담고 왔으니

어느 누구의 것이랑 비교하여도 행복이 모자라지 않는 하루였다.

 

희방사로 오르는 돌길이 쉽지 않다.

한번쯤은 이 길을 지난 적이 있다는 것을 겪어보고야 기억해낸다.

가파른 경사에 너덜길로 쉽지 않다.

그래도 말이지 몇 년 전이랑 비교를 하면

젊음은 줄어들었지만 연륜이 늘어서

산을 오르는 게 서두르지 않게 되고 힘이 덜 든다.

사실 힘이야 더 들겠지만 그렇게 느껴진다.

 

계곡을 따라 돌이 지천인 길로 오르면 희방사쪽에서 꽹과리 소리로 요란하다.

희방사에서 굿을 하나?

워낙 다양한 세상이긴 하지만!! 절에서 저런 난리를 칠 수 있나?

영주시에서 소백산 철쭉제를 시작하면서 농악대들을 초청했다.

그들이 산 속에서 놀이를 하고 있다.

 

지역 상품을 알리려고 영주 홍삼차도 시원하게 해서 대접하고,

떡도, 품질 좋은 손수건도, 꽝꽝 얼린 얼음물도 나누어 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희방사로 오르면 관람료도 내야 한다는데

축제기간이랑 그것도 면제 받았다.

고맙고 흐뭇한 시작이다.

 

얼음물을 받아 들고 우거지는 6월의 너덜길을 오른다.

시원한 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내려와 덮친다.

희방폭포다.

물이 뭉쳐서 절벽을 단호하게 뛰어내린다.

그 물이 바람을 가르는지, 바람을 일으키는지

물이 쳐 내려오면서 얼쩡거리는 공기를 물속에 처박아서 식히면

그게 바람이 된다.

한참을 폭포가 그 짓을 하는걸 보고 그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머문다.

그리고 다시 오른다.

이른 여름쯤에서 나무며 풀에 매달린 잎들은 성숙하고 건강하다.

이 깊은 산에 라일락이 지금에서야 꽃을 피운다.

 

 

희방계곡을 따라 연화봉으로.... 

 

영주시에서 주최하는 소백산 철쭉 축제에 참가한 농악대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홍삼물이며, 수건, 떡을 나누어주는 영주 시민들

 

6월의 녹음이 짙은 너덜 오름길

 

희방폭포

 

 

산 속에서 피기 시작하는 라일락

 

 

너덜은 계속되고 그 너덜 중간에 스님 셋이서 독경을 하며

아픈 동료를 위해 모금을 하고 있다.

지나친다.

그리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한번도 산행 중에 아니면 마주치는 절에서

천 원짜리 한번 드린 적 없다.

언젠가는 드려야겠다.

아니 나중 집에 와서 찍은 사진을 보니 드렸어야 했다.

산을 수없이 다니면서 절에서 물도 먹고, 길도 묻고, 설명도 듣고,

설악산 영시암에서는 국수도 얻어 먹지 않았던가?

 

가파른 너덜은 계속된다.

그래서 그 너덜을 희방깔닥재라 부른다.

너덜이 끝나면 연화봉까지 1.6 km가 남는다.

깔닥재쯤에서 너덜이 끝나고 연화봉을 향한 능선이 시작된다.

 

그쯤에서 캐나다에서 왔다는 세 명의 젊은이들이랑 잠시 얘기를 나눈다.

외국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왔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나도 그렇게 세상을 다니다 보면

관심을 가져주고 말이라도 붙여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맙던가?

일년 비자로 영어를 가르치러 캐나다에서 왔다는 그들이랑

자기들 고향 이야기랑 풋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그들이지만 진달래나 철쭉이 영어로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는 거

평소에 잘 보지 못하면 모를 수도 있다.

다만 그 젊음으로 세상을 주유함이 얼마나 싱싱한가?

혹시 모른다.

나처럼 어느 날 문득 그런 만남들을 기억하며 소중하게 생각할런지도……

그들에게 소백산의 푸른 초원과 연분홍 꽃밭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설레임과 기대를 온전히 가지고 올라가

그들의 눈으로 경이로움을 보게 하고 싶었다.

 

오른다.

능선엔 가로수처럼 늘어선 키 큰 철쭉에 꽃이 흐물거린다.

저 넘쳐남을 어이할 건가?

큼직한 꽃이 피고 떨어지고

피면 지게 되는 거

저 정도 나이의 나무라면 미련없이 지는 걸 배워두었을까?

땅바닥에 꽃이 흐드러진다.

저들은 다시 꽃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알고 있어서

사라짐에 주저함이 없는 걸까?

모를 일이다.

단 나에겐 모든 것이 한 순간이다.

지면 돌아오지 않는 거……

그럴리야 없겠지만 난 백번 죽어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 거니까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다면 난 바람의 영혼이 되어 우주를 떠돌 것이다.

 

동료를 위해 독경을 하며 모금을 하는 스님들 

 

나무에 피는 꽃

 

땅에 핀 철쭉, 저 꽃이 나무로 돌아가 꽃으로 다시 필까?

 

남쪽 도솔봉과 묘적봉 능선

 

 

 

꽃이 지고 잎이 커진 철쭉나무 그늘에서 점심을 했다.

서먹한 동료들이지만 무언 갈 공유함으로 해서 그 서먹함이 없어진다.

이른 점심으로 무거워진 몸으로 연화봉을 오르는 건 힘든다.

그래도 문득 돌아오면 연화봉에 올라 있는 나를 발견한다.

 

펼쳐진다.

초록 풀밭이,

그 선명한 풀밭이 연분홍 진분홍 철쭉꽃을 드문드문 아니면 군락으로 심어두고

저기 죽령에서 비로봉까지 길쭉하게 누워있다.

파란 하늘만이 그들을 만진다.

그 긴 초원이 파란 하늘을 만진다.

 

어느 겨울날 올라 소백산을 고스란히 바라보며 감탄을 하게했던 도솔봉이

이번엔 남쪽에 묘적봉이랑 이어져 이번에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한눈에 드러나는 그 초록의 완만한 능선과 평원을 아껴가며 천천히 걸을 것이다.

 

잎이 나고, 꽃이 피고, 풀과 꽃을 건드린 바람이 나를 건드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초원길을 헐렁헐렁 건넌다.

피어야 하는 꽃들, 필 수 있는 꽃들이 다 핀다.

연분홍 철쭉이 제 1연화봉을 오르는 능선에 몰려있다.

제 각각이다.

많이 핀 것, 아직 몽우리만 있는 거, 막 피어나는 거까지,

초록 풀밭에 순수하며 화사한 연한 분홍색 꽃들은 우아하다.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4.3 km의 푸른 능선을 건넌다.

길 따라 꽃이 피고 바람도 길 따라 온다.

저 아래 짙은 녹색은 연초록을 높은 곳으로 미리 보내며

자기들도 곧 올라 올 것이라고

연초록을 즐기고 싶으면 지금 충분히 즐기라고 한다.

오늘만큼은 시간을 주겠다고..

 

숲을 지나면 산딸기며, 풀솜대, 둥굴레며 이름 모를 꽃들이 핀다.

숲을 나와 해가 드러나는 곳엔 철쭉이 뭉터기로 핀다.

점박이 우아한 꽃이 싱싱하게 매달려 아름답다.

그렇고 말고……

 

초원을 지나가면 바람이 끊임없이 다가와 속삭인다.

너도 바람이고 싶으냐고

소백산에 부는 바람이고 싶으냐고..

그 푸른 능선에 흩어진 철쭉이, 모여있는 철쭉이

그 모두가 소백의 하나가 되어있다.

 

연화봉에서 본 소백 풀밭 

 

연화봉에서 본 동쪽으로 비로봉으로의 소백능선

 

우거진 숲길

 

서쪽으로 제2연화봉쪽 소백능선

 

소백의 이웃 산들

 

소백산에 자라는 연분홍 철쭉

 

제1연화봉 기슭의 철쭉 군락

 

 

능선을 지나서 가장 높은 곳이 비로봉이다.

 

연초록 능선과 초록 기슭을 지나서 송림지까지의 죽계구곡

 

초록 소백능선, 뒤돌아 보면서

 

제1연화봉을 지나 어느 언덕에서 본 비로봉 방향으로 소백능선

 

 

 

 

비로봉 오름길에 초원과 초원이 키우는 철쭉 군락

 

 

 

 

 

 

 

 

비로봉에 올랐다.

주름진 산이 산을 물고 포개지고 이어지고 

산 사이에 빈터를 허락하여 사람을 살게 한다.

산이 펼쳐져 있다.

죽령에서 시작된 능선이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를 거쳐 마당치까지

푸르게 누워 있는 것이 고스란히 보인다.

그 높은 풀밭능선이 구불거리며 꿈틀거리는 모습은

오직 소백산에서만 가능한 광경이다.

 

푸른 능선을 따라 국망봉을 거쳐 저기 동쪽 마당치로

소백능선을 따라 흐르고 싶지만 북쪽 어의곡리로 방향을 튼다.

어의곡계곡은 희방계곡길과는 달리 길고 완만하다.

자작나무숲이 아름다운 그 완만한 길을 따라 내려온다.

 

 

 여인의 치마처럼 주름진 소백의 곁능선들

 

 

비로봉 정상

 

비로봉 정상 동쪽 사면의 철쭉

 

소백산의 평원, 그걸 지키는 나무 한그루

 

소백평원에 철쭉 한 그루

 

어의곡리로 가면서 완만한 능선에 자라는 우아한 자작나무 군락

 

 

온종일 싱그러운 행복들이 풀잎처럼 깔려 있었다.

피는 꽃에, 지는 꽃에, 풀밭에, 풀 냄새 꽃 냄새가 나는 바람에, 눈이 시린 능선에

펼쳐져 있는 그 행복들을 하루종일을 밟고 다녔다.

 

어의곡계곡에서 신발을 벗었다.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물을 머리에 끼얹으면서 온몸의 열을 내렸다.

남들은 발이 시리다는 그 물이 내겐 더없이 시원하다.

어쩌면 난 아직도 뜨거움이 넘치는 사람이거나

차가운 온도가 어울리는 파충류처럼 냉정한지도 모르지.

아무려면 어쩌랴.

가진 대로 생긴 대로 살아보는 거지.

 

하루종일을 놀아서 산속에 해가 빨리 저문다.

고수동굴 아래에 있는 예약한 식당으로 찾아 들면

동굴에서 나오는 시원한 기운이 몸을 스친다.

같이 간 동료들과 막걸리에 소백산 나물 비빔밥으로

행복의 디저트로 마무릴 했다.

 

돌아오는 일만 남았다.

어두워지는 밤이 남강을 따라 흐른다.

그 밤의 시간에 나를 실었다.

밤을 달리는 버스의 맨 뒷좌석에 드러누워 눈을 멀뚱거렸다.

오전에 읽던 책 구절이 생각난다.

링컨이 폰더에게 해준 말 모두 용서하라. 특히 너 스스로를 용서하라.”

행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래야 할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나중에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소백산에 풀이 우거지는 그 때쯤에

내 영혼을 받혀주던 몸을 소백산 바람에 실어

저 초원 어디론가 날려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바람에 녹아서 바람이 되어……

하지만 그 좋은 날에 죽는다는 것도 아깝다.

소백산에 별 구경거리나 흥미거리가 없는 날 떠나야 될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니 일단은 오래 살고 나중에 생각을 해봐야겠다.

아주 나중에 다시 와 볼 것이다. 그때 다시 생각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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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0.06.06 18:51

    첫댓글 히말라야 대장님 등등..가끔 본 친구님들 처음보는 친구님들 같이 좋은 산행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기쁜 하루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 10.06.06 19:12

    재주가 많으신분 같습니다 함께해서 즐거웠구요 후기글 감사히 잘읽고 갑니다

  • 작성자 10.06.07 10:53

    ~덕분에 소백산 구경 잘 했습니다...밥도 맛있었고요..수고 하셨습니다.

  • 10.06.06 19:22

    글과사진 정열에 넘치는 글입니다 같이 산행할수 잇는시간이 즐거웟슴니다

  • 작성자 10.06.07 10:54

    에너지는 동국님이 넘치시던데요..예 저도 좋더군요....좋은 산행 많이 공지 하시기 바랍니다.

  • 10.06.07 09:56

    멋진 글을 대하며 다시한번 산행의 즐거움을 되새겨 봅니다..자작나무를 알게되어 한가지 더 배웠구요..즐거운 산행 멋진 추억이 되었습니다..즐감합니다~^^*

  • 작성자 10.06.07 10:55

    99% 자작나무가 맞을겁니다..비슷한 것도 많거든요..아니라도 너무 뭐라 하기 없깁니다..추억으로 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 10.06.07 13:52

    이렇게 한나절의 일기를 잘 도 정리해서 쓰신분은 아마도 자기관리 주위 정돈도 깔금하리라 ~~어쩜 이렇게 요소 요소 능선길 숲길을 자세히도 설명하셨을까요 ~다시금 이 글을 읽으려니 지나온 숲길 능선들이 선명하게 떠오르는군요 ~즐갑했습니다 ~

  • 작성자 10.06.07 16:13

    이런 아픈데를 찌르는군요,,허술합니다. 덜렁대고 어리버리하고 산만하고, 맘도 약하고..감사합니다. 나영님이 읽어주셔서..

  • 10.06.17 10:06

    오랜만에 너무좋은 후기글 감상하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자주 올려주실것을 부탁드려 봅니다^&^

  • 작성자 10.06.17 13:40

    고맙습니다..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10.06.30 20:17

    바위산님과 함께한 소백산 산행 아주 즐거웠답니다. 후기를 아주 감동적으로 읽고나니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 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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