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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 기행 열아흐레째] 잃어버린 샹그릴라 !
수쏭[書松] - 뻔즈란[奔子蘭]진 - 진싸[金沙]강교 - 샹그리라[香格里拉-中甸] 105.1 km
7시 50분 수쏭 출발 해발 2,730 m.
++ 더친을 떠나 바이마쉐산을 넘었지만 아직도 하늘이 가깝다... "三江幷流" 지역으로 깊은 협곡이다. 이미 지나온 누강과 란창강 그리고 창[長]강으로 불리는 양자강의 상류 진싸강이 멀지 않음. ++
중국 공산당 정부는 "오로지 하나의 중국[只有一個中國]이라는 기치 아래 전국이 베이징 기준시를 쓰므로 우리같이 잠시 다녀가는 여행객은 시계를 맞추거나 시차 적응을 할 필요가 없어 좋다.
매일 아침 출발 시간은 같은데, 오후 2,3시가 되어도 시간의 여유가 많아서 좋다. 8시가 넘어도 어둡지 않으니 말씀이다.
농사꾼이야 날이 밝으면 일어나고 아침 밥 먹고 나면 서둘러 들에 나가 일을 해야 먹고 살지만, 팔자 좋은 자전거 여행자는 근심걱정 다 털어 버리고 유유자적 즐겁게 페달질만 하는데...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였던가?
다른 날 보다 일찍 떠났음으로 목적지에도 이른 시간에 도착을 하겠지! 하며 좋아라 했으나 얼마 못가서 깨졌으니... 긴 내리막 평지 작은 오르막 등을 반복하면서 주변의 풍광에 빠져 신선한 아침에 페달질도 가볍게 달리는데, 멈칫거리던 길벗이 자전거를 세운다. 허전해서 뭔가 보니 메고 다니는 가방이 없단다. - ㅎㅎㅎ
달린 거리를 보니 17.53km. 어렵지 않게 지나가는 차를 잡아 태워 찾으러 보내고, 나는 한가하게 얻은 시간을 밤낮으로 자전거 타느라고 그 동안 손보지 못한 여러 곳을 정비하며 기다렸다.
++ 첩첩산중 산골짜기에도 집집마다 위성 안테나가 있다. 뿐만아니라 모두 다 2층 집이다. ++
++ 이 문을 지남은 몽류[夢留]를 마침이다. ++
++ 11시 10분 수쏭에서 30.84 km 지점 34.5 ℃. 해발 2,005 m. 길가에서 선인장이 자란다. ++
티벳의 자연은 어떻게 보호가 되고 있을까? 나는 과연 이 길을 지나면서 얼마만큼의 자연을 파괴할까? 에 대하여 스치듯이 염려를 해 보았다.
내가 먹은 과자의 비닐봉지는 어떻게 처리를 할까? 묻을까? 아니면 태울까? 내가 먹고 싼 거시기는 어떻게 될까? 거름이 될까? 아니면 오염물질이 될까?
쓰레기는 정해진 장소가 아니면 버리지 않았는데, 거시기는 가다가 들녘에 싸야 거름이 되지 않을까?
씨닝에서 라싸로 이어지는 칭짱선으로 불리는 109 국도는 갖가지의 쓰레기들이 줄지어 널려있었다. 음료를 마신 깡통에서 고산증에 좋다는 약을 먹은 병까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촌락에는 어김없이 처리하지 않고 마구 방치된 특유의 빨간색 비닐봉지 쓰레기들이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겼다. 하기사, 환경보호 의식이 부족한, 같이 가는 중국 친구들... 교육(?)을 철저히 시켰지만, 역부족이었다.
오면서 여러 곳의 상점에는 비닐봉지가 없는 곳이 많았다. 대신 망[網]으로된 주머니에 담아 주었다. 그 것이 얼마나 자연보호에 이바지를 할지.... 그나마 중국 공산당 정부의 작은 배려에 티벳의 자연은 고마워하고 있지 않을까?
++ 집의 구조가 티벳의 냄새만 풍긴다. ++
무슨 민족이 사는 지역인지? 혹은 어떤 사람이 사는 집인지 모르지만... 이쯤에서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집의 구조를 보여 준다. 나시족이 사는 리쟝[麗江] 전이라서 아직은 티벳탄들이 사는 지역일터인데...
때가 되어 그늘을 찾아 들어 밀가루로 만든 맛 없는 만터우를 목이 메어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고국에 들어 가 있는 아내에게서 좋은 소식이 왔다. 큰 딸아이가 모 환경연합 주관, 환경부 후원으로 한중일 3개국 대학생들이 모여 - 모 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분도 참여하는 ... - 일본을 출발 각 나라를 돌면서 환경 보호 활동을 한다는데 지인의 추천을 받고, 몇 백 만원하는 경비를 내지 않고 참가를 하게 되었다는...
골(?)이 좋은 그 아이는 고국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자기 말마따나 자기 의사에 반하여 황해를 건넜다. 현지의 초중에 들어갔지만, 현지말을 한마디 못하니 이내 식상하여 졌고... 그래도 애비의 엄명에 그럭저럭 다니더니 어느 날 학교를 않가면 않되냐? 하니... 나는 졸업장이라도 있어야 되지 않겠냐? 고 원론만을 내세웠고.... 급기야는 자퇴.
목표는 고입 검정고시. 고국에 있을 때 "모 선생 영어"를 과외학습으로 하기는 했지만,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오전에는 영어를 했고, 오후에는 일어를 공부하러 1년 남짓 다녔다. 그 중간에 고입, 대입 검정고시는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를 하였고... 남은 것은 현장 학습.
일본 커후[客戶 - Buyer]가 많은 지인을 찾아 월 3백 위엔에 취직(?)을 시켰다. 일본에서 오는 전화나 씬샹[電子信箱 - E-mail]을 받아 중문으로 번역하여 담당에게 넘겨주는 것이 주 임무. 지금은 제 3국으로의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아뭏튼 잘 되었다.
공짜로 이나라 저나라 구경도하고, 언어 공부도 하며, 3국의 많은 친구들을 만나는 교류도 하는 1석3조의 일이 생겼으니... 이 모두 조상의 은덕이 아닐까? 한다.
++ 오면서 여러차례 물을 받아 마셨다. 중국 기행 중에는 흔치 않은 일.++
이번여행에서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숱한 사고(?)가 있다. 탄 거리가 꽤 되기도 하지만, 겉 바퀴가 터졌고, 짐받이가 부러지는 등의 자잘한 일도 있었고, 오면서 이것 저것 수 없이 많은 물품들을 잃어 버렸다. 오래동안 잊혀지지 않을 라싸에서 잃은, 3 번째 새로 장만한 수마샹지[數碼相機 - Digital camera], 꾸향의 숙소에 두고 온 충전기와 배터리, 짐 덮개로 가져온 비닐, 기름통은 탄쓰로를 덜덜대며 달릴 때 떨어진 듯하고, 이어 4차 우루무치 갈 때 비싼 값을 치르고 산 장갑이 떨어져 없어졌다.
오호 통재라! 후에 박물관은 못 짓더라도 고이 간직하고 싶었던 기념물품들인데...
++ 수쏭에서 약 44km 지점 오르막 초입. 샹그리라를 출발하여 인도까지 간다는 슬픈 일본 학생을 만났다. ++
우리는 그 들을 "왜늠"이나 "쪽빨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미친 서구 열강을 막아 보호해 주었고, 기찻길을 놔주고 백성을 깨우쳐 주었다고 개소리를 치는 것을 서슴지 않는 그들... 5백년 전통의 조선 왕조를 짓뭉개고, 강제징용, 창씨개명, 정신대 등등으로 역사를 난도질한 장본인들... 뭘 잘못한지 알고 용서를 빌면 될 일. 그러나 뭘 잘못한지도 모르는 미개한 인종들...
많은 한족 젊은이들을 만나며 오다가 티벳, 파키스탄 거쳐 인도까지 간다는 젊은 일본 학생을 만났다. 마침 같이 가는 길벗이 일본어를 유창하게 했고.... 그 친구 왈 자기도 국기를 걸고 타고 싶다고 했다나? 얼어 죽을.... 그런 정부 그런 지도자를 가진 것이 당신들의 책임이오. 아시겠소! 그들이 동북아에서 대우를 받으려면 철저한 국가적 반성이 따라야 할 것이다.
++ 아직 갈 길이 멀다.
주는 것도 없지만, 얄미운 일본인을 보내고 잠시 후. 중국인 같이 보이는 2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낑낑대는 우리 옆을 쏜살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나즈막(?)한 고개는 계속 이어지고... 오르다가 쌍하이에서 온다는 한족 청년을 만났다. 허허... 그런데 그 친구 자전거는 일반 자전거 일명 "신사용"이다. 뭐가 다른가? 가장 큰 차이는 변속기가 없다.
아이고! 이 자전거로 그 많은 언덕을 어떻게 오르겠는가? 고 물으니 밀고 올라가면 된단다. 오잉! 시간이 무지하게 걸릴텐데...하니 중국인 특유의 메이쓰얼[沒事兒-괜찮다.]로 대답을 한다.
이 친구 밴드식 뒷브래이크는 줄 길이 조절이 되 있지 않아서 무용지물. 앞 브래이크만으로 내려왔단다. - 목숨을 내 놓았나? 아님 서너 개가 되는지...?
여기까지 오면서 만난 많은 현지인들은 용감했다. 두껍고 뻣뻣한 청바지를 입고 타는 것은 기본으로, 얇은 밑 바닥의 퉈씨에[拖鞋 - Slipper]를 신고 타는 이. 머리가 낮아 장거리는 부적합하고, 변속기의 기어비가 커서 속도가 빠르기에 평지에서 타야 할 꽁루처[公路車 - Raching bike]]를 타고 오는 이. 튼튼한 다리 자랑을 하려는지? 기어비[比]를 무시하고 높게 놓고 힘들게 타는 이. 티벳으로 이사를 가는 지 짐이 한 트럭 분은 되게 싣고 가는 이. 등등... 어휴! 답답!!! 힘들겠다! 다리가 아플터인데... 등등... 걱정이 되지만, 잠깐 스치는 시간에 일러주기도 그렇고....
[[죽이는 구나 죽여!! ]]
나 역시 정보부재. 큰 고개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개에 막 들어서자 만난 일본 학생의 말씀이 10 몇 km 쯤 될거 라는 말도 전해 들었다. 지나온 경험자의 귀중한 말씀이니 꿀떡 같이 믿었는데... 아이고! 일본늠 말을 믿은 내가 잘 모시여...!!!
그 뿐인가! 지금도 생생하다. 16시. 떠나서 62.62km 지점. 아스팔트 위로 뻗어 나온 찔레나무를 밟았다. 지나가는 순간 아차! 제대로 밟으면 뚫어질 텐데... 그리고는 이내 잊었다. 다리가 무겁다. 이렇게 해발이 높아졌나? 하면서 아닌데... 하다가 보니 바람이 빠졌다.
바로 전까지 화창하여 너무도 따가웠고, 옷을 벗고 벗어 한 꺼플만 남겨 놓았을 정도로 좋은 날씨였는데... 엎친데 덮친다고 하였던가? 마침 비도 내리기 시작. 큰 나무 아래 자전거를 세우고 속 바퀴를 갈았다. 바퀴를 달고 났을 때 옷은 이미 다 젖고 말았다. 이 때만 하여도 다와 가겠지. 조금만 더 가면 되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 동네가 나타났지만 비가 쏟아지니 사람이 없다.
어렵게 만난 청년에게 묻기를... 오르막이 얼마나 남았냐? 하니... 못 알아듣는 말로 쏼라[說了] 된다. 만국 공통어인 손짓 발짓을 써서 알아낸 답은 내리막도 있고 오르막도 있단다. 오~~잉! 또 오르막이 있다고... ? 이쯤이면 다 올라 온 것 아니야? 대답이 필요 없는 혼자의 물음이었다. 그 청년의 말대로 오르고 내리기를 몇 번. 샹그리라는 어딘지도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겠는데, 추적추적 비가 내리면서 날이 저물었다.
이때 하늘님이 보우하사 구호천사가 나타났으니.... 군용 지프차에 옆에는 예쁜 아지매를 태운 샹그리라에 사는 쨩췐쫑[張泉忠] 선생이다.
상투적인 대화가 오고간다.
어디서 오냐?
칭다오.
어디까지 가냐?
샹그리라.
그리고 그냥 갔다면 당연 욕이 나왔겠지.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꼭대기까지 얼마나 남았나? 멈칫멈칫... 오잉! 잘 모르는 구만?
아직 멀었단다.
그러더니 지프차에 매달려 고개 꼭대기까지 오르잔다.
나는 "혹" 했다. 그러나 길벗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동의를 하지 않는다.
자기들은 그렇게 많이 해 보았다면서 문제없으니 그렇게 하자는데... - 특수(?)부대 출신인 나는 메이원티인데... 당신 혹시 카츄샤 출신 아니우? 결국, 그들은 티벳 특유의 휘발유 냄새를 남기고 부웅 떠나갔다.
수쏭에서 65.68 km 지점 해발 3,030 m.
깜깜절벽. 야간주행이 또 시작되었다.
젊은 길벗은 앞에... 쬐끔 늙은 나는 뒤에....
50십을 바라보는 낡은 내가, 빤쓰 줄 맬 틈이 없을 20대 열혈청년을 따라 가자니 죽을 맛이다.
그 때 지나가던 차가 서더니 뭐라고 한다.
그 차가 돌아온 것이다. 그 "선생님"께서 돌아오신 것이었다.
꼭대기까지 10 꽁리(公里 - km) 쯤 된단다. 딴쓰[但是-그러나]! 차로 10꽁리면 자전거로는 20 꽁리! 밤이니 곱하기 하면 40 꽁리.... ! 그에보태 비까지 내렸으니 "따따블" 아닌가?
드디어 꼭대기. 해발 3,310(3,500)m. 지프차가 불을 밝혀주고 서 있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까지 쏟아져 고도만 확인하고 내리막으로 들어섰는데 한 여름 우리 장맛비 쏟아지듯 한다.
비록 낮으막 하지만 또 오르막이 나타났고, 기진맥진한 나에게는 힘에 부쳤다. - 아이구 엄니! 저 죽어유~~우!
정신이 흐릿해 지는 것을 느끼면서... 허우적 댔다. 내려서 걸어야지 이러다 기절 하겠다 는 느낌이 온몸을 엄습하였다.
그 때 마침! 샹그리라에 이미 버스로 닿은 로인에게서 전화가 왔고, 전화를 받아 통화를 하는 중에 젊은 길벗은 쏜 살 같이 치고 나갔다.
예라산과 라우산을 넘을 때 밤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니... 잘도 쏜다. 따라 잡지는 못하겠고, 뒤에 차는 바짝 따라 오고... 그 때 그냥 길바닥에 눕고 싶었다. 갑자기 하강을 해서 기압차이 때문에 그런지 ? 아니면, 날씨가 추워 혈액순환이 않 되어 그런지? 그도 아니면 힘에 부쳐서 그랬는지? 어지럽고 맥이 빠져 지옥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2시 수쏭에서 105.1km. 18.4 ℃. 해발 3,105(3,200)m. 샹그리라[香格里拉 - Shangri-la]
샹그리라는 그렇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늦은 밤. 비어 젖어 춥고 배고플 때. 비와 함께 짙은 어둠이 내렸고, 어둠을 즐기려는가 안개도 적막과 함께 내려와 샹그릴라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밤 안개 속에 가로등은 벌써 졸고 있고, 비가 많이 내려 길에는 물이 고인 모습으로...
뼈 속까지 스민 차가운 빗물에 몸을 오들오들 떨며 식당 앞에서 로인을 만났을 때가 22시 정각. 젖은 옷은 벗지도 못하고 먼저 주린 배를 채웠다.
그렇게 온 몸으로 비를 맞아 추위에 떨며 밤이 깊어서야 자전거 여행자는 꿈의 낙원이라는 샹그리라에 닿았지만... 샹그리라는 이름뿐. 우리가 찾아 온 "마음 속의 해와 달" 그런 샹그리라가 아니었다. 영국의 작가 J. Hilton의 Lost Horizon에 나오는 신비의 샹그릴라는 눈을 까 뒤집고 둘러보아도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았다.
[[ 자전거 타기 ]]
수쏭에서 진싸강 다리를 지나 백 여리(40여 km)길은 내리막이다. 이후 이름을 모르는 작지 않은 고개를 오르고, 오르내리막이 반복되다가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해발 3,310m. 고갯마루에서 샹그리라 시내까지는 약 20km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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