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5월 29일 동성중고교생들로 보이는 남학생들과 정체불명의 여중생들이 동원되어 혜화동 로타리에 나무를 심고 있다. 높은 건물은 전 수도의대 병원이었던 우석의대 부속병원 입구의 신축병동이고 후에 고대 우석병원이 되었다가 현재는 아남아파트가 그자리에 들어 섰다. 김 치과, 중국집 진아춘, 현대미술연구소, 아카데미빵집의 "아카데미" 네 글자가 빈약한 가로수 뒤로 보인다. (그 때는 나무들이 참 빈약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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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서는 서울에서도 오래 된 책방으로 손꼽히는 동양서림 간판의 "서림"이 보이고 코너의 우체국건물도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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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식수가 끝나고 기념촬영한 듯 한데, 왼쪽에 주유소와 그 앞의 공중전화(세환이가 동전을 턴)가 보이고 배경의 버스뒤로는 파출소윗부분이 보이며, 파란 표시부분은 우리집 지붕이다. 지금은 막내동생 진우네 식구가 살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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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를 끝낸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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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2월 11일 로타리 위를 지나는 고가도로 착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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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명륜동쪽에서 본 혜화동 로타리. 로타리 한가운데에 파이프 구조로 된 아치가 있었는데 후에 다시 없어지고 로타리로 메워졌다. 오른편 뒷쪽에 내가 혜화동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 때 강제로(?) 끌려가 기도를 올렸던 뾰족탑이 있는 옛 성당을 허물고 그자리에 현대식으로 지은 벽돌과 콘크리트로 었으며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라"라고 건물점면부의 화강석Facade에 새긴 새 성당이 보인다. 태극당지점이 그 자리에 있던 작은 책방등을 밀어 내고 들어선 것이나 지금은 우리은행인가로 바뀐 상업은행의 자신만만한 간판도 엊그제 같다. 즐비한 코로나 택시들사이로 퍼블리카가 끼어 있음도 기억이 생생한 장면이다.![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93/16_cafe_2008_09_24_11_20_48d9a341bc0e2)
현재의 혜화동 - 한동안 내가 나온(48회졸) 혜화국민학교자리에 혜화여고가 들어 서면서 현 국제고교자리로 혜화국민학교가 쫒겨 갔었는데 어느덧 혜화여고는 간곳이 없고 혜화초등학교가 복귀했다. 보성중고가 과학고를 내 보내고 다시 옛건물을 복원하여 들어 설 수 있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는데, 그 누가 그걸 원하랴. 저 밑의 확대 지도에는 내가 15회 졸업인 혜화유치원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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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위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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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에서 우리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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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대로 이상을 소개하며, 그러나 더 찾는 대로 내가 보유한 자료들을 올리겠다.
TomJones-GreenGreenGrassofHome.mp3
첫댓글 히야 ~~~~~~~~ !!! 아리아리 하다. 저당시만해도 우석대 병원건물이 웅장해 뵜지///2층 중국집이 진아춘 였구나.(거기서 우리 유도부 회식 많이 했는데) 넌 근데 어떻게 중국집 이름까지 기억을 하냐. / 그리고 잉징이 숨어서 스포츠 까치 담배 피던 골목두 뵌다.
로타리 중간의 현대미술원 1층에 있던 또 하나의 중국집은 사진에서도 그 간판글씨가 잘 보이지만 鎭江飯店인데 進雅春보다는 더 쌌다. 그래서 방도 있고 요리도 비싼 진아춘은 혜화동에서도 부잣집사람들이 드나들었고 진강반점은 작지만 서민적인 중국집이었다. 진아춘은 지금 대학로로 자리를 옮겨 영업을 계속하고 있고, 진강반점은 없어진 것 같다.
경우 기억력 인간 문화재감이다. 동창회 연말 파티 할때 다른동창들은 가라오깨 화면을 보며 부르는데 경우는 diana 를 부르는데 그냥 moniter screen 없이 관객만 보고 부를때 난 이미 놀랬다.
나는 용산구 용문동에서 1949년 12월 29일에 태어 났지만 6.25직후부터는 혜화동집에서 쭉 살았고 커 왔다. 동생 4명이 다 그 집에서 낳았다. 그래서 종구도 마찬가지겠지만 혜화동은 나의 본적지가 되었다. 그러니 진아춘을 안다는 건 자연스럽다. 어렸을 때 놀던 범위는 성북동 삼선교는 물론 돈암동까지 명륜동(성대근처포함)과 동숭동일대까지의 지도를 그릴정도였다. Diana는 국민학교 5학년때 한글로 받아적어서 외운 거라 생전 안 잊어 버린다. 종구야 내가 기억력이 좋은 건 결코 아니고 일부 아이템에 대해서만 깊이 기억할 뿐이다. 평소엔 아침식사로 뭘 먹었는지도 기억을 못한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