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에 대한 새로운 인식 2
“불알 깐 마을의 밤” 아라는 다소 불량스런 제목을 단 단편소설을 기억한다.
20여 년 전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아파트문화가 전개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나왔는데
주인공이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한 조건중 하나가 정관수술이었다.
가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위안하지만 “강요”된 “포기”는 괴롭다.
어느 날 저녁 불콰한 술기운으로 귀가하던 주인공은 불 켜진 집마다 있을 자신과 같은
처지의 거세된 가장들을 향해, 아니 허공에 대고 소리친다. “........................!”
공동주택 혹은 집합주택의 뿌리는 고대 피라미드를 건설하던 노동자들의 숙소일수도
유럽 산업혁명기 도시노동자들의 원룸 형 벌집일수도 있겠다.
인구과밀한 도시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고안된 아파트는 르 꼬르뷔제 같은
당대의 저명한 건축가들 사이에도 과제였고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며
인간과 삶, 환경을 중시하는 정신을 충실히 이어받은 합리적 주거대안으로서의
아파트들도 국외에는 꽤있다. 하지만 서양의 어떤 건축가가 아파트를 두고
“인류가 고안한 최악의 주거형태”라고 꼬집은 말이, ‘같은 면적에 얼마나 많이
때려 넣을 수 있을까?’ ‘얼마나 높이 쌓아 이윤을 극대화 할 수 있을까?’ 만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나라의 아파트건설실정에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면적이 좁은 나라, 인구 과밀한 대도시에서 아파트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처럼 과대 포장된 “최선”이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미래의 도시주거 재개발모델로 내놓은 대안은
지금의 타워팰리스 부류를 딱 두 배로 높이고 넓힌 모습이다.
100층 높이의 거실에서 남산을 발아래 두고 구경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
대신 통풍과 환기, 맛 바람을 위해 창문들을 활짝 여는 따위의 행위는 불가하다.
유비쿼터스, 호텔같은, 팰리스, 캐슬.....광고 카피라이터들 머리에 쥐난다.
회사원 A씨 45세/ 아내와 1남1녀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대림동산 내 주택에 살고 있음.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컴퓨터회사에 근무. 4년 전 마포에 있던 아파트를 팔고
이곳으로 이사하여 200여 평의 대지에 아담한 집을 지었음. 대중교통을 이용 출퇴근함.
집에서 대립동산 정류장까지 걸어서 10분, 거기서 고속버스를 타면 남부터미널까지
50분, 다시 지하철로 신사동까지 10분 그리고 걸어서 사무실까지 5분,
이런저런 대기시간 15분을 포함 집 현관에서 회사의 책상 앞까지 1시간 30분 걸림.
고속버스 막차가 남부터미널에서 9시40분이므로 습관적인 술자리를 피할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되며 가끔 심한 술자리 후에는 주로 양천구에 있는 처가신세를
지기 때문에 아내도 안심할 수 있음.
학원장 K씨 47세/ 아내와 2녀
경기도 구리시에서 미술학원 운영. 2년 전 구리에 있던 아파트와 작업실로 쓰던
평내의 허름한 가옥을 처분하여 경기도 가평군 상면 아참고요수목원 인근의
부지 450평을 매입, 살림집을 짓고 이주하였으며 작업실건축을 구상 중에 있음.
오전 12시 출근 밤 11시 퇴근, 러시아워를 피할 수 있으므로 운전으로 출퇴근함.
학원을 출발하여 청평 검문소까지 40분, 좌회전 후 집 앞까지 20분 총 1시간 걸림.
늦잠을 잘 수 있으며 아이들 어릴 때 식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어 좋았다고 함. 틈날 때마다 식구들과 주변에 놀러 다님. 취미 낚시 스키.
약사 B씨 42세/ 아내와 1남1녀, 부모님
충북 옥천군 군서면 오동리 거주. 대전시 서구 대학교부속병원 약국에 근무.
1년 전까지 인근 가수원동 아파트에 살다가 옥천에 있는 부모님의 옆집을 구입하여
자그마한 살림집을 새로 짓고 이사함. 간호사였던 아내의 불규칙한 생활로 인한
식구들의 불안정한 생활에 대한 돌파구를 심사숙고한 끝에 커가는 아이들을
엄마가 더 가까이서 보살피기로 결심하고 병원을 사직한 후 전업주부로 전향함.
병원에서 서대전TG로 들어가 남대전TG로 나오는데 20분, 산내와 곤룡터널을
지나 집까지 25분, 출퇴근하는 데는 총 45분 정도 걸린다. 대전시내에 살 때보다
보육, 교육비가 거의 안 드니 남편 혼자 벌어도 별 문제 없단다.(당연하다)
초등학교는 2.5Km떨어진 군서면에, 중고등학교는 5Km 거리의 옥천군에 많이 있다.
(사실과 상상을 조금씩 섞어 만든 예 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후” “정년퇴직 후”의 전원생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 하다.
자신을 잊고 오로지 자식에 대한 헌신과 미래를 위해 달려온 분들에게 뒤늦게나마
“여유와 휴식”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분들이기에 여생을
다시 쫓기듯 살지 않아도 될 정도의 실질적인 경제력도 갖추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현실적으론 시골 행에 가장 무리가 없는
분들이시다. 하지만 잠깐 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3월 아버지 생일에 뵌 고모님들 중 제일 활발하고 행복하게 열심히 사셨던
셋째고모께서 “자식들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포츠댄스도 배우며.....”
그렇게 살고 싶어 하신다. 평생을 식구들 뒷바라지에 바쳤던 우리 어머니들에게는
뒤늦게나마 친구들을 만나고 쇼핑하고 노인대학, 문화센터에서 여러 가지 배우며
도회지적인 삶을 제대로 즐기고 싶은 욕망이 살아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가 잘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한다면
오랜 세월 외로움을 견뎌낸 그 ‘어머니’에게는 또 다른 희생일수도 있겠다.
우리 부모세대 삶의 패턴이 가족을 위한 희생, 자식의 성공, 경제적 기반마련을 위한
헌신적인 삶이었다면,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60년대 출생) 우리들은 부모이자 개인인
자신의 주체적인 삶과 자녀의 미래가 모두 소중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자각과
‘그래도 家長’이라는 전통적인 관념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으며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은 “삶의 피로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이며
그 대안 중 하나는 가능하다면 직장까지, 아니면 주거지(집)만이라도 대도시에서
벗어나기이다. 그 선택으로 인해 잃는 것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수도권과 대도시에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나
이제까지 일구어 온 현상을 ‘유지’하고 ‘확장’시킬 “기회”를 잡기 위해 바쳐야할
‘뒷골 땡기는 수고’를 생각할 때 과연 그 “기회”란 누구에게나 권장할만한 ‘선’인가
하는 의문을 한번씩 가져볼 필요가 있다. 재차 반복되는 표현이긴 하지만
인생에서 한걸음 안쪽과 바깥쪽은 큰 차이이기도 하고 별 차이가 없기도 하다.
공무원 K씨 43세/ 아내와 1남 1녀
충남 태안군 남면이 고향.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대학 졸업후 공무원생활을
시작함. 현재 서울 중계동에 살고 있으며 시골에 늙은 노모가 홀로 계시는데
조만간 고향에 내려갈까 말까 여러 가지 저울질을 하고 있음.
25평 아파트 소유, 융자 거의 없음. 요즘 분위기 같으면 그 당시 무리가 되더라도
좀 더 큰 아파트를 선택할 걸 하며 아쉬워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시골에서 새집 짓고
꽤 많은 예비비가 확보됨. 고향인 태안에 가서 새로 자리를 잡을 경우
부모님소유의 대지와 농지가 있고 태안군과 서산 등지의 고향친구들(초중고 동창들)이
지역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므로 기반을 잡기가 수월할 것임.
경제적인 독립도 좋지만 현 신분을 그대로 유지 서산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더라도
태안시내를 거쳐 서산 지청까지 40분 정도면 무난할 것으로 예상.
지금도 공립학교 교사들은 어느 정도 지방근무의 의무가 있을 것이나 예전에는
금융기관과 대기업도 진급을 위해 지방근무가 코스였다(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거의 대부분 의무를 때우는 식이었지만, 연고지가 있는 곳에 눌러 앉는 것은 어떤가?
위의 경우 지방근무로 일생을 마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고향 행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고민거리이고, 두 번째는(어떤 분들에게는 이게 첫째다) 서울의 교육시스템에
어느 정도 길들여진 아이들에 대한 염려인데 중학교들어가기 전이라면 별 문제없다.
아이들은 항상 기대보다 잘 적응하고 얼굴은 더 편안해 진다. 여전히 남는 숙제는
“내 삶의 목표를 조정할 용의가 있는가?” 일 것이다.
프로그래머 N씨 42세/ 아내와 1남1녀
90년대 초반에 결혼, 하계동 17평 아파트 전세(보증금 3천만원)로 살림시작.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아내와 맛벌이부부. 3년 후 양천구 목동 25평으로 이사,
이듬해에 매입하고 2년 후 33평으로 늘림. 2번의 전직, 직장상황이 불리해지기 시작.
다시 3년 후 강남구 대치동 34평으로 이사. 1년 후인 2003년 5억3천만원에 매도,
아내와 처형들의 탁월한 재테크감각에 힘입어 대략 10년 동안 무려 5억을 챙겨
대학원 공부한다는 핑계를 대고 미국으로 도주(?)함. 국부유출 심각함. ^^
(최근의 상황을 안다면 더 기다려 더 많이 챙길 걸 하는 후회를 할지도 모르겠다)
웃는 사람도 찡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대도시의 아파트는 가장 강력한
재산증식의 수단인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일 뿐 정상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고 또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나는 위 후배의 재테크를
배 아파 하지는 않는다. 이런 게, 그 이상도 가능한 게 우리나라다. 어쩌랴.....
다만 못내 아쉬운 점은 그가 삶의 터전을 외국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물론 좁디좁은 나라, 국제적으로 살아줘야 할 시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우리 대에 외국으로 이민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표현은 “우리나라는
상식과 질서가 없어 피곤하다“ 는 것이다. 그렇다. 몰상식과 불합리가 아직 많다.
허나 상식과 질서는 저절로 만들어지는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도대체 수도권에만 그 나라 인구 거의 절반이 살며 경제의 70%가 집중된 것보다
더한 불합리가 어디 있는가?
그 불합리는 당장 시골살림에 영향을 준다. 같은 거리를 이동할 경우 대도시보다
시골 사람들의 교통비부담이 많고 같은 면적의 난방을 위해서도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기 때문에 대도시에서는 반팔 반바지로 지내는 동안 시골에 사는 부모님들은
보일러 밸브를 잠그고 추위를 견디며 지내신다. 같은 액수의 통신비를 부담하지만
서비스는 훨씬 못 미치며, 시골에서 집을 구입하거나 신축할 때 받을 수 있는
금융서비스 수준 또한 형편없다. 그러니 값싼 방법으로 마구 지어 재산가치 없는
흉물로 남는 악순환이 거듭되는데, 시골에도 도시처럼 장지저리주택융자 비율을
실질적으로 높여 집 가치가 유지되고 대물림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집들이 지어지고
필요에 따라 매매되어 재산권행사를 할 수 있도록 바꿔가야 한다는 나의 주장은
강짜에 해당되는가?
공무원 S씨 47세/ 아내와 2녀
대전시 서구 둔산동 아파트에 살고 있음. 정부대전청사 철도청근무.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30대 중반 결혼 후 속초와 동해시에서 주로 생활함.
지금도 서울근무는 고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음.
행정도시 이전 확정을 누구보다 환영함. 공주방향 계룡산 주위에 이사할 만한
동내를 물색하고 있으나 이 지역은 이미 전원주택지로 선호하는 지역이라
땅값이 많이 올라 있는데다 비교적 늦게 결혼해서 재산형성시기가 짧았던 탓인지
아내의 부업(피아노교습)이 아쉬운 단계임. 직업이 안정적이므로 대도시처럼
신축주택에 대한 저리융자가 제공된다면 이주시기가 아주 빨라질 것임.
그런 면에서 운이 나쁘지 않은 분이라면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살고 있는 40대는
현재 지역적 유 불리와 규모의 차이는 다소 있겠지만 아파트로 대변되는 ‘집’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암암리에 시골행을 마음에 품고 있던 분이라면 지금이 기회다.
이런 불합리(?)한 분위기가 언제 가라앉을지는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잘하면 집을 짓고도 얼마간의 예비비가 비축될 수 있을 것인데, 무엇보다 현재의 집을
유지하거나 확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울여야 할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다.
삶이 고단하기만 하다면, 무슨 낙인가? 내일아침 살며시 인근 부동산의 문을
두드려 보라.
집에도 3대가 모여 사는 집이 가장 화목하고 생기가 있단다.
시골도 활기차려면 은퇴자들의 여유 있는 투자도 좋지만, 다른 걸음으로 걷고 싶은
40대가 많이 들어와 ‘살면서’ 상식과 합리를 찾아주면 좋겠다.
시골살림이 노후생활의 대안만은 아니다.
첫댓글 욕심을 부려선지 정리가 어렵군요. 오랜만에 내 주관을 분명하게 담은 직설적인 표현을 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조심스럽네요. 아무리 내 생각이 좋아도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소용없겠죠? 아직 몇군데 표현이 눈에 걸리고.....썼다 지웠다 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지금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려고 하는데 예산 부족으로 못 짓고 있습니다. 직장은 구로인데 30km이네로 저럼 하게 지을 수있는 곳 있으면 추천 부탁 합니다..
인생은 종이 한 장 차이 아닐까요?
삶에 있어서 어떤 맘을 먹고 살아가는가에 따라
행복의 척도는 많이 다르니까요.
우드맨님의 소신에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