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지혜(붓다가 쓰던 2600년 전의 언어인 팔리어로는 반야)를 가리켜 벼락과 같은 무기라고 말했다. 무엇이든지 벨 수 있고, 깨뜨릴 수 있는 벼락처럼 지혜는 모든 문제를 푸는 궁극의 열쇠라는 뜻이다.
그래서 붓다는 지혜를 갖추려면 탐욕을 버려 탐진치(탐욕이 넘쳐 화가 치밀고, 화가 치밀면 더 어리석어진다)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보시(내 것을 두루 나누다)와 희사(내 것을 기쁜 마음으로 내놓다)를 하여 욕망을 가라앉히고, 그런 다음에 아나파나 사티를 하면 저절로 지혜가 깃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프로세스를 아는 사람이 드물고, 알아도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
- 지혜를 갖추고 기다리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부터 붕당(떼지어 다니며 두목과 말을 맞추고 두목과 행동을 맞춘 나쁜 짓)을 통해 정치를 배워 그런지 막상 제 공부는 안하고 남 다리 걸어 넘어뜨리거나 스스로 망하기만 기다리는 못된 습성이 몸에 배었다.
여기 토머스 왓슨(Thomas John Watson)이란 사람이 있다. 나이 40이 되어 징역형까지 받고 회사에서 내쳐졌다. 그런 그가 IBM을 만나 세계 최고 기업인이 되고, 회사 역시 일류기업으로 일궈냈다.
(맞지 않거든 떠나라, 버려라, 헤어져라. 자기 자리 아니면 앉지 말고, 자기 사람 아니면 만나지 말고, 자기 일이 아니면 하지를 말라)
그의 슬로건은 THINK다.
20세기 세상은 계산이 폭증할 것이라고 보고 카드천공기 사업에 열중하였다. 과연 그의 '계산'은 맞아떨어졌다. 그의 회사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랐다. 특히 2차대전은 그의 회사 IBM의 카드천공기로 치른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계산은 엄청난 능력이요, 기술이 되었다.
그로부터 교육받은 아들 왓슨 주니어는 육이오전쟁이 일어나자 카드천공기 수준의 계산으로는 급변하는 세상에 대응할 수 없다고 보고 즉시 고성능 계산기인 컴퓨터의 연구, 개발, 생산에 들어갔다. 대박을 쳤다. 이후 전쟁, 금융, 인구조사 등 거의 모든 것이 컴퓨터 계산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천공기를 아들의 컴퓨터가 대체한 것이다.
육이오전쟁 덕분에 2차 전성기를 맞은 IBM은 1981년 대한민국에 은혜를 갚는다. 애플 잡는다고 IBM PC를 만들어 내부설계도를 공개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서울 세운상가 비품 IBM PC가 생산되어 나도 초기 버전을 쓸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으로 일어서게 된 시발점이 이 사건이다.
IBM의 모토이자 슬로건인 THINK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PC 시장에 밀려 IBM이 아들이나 다름없는 MS(빌 게이츠 0750)에게조차 밀리면서 적자에 허덕일 때 이들은 다시 한번 THINK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인공지능 '딥 블루'를 만들어 체스대회에서 우승시킨 것이다.
이후 자신감을 얻은 IBM은 인공지능 사업에 전념하면서 'AI 왓슨'을 만들어냈다. 당연히 퀴즈쇼에서 우승했다.
현재 인공지능 왓슨은 우리나라 대학병원 7군데에 들어갔다. 전세계 병원, 대학 등에 무수히 들어갔다.
인공지능 왓슨은 IBM의 3번째 THINK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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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창업 초기에 판매원으로 입사하여 곧 CEO가 된 토머스 왓슨은 1010이다.
그는 타고난 세일즈맨이었다. 첫 직장 NCR에서 그는 놀라운 판매실적을 보이며 승승장구, 지역 사장이 되었다. 하지만 회사는 반독점금지법에 걸리자 지역 사장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왓슨은 졸지에 벌금 5000달러와 징역 1년형을 받았다. 그는 NCR을 집어치웠다.
그는 세상이 변하는 걸 보고, 또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우리 세상이 계산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보았다. 그래서 계산을 빨리 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계산'했다.
왓슨은 당시 개발된 천공카드로 계산하는 기계를 만들어 보급하는 CTR 회사에 들어가 판매에 전념했다. 회사는 이 좋은 아이템을 갖고도 적자에 허덕였다. 그는 CEO로 선임되어 전력을 다해 천공기를 파는 일에 몰두했다.
과연 계산 수요는 폭발했다. 2차 대전이 일어나면서 대포 사거리를 계산하는 것이라든가, 심지어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원자탄을 만드는 일에도 큰 계산이 필요했다. 암호를 만들푸는 데도 계산이 필요했다.
왓슨은 카드천공기로 이 수요를 감당했다.
- 토마스 왓슨 시니어 1110
당시만 해도 천공기를 갖고 사람이 계산하는 컴퓨터는 대개 수학을 잘하는 여성들이었다. 그러니까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맨해튼프로젝트 시절 0625 리처드 파인만은 ibm의 카드 천공기와 인간 컴퓨터의 계산 게임을 한 적이 있다. 결과는 비슷했는데, 인간 컴퓨터는 게임 이후 엄청난 피로감을 호소했지만, 카드 천공기는 전혀 힘들어 하지 않았다.
결국 ibm의 카드천공기는 전세계 계산 업무를 휩쓸었다.
내가 대학에 가던 1977년에도 카드천공기로 점수를 따졌으니 그 역사가 꽤 오래 되었다.
그런데 1943년 12월, 0360 폰 노이만은 마침내 콜로서스(COLOSSUS)라는 암호해독기를 만들어냈다. 결국 최초의 계산기다. 다만 콜로서스의 존재는 전시인만큼 영국 정부의 비밀이라서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 중에 1946년에 펜실베니아 대학이 에니악(ENIAC)이란 컴퓨터를 만들어냈다. ibm은 이 사업에 연구자금을 댔다. 하지만 컴퓨터 공개 행사에서 왓슨은 뒷줄에 앉는 불명예를 당하고, 함께 간 아들 왓슨 주니어는 천공카드기가 1초에 4개의 계산을 하는 데 비해 에니악은 5000개를 해낸다는 걸 보고 경악했다. 하지만 냉방장치가 없어 진공관 17468개가 내뿜는 열기가 어마어마했다. 무게도 무려 27톤이었다.
- 에니악(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alculator·ENIAC·전자 숫자 적분 및 계산기)
에니악은 IBM 카드천공기가 20시간 걸려 하는 계산을 단 30초만에 해냈다. 이렇게 되면 대포나 미사일을 쏠 때 30초 안에 대기, 온도, 풍속 등 200가지 정보를 계산하는데 포탄이 떨어지기도 전에 탄착점을 알 수 있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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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장이던 왓슨 주니어는, 어서 빨리 에니악보다 더 좋은 컴퓨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우선 에니악에 로열티를 지불하자면 수익성이 없고, 너무 크고 무겁고 늘어놓은 길이가 27미터나 되었다. 160KW 전력이 들었다.(현대 노트북 전력 소비량 겨우 5W)
“내가 에니악을 보고 느낀 진정한 반응은 아마도 라이트 형제가 발명한 비행기를 보고 보통 사람들이 보던 첫 반응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것은 전혀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 때 내가 ‘아아, 저게 바로 IBM을 밝혀 줄 미래로구나’하는 생각을 왜 못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당시는 솔직히 말해서 그 거대하고 값비싸며, 믿기 어려운 기계가 사무기기로 실용화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2차대전 중 계산을 담당한 것은 IBM의 카드천공기였다.
하지만 그 시대가 저문다는 것을 왓슨 주니어는 에니악을 통해 보았다.
왓슨 시니어는 아직도 카드 천공기가 유효하다고 주장하면서 주니어와 자주 다투었다.
주니어는 IBM도 컴퓨터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시니어는 번번이 반대했다. 그때 육이오전쟁이 터졌다.
즉시 엄청난 계산 수요가 발생했다. 그제야 왓슨 시니어는 주니어의 요청을 승인했다.
IBM은 300만 달러를 들여 '국방계산기'라는 이름의 컴퓨터를 개발하고, 1952년에 생산에 들어갔다. 오펜하이머, 존 폰 노이만, 데이비드 사노프 등이 극찬하고, 생산하기도 전에 10대 이상의 선주문을 받았다. 에니악의 단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극복했다. 더구나 에니악 개발자들이 만든 에니박, 유니박이 기상청과 군에 납품되었지만 매카시 열풍 때 직원 중에 공산주의자가 발견되어 회사의 모든 주문이 취소되고, 결국 망해버렸다.
IBM 700/7000 시리즈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IBM의 독주가 시작되었다. 이 컴퓨터들은 1분에 250개의 천공카드를 처리해냈다. 1세대는 진공관이지만 곧 트랜지스터로 바꾸었다. 1953년작 IBM 650은 베스트셀러(2000대 판매, 대당 50만 달러, 현재가치 400만 달러)가 되었다. 전세계 대학이 이 컴퓨터를 사용했다.
- Thomas John Watson Jr.
이렇게 하여 IBM은 명실공히 컴퓨터 명가가 되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개인용 컴퓨터 애플을 내놓은 뒤 IBM은 IBM PC를 출시하면서 내부설계도를 공개해버렸다. 그러자 전세계는 급속히 PC 세상으로 변하여 허겁지겁 두 번째 버전부터는 로열티를 받으려 했으나 이미 PC 시장은 활짝 열려버려 IBM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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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IBM은 점차 위축이 되었다. 심지어 빌 게이츠에게도 IBM CEO가 돼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였다.
적자에 시달리던 IBM을 어느 정도 구해낸 0610 루 거스너(Louis V. Gerstner, Jr., 1942년 3월 1일~)로부터 2002년에 CEO 자리를 물려받은 0335 섀무얼 팔미사노(Samuel J. Palmisano, 1951년 7월 30일 ~ )는 AI 인공지능 시대를 예측하고 '왓슨'이라는 명칭의 인공지능컴퓨터 개발에 전력했다.
맨 처음에는 체스 게임 AI인 딥 블루를 개발하여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다.
이어 퀴즈게임에 출연시킬 '왓슨'을 개발해 최종 승자가 되어 상금 100만 달러를 받았다.
왓슨 개발팀은 17개 산업 분야의 550명이 연구 중이다. 이미 의학, 법학, 세금 분야에서 왓슨은 실전에서 뛰고 있다.
심지어 왓슨은 영화 모건 예고편을 만들기도 했다. 왓슨은 기존의 공포영화 100편을 학습한 뒤 새 영화 모건에서 강조해야 할 부분을 스스로 찾아 24시간만에 예고편 동영상을 만들어냈다.
- 인공지능 '왓슨'이 만든 영화 모건의 예고편.
현재 왓슨은 인천 길병원에 도입되고, 부산대학교 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조선대병원, 전남대병원에 도입되었다.
현재 IBM의 인공지능 산업은 어디로 나아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토머스 왓슨이 내건 슬로건 'THINK'는 여전히 IBM을 살려내는 모토가 되고 있다.
이 글의 교훈은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그 시기에 알맞은 답을 스스로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오코드는 그 지혜를 얻는 가장 바르고 효과적인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