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먼 바다에 빚어놓은 절경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동경 131°52′, 북위 37°30′에 위치하며
면적 73.15㎢, 인구는 10,426명(2001년)이다.
행정구역은 울릉읍, 서면, 북면으로 나뉘며 24개리가 있다.
최초로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시대
(기원전 1000∼300년) 또는 철기시대 전기 (300년∼1년)이며
지석묘, 무문토기, 갈돌, 갈판(현포, 남서, 저동리) 등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이사부에 의해 신라에 귀속된 이후 1438년 도민 귀환령으로
사람이 살지 않다가 1882년 개척령으로 다시 사람이 이주하여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우산국이라 기록되었고 간릉도, 우릉도, 무릉도 등으로 불리다가
그 후, 울릉도로 칭하였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옥저조'의 고구려 동천왕 20년(246년)에 관한 기록에서 언급된 동해안의 섬이
울릉도라는 견해가 있다.
도에서 지정한 문화재로는 나리 너와집, 나리 투막집(4채), 남서리 고분군, 현포리 고분군 등
7개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제48호(통구미 향나무 자생지), 제49호(대풍감 향나무 자생지), 제50호
(태하리 솔송, 섬잣, 너도밤나무 군락지, 제51호(도동 섬개야광, 섬댓강나무 군락지), 제52호
(울릉국화, 섬배리향 군락지), 제189호(성인봉 원시림), 제237호(사동 흑비둘기 서식지),
제336호(독도 해조류 서식지) 등이 있다.
관광자원은 성인봉(984m)을 중심으로 울창한 원시림과 해안을 따라 둘러싼 기암괴석, 약수, 폭포
등이 유명하며 오징어, 호박엿, 향나무 공예품, 산나물들이 특산물로 인기가 좋다. 울릉도 근해의
풍부한 수산자원과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일본에서 독도의 영유권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이 섬은
희귀 동식물이 많이 자생하고 있는 자연의 보고이다.
동쪽바다 끝, 절해의 고도-울릉도
오징어와 호박엿으로 대표되는 섬, 울릉도. 삼국사기에는 우산국이라 기록되어 있고, 무릉, 비릉이라는
다른 이름과 함께 일본에서는 석죽도, 죽도라고도 했다. 불란서 탐험선이 이 섬을 발견했던 18세기
이후, 서양에서는 '따주레'라는 이름으로 지도에 오르기도 했으며, '삼무오다(五多三無)의 섬',
'신비의 섬'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임자섬인 울릉도와 독도, 관음도, 죽도 등 유인도를 비롯, 크고 작은 바위섬을 합친 땅이 울릉군으로
통칭된다. 널리 알려진 대로 울릉도는 제주도와 한 가지로 지질시대에 화산의 폭발로 인하여 수심
2,000m의 심해에 돌출된 화산섬으로 섬의 약 2/3가 물 속에 잠겨있고, 나머지가 물 위에 솟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산세가 완만한 제주도와 견주어 보면, 울릉도는 섬 전체의 평균기울기가 25도나 되는
뾰족뾰족한 화산지대이고, 그런 만큼 산세가 험해 차를 이용해 섬을 일주할 수는 없고, 섬의 뒤쪽으로
가거나 다시 앞쪽으로 올 때는 선편을 이용해야 한다.
울릉도의 지붕-성인봉
가을철 날이 맑으면 서쪽으로는 강원도 오대산이 은은하게 보이고, 동남쪽으로는 독도가 아스라이
보인다는 섬에 이렇게 높은 산이 있을까 싶다. 불규칙한 오각형 모양의 울릉도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제야 울릉도가 쪽빛 바다 위에 떠있는 한 점에 지나지 않음을 실감케 된다. 해발 900m가 넘는
근처의 산 4개와 더불어 울릉도의 지붕을 이루고 있는 성인봉 정상에서 북쪽을 굽어보니, 용암이
굳어서 생겼다는 눈에 덮인 알봉과 해무에 둘러싸인 울릉도 앞바다가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낸다.
분화구의 화구원이자 울릉도 유일의 넓은 평지인 '나리분지'에 도착했다. 평균 적설량 2.9m,
천연기념물인 섬백리향과 울릉국화의 자생지이기도 한 이 분지에서 주민들은 약초를 재배하며
살고 있다. 나리분지에서는 이 섬 개척 당시의 주택인 '투막집'이 눈길을 잡는다. 투막집은 통나무를
쌓고 그 틈새를 진흙으로 메워 방을 들였으며, 방바닥에는 대나무로 엮은 돗자리가 깔려있었다. 눈이
많이 내리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을 감안하여 요모조모 따져 이 투막집을 만들었을 선조들의
지혜가 놀라웠다.
울릉도의 서울-도동
울릉읍 도동은 1882년(고종 19년), 울릉도 개척령 포고 후 주민의 입도와 더불어 지휘소(도방청)를
설치한 이래 오늘날까지 울릉도의 행정, 교통, 경제, 교육의 중심지가 되어오고 있는 군청소재지이다.
울릉도의 주생활권인 동해, 포항 등지로부터 생필품은 물론 관광객들이 들고나는 통로역할을 하는
도동시가지에는 각종 생필품을 파는 상점과 다방, 여관, 식당, 오징어, 호박엿, 향나무 목각품을 파는
토산기념품점이 밀집해 있다. 이 도동에는 울릉도 전체 인구의 30%가 모여 오징어잡이 등의 어업과
함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각종 특산품점과 해물식당을 열어 소득을 올리고 있다.
도동의 대표적 볼거리로는 士類炭酸鐵泉이라는 유명한 '도동약수'를 들 수 있다.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도동약수는 톡 쏘는 맛이 강렬하고 철성분 특유의 비릿함이 별미이다. 이 도동약수터에는
개척령 전부터 호시탐탐 울릉도를 침범한 일본인들을 내쫓은 안용복 장군의 충혼비가 세워져 있어
부산동래의 어부이자 수군이라는 일개 범부에 지나지 않았던 몸으로 '우리 땅'을 지켜낸 그의
애국충정을 기리고 있다.
동해의 어업전진기지-저동항과 오징어
도동에서 버스를 타고 2.6km의 산굽이를 돌아가면, 동해 유일의 어업전진기지 저동항에 닿는다.
발달된 만이 변변찮던 울릉도에는 도동항이 중심지 역할을 해왔었다. 그러나 여객선 한 척만 들어서도
그득해져 딴 배들이 비켜나야 할 정도로 협소하고, 울릉도에 북풍이 세차게 몰아닥치면 이를 피하기
위해 어선들은 떼지어 섬을 돌아 남쪽으로 가야했고, 반대로 남쪽에서 태풍이 불면 다시 북쪽으로
피항을 했었다. 지난 1980년 이 저동항에 방파제 공사가 완공되면서 배를 가진 어민들이 한숨을
놓게되었다.
울릉도 근해에는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해류의 영향으로 꽁치, 명태, 오징어 등의 어군이 밀집해있어
어업을 주소득원으로 하는 섬사람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해주고 있다. 특히 1930년대 이후로는
섬사람들의 60%이상이 오징어와 관련되는 일로 생계를 꾸려갈 만큼 오징어는 울릉도 주민의 가장 큰
소득원이라 하겠다. 5월부터 시작되는 오징어잡이는 9∼10월이면 절정에 이른다. 이즈음, 촛대바위를 낀
580m의 방파제와 갈매기가 유별나게 많은 저동항에는 어둠이 깔리면서 개당 1.5kw가 넘는 집어등을
수십 개씩 켜놓은 오징어잡이 어선들의 입출항이 빈번해진다. 이 때문에 낮보다 오히려 밤이 낫다고
할 정도로 밝아지며 이와 더불어 저동시가지에는 유동인구, 즉 '바다 사람'의 숫자가 부쩍 늘어나
거리마다 장사진을 이루기도 한다.
최근에는 '원양 발이'는 물론 '당일 발이' 어선에도 전자동 오징어 자동조상기 설치가 보편화되면서
어민들의 노동도 그 옛날, 오징어를 일일이 손으로 물레질을 하여 잡을 때와는 견줄 바가 아니다. 작년
5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이제 종어기를 앞두고 있는 울릉도의 오징어 어획량은 근년에 비해 월등히 많아,
본디 환한 이 섬 어민들의 얼굴이 더욱 밝게 펴졌다. 오징어는 낮에는 수심 100m 이하의 심해에서
유영하다가 밤이 되면, 해면 가까이 떠오르는 습성이 있으며, 야간에는 불빛을 따라 모여드는 추광성
어족이다. 오징어의 이런 버릇을 이용하여 집어등을 환하게 밝혀놓고 오징어 떼를 유인한 뒤에
물 속에서 빛을 발하는 모형 야광미끼와 민들레 씨처럼 수십 개의 침이 꽂혀있는 낚시바늘로
잡아 올린다.
이 낚시바늘에 몸의 적당한 부분이 꿰어져 올라온 오징어는 갑판 위에서 집어들의 불빛을 받아
표피가 여러 가지 환상적인 색깔로 변하면서 아직도 물 속인 양 착각한 듯 '로켓식' 추진을 몇 번씩
시도하다가 그 급한 성격 탓에 제풀에 죽는다. 이렇게 잡힌 오징어는 울릉도의 여러 포구는
말할 것도 없고, 옥상이며 골목길까지 손바닥만한 틈이라도 있으면 설치해 놓은 덕장에 운동회 때의
만국기처럼 널려져 해풍에 말려지고, 뭍으로 올라와 으뜸 군것질 감으로 팔려나간다. 요즘 싼값
하나만 내세우며 저자거리로 파고드는 포크랜드산 오징어의 흰빛에 비교하여 갈색에 가까운 오징어가
국내산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그 맛이 우수한 울릉도 오징어는 몸통 위쪽 꼬챙이에 뚫려 있던
구멍이 있어 쉽게 구별할 수가 있다. 오징어 외에도 울릉도 앞바다에는 꽁치, 명태, 방어 따위의
어류와 전복, 성게, 소라 등의 패류, 자연산 돌김과 돌미역도 많이 난다.
울릉도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고기를 잡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라 한다. 1882년(숙종 19년),
울릉도에 개척령이 내려지고, 그 이듬해에 태하동에 들어온 울릉도의 첫 '공식주민'인 54명의 개척단은
화전을 일구는 등 농사를 이 섬에서의 업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곧 겨울이 닥쳐, 추위와 굶주림이
생명을 위협해도 그들은 물고기를 잡지 않았다. 오히려 전복과 오징어를 훑어 가도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 뒤 일제 치하에 들어가면서 어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래, 오늘날에는 오징어
주산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등산객들과 함께 등산로를 따라 1.5km를 오르면 성인봉에서 원시림 사이의 계곡을 타고 흘러 내려와
3단으로 떨어지는 높이 25m의 봉래폭포와 만나게 된다. 주변의 절경과 조화를 이루며 떨어지는
이 폭포수는 저동 주사곡에 모여 저동 일대 주민들의 식수원이 되어준다.
울릉도와 땅 먹거리-옥수수와 약초
평균기울기가 25도나 되는 울릉도의 경지면적은 전체의 15%에 지나지 않는다. 울릉도 주민들은
대부분의 식량을 외지에서 사다가 먹는다. 밭농사로는 옥수수를 가장 많이 심고, 그 다음이 감자,
보리의 순이다. 특용 작물로는 마늘을 들 수 있다. 현포2동을 중심으로 하여 재배되는 이곳의 마늘은
매운맛이 순하여 도시 주부들이 즐겨 찾고 있다.
이외에도 울릉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산채나물과 약초이다. 눈이 녹기 시작할 무렵이면 산채
수집이 대성황을 이룬다. 나물 중에 유난히 성질이 급한 것은 봄을 재촉하는 전호(前浩)나물이다.
이 전호나물은 눈이 와서 녹고, 다시 그 과정을 되풀이 할 때마다 봄이 온 줄로 착각하여 움터 오르는,
향긋한 맛으로 봄의 입맛을 돋우어 주는 약초 겸 산채이다. 이밖에도 명이 꼬치미고사리 땅두릅 등이
특산물로 생활에 보탬이 되어준다. 명이는 어릴 때는 삶아서 무쳐먹고, 다 자라면 갈분과 함께
삶아먹거나 콩가루를 묻혀 먹으면 색다른 맛이 난다.
한편, 울릉도는 약초가 많이 나는 섬으로도 유명하다. 약초재배 적지로 손꼽히는 북면 나리분지
일대를 비롯하여 섬 곳곳에서 천궁, 국약, 황지, 독항을 필두로 갖가지 약초를 키워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울릉도의 명산품-호박엿과 향나무 공예품
오징어 산나물 약초 외에도 울릉도의 명산품은 다양해 관광객들에게 폭넓은 선택권을 제공한다.
울릉도의 대표적 명물로 유명한 호박엿의 유래는 이러하다. 울릉도 개척 당시, 태하동의
서달령(西達嶺)을 중심으로 열여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그중 한 처녀가 육지에서 가져온
호박씨를 울타리 아래에 심은 뒤, 다 익기도 전에 이웃마을로 시집을 갔다. 그 뒤 호박이 열려
누렇게 익은 것들을 따서 쌓아두었다가 겨울에 그 호박으로 죽을 쑤었는데 그 맛이 너무 달아
'호박엿'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호박은 이 섬 어느 구석에라도 심기만 하면, 아름드리 열매가 무수히 열리는데 일조량이 많은
울릉도의 독특한 기후 덕에 호박의 당도가 높아진다. 호박엿 공장은 도동에 두세 군데 있으며
이곳에서 만들어내는 물엿, 갱엿, 흰엿 등은 타지방의 엿과는 달리 입에 달라붙지 않고 살살
녹는 게 특징이다.
교회는 36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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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포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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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울릉도 해안 절경(2001년)
2) 갈매기와 해안(2001년)
3) 갈매기(2001년)
4) 해안(2001년)
5) 갈매기(2001년)
6) 해안 전망대(2001년)
7) 해안(2001년)
8) 해안 절경(2001년)
9) 해안 절경(2001년)
10) 북면의 해안(2001년)
11) 현포마을(2001년)
12) 저동항1)(2001년)
13) 저동항2)(2001년)
14) 해안(2001년)
15) 관광객들(2001년)
16) 구멍바위(공암)(2001년)
17) 삼선암1)(2001년)
18) 삼선암2)(2001년)
19) 암석(2001년)
20) 동굴(2001년)
21) 송곳산1)(2001년)
22) 송곳산2)(2001년)
23) 마을(2001년)
24) 암석(2001년)
25) 성인봉 정상에 세워진 비(19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