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15
고슬고슬한 밥…깔끔한 국물 맛…넉넉한 반찬 인심 ‘백반의 정석’
대구탕, 아귀탕, 도루묵찌개 등 그날그날 장을 봐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주메뉴와 반찬을 고향 엄마밥상처럼 차려내는 대구시 중구 인교동 태화식당의 한없이 조촐한 대구탕 백반정식. |
대구시 중구 인교동 오토바이 골목 중간에 있는 태화식당.
날렵하고 모던한, 노출 콘크리트조 레스토랑 문화에 젖어 있는 네티즌에겐 다소 충격적일 정도로 낡고 불편하고 누추한 공간으로 다가설 것이다. 그런데 50대 이상 장·노년층에는 ‘기립박수’감이다. ‘대구 백반의 명맥을 잇는 마지막 식당’으로 사랑받는다. 풍류절정의 문풍(文風)을 날리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의 사각지역 먹거리를 찾아다니는 풍류식객 겸 수필가인 구활씨가 이 집을 소개했다. 이후 기자도 단골이다. 대구 서민밥상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미식가가 오면 어김없이 데려간다. 다들 세 번 놀란다. 직원 한 명 없이 할매 혼자서 모든 걸 다 해결한다는 것에 놀라고, 문을 열고 단 한 번도 리모델링하지 않아 낡을 대로 낡은 실내 정경에 또 한 번 놀라고, 마지막엔 깔끔하기 이를 데 없는 국물 맛과 마치 사위 대하듯 마구 내주는 옹골차고 손맛 가득한 곁반찬의 행렬에 놀란다.
금호 할매는 이름을 싫어한다. 몇 번 물어도 대답을 안 한다. 영천시 금호가 고향이라서 그냥 ‘금호 할매’라 한다. 지역 백반집 중에선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이와 쌍벽을 이루는 대구식 한정식 전문점은 34년 역사의 중구 삼덕동 청맥식당(한정식)이다. 경주 출신인 김정숙 사장도 ‘욕쟁이 할매’로 불린다. 이 집은 다른 집에선 보기 힘든 팥잎 요리로 유명하다. 이 밖에 원대동 자갈마당식당(복어), 수성보건소 골목 안 가덕식당(콩나물비빔밥), 중구 대봉동 청산식당(청국장), 동구 신천동 거창식당(어탕국수), 고령식당(된장찌개), 동대구역전시장 안 할매식당(동태탕) 등도 주인 손맛이 담긴 밥상이다.
● 인교동 오토바이골목 중간 ‘태화식당’
대구 백반의 명맥 잇는 마지막 가게
주인 할머니 혼자 요리·서빙·설거지
사위 대하듯 후하게 내주는 반찬행렬
50대 이상 장·노년층 식도락가 줄 서
금호 할매는 너무나 억척스럽다. 일이 곧 쉼이고 놀이다. 50여년 쉬는 날도 없고 그 흔한 영화도, 그 흔한 해수욕장 같은 데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현재 자리로 오기 전에는 현재 덕영치과 입구 대로변에 있었는데 그때는 직원이 5명이나 있었다. 줄 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대박집이었다. 생선찌개·매운탕·낙지볶음으로 소문이 났다. 12년여 전 여기로 이사를 와서는 경기도 예전 같지 않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요리에서부터 서빙·설거지까지 도맡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귀찮아 집에 가지 않고 식당 한편에 방석을 깔고 잔다. 일어나면 서문시장과 칠성시장에서 그날 사용할 대구, 아귀, 도루묵 등 제철생선을 장만해 온다. 손이 저울이다. 대충 주물럭거렸는데 식감은 맘껏 부푼다.
기분이 좋으면 꼭 단풍을 손에 쥔 여고생처럼 배시시 웃으며 독백톤으로 ‘인생사 다 그런 것 아니냐’는 푸념식 신세타령이 이어진다. 단골도 다 비슷한 인생의 강을 건너고 있어 연신 고개를 주억거린다. 태화에는 주인도 없고 손님도 없다. 다 손님이고 다 주인이다. 그래서 신경림의 시 ‘농무’의 한 대목처럼 더없이 정겹다. 할 말만 하고 요리할 땐 한없이 무뚝뚝해 욕쟁이 할매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전국에 적잖은 욕쟁이 할매가 있다. 대표 격은 신분을 감춘 박정희 대통령에게 꼭 박정희처럼 생겼다고 인정 어린 욕을 한 전북 전주 콩나물국밥 명가 삼백집의 이봉순 할매, 전남 순천 별량시장 삼거리에 있는 욕보할매집의 이정남 할매, 문경새재 초입 할매집의 황학순 할매, 울산시 대안동 신흥다리 근처 울산 욕쟁이 할매, 서울 성북구청 후문 돈암성당 옆 우렁밥으로 유명한 신신식당의 욕쟁이 할매, 안동시 용상동 복개시장 끝 지점에서 매일 군복만 입고 있는 안동 군복 할매 등이다.
‘항상 기운이 없어 보이는 저 금호 할매가 세상을 떠나면 어느 집에서 저런 맛을 찾을 수 있을까’ 다들 금호 할매를 걱정한다. 숱한 기자가 취재를 하고 싶어 했지만 모두 불발이었다. 기자도 물먹었다. 생각해보니 취재 자체가 ‘언폐(言弊)’였다. 파워블로거가 사진을 찍으려 하면 정색하면서 ‘사람 얼굴 함부로 찍지 마라’고 경고한다. 허락받지 않았지만 태화의 눅눅한 얘기를 적고 싶었다. 금호 할매도 이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