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멋진 수필을 쓰셨군요~ 그것도 연작수필을 쓰신다니 더욱 기대가 되고요~ㅎㅎ
이 감수성이 뛰어난 어린 문학소년을 제대로 키웠더라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설가나 시인 또는 수필가가
되셨을것이 분명하온데 태월국민학교 라는 시골환경 탓도 있겠지만
숨은 보석을 가려내지 못한 선생님들이 유감스럽게 느껴지네요.ㅎ
우리 화성리 동네는 학교가는 길이 여러 코스가 있었지요. 그중에서 북산리 애들이
다녔던 그길도 가끔은 이용하는 코스중 하나여서 저도 그 지당재 이야기를 빼놓을수가 없지요. ㅎㅎ
연식님의 학교길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이야기 보따리를 전부는 아니라도 몇가지 풀러보고 싶은데요?
연식씨 처럼 매일은 아니어도 어쨋든 그길을 다녔던 사람으로서 추억이 많은데 겨우 두반뿐이었던
우리 19회 이건만 내 기억으로는 연식씨와는 같은반을 한번도 안해선지 기억력 하면 자부했던 제가
연식님을 놓쳤다는게 참 많이 아쉽습니다 ㅋ
아~그리고 일단 우리동네에선 지장제 라고 안하고 지당재로 불렀으니 편의상 지당재로 부르겠습니다.ㅋ
제가 기억하는 지당재는 야호~! 하고 소리치면 지당재에서 바로 보였던 우리집 사랑채에
산울림으로 울려퍼지다가 메아리 치며 되돌아갔던 그런 깊은 산속이었으니
당연히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숨어있고요, 우리집에서 바라보는 그 풍경은 철마다 아름다운 산이었습니다.
동네 친구들이랑 진달래꽃을 따먹으러 올라갔다가 내려오는길을 몰라 헤맸는데 결국
울음소리를 듣고 우리를 구해준 동네어르신들 생각도 나고요 ㅋ 진달래 꽃색깔이 흐리고 꽃에 하얀거품이 묻어있는꽃은
용천배기가 침뱉어 놓은거라서 먹으면 죽는다고 친구 누군가가 알려줬기에 분홍빛이 진하고 깨끗한 꽃만을
골라서 따먹던 생각도 나네요 ㅋㅋ 한참을 꽃으로 배를 채우다보면 입술과 혀바닥이 보라색으로 물들어 서로 쳐다보며
깔깔대며 웃던 놀이터였고 집나간 처녀 미친댁이(정신이상자)가 머리를 헝크러트리고
씨익 웃으며 아카시아 꽃뭉치를 나한테 내밀며 뭐라고 말을 걸어와서 놀라서 도망갔던 그 고갯길이
연식씨의 수필 소재가 되었다니 참 신기하고 즐겁기만 합니다.ㅎㅎ
우리집 둘레에도 나름 복숭아꽃 오동꽃 대추꽃 살구꽃이 동요가사처럼 꽃피는 대궐이었고
그속에서 형제들과 하모니카 불면서 놀았던 기억을 아직도 동기간들 만나면 하고있지만
이렇게 연식님의 학교길 이야기를 듣고보니 너무나 반갑고 더구나 나하고 일치하는 것들이
있다는게 너무 재미있어요~ㅎㅎ 어린꼬마 눈에는 당연히 같은 풍경을 봤으니 같을수 밖에 없겠지만요~
특히 산속에 널린 먹거리들 ㅋㅋ 약간 다른게 있다면 저는 여자이다보니 언덕배기마다
키작은 보랏빛 제비꽃과 솜털이 뽀얗게 나고 허리가 꼬부라진 할미꽃도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싸르뫼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비스듬한 언덕에 주로 많았던 그런 꽃들은 삐비밭 속에 끼어서
피었었지요~ㅎ 어쨋든 연식님의 이야기 마다 끄덕이며 맞어맞어~ 대답이 저절로 나오고 감탄사와
함께 그 시절 풍경이 그대로 머리에 그려집니다.
지당재를 넘어가기위해 가파른 고개를 넘어서 조금 가다보면
왼쪽옆으로 갈라지는 길이 우리동네로 가는길 이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낙원교회를 가는 길이 있어서
내려가면 바로 월찌라는 동네가 보였고요~ 지당재를 끝까지 안가고 중간에 틀어서 내려온걸 보면
확실히 우리는 북산리 애들보다는 태월국민학교가 약간 가까운편 이었네요.
하지만 북산리 애들과 마찬가지로 집에갈때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가야 그길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동네도 아주 쉬운코스는 아니었고 . 거기서 부터 북산리까지는 약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긴 하지만 거의 평지라서 거리는 멀어도 크게 힘은 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우리동네로 내려가는 그 길목엔 아카시아가 하얗게 필적마다 꽃터널이 생기고
그 아래로 언니를 따라 학교를 다니던 추억이 있고요~ㅎㅎ
마치 꿈속에서 있었던 일처럼 아련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아요.
아카시아 꽃잎 쭉~ 달린 예쁜 꽃송이를 툭 따다가 꽃하나를
입으로 빨면 단물이 쪽 나오고 향기까지 좋아서
그야말로 천연향수가 온몸에 배이고 꽃가루를 나르는 벌처럼
꽃속에 들어있는 진한 영양분을 직접 마실수 있었지요.^^
그뿐인가요? 아침일찍 창호지문을 열고 기지개를 켜며 밖을나가면 살랑살랑 아카시아 향기는
바람타고 집안까지 풍겨오지요. 그러다가 울창하게 숲이 우거지는 여름도 되고
가을이면 낙엽이 수북히 쌓인 그사이를 다람쥐가 바스락거리며 도토리를 주워먹고
흰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엔 푹 푹 빠지며 동네아이들 워~워 하며 토끼몰이를 하던 꿈동산 이었습니다.
아침마다 부지깽이로 가마솥밥을 지어 우리가 깨기전에 이미 도시락을 서너개씩 싸놓으시던 우리엄마는
비창굴(북산리를 그렇게 부름) 애들은 버~얼써 부터 학교가더라~!! 니들은 왜 안일어나~~!! 매일아침
귀가 닳도록 듣는 소리였습니다 ㅎㅎ
새벽 단잠속에 빠진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잘려고 귀를 틀어막으며
왜 그놈의 북산리 애들은 조용히 학교에 갈것이지 떠들면서 우리엄마 귀에 들리게 하는것이야~~!
당연히 북산리는 우리보다 학교가 멀으니 먼저 집을 나서야 됐지만 왜 그렇게 유난히 일찍 학교를 갔을까?
참 궁금했었죠. 암튼 그 고갯길은 그 많은 추억을 다 품고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ㅋ
그러다가 5학년 부터는 어둠의 그림자를 벗삼아 무시무시한 경험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고요.ㅎㅎ
초승달이 뜨던 어느날 밤 학교를 마치고 호야등인지 호롱불인지를 들고 싸르메 고개를
넘을땐 오싹하며 무서워지기 시작합니다. 거기서부터는 집이 한채도 없고 오직 나혼자 산속을 파헤치며
가야되니 이를 악물고 각오를 해야되는데 등불에 비친 내 그림자는 크고 시커멓고 걸음을 걸을때마다
무섭게 괴물처럼 이리저리 다리를 움직이며 나를 따라오지요. 긴장돼서 뒷목이 뻣뻣해오고
점점 산이 높아지니다보니 숨은 헐떡거리는데 높아질수록 바람이 세차게 불어 그만 호야등이 꺼져버렸습니다.
엄마~~!!! ㅠㅠ 불러보고 싶지만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누가 나를 구해줄것인가... 소용없었습니다.
의지할거 라고는 겨우 희미한 초승달뿐 낮에 다녔던 길이라 대충 짐작으로 더듬어 겨우 비탈길을 올라가고
드디어 왼쪽으로 갈라지는 그 길로 접어드는데 가뜩이나 무서워 죽겠는데 전에 못보던 산소가 하나 보였습니다.
게다가 그 묘에서 허연게 보이지뭐예요. 나는 귀신이라도 본것처럼 기절하는줄 알았습니다.
사람이 너무나 무서우면 고함소리도 안나온다는 것을 그때 경험했네요.
전기도 전화도 없던 깜깜한 시절이 우리들 국민학교 시절이었으니 생각해보면 우리가 엄청 오래산것 같죠?
내가지금 옛날 이야기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는것 같어요. ㅎㅎ
후유~ 늦은 가을이라 추운밤 인데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집에까지 기어서 도착한게 아마도 밤 1시쯤.ㅠ
며칠후 호기심 많은 어린꼬마는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이른시간에 학교를 파한 어느 토요일 이번엔 대낮에 그 묘를 가볼수 있으니 잘 됐다 싶어서 지당재 로 갑니다.
경사진 비탈길을 넘어서 발짝을 옮겨가며 결국 그 묘를 확인할 시간이 다가왔지요. 세상에~~
낮에 확인해보니 그 묘는 주인이 없는지 관리를 못해선지 반쯤 파여 달아나 시체를 쌓았던 천이 나풀거렸던 것이었어요.
짐승들도 궁금한지 쪼아보면 뭐가 나올지 꿩도 다람쥐도 서성거리는 그런 묘마당 이었습니다.
어디서 꿩이 몇마리 오더니 한놈이 한쪽발을 들고 오줌을 싸는데 나는 꿩이 오줌쌀때 한쪽발을 들고 싼다는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ㅎㅎ 그 궁금증 많은 어린꼬마는 커서 뭐라도 됐을법도 한데 겨우 별볼일없는 할머니로 늙고 있그만요~
이야기가 잠시 빗나갔죠? 음....그때 응굴앞 큰길로 돌아가면 안전할텐데 굳이 그길을 선택한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길은 음침한 성황당 고갯길과 상여집이 있어서 울동네 남자애들을 의지하며 따라 다녀야 했지만 몇달동안
따라다녀도 암말 없던 대막굴 머슴애들은 지네들 따라오지 말라고 돌도 던지고 어떤 머슴애는 너무 큰돌을 던져서
내가 맞아죽을뻔 했으니 할수없이 발길을 돌린게 그 지당재였던 것이었지요.
그길이 지금도 사람이 다닐수 있도록 길이 나있다면 언제라도 좋으니
더 늙기전에 연식님과 함께 비탈길로 올라가 지당재에서 북향굴까지 한번 가보고도 싶네요. ㅎㅎ
저는 응굴넘어 대막굴 앞산 공동묘지앞 으로도 학교를 다닌 날도 많아서
지금도 어쩌다가 그길이 꿈에 보이고 그 묘지들이 꿈속에서 반짝반짝
빛이날때가 있답니다.그게 무슨꿈인지 아직도 해몽을 못하고 있고요
울긋불긋 원색으로 꾸며진 상여가 보관된 상여집에서 일어난 일과
그 공동묘지 이야기는 정말 숨죽이는 이야기라서 다음기회에 심호흡 하구나서
연식님의 수필집이 완전히 끝난뒤 시간이 되면 해볼까 하고요 오늘은 여기서 이만 줄입니다. ^^
첫댓글 아리아님이 내글보다 더잘 표현해서 그만 접어야 되겠네요 ..지역명이 떠오르지 않아 그린비님이
써주신것 살짝 컨닝 했습니다.. 그냥 떠오르는데로 그시절로 돌아가 써보았읍니다.
지역명은 쓰시다가 언제든 궁금허면 물어보셔요 내가 알켜줄테니 ^^
가을 이나 겨울보다는 유난히 봄 고향이 오래기억에 남아 있기도 하고요..두서도 없고 헝클어진 내용이지만 읽어들 주니 힘이나내요. 감사합니다
네~ 연식님 너무 재미있고요~ㅎㅎ 절대 연작 수필 접지마세요~~
흥미롭고 정감이가고 2탄도 역시 재미있게 잘 읽었고요~ 이제부터는 조용히 더욱 집중하테니 걱정마세요.
그 용근이네 집은 제가 가봐서 알고요 영숙이네 경순네 다 알지요. 동산리 신예순이랑 용근이네 가서 엄마가 정성껏 차려주신 보름밥을
얻어먹고 등잔불 아래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온 생각이 납니다. 그 동네 집들이 내눈앞에서 어른거려서 더욱 실감이 나고 이제막
재미를 붙였는데 독자를 위해서 그러는게 아니지요~ㅋㅋ 매일 읽어도 좋을 소중한 옛이야기가 담긴 수필
요즘 그맛에 세이마당 친구들이 즐겁게 사는지도 몰라요~ 아셨죠???
아리아님과 연식님의 글이 너무 훌륭하여 감탄스럽습니다.
어쩌면 그 자그맣던 소년,소녀가 뇌속에 그 어릴적 일들이
컴퓨터처럼 저장되어 있을까나~
그렇기에 어린아이라고 뭘 아냐고 혹여라도 친구나 어른들이
상처를 주면 평생 기억속에 남는다는걸 깨닫게 되는군요.ㅎㅎ
당신들은 그 추억을 얘기할때 난 그 애기속에 빠져서 두권의
빛바랜 책을 읽고 있었답니다.ㅎㅎ
그린비님 책값 주세요. 공짜없읍니다..
용근네 집에서 서쪽으로 한집건너 다음이 제가 태어나고 자란 집입니다. 지금도 남아있고요...영숙이네와는 논을두고 마주보고 있고요.
근데 영숙이는 잘살고 있겠죠..? 시집간뒤로 한번도 본기억이 없으니 만나면 정말 반가울 텐데. ...그런데 경순이는 나와 학렬이 똑같으니 내가 오빠가 될수도 ㅋㅋ 생일이 좀 빠르거든요..
조영숙이가 궁금하다고 하니 사진방에 내가 올렸던 사진 가져와 올립니다. 왜 사진방은 안보시는교?ㅎㅎ
@아리아 감사합니다 사진방에는 사진이 너무많아요. 찾을수가 없어요.. 그대로네요. 안부좀 전해줘요.. 아자씨가 보고싶다고요.
@연식 알았슈~~
저도 그동네 머릿속에 그대로 기억이 납니다ㅎ
영숙이도 친구들 행사때마다 만나지요.
여기 세이마당에 가끔오기도 하는데요?
그리고 영숙이 들어있는 사진은 짱구님이 동창회날 친구들 사진 찍어다가 올린거 페이지에 있는데 아직 안보셨남유?
그래요 영숙이가 가끔 온다고요? 근데 왜인사을 않하지? 큰일 이내요 ..아저씨보고 인사도 않하니..
조카 며느리라 어떡해 할수도 없고 ㅋㅋㅋ
지가요 오늘 6시간동안 등산을 했더니
피곤하네요..ㅎㅎ 푹자고 올테니
내일봐요~~ㅎ 핸드폰이라
대충만 둘러보고 갑니다.~
아리아님 고만 주무셔요 ㅋㅋ 점심드셔...
아함..잘잤다 ㅋㅋ 알았슈 ㅎㅎ 밥 먹을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