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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강물 외 3편
김 왕 노
언덕에 드러누우면 내가 누운 땅에서 아, 몇 천 년 흘러가는 뼈 강물소리 들린다. 너무 느리고 미세해 흐른다고 느낄 수 없으나 분명 흐르는 뼈 강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윗대부터 삭아 이룬 뼈 강물, 햇살을 머금고 흐르는 뼈 강물에 백 년 된 씨앗도 실려 움직이지 않는 듯 천천히 흐르다 어쩌다 깨어나 백 년 싹을 디밀어 꽃을 피우면 뼈 강물은 꽃 그림자에 취해 오래 머물고, 때로 출렁하면 뼈 강물에 깃들었던 방울벌레가 놀라 멈췄던 노래를 다시 부르고 우리나라 금수강산 곳곳에 윗대의 사랑, 누대의 사랑이 뼈 강물이 되어 흐른다. 진토된 뼈가 삭은 뼈가 이슬에 촉촉이 젖으며 뼈 강물의 점지로 생긴 태아의 실핏줄이 흐르고 손가락 발가락이 생기면 뼈 강물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흐르는 듯 마는 듯 그 흐름마저 멈추고 금줄 쳐지고 고추가 매달리는 시간까지 빈둥거리는 것이다. 지금 나는 언덕에 피곤했던 몸을 누이고 몇 천 년 흘러가는 뼈 강물소리에 젖어 설핏설핏 조는 것이다.
쓰다만 유서
동짓달도 지나 밤의 꼬리도 조금씩 짧아지는데 마지막 넣은 장작이 사위어가는 사무실에서 유서를 쓴다. 막상 첫 자를 써니 세상은 한겨울 따뜻한 아랫목 같고 누군가 제 청춘을 생솔가지처럼 뚝뚝 분질러 아궁이 가득 군불 땐 것 같이 포근한데 산다고 아옹다옹했던 이야기는 숫눈이 쌓인 마음을 색색이 물들이는 꽃잎 같구나. 유서를 쓴다는 것은 새하얀 눈 위에 별처럼 찍힌 발자국을 되돌아보듯 세상을 뒤돌아보는 것, 산다는 것은 서로의 가슴을 한 땀 한 땀 꿈으로 꿰매주던 유정한 것이구나. 밤이 깊어가는 만큼 창밖엔 송이송이 쌓이는 눈 소리, 가슴에서 한 톨 두 톨 볍씨처럼 싹 트는 그리움
유서를 쓰고 절명시 한 줄 남기고 떠나간 매천어르신을 가만히 불러보는 밤이다.
눈이 내려도 눈길을 걸어 누가 오리라는 기다림이 여기저기 켠 등이 꿈결처럼 가물거리고 말없이 강물의 수심처럼 깊어가는 유서 위로 방울방울 떨어지는 뜨거운 눈물, 외등 아래 붐비는 눈발처럼 어지럽던 사랑의 기억, 서랍 깊이 갈무리한 꽃씨 같은 이름들, 설해목 가지 부러지는 소리 들려도 나는 못 박힌 것처럼 꿈쩍하지 않으며 유서를 쓴다. 벌써 제설차의 부릉 부릉대는 소리 들리고 내 유서에 메밀꽃 일 듯 일어나는 망설임, 나는 또 한 번 쓰다만 반듯한 유서 한 장을 푸른 지폐처럼 세상에 남긴다.
어머니 마지막 연애사
정숙했던 어머니 연애사를 나는 다 안다.
오로지 아버지 밖에 몰랐던 어머니
뼈와 살을 다 바쳐 사랑한 마지막 연애사를
온몸이 다 탈 때까지 활활 타올랐던 사랑을
어머니 불 들어갑니다. 어머니 불 들어갑니다.
제발 나오세요, 자식이 외쳐도 꿈쩍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인 불과의 사랑을
마지막 피운 한 떨기 지고지순한 사랑을
사랑의 증표인 듯 사리 몇과 세상에 두고 간
정숙했던 어머니 연애사를 나는 다 안다.
어머니 마지막 연애사의 열기를 식히는 듯
오늘은 더럽게도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생을 불과의 불륜으로 끝내고 사라진
어머니가 더럽게도 더 그리워지는 날이다.
오늘은 울러가자.
오늘은 우리 울러가자.
우리 울기 좋은 곳에 왕방울만한 별이 뜨고
새도 잠깐 울음으로 태풍에 쓰러진
콩을 세우려는지 먼 콩밭으로 가버렸고
오늘은 어느 날보다 일이 일찍 끝났으므로
함께 울어본다는 것만큼 정드는 일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
슬픈 일이 많아 어느 나라보다 꽃이 아름답고
슬픈 일이 많아 슬픔으로 밥을 안치고
슬픔으로 불을 때고 슬픔으로 뜸 들이는 나라
이제 울기 좋은 곳을 찾아가 실컷 울자
울고서 코 휭 풀고 서로 일으켜 주고
멀리 달빛 아래 반짝이며 흘러가는 울음강물에
그간 가슴에 못 같이 박힌 이름을 뽑아
꽃잎처럼 띄우고 잘 가라 손도 흔들어주고
우리 언제 울었느냐는 듯이 시치미 뚝 떼고
우리 떠났던 자리로 싱싱해져 돌아오자
울음은 누구도 틀어막을 수 없는 노래 같아
오늘은 우리 울기 좋은 곳을 찾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울러가자.
등단시
꿈의 체인점
산다는 것이 따분하다거나 눈물나면
신종사업을 원하거나 안전하고 탄탄한 사업을 원한다면
이 곳으로 오세요.
봄이면 바람에 휘날리는 배꽃
아침이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새떼
흥건히 고여 냇물처럼 흘러가는 푸른 달빛사이
몇 백년 묵은 소나무숲 사이 꿈의 체인점이 있습니다
방안의 흑백 텔레비전 한 대
나무 기러기 한 쌍
송사리 떼가 헤엄치는 작은 어항
고만고만하게 모여 손떼 묻고 길들여지며 먼지를 덮어쓰기도 하지만
걸레질할 때마다 당당해지는 그들
방문 왈칵 열고 들어오는 텃밭의 파꽃 냄새 밤꽃냄새
미치도록 진동하는 조그만 꿈의 체인점이 있습니다
이곳에 오면 사랑의 샘물이 퐁퐁 솟는 꿈의 체인점이 있습니다
이곳에 오면 신속히 수선돼지거나 갈아치우는 당신의 꿈
새살이 돋아나는 당신은 꿈
푸드득 날아오르는 잿비둘기
패랭이꽃 언덕도 가꾸어줍니다
이 근처에 오면 거친 꿈의 면을 손질하여 주는 톱밥도 휘날립니다
일이 밀린 목재소처럼 밤새 불이 켜져 있기도 합니다
주문을 하면 숲속을 드나드는 족제비처럼 신속히 배달도 나갑니다
우리의 사업은 세계적으로 번창해야 하니까 비도 바람도 무릅쓰고 배달 나갑니다
당신이 이곳에 와 별을 원하면
당신의 녹슨 하늘을 닦아
지금도 생생한 오리온 좌를 큰곰자리를
견우와 직녀성을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이 깨어진 술병처럼 날이 서 누군가의 발바닥을 찌르거나
헌 비닐봉지처럼 이리저리 뒹굴 때 당신의 불면 속으로
질 좋은 석탄 같은 잠을 화석 같은 잠을 수십 삽 퍼넣어줄 것입니다
이제 꿈의 체인점으로 오세요
정 바쁘시다면 당신의 집 가까이에서 찾아보세요
당신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주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표시
너를 꽃이라 부르고 열흘을 울었다
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 화무십일홍이란 말 앞에서 울었다.
너를 그 무엇이라 부르면 그 무엇이 된다기에 너를 꽃이라 불렀으니
십장생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중에 학
사슴으로 불러야 했는데 나 화무십일홍이란 말을 몰라
너를 꽃이라 불렀기에 울었다.
나 십장생을 몰라 목소리를 가다듬었으나 꽃이라 불렀기에 울었다.
단명의 꽃으로 불렀기에 내 단명할 사랑을 예감해 울었다.
사랑이라면 가볍더라도 구름 정도로 오래 흘러가야 하는데
세상에나 겨우 십일이라니 십일 동안 꽃일 너를 사랑해야 한다니
그 십일을 위해 너를 꽃이라 불렀기에 너는 내게 와 꽃이 되다니
꽃에 취하다 보니 꽃그늘을 보지 못했다니 너를 꽃이라 부르고
핏빛 꽃잎 같은 입술로 울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에메랄드, 진주, 비취, 사파이어, 마노
자수정, 남옥, 사금석, 혈석, 카넬리안, 공작석, 오팔, 장미석, 루비도 있는데
너를 때 되면 시드는 꽃이라 부르고 울었다.
지는 꽃보다 더 흐느끼고 이별의 사람보다 더 깊고 길게 울었다.
산문
시라는 명검을 찾아
훌륭한 장군은 칼에 피를 묻히며 적을 무찌르는 선봉장으로 선다. 덕장은 적의 목숨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지략과 덕으로 굴복시킨다. 덕장은 의례 피를 묻히지 않는 명검을 가지고 있다. 시판에 놀다보니 올해로 30년이 갓 넘어간다. 처음에 나는 시가 명검이고 시를 휘둘러 세상을 시로 굴복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등단하자 말자 시는 제쳐두고 축구나 테니스 마라톤으로 몰입했다. 그러다 현대시학에 발을 들여놓으며 시의 거장이신 어르신들을 만나며 시로 돌아왔다. 그 순간에 시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시의 힘을 믿었고 시를 즐기는 계기도 되었다. 시라는 명검을 찾거나 만들고 싶었다. 그 때 돈으로 큰 천만 원 상금이 걸린 한국해양문학에 사진 속의 바다라는 시집 한 권 분량 투고로 한승원 소설가와 서규정 시인이 시 소설, 수필 총 망라해 받은 대상을 나도 받은 것을 터닝 포인트로 시에 몰입했다. 따지면 명검이라는 것은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 칼집에서 명검을 뽑는 순간 적은 명검의 기에 눌려 굴복한다. 하여 지금도 여기저기 시라는 그런 명검 한 자루 만들기 위해 분주한 시인들이다. 시의 고수는 고수답게 명검을 만들고 갓 입문한 젊은 시인은 젊은 혈기로 수없는 담금질과 무두질로 사상이란 모루 위에 시를 놓고 두들기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우리의 인문학이 다시 힘을 얻고 인문학의 뿌리가 깊어 가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나는 아직 명검 같은 시 한편 쓰지 못했다. 얻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시집으로 여러 권의 문학 수상시집과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을 처음으로 『슬픔도 진화한다』, 『말달리자 아버지』,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그리운 파란만장』,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 『게릴라 』, 『이별 그 후의 날들 』, 『리아스식 사랑 』,『복사꽃 아래로 가는 천년』 『아담이 온다』, 『도대체 이 안개들이란』, 『백석과 보낸 며칠간 』 등의 시집을 내었으나 어떤 시는 너무 무른 재질로 되었고 어떤 시는 생소리가 나고 어떤 시는 날이 무디고 어떤 시는 밀도가 낮고 어떤 시는 초라하고 어떤 시는 화려하나 내실이 없고 그러나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시라는 명검을 찾아 천지를 떠돌 것이다. 자칫 명검이라 부르고 싶은 시도 있었으나 끝내 명검이 아닌 시들이었다. 꿈의 체인점 이후 물고기 여자와의 사랑, 덕적도 그 여자, 저 작은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루면,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낙과, 너를 꽃이라 부르고 열흘을 울었다. 슬픔도 진화한다. 도대체 이 안개들이란, 언제 넌 나를 지그시 밟고 간 백년전 꽃잎이었던가. 복사꽃 아래로 가는 천년, 변검술 등의 시를 썼으나 감동의 날을 가지지 않았고 시공을 초월해 빛나는 시가 아니었다. 숱한 시를 대하며 명검이 된 시를 보며 질투와 욕심을 내보나 시는 질투와 욕심의 대상이 아니라 내 시와 내가 육화된 시를 써야 명검인 시 한 자루를 얻는 것임을 알았다. 더불어 우리 발달한 물질문명과 탄생한 디카시가 문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시점에서 디카시와 시는 이 시대의 쌍두마차가 되어 모든 사람이 문학을 향유하는 K문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불러오리라 기대한다. 명검 같은 디카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여튼 풍성한 물질문명으로 황폐화된 가치관도 문학이 바로 세우고 이 결핍의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고 위안이 되는 것이 시다. 과거 급제의 당락의 기준이 시였고 우리 민족의 가슴에는 늘 시에 대한 열망이 있다. 시서가 능했던 우리민족인 것이다. 하여 시의 불길을 지피면 들불 같이 세상에 번져갈 시이다. 시의 불길 속에서 명검인 시가 부활할 것이다. 명검인 시로 평정한 세상에 녹음방초 푸른 태평성대가 올 것이다.
김왕노 경북 포항 출생.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백석 과 보낸 며칠간』 외. 황순원 문학상 외 다수 수상. 웹진 시인광장 주간. 시와경계 주간.
신작시
신발을 신지 않는 동안에 외 3편
김 령
서른여섯 시간 동안 신발을 신지 않았다 먹고 자고 읽고 먹고 자고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한다 내가 신발을 신고 저 속에 섞였을 때와 다름없이 사건이 일어나고 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중국이 쏘아올린 풍선이 자국 영토를 침범하자 미국이 미사일로 격추시켰다 내가 띄운 풍등은 지금쯤 너에게 도착했는지
신안 바다에서 새우잡이 배가 침몰하여 선원 9명이 실종됐다 아르헨티나 산후안주 빙하에서 스무 살 마르타는 실종된 지 42년 만에 발견됐다
며칠 전 냉동실에서 꺼내 둔 강낭콩 한 무더기가 냉장고에, 구운 고구마는 며칠째 베란다에, 내일은 고구마콩 수프를 만들어야지, 내일까지 콩이랑 고구마는 무사히 기다려줄까
새벽 두 시에 벌떡 일어나 냄비에 물을 붓고 콩을 삶는다 고구마를 넣고 밤을 넣고 지구 자전에 맞추어 젓는다
신발을 벗고 있는 동안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일들,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리란 다짐들, 신발을 벗고 있는 동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들은 집안을 떠돌아 다닌다 갇혀 있던 말들은 냄비를 들썩이는 수증기처럼 힘이 세고 입밖으로 쏟아진 말들은 너무 끓인 숙주처럼 풀이 죽었다
신을 벗었으나 발을 벗지는 못하는 변절기, 아이는 다 자랐다
헤이
어이, 저기요 대신 헤이 잘 지내? 말할 수 있는, 오늘 눈이 많이 왔어 거긴 어때
날아오를 수 있을 만큼 배를 채우고 포르르 빨랫줄에 올라앉은 참새처럼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가볍게, 미련도 남기지 않고 웃으며
늪이 아니라 눈밭의 발을 옮기듯, 잠긴 발을 더 깊이 묻고 뱅글뱅글 돌기도 하면서 콧노래도 얹으면서
끓어넘치는 국물을, 손을 데어가며 닦다가 내일을 미리 당겨서 걱정하지 말자,던 너의 말을 떠올려
여긴 눈이 내리고, 밤새워 눈이 내리고, 어제 내린 눈 위로 또 눈이 내렸어, 그래서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어
눈이 덮이듯 감정의 모서리들을 꼭꼭 숨겨두고 살았지, 눈이 녹으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모서리들을
절뚝이며 걷는 사람, 약한 곳부터 녹아내리는 눈의 사람
헤이 쥬드처럼 부르기 좋은 이름, 줄리나 메리 같은 상큼한 이름표를 달면 나는 모서리를 사랑하게 될까
중심 같은 거 잡지 않고, 눈 위에 아무렇게나 찍힌 새의 발자국처럼 삶의 방향성 같은 거 정하지 않고
계획이나 다짐 같이 각진 말들 말고 헤이, 우후 바람을 닮은 말들을 데리고 휘파람, 휘파람을 불면서
프랑
이 춘식씨 삼남 철현군의 연인, 의사 국가고시 합격 축!
할머니 사촌 형제의 아들의 아들이라든가, 할아버지 막내 동생의 손자처럼 몇 번을 확인한 프랑의 문구
도화로 가는 길목, 도화중 도화고 총동문회, 송갑분 여사 장남 서기관 승진을 축하합니다, 청정 도화 축사가 웬말이냐, 푸른 하늘 푸르른 프랑들 사이
아들의 연인이라니? 오래전 입원한 대학 병원에서 흰 가운의 의사가 부러웠을 아버지, 소식을 전하는 아들의 목소리는 빛이 났을까 종일 이리저리 얽히는 전파는 명랑한 소리를 냈을까
나부끼는 프랑을 보며 나도 하늘에 이름을 새기고 싶었지, 면사무소 호적계 외에 올려본 적 없는 아버지의 이름, 지금은 잃어버린 이름 김상율, 한 번쯤은 하늘을 날게 하고 싶었어
나의 말뚝은 고향, 언덕 같은 몸집의 코끼리가 어린 날의 말뚝에만 매이면 순한 아기로 돌아가는
다시 하늘에 프랑을 달아볼까, 오늘은 뭉게구름을 볼 수 있어요, 코스코스가 피어서 당신이 보고 싶어요, 보름달이 특별히 아름다우니 놓치지 마세요, 흰 손처럼 흔들리는 프랑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날의 비
비, 하고 발음하면
내리는 비는 더욱 가늘고 길어져요
내리는 비를 졸졸 따라가면
아직 비가 되기 전의 우리를 만나겠죠
사람들은 다가가는 우리를 피하지 않죠
우리는 아직 비가 아니니까
모니터 속 녹색으로 내리는 코드처럼
무작위로 내리는 빗줄기 틈새
숨어 있기 좋은 방
그 방은 어떻게 감옥이 되었나요
손을 내밀어 받던 비의 몸은
닿으면 녹아내리는
소스라쳐 피하는 얼굴이 되었나요
같은 코드가 빚어낸 웃음소리
웃음소리가 미치는 범위의 무심한 울타리
만원지하철 노숙자의
악취를 피하려는 둥근 섬처럼
우리는 어쩌다 비의 감옥에 갇혔나요
우리는 어쩌다 비가 되었나요
등단시
가볍고 가벼운
새벽 안개 속
화섬댁 리어카 끌고 물질 나선다
숨을 참고 병과 박스를 건져 올린다
오래 머문 곳은 어디나 집이 되어서
빈 병은 자꾸 손을 뿌리치고
박스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그녀의 생에서 빠져나간 이름들
가만가만 온기 보태어 묶으면
주름진 손고랑을 채우는 바람
등대이던 아들 따라 뭍으로 온 화섬댁
숨비 소리 같은 아들 떠나고
리어카는 온기를 잃었다
인적 끊긴 해거름녘
골목길 깡통에 세든 노을
대문을 기웃거린다
그녀 마른 기침으로 물질 나간 날
바다 한 가운데 갇혔다
조금 더 가면 저기 부표인데
화섬댁 하늘로 날아오르고
바닥엔 흰 새 한 마리
한 호흡만 참았다면, 그녀
그리던 섬에 닿았을까
물결이 모래 그림 지우듯
바퀴는 새의 날개를 넘나든다
잠시 드러났던 바닥
다시 밀물 차오른다
그리운 꽃섬
그녀, 도착했을까
대표시
구두
지금 나는 패배의 명백한 증거이다
반짝이는 유리 구두에 몸을 구겨 넣는 건 언제나 실패했다 구두를 신고 호흡을 멈추어도 살은 끊임없이 삐져나왔다
물이었다면 나는 행복했을까 앙증맞은 구두에 꼭 맞는 물이었다면
잘 했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너는 구두에 꼭 맞는 몸을 갖게 될 거야
삐져나온 살을 깎아냈지요 피가 흐르고 고통스런 비명, 구두 안에 몸을 넣는 데 성공했어요 하룻밤이 지나자 살들은 부풀은 반죽처럼 구두 바깥으로 흘러내렸어요
오른쪽을 조금만 깎으면 되겠어, 아니야 왼쪽을 자르는 게 낫겠어 아, 뒤꿈치를 더 미는 게 모양이 예쁘지 않겠니?
흘러나온 살을 다시 깎아내요 그러나 자고 나면 구두 밖으로 넘치는 살, 구르는 돌을 따라 내려오고 다시 내려온 시시포스처럼
너는 너무 눈치가 없어, 이제 알아서 할 때도 되지 않았니?
요구는 끝도 없이 이어지죠 삐져나온 살을 깎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언젠가 나는, 구두에 꼭 맞는 몸을 갖게 될까요?
산문
인생은 언제 시작되는가
어떤 기억들, 어떤 장면들은 화인처럼 각인되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중학생 때였는지, 아니면 내가 고향을 떠나온 스무 살 초반의 일인지 기억들이 간섭을 해서 이젠 나도 믿을 수가 없다. 다만 그때의 상황과 기분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난 당장 닥친 걱정거리도 없이,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던 듯하다. 어쩐지 지금 누리는 이 평화로움이 사상누각처럼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당시 신문이나 티브이에서 인신매매가 연일 뉴스로 오르내렸다. 어느 순간, 오 리를 걸어서 다른 마을로 매일 일하러 다니시는 엄마가 납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행복이라고 이름 부르는 것들, 평화로움이라고 느끼는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자각은 이후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언제나 최악을 가정하는 삶, 지금 이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된 것이다.
또 하나, 힘든 일이 있거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때면 우주와 시간의 크기를 떠올려보곤 한다. 우주의 나이 138억 년, 지구는 46억 년, 인류는 400만 년,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겨우 4만 년 전에 태어났다. 내가 방금 본 태양은 8분 전, 북극성은 433년 전의 모습이며, 저 별이 빛의 속도로 천 년 전에 달려왔다면, 신라 시대일 것이다.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고, 별과 별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어서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 긴 시간을 떠올리면 내가 겪는 갈등이나 고통은 사소하고도 사소한 일이다.
가끔 이름을 날리고 싶다는 욕망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면 50년 후쯤이면 우리 모두는 잊혀진 사람이겠구나, 너무나 명확하게 다가온다. 지구와 별과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떠올리면 부나 명예 역시 내게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오랫동안 나는 이 셈법이 꽤 현명하고 효율적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내가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 삶으로부터 달아나기만 했던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욕망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 것이 자명하니, 저 포도는 시다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온 것이 아닌가. 실전에 참여하지 못하고 준비만 하는 선수처럼 나는 삶의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만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러나 어찌하랴. 우리 삶은 이런 순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을. 아니, 이미 지나간 것은 더 이상 삶이 아닌 걸.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미래 역시 우리 몫이 아닌 걸. 지금 이 순간만이 삶이니까.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김령 전남 고흥 출생. 2017년 《시와경계》 등단. 시집 『어떤 돌은 밤에 웃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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