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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누구이신가?
앞서 2회에 걸쳐 ‘사람은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 기술한 바 있다.
지금부터는 죄 때문에 지옥 갈 운명에 처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죄 사함)를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을 얘기할까 한다. 그 길이 없다면 인간은 아무 희망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믿으면 되지요!!’ 라고 어렵지 않게 대답들 할 것이지만, 앞에서도 밝혔듯이 마틴 루터나 요한 요슬레가 그럼 예수를 ‘믿지 않아서’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겠는가? 성경에 비추어 볼 때 그 믿음에 뭔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일 것 아닌가? ‘아, 교회생활 하다 보면 언젠가 확신이 생기겠지!’ 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도 물론 있다. 그런데 그러다가 그 확신이 생기기 전에 자신이 죽는다든가 주님이 먼저 재림해 버리시면 그 때는 어떡하고? 내일 일도 모르는 한심한 존재가 인간인데.
그래서 전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그 도(道)를 전할 것인데 그게 쉬운 것 같으면서도 생각하는 것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 근무 중에 짬 내서 쓰려다 보니 본 글 또한 시리즈로 게재될 것인데, 주의 깊게 읽고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거든 이전의 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일까?」두 편을 3회 정도 반복해서 읽어 보기 바란다. 어렵지 않게 쓴다고 썼지만 수준이 낮지 않은데다가 장님이나 다름없는 초심자에게는 나름 난해할 것이므로, 그 정도는 반복해야 감이 잡힐 것으로 본다. 중고등학교 때 국어과목에서 글 한 편도 한 번에 제대로 파악하기가 쉬운 게 아니었던 걸 잊지 말고, 자신의 인지능력을 과신하지 말기를 기대한다. 물론 이미 마음 밭갈이가 된 사람은 한 번에 복음의 진리를 깨우칠 것이다.
답은 말 그대로 ‘예수를 믿는 것(아는 것)’이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듯이, 실은 아는 것이 믿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일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경의 답이자 또한 비밀이다. 본래 비밀이란 것은 그것을 알기 전에는 어려운 것이지만, 알고 나면 너무 쉬운 게 그 비밀이다. 이제 성경의 비밀인 그 예수를 믿는 것을 살펴보자.
예수를 믿는다는 것(아는 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보면 그 첫째는 ‘그는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고, 둘째는 ‘그가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이제부터 글은 도구(道具)로써의 내가 쓸 뿐이고 그 진리를 영적으로 열어 보여주실 분은 성령이므로, 이 글을 보는 자는 겸허한 자세는 갖되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이성(理性)은 충분히 활용하여 맹신에 빠지지는 말 것을 권고한다.
먼저, 예수 그 분은 누구이신가? 성경과 상관없이 한 번 답해 보라. 도대체 그는 누구시길래 역사 즉 History를 His Story라고 하며, 인간의 연대(年代)를 BC(Before Christ, 기원 전)와 AD(Anno Domini, 기원 후)로 구분 짓는가? 가령 1960년생이란 말도 알고 보면 예수께서 인간 세상에 오신지 1960년 만에 그가 태어났다는 얘기인데, 그가 도대체 누구이길래 모든 인간의 출생과 사망을 그를 기준으로 -, +로 획정지을까? 2010년도 그가 오신지 2010년 되었다는 것이고. 육신으로는 동시대의 로마제국의 황제는커녕 피지배국가인 이스라엘의 분봉왕도 못되는 목수였는데. 그는 누구일까? .
성경으로 돌아가 그 분의 실체를 보기 전에 잠깐 쉬어 간다. 당시의 ‘나사렛 예수’를 알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인식하고 있었을까? 오늘날의 대부분 신자들은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로 얘기한다. 그런데 마가복음 6장에 “예수께서 … 고향으로 가시니 …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木手)가 아니냐”(막 6:1~3) 는 말씀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예수님을 잘 아는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목수로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예수님은 그 분을 아는 사람들에게 아버지 요셉과 같은 목수 정도의 사람이었다.
게다가 요한복음 7장에 나오는 “이미 명절(초막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성에 있는)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요 7:14,15) 라고 예수님을 안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육신으로서의 예수님은 목수이자 배우지 못한 소위 무식한 사람이었다. 성경(구약)이 그렇게 긴 시간 예언했건만, 진리를 찾지 않고 겉모습만 보는 눈을 가진 인간이 볼 때 예수님은 시쳇말로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사야서의 기록대로 그 분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함과 같으셨다.
본론으로 돌아간다. 요한복음 1장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1절~3절)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 중요하고 심오한 「요한복음」 서두에 나오는 말씀이다. 내가 30대 중후반에 어느 기독교단의 문서선교회 편집인으로 일할 당시 성도들로부터 가장 많이 질문을 받은 구절이 바로 이 말씀이기도 하다. 그들이 여러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물어보았으나 이해가 되는 답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 말씀을 읽고 이해가 되었다는 사람은 영적 천재이거나 바보일 것이다. 이 말씀은 생각 보다 어렵고 깊은 말씀이다. 그런데 이 구절로 예수님이 누구이시간가의 설명을 시작하는 이유는, 연구(硏究)를 해야 알 수 있는 말씀도 성경에는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앞에서 예수님을 그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듯이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람 즉 하나님의 아들인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인간 ***로 알기 때문인 것도 사실은 같은 것이다. 지금은 더 깊은 얘기를 해봐야 전혀 이해하지 못하므로 이 정도에서 접는다.
위에 인용한 성경구절의 ‘말씀’은 무엇을 뜻할까? 유감스럽게도 거의 모든 주석서나 강해서가 이 부분에 밝지 못하다. 그래서 ‘말씀=하나님’ 등식으로 설명하다 보니 듣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지 어떻게 하나님이 말씀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풀리지를 않는 것이다. 시작부터 이러니 성경을 어렵다고만 느끼고, 소위 ‘무조건 믿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자위하고 만다. To see is to believe 즉 ‘아는 것이 믿는 것’인데, 모르면서 그걸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건 넌센스이다.
‘말씀’이 영어성경에는 ‘Word'로 표기되어 있고 중국성경을 번역원본으로 한 우리의 개역성경의 하단 난외주에는 ‘혹 道가’ 라고 되어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흠정역(킹 제임스 버전,1611년 판)에서까지 그렇게 표기한 ‘Word'는 본래 무엇일까? 요한복음의 기록언어인 (코이네)헬라어로 이는 ‘로고스’인데 이를 영어사용권에 사는 사람들이 ‘워드’로 옮기면서 이해에 어려움이생긴 것이다. 영한사전에서 'Logos' 찾아보면 <신학> 항에 ①하나님의 말씀 ②(삼위일체의 제 2위인) 그리스도 라고 설명하는 게 조금 도움은 준다. 그러나 로고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뭔가 부족하다. 왜 그럴까? 그건 신약성경 기록 당시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는 정치적으로는 로마제국의 치하였지만 헬라(=그리이스)의 고등학문이 서양과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을 지배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스라엘에서도 히브리어 외에 아람어, 그리고 보편적으로 헬라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에게 헬라어 ‘로고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이해시키기가 쉬웠던 것이다. 사실상의 헬라문화권 하의 일반인들에게 ‘로고스’란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 하면, ‘자연발생된 우주만물들에 범신론적으로 깃든 우주의 이법, 원리, 이성’ 이었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행 17:23) 라고 까지 할 정도로 각종 신이 있다고 생각한 헬라인들은 보이는 우주만물 뒤에는 그것을 있게 하는 어떤 원리 또는 이성이 있다고(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믿었는데, 그걸 가리켜 ‘로고스’라고 지칭했다.
이는 형이상학적 철학을 그 바탕에 두고 있는 헬라적 배경에서 살핀 것인데, 이에 대해 제자원에서 발행한 『그랜드 종합주석』에서는 “성경은 절대초월자로서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그것이 조화를 이루게 경륜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와 주권에서 우러나오는 말씀과 우주의 운행 속에 담긴 조화로운 섭리의 원리를 Logos라 칭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금 길고 어려운 설명이다. 실은 요한복음 기록자인 사도 요한은 이를 한 단계 격상시킨 것이다. 당신들이 보이는 현상세계(우주만물)를 있게 하고 운행한다고 믿는 그 원리 내지 동인(動因)으로 막연히 이해하면서 로고스라고 하고 있는 그 실체가 바로 창조주 또는 절대자(Superbeing)인데, 그 창조주가 성자 하나님, 바로 그리스도 라는 설명을 하고자 한 것이다.
이제 위 요한복음 1장 말씀을 정리한다. 「말씀 ⇒ 로고스 ⇒ 창조주 ⇒ 성자 하나님」을 이해했으니, 위 말씀을 쉽게 변환시켜 보겠다. 태초(엔 아르케 : 창세 이전)에 성자(聖子) 하나님이 계셨다. 이 성자 하나님께서 성부(聖父)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성자 하나님은 곧 성부 하나님이시다(즉 같은 분이시다). 그, 즉 성자 하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성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 같은 선상에서 1장 14절로 가서, 성자 하나님이 육신(인간)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居)하셨다. 약 2천년 전에 이스라엘에 태어나신 예수가 누구라고? 그분이 바로 창조주이신 성자 하나님이셨단 얘기이다.
인간 역사에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은 바로 창조주께서 잠시 인간 몸을 입고 사람 사는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로부터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의 현신이라고 주장한 자들이 꽤 많았다는 문제가 있다. 박태선, 문선명, 안상홍 등 일반인들이 알만 한 가짜들 말고도 한국에만 해도 떨거지들이 꽤 많다. 그래서 예수가 진짜 창조주께서 육신으로 오신 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미리 오랜 기간에 걸쳐 예언할 필요가 있었고, 그 예언이 바로 구약성경이다. 예수님께서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눅 24:44)이라고 직접 말씀하셨고, 다른 곳에서도 같은 말씀이 많이 나오는데 이를 살피기 전에 미리 기록된 구약에서는 예수님의 육체(肉體)로 오심에 대해 어떻게 기록했는지 보겠다. 구약성경은 예수께서 오시기 전 1,500년 전부터 400년 전까지 약 1,100년 동안 기록된 것을 주의 영께서 모으신 것이다.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보여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 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매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永存)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위 ‘임마누엘’의 난외주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고 되어 있다. 처녀가 애를 잉태해 낳을 것인데 그 아이는 인간 세상에 와 함께 계실 하나님이시란 예언이다. 또 그 아이는 전능하고 영존하신 하나님이라 일컬을 것이다고 했다. 사람은 사람이기에 성결한 처녀의 몸은 빌리되 잉태 자체는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신 것이다. 그게 가능한가? 창조주이시기에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영(靈)이신 하나님께서 무(無)에서 보이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시는 데 힘이 드시겠는가, 무슨 긴 시간이 필요하겠는가. 흙으로 사람을 비롯한 동물을 창조하신 조물주께 처녀잉태는 시쳇말로 일도 아니다. 다만 마리아의 동의는 얻어서 시행하셨다(눅 1:38).
마태복음 1장 18절 이하의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聖靈)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使者)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는 말씀과 “성령이 네(마리아)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 는 말씀도 앞의 예언의 성취를 말한다. 덧붙여 다른 곳에서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묘사하는지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 또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즉 하나님=예수님)”(고전 8:6)
“나(예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本體)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
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 사람의 모양(模樣)
으로 나타나셨으매”(빌 2:5,6)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5,16)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딛 2:13)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2,3)
이렇듯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하여 나타나신 하나님 자신이셨던 것이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가 하나님께서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까지 하시면서 금지한 죄를 범하고 죄인으로 떨어지자, 그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면서 동시에 계획하신 회복의 방법인 그 “여자의 후손”(창 3:15)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면, 즉 아담의 후예(씨)라면 그 또한 죄인이므로 속죄(贖罪)할 길이 없음은 지금까지 설명했다. 그래서 죄인 아닌, 속죄제물로 쓸 수 있는 깨끗한 피를 가진 의로운 사람이 하나님 입장에서 필요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야 했다. 이를 달리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도 한다.
이후에는 그렇게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를 여러 각도로 살펴보려 한다. 여러 성경구절이 인용, 설명될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께서 내 영혼을 위해 하신 일이다. 한 사람의 영혼이 살고 죽는 문제이므로, 나 역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속죄의 복음을 전할 것이다. 이미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구원의 은혜를 다시 되새기고, 또한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리라 믿는다. <설 연휴 건강하게 보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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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경과 주석을 연구하는 자네의 열정에 깊이 감사드리네 하나님께서 자네를 향한 뜻이 계신 모양이네. 정말 좋은 글을 써 주어서 고맙고 감사하네. 로고스를 너무나 잘 풀어서 설명했다고 생각하네.
전도는 그 내용에 있어 하늘에 있는 영들, 즉 사탄과의 싸움이라서 전도하는 자는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기에 답글 많이 달아주었는데도 굳이 감사의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이네. 다만 누구에게나 복음을 선택할 능력과 기회는 주어졌기에 어떤 길을 갈지는 이제 스스로 결정할 것이고,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 된 사람으로서 나는 이를 위해 길을 제시하고 기원할 뿐이네.
하시는 일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