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처음이라 윤동희 차창에 비친 눈물 고인 눈동자가 흔들린다. 코끝이 찡하다. 힘들 때면 먼저 떠오르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충동적으로 올라탄 대전행 KTX가 달리고 있다. 우리 둘째는 나에게 햇살 같은 아이였다. 수줍음이 많아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렸던 큰딸과 달리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성격이었다. 둘째를 키우면서 첫째에게서 느꼈던 부족함을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공부하다가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도와주겠다고 하면 스스로 해결해 보겠다고 하고, 곤경에 처한 친구를 돕는 일에 앞장서는 아이였기에, 초등학교 생활이 기대되었다. 하지만 아이의 학교생활은 내 바람과 달랐다. 학교에 다녀온 녀석이 내게 자주 했던 말은 “애들이 나랑 안 놀아줘.”였다. 그 몇 마디 말에 나는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정신이 혼미해졌다. 친구들의 따돌림에 춥고 외로웠을 아이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고 당황스러웠지만,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 주기보다 내 감정을 추스르기에 급급했다. 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이는 과학에 푹 빠져 있었다. 무언가 관심 있는 것이 생기면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그것만 파고드는 성격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아는 것을 설명하는 것을 즐겼다. 비는 왜 내리냐는 질문에 하늘에서 선녀님이 흘리는 눈물이라는 귀여운 대답 대신 “땅에 있는 물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이 되는데, 구름이 뭉쳐서 무거워지면 물이 되어 내리는 것이 비예요.”라고 했다. 자신의 관심 분야만을 끝없이 얘기하는 녀석을 친구들은 이상한 아이라고 했다. 친구들에게 소외되면서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 가는 아이를 보며 더럭 겁이 났다. 밤잠을 설치며 남편과 함께 걱정하는 일상이 되었다. 아들을 이해하고 돕기 위해 아이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그 무렵 서점에 나와 있던 부모 지침서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내용의 공통점은 들어주고 공감해주라는 것이었다.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렸고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녀석의 얘기에 집중하다가 고개를 돌려보면 남편이 따뜻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과 남편과 손을 잡고 엄마도 같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말해주었다. “엄마는 항상 네 편이야” 2학년의 어느 봄날, 방과 후 수영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1학년 학부모가 자기 아이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는 이유로 내 아이를 수업에서 빼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1학년 여자 후배가 성교육 수업을 듣는다고 하기에 1학년 때 받았던 성교육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고 했다. “아빠의 고추에서 아기씨가 나오는데, 그 아기씨를 엄마가 받아서 뱃속에서 열 달을 품으면 아기가 되는 거야.”라고 말이다. 아마도 그 학생은 고추라는 직접적인 표현에 놀란 듯했다. 녀석에게 남녀의 차이점과 여자의 수줍음 등을 설명하고, 내 경험도 덧붙여서 상대를 배려해서 말하도록 노력해 보자고 했다. 녀석은 알아들은 듯 끄덕였다. 선생님의 중재로 그 사건은 잘 해결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두려웠고,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지 불안했다. 그 시기, 첫째는 중2병을 앓고 있었다.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24시간 화가 나 있었다. 성적은 끝을 모르게 곤두박질쳤다. 디자이너가 꿈인 아이였기에 좋아하는 그림으로 예고 입시를 준비하자고 권했다. 돌아온 대답은 날카로운 송곳 같았다. “내가 왜? 엄마나 가.” 어르고 달래어 입시 미술 학원에 등록했지만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걸렸다. 어느 날 밤 자정이 넘도록 아이가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동네를 샅샅이 뒤지고, 딸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생각이 다 들어 전전긍긍하며 가슴을 졸였다. 애타는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들어왔다. 답답해서 공원벤치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화가 많이 났지만, 꾹 참고 딸아이를 다독였다. 또한 아이의 떨어진 성적 회복을 위해 시험 기간이면 일찍 퇴근했다. 간식을 준비해 먹이고, 같이 책상 앞에 앉았다. 꾸벅꾸벅 조는 딸아이를 다그치며 집 안의 창문을 모두 열어젖히고, 일어서게 했다. 물론 나도 일어섰다. 딸에게 일어선 채로 책을 읽으라고 했다. 그러나 순순히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졸려 죽겠단 말이야. 왜 일찍 들어와서 난리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가!” 사나운 반발에 자못 놀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밤새 옆을 지켰다. 그렇게 전쟁 같은 시간이 지났다. 입시 원서를 쓸 시기가 다가오자 아이는 식욕도 떨어지고 예민해지더니 자주 눈물을 보였다. 원하는 학교보다 수준을 낮추어 지원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늦은 만큼 더 치열한 준비로 예고에 입학한 딸아이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학교에 가면 모르는 선생님들까지 나에게 아이 칭찬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갈 때쯤 딸이 쑥스러운 얼굴로 얘기했다. “엄마! 그때, 나 잡아줘서 고마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 역할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서툴고 힘들었던 나는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친구가 있는 대전행 기차에 오르곤 했다. 맥주 한잔과 함께 친구에게 하소연하고 나면 마음이 어느 정도는 진정되었다.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괜찮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더니 아이들이 어느새 반듯하게 자라 내 옆에 서 있다. 성장통으로 저희도 힘들었을 텐데 잘 키워줘서 고맙다면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엄마’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나와 함께 염려하고 노력해준 남편에게도 감사한다. 이제는 성인이 된 아이들, 여전히 부족한 나는 괜찮은 엄마가 되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삶의 책장을 넘긴다. 제273호 신인상 심사평 수상작 윤동희 - <엄마가 처음이라> 윤동희의 <엄마가 처음이라>에서 연상되는 말은 ‘엄마는 엄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엄마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 자발적 사랑과 희생의 실천자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면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초등생 아들, 이상한 아이라고 또 엉뚱한 오해로 소외당하고 있는 아들을 돕기 위한 엄마의 고뇌와 대처방안, 사춘기 딸의 이유 없는 방황과 반발에 솟구치는 화를 속으로 삭이며 딸을 이해하고 딸의 학력을 높이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며 끊임없이 자극과 격려를 하는 모습에서, 좋은 엄마, 괜찮은 엄마 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보게 된다. 결국 괜찮은 부모란 끝없이 자식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것에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 글은 엄마의 ‘자식양육 분투기’이며 동시에 ‘아이들의 성장통사’이고, 말없이 이들을 지켜보고 귀 기울여준 이웃(남편과 친구)에 대한 ‘감사의 글’이다. 일상 속에서 선택한 주제는 삶에 대한 진지함을 추구한다. 글 속에 등장하는 사람은 5인, 실제 대화의 참석자는 엄마와 남매지만, 5인의 개성이 확연하게 드러나도록 한 데에 이 글의 장점이 있다. 자식에 대한 기대와 실망감, 두려움 앞에 의연히 문제 해결을 위해 분투하는 엄마의 모습과, 그 과정을 간결한 문체로 담담히 서술해 나간 솜씨 앞에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된다. 심사평 : 유인순 273호 신인상 당선소감 윤동희 전) 에스콰이아 콜렉션 핸드백 디자이너. 쥬얼리 디자이너 원석문학회 회원 지금까지의 6월 중 가장 더운 날이라는 어느 날, 신인상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쨍쨍한 햇볕 속에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같이,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엄마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싶다는 소망에서 시작된 저의 글공부는 더디게 한 걸음씩 진행되었습니다. 배움이 느린 저의 글에 하나하나 코멘트를 달아 주시고 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유인순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옆에서 조언해 주시고, 힘을 주신 원석문학회 선배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뜨거운 햇살과 비바람으로 우리를 집중시키는 짧은 여름 같은 글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곁에 두고 싶은 글을 쓰고자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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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엄마가 처음이라' 는 <수필과 비평> 2024년 7월호 등단작입니다.
이화수필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글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신
윤동희샘~ 축하합니다. 오랜만에 단비같은 좋은 소식입니다.
본인의 희망대로 많은 독자가 사계절 곁에 두고 싶은 글 많이 쓰시길
기원합니다.
다시 한번 등단을 축하합니다.
유교수님~고맙습니다.
윤동희 쌤,
신인상 당선을 축하합니다.
원석문학회의 큰 기쁨이네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글의 마당에서
즐거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글 잘 읽었읍니다.
아직은 모든게 조심스러워서 단톡방이나 카페 글방에 글 올리는게 어려워서 눈팅만 하다가 수상 소식에 반가와 한줄 올립니다.
단톡방에서 윤선생님 신인상 소식 보고 글이 궁금해서 수필과 비평 월간지를 주문했는데 6 월호가 왔어요,얼마나 덤벙대는 처센지요 ㅉㅉ..
그래도 그참에 그 책을 일년 정기구독 신청해서 글쓰기 공부에 도움 받으려합니다. 진즉에 주문하고 공부해야할것을 윤선생님 글 보려는 욕심이 행동을 앞당겨주었네요. 두 자녀를 키운 과정은 어느 엄마에게인들 쉬울 리가 없겠었겠지만 그 시간들이 윤선생님에게 문인의 길을 열어주고 오늘날 영광스런 화관이 되었나봅니다.
이제 작고하신 어머니 이야기를 듣는 날을 고대하며 다시한번 감축드립니다.그리고 많이 많이 부럽습니다 ^^
아, 그러셨군요!
개강하면 한 권씩
드릴 수 있을텐데...
발 빠른 이미경 선생님
방학에도 아무때나
카톡, 전화 환영입니다.
계속 꾸준하게 책읽고
글쓰다 보면 어느 순간
신인상 소식도 있을겁니다.
첫 걸음마가 중요하지요.
선생님은 이미
글쓰기 솜씨가
많으십니다~☆☆
@해바라기/박귀숙 우와.....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김옥춘고문님께서 카페에서 회원등단작품들을 읽어보라셔서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느낀것은 정말 높은 곳에 있는 깃발 뽑으러 가야하는데 무릎아파서 못 가니 걱정돼는 것처럼
어려운 문학의 길을 등정해야 할 두려움이 생기네요. 선배님들의 글이 어휴우,,,,대단하단 말씀밖에,,,
@이미경 이미경선생님
반가워요.
이만한 열정이면 빨리 발전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응원할게요.^^
@송화/김옥춘 대선배선생님들의 글 읽고
어찌해야하나 를 난감해했는데 두분 선생님의 격려와 응원에 열심을 다짐해봅니다
모든 선생님들께
여름 안부 장마 안뷰
여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