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년 모월 모일에 아무 벼슬 아무는 삼가 효찬(肴饌)과 청작(淸酌)의 전(奠)으로써 공경히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이공(李公)의 영령에 제사를 지내나이다. 대개 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되는 것을 많이 얻을 수는 없도다. 영화를 다하려면 구애되는 일이 있어서 그 낙을 다할 수 없고, 낙을 너무 좋아하면 또 방탕해지니 영화는 엷어지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면, 범에게는 날개를 주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인데 특히 우리 선생께서는 영화와 낙을 다 두었도다. 나가서는 장수가 되었을 적에는 표범 껍질로 두른 가마를 타고 붉은 기(旗)를 세웠으며, 들어와서는 정승이 되었을 적에는 옥현(玉鉉)을 걸고 금빛문을 달았으니, 장수와 정승의 영화를 공이 겸허하였도다. 집에는 아미(蛾眉) 같은 고운 여자들이 늘어서 있어 날마다 옥을 안고 향기를 마시며 거문고를 탔고, 또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왔을 때도 근력이 좋아서 성색을 좋아하는 것이 젊을 때 못지 않았도다. 공이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뜬구름 같은 인생이란 잠시이므로 내가 너희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니 너희들은 속히 내게 고기를 대접하라.” 하고, 야복(野服)으로 지내면서 여러 곳을 왕래하였으니, 남아의 낙은 오직 공이 다하였도다. 내가 옛날에 난리를 만났을 때 어려운 고통을 당하여 토끼같이 숨고 쥐같이 엎드리면 낭패를 당하여 웅거할 곳을 잃었는데, 공에 힘입어 오늘까지 이르렀도다. 매양 생각하면 홀연히 슬프고 떨리는구나. 아, 슬프다. 공을 아버지같이 보았고 공의 누님을 어머니같이 보았는데, 공이 지금 죽으니, 내가 아버지를 잃은 것 같도다. 무슨 말로써 영결을 할꼬. 한 잔의 박주나마 공은 취하여 내 마음의 회포를 위로하시오.
민평장에게 제사지내는 글 부인 대신 짓다 [祭閔平章文 代夫人作]
이규보(李奎報)
모월 모일. 아, 슬프다. 문장을 많이 쌓아 놓은 것은 첩의 엿볼 바가 아니로다. 공이 임금을 만난 것은 천재일우인지라, 풍운이 서로 만나 말이 갈기를 떨치는 듯 벼슬길에 올라 지위가 정승이 되어서 백관을 총괄하였고, 그 후 몸을 빌어 물러나온 지가 10년이 넘었도다. 홍범(洪範)의 오복(五福)이 다 갖추었고 분양(汾陽)의 시종(始終)은 어지러짐이 없었도다. 대기(大期 죽는 기한)를 면하지 못하고 지금 와서 어디에 갔는가요. 공은 유감이 없지만 산 사람이 슬프니, 나에겐 오직 눈물뿐이로다. 보낼 때 문밖에도 나가 보지 못하고 떠나갈 때 상여줄을 잡아보지도 못하였으니, 알지 못하겠소. 어느 산기슭 어느 터 어느 혈(穴)에 당신 같은 옥수(玉樹)를 묻어서 그 빛을 길이 멸해 버리는지. 아, 슬프다. 그래도 두 아들이 있어서 조정[天路]에 쌍쌍이 나가고 있으니 첩은 의지할 곳이 있은지라, 돌아보지 말고 가시오. 첩도 이제 늙었으니 산들 다시 얼마나 살겠소. 술을 쳐서 권하오니 모든 것이 끝났도다. 아, 슬프다.
유학유에게 제사지내는 글 희선사를 대신하여 [祭庾學諭文 代希禪師]
이규보(李奎報)
모월 모일. 아, 조물주를 믿을 수 없음이 오래였다. 까마득하여 나는 마침내 궁구하여 알 수 없겠도다. 우리를 속이어 끝까지 희롱하려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해롭게 하고 투기하는 것인가. 난채(蘭茝) 같은 좋은 풀은 어찌하여 쉽게 꺾어지며 자록(薋)같이 나쁜 풀은 어찌하여 쉽게 무성하는가. 옥은 어찌 쉽게 부러지며 돌은 어찌 견고한가. 안회(顔回)는 어찌 명이 짧으며 도척(盜跖)은 어찌 수를 하는가. 만물의 특수한 것은 생명이 길기가 어렵고, 영준(英俊)한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하니, 이러한 것은 예부터 탄식해 온 바이라, 하늘이 어찌 그대에게만 미워했겠는가. 아, 슬프다. 그대는 사족(士族)의 영수(領袖)로다. 나이 20세가 못 되어서 난새같이 높이 날고 천리마같이 달렸으니, 어찌 이름 이루는 것이 그렇게 빠르며 또 이제 와서 세상 버리는 것이 또 그렇게 빠른고. 만일 하늘이 투기한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일찍 이렇게 죽게 하느냐. 그러나 죽고 사는 것은 먼저 하고 뒤에 함이 있을지언정 누가 죽지 않는 이가 있겠는가. 한 잔 술을 쳐서 영결을 하오니, 밝은 영령은 흠향하기 바라오네.
대부경 이공 유경에게 제사지내는 글[祭大府卿李公惟卿文]
이규보(李奎報)
모월 모일. 아름답도다. 밝으신 영령(英靈)이여, 활달(豁達)한 도량이구나. 하늘이 이러한 도량을 주었으니 날로 원대한 걸음이 있을 것 같은데, 어찌 수명을 주지 아니하고, 갑자기 생명을 앗아가는가. 대개 벼슬이 높으면 몸을 사랑하고 녹이 두터우면 살기를 탐(貪)하고 몸을 잘 봉양하여 오래 살기를 도모하니, 이것은 이치적으로 떳떳한 것이며, 사람의 심정이었다. 그런데 공(公)은 그렇지 않아 성명(性命)을 무겁다고 여기지 않고, 관직을 영광으로 여기지 않아서 몸보기를 손의 집에 우거한 것같이 하여 만물과 더불어 아무것도 다툼이 없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키면서 술이나 마시겠다고 하여 날마다 한량없는 술을 마시니 어찌 창자가 상하는 것을 돌아보겠는가. 남들은 술마시기를 다만 그 맛만 즐겼는데, 공은 술마시기를 고의로 자기를 아끼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너무 일찍 죽었도다. 아, 슬프다. 모든 것이 끝났구나. 차마 무슨 말을 하리오. 제사에 좋은 제주가 없고 다만 향기나는 술이 있으니 마음의 즐기는 것이 유명(幽明)을 달리했다고 해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은 마시고 나의 슬픈 정에 답하시오.
광릉공에게 제사지내는 글 어떤 사람 대신 행하다 [祭廣陵公文 代人行]
이규보(李奎報)
온화한 우리 공이여, 왕실의 봉황이로다. 한 번 행하고 한 번 걷는 것이 도가 아니면 밟지 않고, 손님을 사랑하고 선비를 접대함에 간격을 두지 않도다. 또 문장을 잘하여 하간헌왕(河間獻王)과 대등하였도다. 겸하여 의약에 정밀하니, 노련한 의사와 같아서 널리 구제함을 소임으로 가지고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렸겠는가. 단청(丹靑)을 잘 그려서 노련한 화사(畫師)와 같아 손으로 스스로 부처의 화상을 그려 놓고는 항상 우러러보고 있었도다. 허물은 자신이 맡고 착한 것은 남에게 미루었다. 공의 행위를 볼 때 하늘이 도와줄 것 같은데 어찌 수명을 주지 아니하고 문득 대기(大期 죽을 시기)를 재촉하는가. 슬프다 구천(九天)은 막히고 신선[鸞馭]은 멀구나. 어느덧 백일(百日)이 돌아오니 세월이 빠르도다. 뼈는 비록 썩을지언정 이름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허술한 음식으로 오직 슬픔에 부칩니다.
강종대왕에게 제사지내는 글[祭康宗大王文]
이규보(李奎報)
아, 슬프다. 몸에 밴 덕은 능히 요(堯) 임금 수준에 나아갔으니 요 임금의 향수(享壽)만큼 누려야 할 것이요, 조심하는 마음은 주 문왕(周文王)보다 지나치니 문왕의 수명(受命)만큼 하리라고 생각하였도다. 어찌 만승(萬乘)의 높은 곳을 버리고 천 년의 좋은 복을 보존하지 못하였는가. 아니 지금이 예와 달라서 착한 일을 징험하지 못하는가. 슬프다, 내 이 불량한 것은 자식됨이 무상(無狀)하여서 다른 집에 나가 있다가 잠깐 침문(寢門)에 문안을 드리지 못하였더니, 어찌 이때에 이미 병에 걸려 홀연히 세상을 버리기를 이렇게도 빨리할 줄 알았겠습니까. 손으로 약을 드려보지도 못하고 귀로 유명(遺命)도 듣지 못하였으니 슬프다, 이 한이여. 영영 어찌 그치겠습니까. 사람이 누가 아버지 잃은 슬픔이 없으리오마는 세상에 누가 저 같은 애통함이 있으리오. 학의 수레가 맞이하러 옴이여, 어찌 이렇게 조금도 지체함이 없단 말인가. 용염(龍髥 임금을 가리킴)이 길이 사라졌으니 어느 때 다시 잡아보리까. 날은 구소(九霄)에 어둡고 하늘은 만국에 무너졌도다. 이것이 참말인가 거짓말인가, 꿈인가 생시인가, 내가 모르겠나이다. 부르고 울고 생각하고 그리워한들 어찌 뵈올 수가 있겠는가. 다만 무궁한 생각만을 않고 변변치 않은 잔을 올리니 흠향하옵시와 나의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위로해 주옵소서.
장학사 자목에게 제사지내는 글[祭張學士自牧文]
이규보(李奎報)
모월 모일에 양온령(良醞令) 동정(同正) 이(李) 아무는 삼가 청작(淸酌)의 전(奠)으로써 태복경(太僕卿) 보문각 직학사(寶文閣 直學士) 장공(張公)의 영령에 제사지내나이다. 장씨(張氏)의 집안은 예부터 이름이 드러났는지라 공은 그 집안을 이어서 꽃다운 가지로 우뚝 빼어났도다. 시는 장고(張枯)에게서 얻고 글씨는 장지(張芝)에게서 얻었으며, 또 붓은 장연국(張燕國)에게서 얻고 문사(文辭)는 장구령(張九齡)에게서 얻었도다. 10년이나 제고(制誥)를 맡아서 임금의 모훈(謨訓)을 폈는데 그 글이 전아(典雅)해서 울리고 또 빛나서 아름다웠도다. 아, 슬프다. 관(官)은 다만 시종(侍從)에 그쳤고 위(位)는 정사(鼎司 삼공)에 오르지 못하였도다. 이러므로 은택이 입히지 못하고 그 쓰임이 세상에 널리 퍼지지 못하였으니 사람이 다 탄식할 일이라, 어찌 나만 슬퍼할 일이겠는가. 내가 옛날 약관(弱冠) 때에 과감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험한 길이 앞에 있는데도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서 사람의 시비를 논하여 말을 마구 그침없이 하니, 진신(搢紳)과 사부(士夫)들이 눈을 흘겨 두려워하고 그 문에 들어가려 하면 문득 그 문을 잠가버리는데, 공은 당시에 한 번 나를 보고 예부터 친한 사람같이 대해주었도다. 당(堂)에 올라가서 서로 말을 함에 마음을 터놓고 간격을 두지 아니하였도다. 급히 집에 아이들을 시켜 술과 안주를 베풀어 놓고 담 너머로 손을 하나 부르니, 그는 피리를 잘 부는 사람인데 피리를 불고 흥을 도와서 여러 번 큰 잔을 서로 마시며 달빛 아래서 팔짱을 끼고 옷자락이 엎치락뒤치락 춤을 추며 놀았도다. 이로부터 계속하여 뵈옵게 되니 볼 때마다 술에 취해 같이 시를 읊고 나를 후생(後生)으로 여겨 혐의를 하지 아니하였도다. 내게 시 세 수(首)를 주었는데, 그 시는 마치 옥소리가 쟁쟁하게 울리듯 하였다. 시가 이렇게 호방하고 글씨도 능숙하였도다. 꽃피는 봄, 잎지는 가을과 눈비오는 저녁, 구름낀 어둑한 날엔 언제나 나를 불러 깊숙한 근심을 씻었으니, 마음이 서로 조응하고 정신이 서로 통함은 공을 제쳐놓고 누구에게 구하리오. 아, 슬프다. 하늘이여, 우리 문수(文帥 글장수)를 빼앗아 갔구나. 시단(詩壇)은 누가 주장해 나가리오. 얽힌 감회를 다 말하기가 어렵고 하늘의 이치는 아득하구나. 이 세상에는 다시 노성(老成)한 분이 없으니 내가 누구와 같이 의논을 할까. 눈물을 닦으면서 통곡을 하니 공은 듣는가. 생각하건대, 그대는 별이 되어 하늘에 있을 것이니 어찌 이 진토에 묻혀 있으리오. 영령이여, 와서 내 정성인 이 음식을 흠향하시오.
종의선로에게 제사지내는 글[祭鍾義禪老文]
이규보(李奎報)
모월 모일에 양온령(良醞令) 동정(同正) 이(李) 아무는 삼가 다과의 전(奠)으로써 선사의공(禪師義公)의 영령에 제사지냅니다. 생각하건대, 영령은 불롱(佛隴)의 사(嗣)요, 우계(尤溪)의 종(宗)이로다. 덕을 온전히 한 그 법기(法器)가 풍부하였고 충만하였도다. 행실을 닦아 높고 도는 차서 깊은데, 이 밖에 여벌로 구사하는 문장력이 용같이 맹렬하고 범같이 웅장하여 붓을 휘둘러 종이에 뿌리니, 바람같이 시원하고 비같이 몽몽(濛濛)하며 확 트이게 넓은 그 식견은 널리 통함도 많더라. 옛날 돈양년(敦䍧年)에 처음 만나서 조용히 놀고 증산(甑山) 언덕에 자주 오고가고 하였는데, 오고간 것은 무엇 때문인가. 도를 묻고 공(空)을 말하였도다. 도를 물은 것은 무슨 도인가. 이것은 공(空)과 가(假)와 중(中)이요, 오직 이 글귀들은 나를 위해 모르는 것을 깨우쳐 주었으니, 나는 오직 대사(大師) 때문에 어두운 귀와 눈을 열었도다. 그리고 죽창(竹窓)의 밤비와 송원(松院)의 밝은 바람에 등을 밝히고 바둑을 두면서 날새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고, 그렇지 않으면 시를 지어 서로 다듬고 갈고 하였으며 내게 술을 권하여 많은 잔에 취하게도 하였고 나를 무릎에 눕혀 잠자는 숨결이 무지개를 토하는 듯하여 자질구레한 예절을 벗어나고 심흉을 다 털어 놓았도다. 같이 국청(國淸)에 놀 때에 양 언덕에는 단풍이 들었고 감로사(甘露寺)에 같이 말고삐를 잡고 놀러갈 때는 푸른 물이 깊이 울렁거리더라. 묏부리에 올라 술잔을 주고받으며 흡족하게 마시고 시도 읊고 노래도 부르니 그 즐거움이 화기가 넘쳤도다. 아, 슬프다. 인생이 모이고 흩어짐에 이별은 쉽고 만나기는 어렵구나. 한 번 헤어진 후로 우리는 서로가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도다. 내가 남쪽에 벼슬하러 갈 때에 대사는 구봉(舊峯)에 갔고, 대사가 낙사(洛師)에 돌아올 때에 나는 동쪽으로 종군하여, 나오고 들어가는 것이 서로 어긋나 봄 제비와 가을 기러기처럼 되었도다. 갑자기 서로 만나서 문득 총총히 이별하니 옛날의 즐거움을 다시 하지 못하다가 이 부고를 듣게 되었구려. 물은 흘러가서 다시 오지 아니하고 구름은 흘러가서 종적이 없도다. 법동(法棟)이 꺾여졌으니 배우는 이가 누구를 쫓을가. 도경(道境)에서는 생사를 같이 보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흐느껴지는가. 대사의 혼이 어찌 이 진토에 흘러다니겠는가. 그 가는 곳은 저 도솔천(兜率天)일 것이니, 내가 어떻게 하여 거기 가서 한 번 웃고 서로 만나겠는가. 납아(臘芽)를 지져 올려서 나의 한됨을 표하노라.
외구인 대부경 진공에게 제사지내는 글[祭外舅大府卿晉公文]
이규보(李奎報)
모월 모일에 직한림(直翰林) 이(李) 아무는 공경히 돌아가신 외구(外舅 장인을 말함) 대부경(大府卿) 진공(晉公)의 영전에 제사하나이다. 생각하건대, 영령은 침정(沈靜)하여 말이 적으며 빛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안으로 비치었다. 그리고 천문에 밝은데도 스스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굳센 담기(膽氣)는 드러내지 아니하였다. 아, 슬프다, 벼슬은 구경(九卿 판서)에 올랐으니 이것이 적은 것이 아니며 나이는 70이 넘었으니 이것은 요절이 아닌데, 급한 병으로 돌아갔으니 이것이 슬픈 일이로다. 한마디의 말도 남기지 못하고 눈을 감고 길이 가버렸구나. 옛날에 내가 일찍 부모를 잃어서 나를 가르칠 이가 없었을 때 나는 공에게 와서 몸소 훈계를 받고 격려를 받아서 사람이 되었으니, 이것은 공이 도와준 덕이옵니다. 아, 슬프다. 사람이 장가를 가서 부인을 맞이하여 옴에 처가에 힘입은 사람이 얼마 없는데 지금 나는 장가를 가서 처가에 있었기 때문에 내 몸에 쓰이는 것을 처가에 의지하였으니, 장인 장모의 은혜가 부모와 같도다. 아, 슬프다, 악공(岳公 장인을 가리킴)이여, 나를 빈틈없이 돌보아 주시다가 버리고 돌아가니, 나는 앞으로 누구를 의지하여 살리오. 명산 기슭에 터를 잡아 장사를 지내고 흙을 한 주먹 놓으며 여기에서 영결을 합니다. 영혼(英魂)이 계시면 내 허술한 제수를 흠향하소서.
유승상에게 제사지내는 글 수기 수좌를 대신하여 행하다 [祭兪丞相文 代守其首座行]
이규보(李奎報)
아, 슬프도다. 문장과 덕행이 고금에 제일이니, 마치 하늘 높은 것을 장하다고 칭찬하는 것 같아서 여기에 감히 진술하지 못하겠노라. 공의 행지(行止)가 처음에는 굴(屈)하였다가 나중에는 피었도다. 임금께서 옛날에 잠저(潛邸)에 계실 때 공은 실상 스승이 되었는데, 풍운(風雲)이 서로 만나 지난날의 어렵고 험한 것을 씻어 버리고 말고삐를 놓고 빨리 달려가 정승 자리에 올랐도다. 귀감(龜鑑)이 공에게 있어 임금께서 의지하려 하셨는데, 나라의 기둥이 갑자기 넘어지니 누가 슬프지 아니하리오. 부귀가 급히 오는 것을 내가 본래 두려워하였는데, 이 때문에 그런 것일까. 어찌 홀연히 돌아가시나이까. 집에 부인이 없으니 누가 내차(內次)에서 울 것이며 백도(伯道) 같은 이가 아들이 없으니 누가 제사를 받드리오. 아, 슬프다. 생각하건대, 옛날 승선과(僧選科 과거 이름)를 보일 때에 공이 이것을 주관하여 나를 장원(壯元)으로 발탁하였으니, 이로써 영화가 이미 넘쳤으며, 나를 아들같이 길렀으니, 은혜가 또 한량이 없도다. 승상이 병이 심할 때 나를 불러서 부탁하여 말하기를, “저 하늘이 나의 후사(後嗣)를 끊으나 어찌 동포가 없으며 또 먼 친속이야 있지마는, 그들의 행위를 요량해 보니 모두 내 뜻에 맞지 않았다. 내 마음을 아는 이는 오직 너뿐이니, 내가 지금 죽거든 네가 뒷일을 맡아서 해다오.” 하거늘, 나는 사양하고 받지 않았으나, 공은 기꺼이 받아들이지 아니하기에 재배하고 이 명령을 내가 받았소. 유언을 받은 뒤로 공경이 명심을 하였으나, 내가 오활한 탓으로 모든 일이 익숙하지 못해 장사 치르는 일도 제대로 볼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도다. 만약 공이 이것을 보았다면 어찌 내 얼굴이 부끄럽지 아니하리오. 아, 슬프다. 광음(光陰)이 머물지 아니하여 졸곡(卒哭)이 돌아왔도다. 불사(佛事)를 베풀어 놓고 인해서 찻잔을 올리니, 아, 상국(相國)이여, 나의 슬픔을 압니까. 슬프다. 상향.
아내에게 제사지내는 글 다른 사람 대신 행하다 3언구 [祭妻文 代人行三言]
이규보(李奎報)
나이 16에 내게 시집와서 집안 일에 익숙하고 부인으로서의 품위가 아담하여 나의 지시하는 일을 어김없이 잘하고, 시부모를 섬기는 데 조그마한 허물도 없었으며, 제사에 삼가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도다. 바야흐로 우리가 가난할 때에 함께 험한 일을 많이 당했는데 집이 조금 윤택해지자 명을 빌리지 못하고 문득 가버리니 꽃이 홀연히 졌구나. 하늘이 이렇게 한 것이니 어찌할 수 없도다. 창자가 찢어지고 눈물이 땅에 떨어지노라. 박주나마 한 잔을 채웠으니 내 정성으로 알고 한 번 마시는 것이 좋겠소. 아, 슬프도다.
소정방장군에게 제사드리는 글[祭蘇頲方將軍文]
이규보(李奎報)
대개 외국이 중국에 손으로 가지 않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태종(太宗 당 나라 태종)이 앞으로 만국의 항복을 받아 문(文)과 수레바퀴를 같이 통일하려고 해서, 장군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우리 고려(高麗)를 침노하여 짓밟더니, 장군이 불행히도 우리나라에 머물고 돌아가지 못하였음으로 유사(遺祠)가 여기에 있노라. 외국이 손으로서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지금 또 문황제(文皇帝)가 분연히 성을 내어 군사를 괴롭히면서 먼 곳에 스스로 군사를 거느리고 경략(經略)하러 왔으니 장군의 영령은 이것을 알 것이오. 더욱이 동경(東京)은 우리나라에 붙어 있는 고을인데, 감히 거병하여 우리나라를 배반하니, 입을 딱 벌리고 주인을 보고 짖는 행위는 개도 오히려 하지 않는 법인데 장군의 마음에는 어떠하다고 보는가. 엎드려 바라건대, 지금이나 예나 아래 나라를 치는 데는 마땅히 경중을 가려서 해야 하니, 장군은 이것을 알아서 옛날의 범과 매 같은 위엄을 떨쳐 관군으로 하여금 더러운 풍속을 씻어버리고 기일 내로 군사를 돌려서 가도록 하면, 장군이 비록 객혼(客魂)이라 하더라도 여기에서 먹는 것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