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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瑞山) - 복되고 즐거운 일이 많은 조짐(상서로운 瑞 )의 땅
충청남도 서북단 반도부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은 예산군, 당진군, 동남쪽은 홍성군, 서쪽은 태안군과 서해에 접하고 있다. 서해안은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끼고 있으며 리아스식 해안으로 되어 있다. 총인구가 161,152명(2009년 11월 30일 기준)에 이른다.
서산 문화관광 http://seosantour.net/cnt/main.do
영상포엠 한국 100경
http://www.ktv.go.kr/common/popup/vodplayer.jsp?cid=342154
제1경 : 가야산 산수골 물소리
서산에 살아있는 물은 유일하게 가야산 속 산수골로서 가야산 산수골 물소리는 석문봉 북쪽산 밑 발원까지 약10리나 이어짐.
제2경 : 석문봉에 걸린 여름구름
석문봉은 가야산 제일봉으로 여름날 석문봉에 걸려있는 구금이 장관임.
제3경 : 개심사 경내의 고유
개심사는 유서 깊은 사찰로 개심사 경내의 고요함은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마력이 있음
제4경 : 용비동의 가득한 봄경색
해미에서 운산으로 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용비동의 봄풍경으로 서쪽 능선을 타고 전망대까지 걷노라면 벚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룸 .
제5경 : 여미리의 음력사월달밤 여미리의 사월 달밤의 풍경이 장관을 이룸 .
제6경 : 옥녀봉의 아침솔밭
서산의 주산인 부춘산의 줄기인 옥녀봉의 아름다움이 유명한데 특히 아침햇살이 송림사이로 비쳐 들 때의 옥녀봉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룸.
제7경 : 도비산의 저녁노을
도비산의 저녁노을이 천수만 바닷물에 되비쳐 하늘에 오색 노을을 꽃피게 하였고 주위의 구름까지도 주황색으로 채색하여 매우 황홀하고 아름다움 .
제8경 : 간월호의 겨울철새떼 겨울철 간월호에 찾아온 수많은 철새의 무리가 장관을 이룸
간월도 어리굴젓
간월암[看月庵] 바다 위에 떠 있는 절
섬으로 변해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이 마치 구름 속에 피어난 연꽃 형상을, 육지로 변한 썰물때는 반야용선이 피안의 길로 항해 하려는 모습이다.
간월호[看月湖 제8경-겨울 철새떼]
이곳은 무학대사(無學大師) 자초(自超:1327~1405)가 출가하여 도를 깨쳤다는 곳으로, 이후에 자초가 간월암이라는 암자를 지었는데, 간월도는 그 암자의 이름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간월암은 작은 돌섬에 있어 하루에 2번 간조 때면 걸어서 갈 수 있다
개심사[開心寺 제3경]
개심사 대웅전은 정면 3간, 측면 3간의 단층 맞배집으로, 그 구조 형식은 다포집 계통과 주심포집 계통의 기법을 혼합한 절충식이다. 1484년, 성종 15년에 지어졌으며, 보물 제 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삼아 지은 절집이 있어 눈에 띈다. 운치있는 화장실.
굴포운하[掘浦運河]
삼남지방(三南地方)의 세곡(稅穀)을 서울로 운송할 때에는 반드시 태안반도의 안흥량을 통과해야만 했는데, 안흥량은 수로(水路)가 매우 험난하고 암초(賠礁)가 많아서 사고를 방지하고 서울까지의 항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굴포운하 건설이 계획되었다.
농협협동조합중앙회 한우개량사업소
대호방조제[大湖防潮堤]
방조제 중간쯤에는 도비도 농어촌휴양단지가 있다. 도비도(搗飛島)는 원래 섬이었다가 대호방조제를 축조하면서 육지로 변한 곳으로 약 800만㎡의 농경지가 친환경농업시범지구로 지정되어 있고, 갯벌을 이용한 자연생태공원도 조성되어 있다.
도비도 선착장에서는 당진군에서 유일한 해수욕장인 난지도해수욕장 등을 돌아볼 수 있는 유람선이 운항된다. 난지도는 희귀한 종류의 난과 약초가 자라는 섬이며 섬 남쪽에 있는 길이 2.5km의 난지도해수욕장은 질 좋은 모래사장과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명종대왕태실 및 비[明宗大王胎室─碑] 운산면 태봉리 산1
운산면 태봉골의 나지막한 구릉 정상부에 있다. 석재를 다듬어 세웠는데 모양은 조선시대의 부도(浮屠)와 비슷하다. 전체 높이는 273cm이며, 태실은 90cm이다. 태실 앞에는 3기의 비가 나란히 서 있는데 가운데 것은 귀부(龜趺)와 이수를 갖추었다. 왼쪽 비에는 '대군춘령아씨태실'이라고 새겨져 있다.
류방택 천문기상과학관 인지면 애정리
주관측실은 원형돔에 직경 600㎜ 반사망원경과 132㎜ 가이드망원경, 보조관측실은 235㎜ 반사굴절망원경과 150㎜ 태양망원경 등을 보유하고 있다.
천체투영실은 움직이는 의자와 3D 입체영상을 통해 30분간 실감나는 우주여행을 안내하며 교육전시실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 등 류방택 관련 각종 유물이 전시돼 있다.
보원사지
부석사[浮石寺]
극락전·안양루(安養樓)·심검당·무량수각 등의 건물이 있다. 극락전은 고려시대의 건축 양식에 따라 정면 3칸, 측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1995년에 해체 복원하면서 일제강점기 때 수리한 내용을 담은 기록이 발견되었다.
'섬이 날아와 산이 됐다'는 아담한 사찰 부석사. 누각의 정취가 뛰어난 절집은 아니지만, 절집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뛰어난 곳이다. 절 마당에 서면 산 아래 너른 들판과 그 너머 안면도와 서해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삼길포항 http://www.ktv.go.kr/vodplayer.jsp?cid=366292
서산 마애삼존불상 [국보 제84호]
본존불인 여래입상의 높이는 2.8m이다. 6세기 중엽의 백제작품으로 모두 밝은 미소를 짓고 있어 "백제의 미소"로 불리며, 특히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각기 변하는 특징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신비해 국보 제84호로 지정됐다. 삼존불은 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그리고 제화갈라보살의 수기삼존불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본존불의 묵직하면서 당당한 체구에 둥근맛이 감도는 윤곽선이나 보살상의 세련된 조형 감각, 그리고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조각 수법으로 보아 제작 시기는 6세기말 내지 7세기 초로 보인다.
본존불상은 눈을 크게 뜨고 밝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와 같은 불상의 웃는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다.
제화갈라보상은 두 손을 배 앞에 모아 보주를 들고 있는데 미소가 아름답고 천의의 흐름도 세련된 양식을 보인다.
반가사유상은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비교적 풍만한 몸에 사실적인 표현을 하였다
특히 이 지역은 백제시대 중국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불은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서산 간척지(천수만)
서산 검은여제[瑞山-祭]
옛날부터 이곳 사람들은 검은여가 부석사와 지령(地靈)이 통하는 곳이라 여겨 신성시하고 면민의 안녕과 풍년 및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부석면이라는 지명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검은여는 신라시대에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와 그를 연모한 선묘낭자의 애틋한 설화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의상이 당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 때였다. 대사를 사모했던 당나라 여인 선묘낭자가 결혼을 애원했으나 의상은 거절하고 배에 올랐다.
선묘낭자는 바닷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신라에 돌아온 의상은 그녀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 도비산에 절을 세우려했으나 주민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때 검은 바위가 떠올라 “절 짓는 일을 방해하면 큰 재앙을 내리겠다”고 위협했고, 그 덕에 불사는 무사히 진행될 수 있었다.
서산 박첨지놀이 http://100.naver.com/100.nhn?type=video&media_id=902372
박첨지놀이는 고려시대부터 양반사회의 모순을 풍자하면서 서민층에서 즐겨 놀았던 민속극으로 꼭두각시놀음, 홍동지놀음, 꼭두박첨지놀음 등으로 불리우며 남사당패에 의해 전해 왔다.
인형을 매체로 한 사회풍자극인 박첨지 놀이의 ‘박’은 인형을 바가지로 만들었다는데서 비롯되었고 ‘첨지’는 벼슬(정3품) 이름으로 양반을 해학적으로 풍자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고(故) 주연산씨를 거쳐 서산 음암 마을주민 20여 명으로 구성된 보존위원회에서 명절날 마을 놀이로 행하고 있다. 이 놀이는 박첨지마당 네거리와 평안감사마당 세거리의 2마당 7거리로 구성되는 마당극으로 막 뒤에서 여러 사람이 인형을 움직이며 관객과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박첨지놀이는 주인공 박첨지를 통해 가부장적이고 퇴폐적인 양반 사회의 모순을 해학과 풍자로 승화시킨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마을단위의) 민속인형극(전통 인형극, 꼭두각시놀음)이며, 가면·탈·풍물도 예술적 가치도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안견기념관[安堅記念館]
서산시는 안견의 출신지인 지곡면에 몽유도원도를 실측크기로 조각한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어 한국화인 창출자인 안견의 자연애호사상을 현창하고 미술 학도의 정신적 지주로 승화시킴은 물론 국민 정서 순환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키 위해 1991년 10월 기념관도 건립하였다. 안견의 작품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일본 덴리대학중앙도서관 소장)를 실측 크기로 제작한 영인본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적벽도(赤壁圖)》 등 총 18점의 작품이 향토 작가들의 미술품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몽유도원도> 1447년(세종 29) 작.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 특징은 그림의 줄거리가 두루마리 그림의 통례와는 달리 왼편 하단부에서 오른편 상단부로 전개되고 있으며 왼편의 현실세계와 오른편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고, 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안평대군의 발문을 보면, 안견은 이 그림을 3일 만에 완성하였다고 하며, 거기에는 안평대군의 제서와 시 1수를 비롯해 당대 20여 명의 고사(高士)들이 쓴 20여 편의 찬문이 들어 있다. 그림과 그들의 시문은 현재 2개의 두루마리로 나뉘어 표구되어 있는데, 이들 시문은 저마다 친필로 되어 있어 그 내용의 문학적 성격은 물론, 서예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그림은 안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 후의 한국 산수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정순왕후생가[貞順王后生家]
이후 김홍욱의 4대손이자 정순왕후의 아버지 김한구에게 이어졌으며, 정순왕후(1745~1805)가 그의 맏딸로 이 집에서 태어났고, 1759년(영조 35)에 51세 연상인 영조와 결혼하여 왕비가 되었다.
천수만[淺水灣]
이로 인해 천수만 일대는 철새들의 주요 이동경로인 해안가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내륙지방보다 10월부터 3월까지 월평균 기온이 1.2℃ 정도 높고, 또한 주변에 벼를 재배하는 대단위 농경지가 있어 추수 후에 남겨지는 곡식들이 겨울철새들의 주먹이원이 되는 등 철새서식지로 적합한 조건을 두루 갖추게 되어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천주교 해미순교성지(여숫골)
해미천 옆에 생매장당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높이 16m의 '해미순교탑'이 건립되어 있다. 당시 죽음을 앞둔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를 하였는데, 마을 주민들이 이 소리를 '여수머리'로 잘못 알아들어 이곳을 '여숫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해미읍성[海美邑城]
성안 광장에는 감옥터와 천주교도들을 고문한 호야나무(회화나무)가 서 있다. 성 밖엔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기 위해 읍성에서 1.2km떨어진 하천변에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여숫골) 하였고 때로는 수장(진둠벙)을 시켰다고 한다.
조선조 제3대 태종대왕(1367-1422)은 1416년 2월 16일 충녕대군(세종대왕 1397-1450)과 함께 7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부석면 취평리 도비산에서 수렵을 위한 몰이를 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다. <해미읍성축제>
서산향교
<서산향교 은행나무> 서산향교를 1574년(선조 7)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울 때, 서산군 최초의 군지 ≪호산록(1619년)≫을 지은 한여현의 선인이 심은 은행나무 4그루 중 1그루로 추정된다.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노거수로 명륜당 앞마당에 있다. 나무 높이는 33m이고 나무 둘레는 430cm이다. 유주(乳柱)가 있는 희귀종 은행나무여서 보존가치가 높다. 이 나무에서 해마다 수확하는 은행이 2가마에 이른다고 한다. 2008년 충청남도기념물 제173호로 지정되었다.
해발 130m의 아담한 산, 황금산. 해송과 잡목으로 뒤덮여 있는 작은 무명산이지만 아름다운 산책길을 가지고 있다. 그 산책길 끝에는 서해에선 찾기 힘든 주상절리 절벽과 기암들이 즐비해있어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서산 황금산 아래 해안가에는 코끼리 한 마리가 산다(바위). 바다와 산이 만나는 곳 서산 황금산이 트레킹코스로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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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달래 서산의 달래는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서산 내 달래 재배 농가는 380여 가구에 이른다.
서산관광농원
충남 서산시 수석동에 자리 잡고 있는 서산관광농원은 시내와 가깝게 인접해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병풍처럼 둘러싸인 소나무 숲과 대나무 숲 그리고 잘 다듬어진 조경과 꽃밭들은 화려하다.
서산 맛집 맛동산 ‘냄새 없는 청국장’으로 유명한 충남 서산시 간월도의 음식점 ‘맛동산’을 운영하는 오동원 대표가 제12회 신지식인 인증 경영인 대상을 받았다.
오 대표가 운영하는 맛동산은 냄새 없는 청국장과 영양굴밥으로 유명하다.
서산생강/서산생강한과 1300년 전에 신만석이라는 사람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생강을 얻어와 봉동에 심은 것이 우리나라 생강 재배의 시작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재래종 품종에는 '봉동재래'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충남 서산은 일제 강점기에 봉동의 생강을 가져와 재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산의 생강도 일제 강점기부터 심어와 그 땅에 토착화한 것은 '서산재래'라고 부른다. 서산 생강은 국내 생산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서산 생강은 '공식적으로는' 1931년부터 재배되었다. 부석면 강수리의 박인화 씨가 마을 주민들과 생강조합을 결성하고 완주 봉동에서 종자용 생강을 가져와 심은 것이 그 처음이다. 박인화씨는 생강을 생으로 저장하여 유통하면 큰 수익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는 집 마루 아래에 굴을 파고 생강을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토굴저장법, 온도는 15도 정도 일정 유지. 황토밭에서 갯바람을 맞고 자라 전국 최고 품질을 인정받고 있는 ‘서산 생강’ 출하가 한창이다. 생강막걸리
웅도[熊島] 서산시에서 북서쪽으로 16㎞ 해상에 위치하며, 북쪽의 육지 끝에서는 700m 떨어져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곰이 웅크리고 앉은 형태와 같다고 하여 웅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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