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는 최근 딜러별 판매지역을 정했다. 즉 한 딜러만 있는 곳의 경우 해당 딜러 외에는 차를 팔 수 없게 한 것. 이전엔 서울딜러가 울산 고객에게, 전주딜러가 부산 고객에게 판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수 딜러가 있는 서울과 부산의 경우 이번 조치에서 제외됐다. 물리적으로 판매구역을 정할 수 없어서다. 또 고객의 주소지와 근무지가 다를 경우는 두 지역 딜러에게 모두 판매자격이 주어진다.
BMW가 국내에 지사를 설립한 이후 처음으로 판매구역을 규정한 건 딜러 간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서다. BMW측은 "요즘 고객들은 계산이 빨라 차를 사면서 거주지역은 물론 전국 상당수 딜러에게 견적을 의뢰, 할인을 유도하는 예가 많다"며 "뉴 5시리즈 출시를 계기로 딜러들의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할인을 적극 막자는 게 본사 취지"라고 설명했다.
실제 BMW는 수입차시장에서 40%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면서 다른 브랜드와의 경쟁보다는 자체 딜러 간 싸움이 더욱 치열했다. 어차피 BMW차를 살 고객인 만큼 다른 딜러에게 뺏기는 것보다 좀 덜 남더라도 파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이 때문에 BMW는 '제돈 주고 사면 바보'가 되는 대표적인 브랜드였다. 심지어 충분히 할인을 받은 고객도 다른 딜러에게 사면 더 깎지 않았을까란 고민을 안겨준 게 현실이었다.
BMW의 한 딜러는 "할인을 하지 않는 벤츠나 렉서스의 경우 골프백 하나만 선물해도 고객이 고마워 어쩔 줄 모르지만 BMW 딜러들은 마진없이 팔아도 의심을 받는 게 일반적"이라며 "또 벤츠나 렉서스는 차 팔기가 수월하지만 BMW는 판매조건 때문에 고객에게 매달리는 시간이 배 이상 걸려 그 만큼 인원도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계적인 브랜드를 좋은 매장에서 팔면서 왜 고객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지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차는 많이 팔면서도 딜러들의 수익성이 떨어지다 보니 올들어 사업을 포기하는 딜러가 나타났다. 포항, 울산을 거점으로 했던 휴먼모터스가 서울에 진출한 지 얼마 안돼 새 딜러인 한독모터스에 서울매장을 매각한 데 이어 울산, 포항 영업권을 내놨다. 마산딜러인 유로모터스는 부산에 '동양 최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올해 전시장을 냈다가 새 임자를 찾고 있다.
이에 앞서 서울, 수원딜러인 저먼모터스는 자금난에 시달린 끝에 최대주주가 바뀌었다. 서울모터스도 한독으로 넘어갈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다. 코오롱모터스 외에는 흑자를 보는 딜러가 없을 것이란 게 딜러들의 판단이다. 수입차시장 1위를 달리는 브랜드의 딜러들이 적자를 보거나 주저앉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BMW는 이에 따라 올 상반기에 첫 번째 딜러 보호조치를 내놨다. 6월 이후 판 차에 대해선 마진 15% 중 5%포인트를 연말에 일괄 지급키로 한 것. 당장 현찰이 돌지 않으면 딜러들의 할인폭도 그 만큼 줄어들 것이란 계산이었다. 이 정책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으로 딜러들은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판매구역 규정이 두 번째 보호조치다. 이 같은 일련의 정책들은 BMW가 비로소 딜러들의 수익성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는 반증이다.
BMW 관계자는 "일부 딜러가 자신의 능력에 걸맞지 않게 과투자하다 보니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 게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문제가 있는 딜러들이 자연적으로 정리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즉 체질이 허약하거나 할인을 일삼는 딜러는 같이 갈 수 없다는 게 본사의 뚜렷한 방침이다.
물론 딜러들의 과잉경쟁이 한 지역 다수딜러를 지향하는 BMW의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비난이 많다. 다른 딜러가 가격을 깎아 파는데 생존을 위해서라도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었다는 해명이다. 때문에 일부에선 딜러들의 수익성 악화와 사업포기에 대해 BMW가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지적한다. 또 'BMW를 팔면 망한다'는 인식이 퍼질 경우 브랜드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BMW가 적극 할인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BMW측 생각은 약간 다르다. 상품성이 뛰어난 제품을 팔면서 할인에만 의존하는 허약한 딜러는 자격이 없다는 얘기다. 또 같은 딜러끼리 협조, 서로 사는 길을 택하며 시너지효과를 거둬야 함에도 자사의 수익성 악화에 상관없이 무조건 할인을 하는 건 무모한 경영이라고 주장한다.
BMW와 딜러의 입장은 이 처럼 상반됐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뉴 5시리즈 출시를 기점으로 BMW가 딜러들의 수익보전에 매달리고 있다. 딜러들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으며 교육도 강화했다. 속을 들여다 보면 BMW의 딜러지원은 업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나 딜러 간 과당경쟁을 막지 못해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BMW의 일련의 보호조치들은 때늦은 감이 있으나 이제라도 적극 시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반기는 딜러들이 대다수다. 제3, 제4의 정책을 내놔 이번 기회를 새출발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문제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정책이 지켜지도록 감독하느냐와, 다수 딜러가 포진한 서울과 부산시장에서의 과당경쟁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렸다. BMW의 지혜와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