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 용어에 관한 논쟁
<한국 수어의 이론 - 최상배. 안성우 공저 서현사 출판>
수어 용어에 관한 논쟁은 최근에도 가열되고 있다. 그것은 수어(手語)와 수화(手話)라는 표현 중 어느 것이 맞느냐라는 논쟁이다.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은 강주해의 논의에서 시작되었다.
강주해(1998)는 수화라는 용어의 부적합성을 다음 다섯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 손짓언어는 엄연한 언어라는 것, 둘째 한국수어에는 한국어와 다른 고유한 문법체계와 표현양식이 있다는 것, 셋째 한자 이용 상 수화는 손짓언어와 거리가미 있다는 것, 넷째 농아인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수어가 더 적절하다는 것, 다섯째 수화라는 말은 구화의 대비로 사용되었다는 점 등이다.
김상화(2000)는 수어와 수화를 혼용하고 있다. 이것은 수어와 수화에 대한 견해가 양립된 가운데 공론화 되지 않은 상태의 표현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수어는 언어학적 개념에서, 수화는 일상생활의 대화적 의미로 사용하였다.
강창욱(2000)은 수어를 자연수화와 문법수화로 구별하는 일반적인 구분방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즉 그는 이러한 구분방법은 청인 중심의 사고에 기인한 것으로 본래 농아인의 언어인 수어를 문법도 없는 매체로 왜곡시켰다고 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강창욱은 자연수화를 한국수어로, 문법수화를 건청수화로 바꿔서 명명하자고 주장하였다.
특히 강창욱(2000)은 말[話]과 언어는 달리 보아야 하기 때문에 수어와 수화에 관한 논쟁에서는 수어라는 용어가 적합하다고 주장하였다. 수어가 적합한 이유는 첫째, 농아인의 모든 가치와 행동 양식을 포함하는 농문화를 포괄하기 때문에 손말[話]보다 손언어[話]가 타당하다. 둘째, 수화는 단지 표면의 눈으로 지각되는 것만을 의미한다. 그러나 수어는 언어가 갖추어야 하는 의미와 화용의 규칙과 그것을 가시화하는 형식문법까지 가진 하나의 언어로 인정된다.
수어를 올바른 용어로 규정하자는 주장에 대해 수화를 계속 사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김칠관(2001)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화를 수어로 바꿔야 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수화는 용어의 출현시기가 확실하고 빠르다. 한국에서 ‘수화’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1928년 조선총독부 제생원 맹아부에 대한 설명에서부터이다. 이때부터 거의 70년이 넘게 수화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둘째, 용어의 단일성과 일관성이다. 즉, 수화라는 언어가 거의 70여 년을 한결같이 ‘수화’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셋째, 1928년의 수화강습 기록에서와 같이 확고한 인식과 바탕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때부터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보았다. 넷째, 수화의 일반화가 일찍 이루어졌다. 국어사전에 수록된 시기로 보아 일본보다 10여 년, 중국보다는 20여 년 가까이 앞섰다.
용어와 관점은 시간이 흐르면서 항상 변한다. 이 변화가 올바른 것이라면 타당하고 적절한 명명(命名)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필자는 수어라는 용어를 지지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 수어에서 강조하는 것은 수어가 하나의 언어라는 관점이다. 지금도 수어에 관한 많은 편견과 몰이해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많은 수어학자들의 연구가 있었다. 이들 연구의 핵심은 수어가 단순한 몸짓(gesture)이 아니라 언어로서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어의 언어로서의 연구는 큰 흐름이다. 일부 수어 관련 논문에서는 수어의 언어적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수화언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이중표현이다. 강창욱(2000)의 의견과 같이 말(speech)과 언어(language)는 분명히 다르다. 문법수화는 문법수어로 명명될 수 없다. 문법수화는 언어로서의 체계와 특징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어의 언어학적 연구는 대부분 일반 언어학에서의 연국 방법을 수어에 적용하여 수어와 음성언어의 공통점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엿다.
둘째, 농교육의 패러다임이 수어를 강조하는 2Bi(Bilingual Bicultural approach)로 변화하고 있다. 2Bi를 현장에서 적용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수어의 가치뿐만 아니라 교육매체로서의 가능성과 학습가능성의 가치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처럼 수어는 언어로서 뿐만 아니라 학습가능성이 있는 교수활동에서의 적절한 의사소통 양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셋째,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사회언어학적 특징을 들 수 있다. 이중문화적(bicultural)관점에서 농아인은 수어라는 독특한 언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minority)이다. 소수민족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가 반드시 필요하다. 농아인이 인격과 삶의 질을 중시한다는 입장에서 수어라는 용어가 적절하다.
넷째, 과거에는 수화의 반대말이 구화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구화라는 말 대신에 구어(spoken language)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따라서 구어의 반대되는 용어는 수어(sing language)이다. 구화를 구어로 바꿔 사용하면서 수어는 수화로 사용하자는 것은 어법에 맞지 않다. 혹자는 이것을 우리나라의 오랜 관습을 저버리고 영어에서의 표현을 중시함으로 학문 사대주의적 측면이라고 주장하지만 올바른 용어와 관점은 마땅히 수용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용어를 바꾸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현대는 매스컴이 발달하여 용어의 변경이 훨씬 수월하다. 일부 종교단체와 대학 동아리에서 ‘수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제는 수어 이론을 연구하는 분야에서도 수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를 기대한다. 여기에서 진일보하여 한국수어가 한국수어학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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