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요 12장 20-26절) 240324 주일설교
요 12장은 분수령. 예수께서 유월절 한 주 전에 행하신 일들(“유월절이 가까우매”11:55, “유월절 엿새 전에”12:1) 유월절 소개로 이전의 평상적 날들과 다른 일이 일어날 것 암시한다. J께서 은둔에서 떠나 (11:54와 달리!) 예루살렘. J는 전혀 다른 어떤 일을 할 것.
당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J을 기뻐 영접. J께서 나사로를 살리실 때 함께 있던 이들의 말 듣고, J가 예루살렘에 나타나기를 기다렸다(17~18) 이적에 대한 관심에서 종교성 짙은데 종교적 성격은 J를 맞이하며 구약을 인용 더욱 분명하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복되다”(시 118:25) 당시 사람들은 오실 자를 강하게 기대했다(마 3:11; 11:2; 막 1:7; 눅 3:16; 7:19) 메시아 기대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X인가 질문에서 메시아 기대에 대한 열정(눅 3;15; 요 1:19) 이들은 J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이적을 보고 J를 오시는 이라 부르는데 구약의 한 구절을 단순히 인용이 아니라, 한 구절 덧붙인다. “IS의 왕!” 습 3장 15절 반영. 그러나 메시아 기대를 구약을 사용하지만, 메시아에 대한 이해를 달리한다. IS의 왕에 전투적, 군사적 무력의 왕 기대. 당시 사에 아주 짙게 표현. 이 사상하에 자칭 왕들이 지속적으로 출현 메시아 운동은 예루살렘 멸망 직전 로마와 치열한 전쟁 유대인 그룹인 젤롯인들에게서 절정에 달하였다. 이들은 세상의 변혁은 다수의 무력에 의한다고 생각했다. 큰 무리가 J를 IS의 왕이라 부름. J에게 힘을, 운동을 기대. 이들은 예수를 왕으로 영접한다!
심지어 헬라인들도 J 찾아와 그들이 빌립을 통해 J께 왔다. J은 제자들에게 대답하실 뿐 헬라인들에게 대답 않는다. 헬라인들에게 간접적 대답.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23절) 헬라인들과 제자들이 영광을 기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다.
“영광을 얻을 때”는 곧 J의 십자가 죽음 의미. 당시 십자가의 죽음은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것. J은 십자가의 죽음을 영광이라고 말씀하신다. 치욕이 영광이 될까?
J은 당시 사람들이, 헬라인들이 왜 J께 나아왔는지, 제자들이 무슨 충동 받았는지. 헬라인들이나 제자들이나 영광 기대. 영광 기대하는 이들에게 J께서 자신의 진정한 영광을 알려준다.
1) 한 알의 밀(24절) J의 영광은 헬라인들이나 제자들이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한 알의 밀”의 방식. J는 진정한 영광을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로 설명. 진정한 영광과 밀알의 유사점은 땅에 떨어져 죽음. “땅에 떨어져 죽는” J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 “땅에 떨어짐”은 그의 성육신, “죽음”은 십자가의 죽음. J는 밀알로 자신 증거. J의 떨어짐은 가장 낮은 데로 떨어짐, 예수의 죽음 가장 낮고 더 낮은 데로 내려감! 기독교는 이렇다: 떨어짐과 죽음으로!
2) 자신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25절) 예수는 진정한 영광이 “자신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에게서 이루어진다. J는 자신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에 대하여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에 대하여 설명. 자신을 사랑함은 우선 자기를 추구함. 관심이 오직 자신에게 있음. 자기 생명을 사랑함은 자신만을 아름답고, 부요, 편안 함이나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 생명을 사랑하나, 생명은 죽음. 아름답게 만들지만 늙고, 부를 쌓지만 소유 불가, 편안함 추구하나 몸은 쇠퇴. 자기 생명을 사랑함은 생명 이상의 것 있음을 모름을 의미. 이런 사람은 영생을 모른다. 인생을 오직 이 땅의 생명으로 이해하고 만다. 그래서 이 같은 사람은 이 땅에서의 생명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절망이다.”
생명을 사랑하는 자와 생명을 미워하는 자 대비. 자기의 생명을 미워함은 자신을 포기함이다. 자신에 대한 관심을 멀리함. 이것이 가능한가? 자기의 생명을 미워함 “영생”을 사모할 때 가능. 영생을 사모하는 자는 생명을 미워한다. 영생에 대한 사모가 생명에 대한 미움 가능. 영생과 생명의 맞바꿈! 영생은 J를 믿을 때(요 3:15,16,36; 5:24; 6:40,47) 영생은 J와 긴밀한 관계에서 허락. 영생 얻는 자는 자기 생명 위해 살 수 없다. 생명의 가치는 생명을 사랑 않을 때 드러남. 자기 생명을 미워하면 “그것을 보존한다” 생명을 사랑 않으면 가장 풍성하고 영광스럽다! 감당할 수 없는 무서운 삶. J께서 이를 가장 모범적으로 실현. 이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영광이다.
3) 섬기는 자(26절) J는 진정한 영광이 예수를 섬기는 데서 나타난다. 예수를 섬김은 그를 따르는 것. 예수의 제자됨을 의미한다. 전적으로 예수의 뜻을 따라 사는 것. 예수를 따르는 제자에게 두 가지 영광이 주어진다. 첫째 영광은 예수를 섬기는 자가 예수께서 계신 곳에 있게 된다(26상) 이것은 공간적 영광이다(요 14;3; 17:24) 예수를 섬기는 자에게 (공간적인 의미의!) 천국이 주어진다. 두 번째 영광은 예수를 섬기는 자를 G께서 존귀하게 만드신다(26하) 이것은 인격적 영광이다. 예수를 섬김으로부터 G의 존중 받는 것. X인들은 사람들에 의하여 멸시에도 G의 존중 받는다! 이 영광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비밀스런 영광이다. X인들은 예수와 함께 있는, G이 존귀히 여김으로 비밀스러운 영광을 사모한다.
십자가형 고대 페르시아나 애굽, 앗수르에서 죄수를 고문 사형에 처하기 위해 만든 형틀. 페르시아 인들에 의해 로마에 전해졌고 노예나 죄수를 사형에 처할 때 사용되었다.
십자가는 두 개의 막대기를 교차 X자형, T자형과 두 개의 막대기 중 긴 세로의 막대기가 짧은 가로 나무 막대 위로 튀어 나온 십자 모양의 형태. J은 세 번째 모양의 십자가 형틀에 매달리셨다. 그 튀어 나온 부분에는 죄목이나 죄수의 이름이 기록되었다(마 27:37)
십자가 형벌은 죄수의 양팔을 사람의 키보다 약간 큰 나무에 못 박아 고정 매달리게 하면 피가 몸의 밑으로 몰리고 혈액 순환이 되지 않아 호흡이 빨라지고 심한 고통을 겪는다. 죄수의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기 전 심한 채찍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으로 며칠을 보내며 죄수들은 서서히 십자가에서 죽어갔다.
십자가의 처형 방법은 가혹하고 치욕적 로마 인들은 행치 않았다. 유대인들도 나무에 매달린 자는 저주 받은 자다(신 21:22-23). 그러나 J C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고 대신 저주 받으셨고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참으셨다(마 27:32-44; 눅 23:26-43; 요 19:17-24).
J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셨다(14절; 마 21:1-9; 막 11:1-10; 눅 19:29-38). 나귀는 고대에 교통수단. 왕들은 대체로 노새(나귀와 말의 잡종 - 삼하 13:29; 왕상 1:33; 시 32:9)를 타고 일반 평민들은 나귀를 탔다. 성경에 나귀는 유용한 가축, 운송 수단. 탈무드에 “짐을 나르기 위해” 창조. 나귀는 피조물 중 가장 어리석은 짐승. 이 때문에 자주 낯익은 격언들의 주제(“나귀는 삼복 더위에도 재채기 한다”) 상대방을 나귀라하면 심한 모욕. 점술가 발람의 영적 어리석음에 사용. 발람은 가는 길에 칼든 천사 만남, 발람 못보고, 나귀는 보고 발람이 매질해도 나귀는 안가고 3번 길에서 벗어나 말로 학대하는 발람을 꾸짖음. “때에 L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발람도 천사를 본 뒤 발람은 IS에 저주대신 축복.
선지자 스가랴는 메시아가 나귀 타고 오실 예언. J는 구약 예언대로 한 어린 나귀 타신다(14절) 구약을 이루시는 행동(슥 9:9) 구약 인용 오해하는 자에게 구약으로 교정.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 위해 성경의 한 면만 보지만 J는 바로잡기 위해 성경을 보신다. 어린 나귀 낮음, 가난, 겸손. 어린 나귀 빨리 달릴 수도, 무장도 없다. 전사의 위엄도, 전투의 행적도 없다. 어린 나귀 탄자 힘도 세력도 찾을 수 없다. 예수 연약학 예루살렘에 오신다.
가난한 모습으로 그의 앞에 높은 깃발도 큰 나팔도, 그의 뒤에 용감한 전사도 없다. J는 홀로 몇 명의 제자들과 예루살렘에 오신다. J는 왕으로 오시지만 사람들이 요구 방식의 왕이 아니다! J는 왕에 대한 찬미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기대처럼 권세보다, 성경 예언처럼 겸손. J는 사람들의 외침에 개의치 않고, 조용히 성경이 예언 이루심. 자기 길을 갈 뿐! J 낮고, 홀로 세상의 개혁. J는 왕이시지만 낮고, 혼자 나귀 타신 왕이 기독교다.
성경은 역설(逆說) ‘패러독스’(Paradox)얼핏 틀린 것 깉지만 진리. 막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고후12:10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행20:35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역설적 진리.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죽으면 산다, 잃으면 오히려 얻는다. 십자가의 진리다. 십자가는 역설 중 역설. 죽는데 살고, 수치 당하는데 영광스럽다.
백인들이 서부 개척 때 마을 인디언 원주민들 쫓아낼 방법. 인디언들은 넓은 평원에 옥수수밭 만들고 장막에 살았다. 백인들은 그들 쫓아내려 사방에 불 질렀다. 불길이 점점 타들어 왔다. 한두 시간 후면 불길이 마을에 번진다. 불길이 너무 세 어느 방향으로 뚫을 수 없었다. 인디언들은 발만 동동 구를 때 노련하고 경험 많은 인디언 한 노인이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불 질러라! 운동장만 하게 불 질러라!” 사람들은 이해 되지 않았다. 불에 타죽는데 또 불 지르라고. 경험 많은 노인의 말에 순종 불 질렀다. 불탄 자리 운동장만 하다. 노인이 “모두 불탄 자리에 오라!” 노인은 불탄 자리는 불타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불탄 자리에 올라 죽지 않았다. J께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이 되셨다.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셨다. 죄값을 지불할 수 없다. 누구든지 예수 안에 정죄함이 없다. 예수께서 죄악을 담당 사함 받았다.
요 12장 헬라인들은 유대인 교포(디아스포라)를 통해 G을 알게 된 사람들로 추정. 유월절에 맞춰 예루살렘에 왔다 J을 찾음.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전승에 당시 헬라(Greece)의 도시 국가 ‘에뎃사’에서 온 사신들. 에뎃사 왕의 아들이 나병에 걸려 절망 중, J의 소문. 각종 병 고쳤는데 나병 환자를 고쳤으며,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린 분. 소문 듣고 어찌하든 J을 모시려 했다. 그러면 왕자의 병을 고칠 수 있고, 나아가 나라의 스승(국사)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그때 유대인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등 J을 어떻게든 죽이려던 시기였으니까 그들이 생각하기에 J께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J은 그 제안을 거절, 끝내 십자가를 지셨다.
고대 분묘에서 발굴 곡식 낟알들. 오랜 세월 썩지 않고 그대로. 고고학적 가치야 있겠지만 곡식 낟알들이 땅속에 심겨졌다면 수 많은 곡식을 생산했을 것. 남기보다 엄청난 손실이죠.
J은 자신이 세상에 심겨지고 썩어지는 밀알이가 되기 위해 오셨다.
롬 5:19 “한 사람(=아담)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J)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 J이 G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의인 되었다.
초대 교부이자, 신학자 터툴리안 “순교의 피는 교회의 밑거름이다.”
‘적색순교’ : 흔히 순교하면 신앙을 지키다 피 흘려 죽는 것.
‘백색 순교’(白色殉敎) : 살 동안 주의 뜻 순종하려고 복음과 G나라 위해 눈물과 땀 흘리는 것. 엄밀하게 순교가 아니나 평소 이런 삶을 살지 못한 사람이 적색 순교 할까? 적색순교 는 예외 없이 평소에 백색순교 실천한 사람들. 육신의 본능을 이기지 못한 사람이 피흘려 순교할 수 없다. 그런 뜻에서 백색순교라는 말을 사용함.
기독교 작가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의 ‘사랑(Love)’책에 성공회 목사 친구는 기도 마치면 “아멘”하고 항상 성호. 루케이도가 “아멘 하면 되지, 왜 성호를 긋느냐?” 친구는 “손을 이마에 갖다 대고 가슴에 갖다 매면 대문자 영어로 ‘I’ (나) 그 후 한쪽 어깨로 갔다 반대편 어깨로 가면 ‘I’(나)를 반 토막 내네‘ 십자가 묵상 때 날 반 토막 내 죽어야 십자가 완성. 날 죽이면 복종. 날 죽이지 않고 아무리 애써도 복종 안 된다. 복종은 날 철저히 죽이는 것.
도체스터 호 이야기 2차 대전 때 1943년 1월 22일, 뉴욕항 떠난 연합군 병력수송선 도체스터호 904명 태우고 어둠을 가르며 북으로 항해 12일 만인 그해 2월 3일, 독일 잠수함이 도체스터호에 접근 어뢰를 발사. 어뢰 맞은 도체스터호는 얼마 후 물에 잠기기 시작. 배는 아수라장. 병사들은 서로 붙잡고 울부짖는 와중에 4명의 군목들은 침착하게 구명조끼를 나눠주며 병사들을 구명정 있는 곳으로 안내. 더 이상 나눠줄 구명조끼가 없을 때 군목 클라크 폴링(Clark V. Poling) 중위가 병사에게 “자네 예수 믿나?” “아니요” 군목은 구명조끼를 벗어주며 “난 예수 믿으니 죽어도 천국 간다. 넌 구명조끼 입고 살아 예수 믿고 천국에서 만나자.” 4명의 군목은 구명조끼를 병사들에게 주었다. 도체스터호에 점점 물이 차 4명의 군목들은 서로 팔끼고 기울어진 갑판에서 ’내 주를 가까이‘ 찬송 기도. 생존한 병사 그래디 클락은 군목들의 최후 “내가 본 마지막 장면은, 군목들은 최선 다했고 난 그들을 다시 못 보았다. 그들은 자기 구명조끼를 병사들에게 주고 죽었다.” 병사 904명 중 605명 전사. 전쟁 후, 산 수병들 군목들 희생 기억. 해리 트루먼 대통령 4명의 군목, 감리교 조지 폭스(George L. Fox) 유대교 알렉산더 구스(Alexander D. Goode) 장로교 클라크 폴링(Clark V. Poling) 카톨릭 존 와싱턴(John P. Washington) 기리는 기념예배당 (US Naval Chapel) 건축. 필라에 용감하고, 희생적인 네 군목 기념 ’포 채플린스(Four Chaplains)‘ 기념관, '4인의 불멸의 군목들' 기념 우표 발행. 1992년 작곡가 제임스 스웨어린젠(James Swearingen)이 ’영원한 빛(The Light Eternal)‘ 뮤지컬 제작, 큰 감동. 십자가에 죽음으로 사랑을 실천하신 J C의 모습, 바로 그 모습.
한국 최초 입국 선교사들 희생억.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Henry Gerhart Appenzeller 1858~1902) 배재학당과 정동교회 설립자. 성경 번역위해 많은 공헌. 그는 군산 앞바다에서 선박 사고로 순교. 성경번역 위한 회의참석 위해 제물포에서 배로 목포로 가다, 군산 앞 바다에 선박 충돌 본인은 살 수 있었는데 소녀 한 명 구하고 순교.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 같지만, 한 사람을 구원 사람이 많은 사람들 구원. 사춘기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G 원망 철 든 후 G의 뜻 이해 그 역시 이 땅 위해 헌신. 그가 노년에 신병 치료 차 한국 떠나며 유언. “내가 죽으면 미국에 묻지 말고. 꼭 한국에 묻어주오.” 그 유언대로 그는 지금 양화진에 묻혀 있다. 그 옆에 아버지 아펜젤러의 기념비가 서 있다.
남지연 선교사의 일화 남아공 외곽 빈민촌에 매일 새벽3시에 빵구워 노숙자들에게 제공. ‘마마 제인’ 남지연(Jane Nam)선교사는 세상에서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부와 명예를 누리는 삶을 추구했다.어릴 때부터 공부든 운동이든1등이었다.미 여자 프로 골프협회(LPGA)티칭프로 자격. 1995년 세계적 자동차 회사인GM의 한국 지사장다.삶의 전쟁터에서 남 부럽지 않게 승리,전 세계 명문 골프장 돌며 골프 치며 여생 보낼 계획2004년에 위암 진단 건강을 장담했던 자신이 한없이 불쌍하고 가소로웠다.불안 생사여탈권이 G께 있음 믿고 기도.위의75% 절제 G의 은혜로 치유. 도미니카공화국 선교사로 김현철 전 삼미그룹 회장 만났을 때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몸도 불편한 데 재벌 회장 지낸 분이 선교에 헌신 많은 생각.그녀도 G 부르실 때까지 선교사 헌신. 여행 가방 2개 소지품 소유 G께 드리고 선교지로 자녀들에게 자기 죽으면 유해 선교지에 묻어달라고 유언.선교지에 뼈 묻을 각오. X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삶. 희생 없는 사랑은 유희요, 헌신 없는 사랑은 소유욕의 가면.예의 없는 사랑은 집착, 자기만족의 사랑은 지배욕의 탈에 불과.참음 없는 사랑은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신기루에 불과 울타리 없는 사랑은 정욕에 불과 진리 벗어난 사랑은 쾌락에 불과 원칙 없는 사랑은 값싼 감정.이는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이 아니다.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 책 저자 다하라 요네코(1937년 5월 31일 도쿄 하치오지 출생 부유한 가정 어머니의 사랑 받고 자랐는데 18살 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녀는 깊은 절망감과 슬픔. 어느 날 달려오는 전차에 몸 던져 자살 기도. 병원에 눈 떴을 때 왼쪽 팔과 오른쪽 손가락 두 개가 없음에 충격, 다리는 있어 ‘이제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데 의사가 상반신 일으켜 보라 했을 때 그녀는 고꾸라졌다. 두 다리가 없다. 신체 중 남은 것은 오른쪽 팔과 오른쪽 팔에 붙은 세 손가락뿐. 짤막한 나무토막의 곁가지 하나 붙은 모습, 살 이유가 없었다. 그때부터 자살위한 갖은 방법 모색 세 손가락으로 자살 할 방법은 없었다. 그 무렵 병원에 맥클로이 선교사가 방문 신학생 타하라 아키도시가 통역위해 따라왔다. 그녀는 아키도시의 전도 받고 예수 영접 처지를 비관 죽기 위해 수면제 모았다. 그녀는 “더 이상 살 기력 없다. 난 손발이 없다. 이런 내가 발버둥쳐도 남에게 폐 끼칠 뿐 난 전혀 가능성 없다. 죽음 외에 방법 없다. G! 살아 계시다면 제발 날 도와주세요!” 기도하고 잠자다 껠 때 평안했다. 염려와 근심 없다. 성경 고후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X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 순간 오른팔에 붙은 세 손가락이 감사 감격 후 아키도시 통해 메시지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는 G께서 당신을 위한 계획이 분명해요.” 그녀는 없는 것에 집착 않고 있는 것에 감사하기 시작. 점차 내면은 아름답고 아름다움에 반해 아키도시가 청혼. 그녀는 결혼 두 딸 낳고 남편은 목사 작은 교회 섬긴다. 그녀는 평생 주님 사모하고 섬기며 이웃을 사랑 결심.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헌신과 섬김에 감동 예수 믿고 회심. 그녀는 G을 향해 “G, 제게 손가락이 세 개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겐 아무것도 없다고 여겨 그녀가 근심에서 벗어나 예수 만나 ‘세 개의 손가락’ 감사. 죽어가는 영혼, 깊은 좌절과 근심에 빠진 이들 구하는 G의 사람 되겠다고 기도. 일생 수기 제목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 150만 부 넘는 베스트셀러. 그녀 놀라운 기적 살아간다.
전덕기 목사는 민중 목회자로 일제에 항거한 민족 지도자. 그는 선교사들이 조선의 아이들 데려다 해부용이나 잡아먹는다는 영아 소동 사건 때 정동으로 달려가 군중들과 함께 선교사들에게 돌 던졌는데 자기가 던진 돌 맞고 화내기보다 미소 좋은 말하는 선교사들의 태도에 충격. 스크랜턴 교사 가정에 요리사로 들어가 병원 일 도우면서 가족들 관찰. 4년 동안 전 선교사에게 많은 감동. 스크랜턴 부인은 그를 배려 소외되지 않도록 한국말 사용을 보고 감동. 하인 신분 언제나 높임말 자상했고 같은 식탁에 앉도록 배려 스크랜턴 선교사에게도 감동 받고 스크랜턴 박사 하라는 대로 하겠다며 눈물 고백. 1896년 스크랜턴에게 세례 1905년 목사 안수. 한 알의 밀알, 온갖 억압과 핍박에도 X의 향기 선교사들 감동 사람들 열매.
옛날 영 웨일즈 남부 지방에 눈보라가 치던 날 한 여인이 길에 쓰러져 얼어 죽은 채 발견. 민망하게도 옷을 홀딱 벗은 모습. 그 옆에는 젖먹이 아이가 울고 있었다. 그 여인이 아이를 위해 옷을 다 벗어 덮고 자신은 얼어 죽음. 그 아이가 철 들자 양부모가 그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는 친부모로부터 받은 게 없지만, 사랑으로 훌륭한 신자. 그가 1차 세계대전 영 수상 역임한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1863~1945) 사랑의 밀알 자식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민찬기목사 제공)
첫댓글 왕 감사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수준 높은 설교 고맙습니다
언제나 격려해 주심에 감개무량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