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전공 3기
2010625127
배재현
나의 교육신조
나의 교육신조는 과연 무엇일까?
책을 한번 읽고 충분히 이해가 가지 않아 두 번, 세 번 읽으며 나의 교육신조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일단 신조(信條)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서 찾아봤다. 신조란 굳게 믿어 지키고 있는 생각을 뜻한다. 간단히 내가 갖고 있는 교육에 대한 믿음, 생각이라고 생각하도록 하겠다. 스펀지 같이 모든걸 무한히 흡수하는 10대와 이미 굳어버린 시멘트 같은 20대는 서로 많은 차이를 보이겠지만 2년 넘게 장교로 근무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성격이 변하는 경우는 딱 두가지라고 생각한다. 죽을 때가 됐거나 혹은 이렇게 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 말이다. 인간관계 중 종종 사용하는 말 중에 '변하면 죽는다' 나 '죽을 때가 변한다' 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는 나의 매우 편협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피교육자의 나이, 상태, 환경도 매우 다르겠거니와 교육을 수행하는 입장도 군대와 같은 특수한 곳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하긴 조직이 존재하는 목적 자체부터가 다르다. 학교는 목숨을 살리는 곳은 아니지만 목숨 만큼 중요한 개인의 인성을 살리는 곳이다. 허나 군대는 개인의 인성부터 목숨까지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우쳐 있던 내 생각은 잠시 걷어둔 채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방법론적인 글이라기 보다는 원론적인 신조가 전부였다. 하긴 생각해보면 교육철학이나 교육사도 결국 교육의 뿌리에 해당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은 과목과 잘 부합했다. 교육철학이라는 뿌리가 있어야 교수법과 같은 줄기가 뻗어나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았다. 그렇다면 나는 교육에 대한 뿌리가 확고하게 잡혀 있는지 말이다. 지난 날의 나를 돌이켜보면 내가 누군가를 가르쳤던 경험은 체대입시학원 강사로서 1년, 군대 교관으로서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전부였다. 이 때는 단순히 기술을 전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뿌리는 커녕 새싹, 떡잎도 없었던 시절이다. 입시학원 강사 생활을 할 때는 그저 형, 오빠로서 기록을 좀 더 단축시킬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는게 다였고 내게 배우는 학생들에 대한 인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에 대하는 나의 반응도 매우 제각기였다. 간단히 내 멋대로, 내 기분대로였다. 군대에서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그 때 역시 인성은 뒷전이었다. 수색하는 법, 매복하는 법, 총은 어떻게 쏘는지에서부터 여러 작전 요령까지. 아주 간단히 난 살인기술을 가르쳤다. 그리고 죽음을 피하는 법도 가르쳤다. 현재의 분단된 현실이 아니라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란 말인가! 이 과제를 작성하며 교육신조에 대한 여러 생각이 잠기다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우매한 사람이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나름 교육에 대한 경험이 남들보다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한발자국 물러난 곳에서 나 스스로를 되돌이켜 보니 나만큼 위험한 교육자는 없을거란 생각이 들며 내 생각도 사람의 성격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처럼 쉽게 고치기는 힘들겠지만 나 스스로의 상태를 알게 된 것 만으로도 이 과제의 큰 소득이라고 생각된다. 그럼 지금부터 책에 제시된 항목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비판을 해보고 내가 교육자로서 가져야 할 신조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1. 나는 이것을 믿는다. 즉, 모든 교육은 개인이 종족의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과정은 거의 출생시부터 무의식적으로 시작하여, 그후 계속적으로 개인의 힘을 가다듬고 의식을 채우며 습관을 형성하고 아이디어를 훈련하며 감정과 정서를 일깨워 준다. 이 무의식적 교육을 통하여 개인은 인간이 애써 모아 놓은 지적, 도덕적 자원을 점차로 공유하게 된다. 그는 문명이라는 합자 유산의 상속자가 된다. 이 세상의 가장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이라 하더라도 이 일반적인 과정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제도화된 교육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 과정을 특정한 방향으로 조직하고 세분화하는 것 뿐이다.
첫 번째 항목을 보면서부터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현재 휴전 중인 상태이므로 교육과정 상에서 공산주의에 대해서 가르치지 못하게 되어있다. 근데 가끔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보면 전교조 소속의 교사들이 현 체제를 비판하고 종북 또는 친북 성향의 수업을 했다는 기사가 실린다. 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물론 이미 냉전의 시대는 갔고 서방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교육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연히 학생들은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존재이기 때문에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종북 또는 친북적인 발언은 학생들에게 매우 위험하다. 단순히 북한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종북, 친북과 같이 조국의 주적을 찬양하는 식의 발언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조국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8. 나는 이것을 믿는다. 즉, 학교는 다른 무엇이기 이전에 하나의 사회적 기관이다. 교육이 사회적 과정인만큼, 학교는 당연히 사회생활의 한 형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학교는 아동으로 하여금 인류가 물려받은 자원을 공유하고 자기 자신의 힘을 사회적 목적에 사용하도록 양육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모든 사회기관들이 집결된 곳이다.
9. 그러므로 교육은 삶의 과정 그 자체이며, 장차의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다.
17. 현재의 교육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학교가 사회생활의 한 형태라는 이 근본적 원리를 무시한다는 데에 있다. 현재의 교육에서는 학교를 학생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곳, 공부를 가르쳐주는 곳, 습관을 형성해주는 곳으로 생각한다. 학교에서 습득되는 이런 것들의 가치는 주로 먼 장래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아동은 장차 다른 어떤 것을 하기 위하여 이런 것들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된다. 요컨대 그것은 단순한 준비인 것이다. 그 결과로, 이런 것들은 아동의 현재의 생활경험의 일부가 되지 못하고 따라서 진정한 교육이 되지 못한다.
22. 학교에서의 훈육은 사회생활 전체에서 나와야 하며, 직접 교사에게서 나와서는 안된다.
이번 내용은 내가 생각했을 때 지금 시점에서 보면 참 애매모호한 말들인 것 같다. 존 듀이는 진보주의 철학에 입각해서 이 글을 썼을 것이며 학교에서 현재의 생활경험의 일부가 되는 것들을 배워야 된다라는 식으로 글을 썼는데 이는 전형적인 진보주의 철학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이해했을 때는 미래의 수능이나 대학교 공부에 필요한 공부 보다는 현실에 필요한 예를 들면 사람은 의식주가 있어야 기본 생활이 영위되니 의식주에 대한 교육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이는 대안학교가 갖는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대안학교가 어떤 철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학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몇몇 대안학교에 관련된 책을 읽었을 때 그들은 기본 교육과정에 있는 과목을 공부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교육도 병행한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감자캐기, 가구만들기와 같이 현재 본인이 살고 있는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과목으로 지정하고 이를 배운다고 하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굳이 이걸 학교에서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미 세상은 고도화로 발달되어 굳이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수확하지 않아도 마우스 클릭만 몇 번 만으로도 제주도의 싱싱한 감귤을 집에서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그리고 온가족이 마루에 둘러앉아 맛있게 귤을 까먹을 수 있다. 현실에 정말 필요한 교육은 어떤 정보가 진실되고 가치가 있는 정보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정보는 지천에 깔려있지만 이를 정확히 분석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고등사고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은 귀찮지만 미적분을 공부하고 세계사를 공부한다. 존 듀이의 말대로라면 미적분이 무슨 소용이고 함수, 3차방정식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수능 수리과목에서 한 개 밖에 틀리지 않았지만 내 인생이 언제나 80점 만점에 77점의 인생은 아니었다! 단지 그러한 점수를 통해 대학에 무난히 들어왔고 언제나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수리 점수 잘맞았다고 돈계산을 잘하던 것도 아니었고 대부분의 수학공식은 이후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러한 것이야 말로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존 듀이 말대로 한다면 우리는 굳이 어려운 내용을 배울 필요가 없다. 산수, 수학이야 돈 셀 줄 알면 그만이고 영어는 배울 필요도 없지 않는가? 그리고 훈육이 사회생활 전체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도 참 애매모호하다. 물론 본인도 개인인 교사에게서 훈육이 나오면 안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런 점을 선을 딱 긋고 명확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인가 싶다. 물론 이 글도 마찬가지로 존 듀이 개인의 생각이지만 이런 부분은 조금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었으면 좋았을거란 생각을 해본다.
60. 나는 이것을 믿는다. 즉, 교육은 사회의 진보와 개혁의 근본적인 방법이다.
61. 단순히 법률을 제정한다든지, 형벌로 위협한다든지, 기계적인 또는 외적인 제도를 바꾸는 것에 의존하는 일체의 개혁은 순간적이고 비효과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62. 교육은 사회적 의식을 공유하게 되는 과정을 조정하는 일이며, 이 사회적 의식을 기초로 하여 개인의 활동을 조절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하게 확실한 사회재건의 방법이다.
이 말들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맞지 않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점에서는 의문이 가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사 자신이 맡은 학생을 한명 만이라도 올바른 길로 이끈다면 그 학생이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 다시 누군가를 자신이 받은 가르침대로 혹은 그 이상의 가치로 이끌 것이며 결국 사회는 조금씩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항목에 나온 교사 신조야 말로 가장 중요한 신조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단기간에 그 성과를 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본인은 성격이 매우 급하다는 것이다. 급한 성격을 뒤로 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기다림의 자세를 갖는다면 언
젠가는 교육의 성과를 지켜보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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