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3장 강해 의복에 발한 악성 문둥병(5): 성경=레13:47-49, 53-59.
1. 의복에 발한 문둥병(레13:47-59절)
레13:47-59- 만일 의복에 나병 색점이 발생하여 털옷에나 베옷에나 48. 베나 털의 날에나 씨에나 혹 가죽에나 가죽으로 만든 모든 것에 있으되
49. 그 의복에나 가죽에나 그 날에나 씨에나 가죽으로 만든 모든 것에 병색이 푸르거나 붉으면 이는 나병의 색점이라 제사장에게 보일 것이요
50. 제사장은 그 색점을 진찰하고 그것을 이레 동안 간직하였다가 51. 이레 만에 그 색점을 살필지니 그 색점이 그 의복의 날에나 씨에나 가죽에나 가죽으로 만든 것에 퍼졌으면 이는 악성 나병이라. 그것이 부정하므로
52. 그는 그 색점 있는 의복이나 털이나 베의 날이나 씨나 모든 가죽으로 만든 것을 불사를지니 이는 악성 나병인즉 그것을 불사를지니라.
53. 그러나 제사장이 보기에 그 색점이 그 의복의 날에나 씨에나 모든 가죽으로 만든 것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54. 제사장은 명령하여 그 색점 있는 것을 빨게 하고 또 이레 동안 간직하였다가
55. 그 빤 곳을 볼지니 그 색점의 빛이 변하지 아니하고 그 색점이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부정하니 너는 그것을 불사르라 이는 거죽에 있든지 속에 있든지 악성 나병이니라.
56. 빤 후에 제사장이 보기에 그 색점이 엷으면 그 의복에서나 가죽에서나 그 날에서나 씨에서나 그 색점을 찢어 버릴 것이요 57. 그 의복의 날에나 씨에나 가죽으로 만든 모든 것에 색점이 여전히 보이면 재발하는 것이니 너는 그 색점 있는 것을 불사를지니라.
58. 네가 빤 의복의 날에나 씨에나 가죽으로 만든 모든 것에 그 색점이 벗겨졌으면 그것을 다시 빨아야 정하리라. 59. 이는 털옷에나 베옷에나 그 날에나 씨에나 가죽으로 만든 모든 것에 발생한 나병 색점의 정하고 부정한 것을 진단하는 규례니라.
성도의 옷에 발한 문둥병에 관한 말씀들은 성도의 교회생활을 다루는 진리인데 이미 구속받은 성도의 외적인 생활, 일상적인 행동, 어떤 영을 가진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서 전염된 후에 그의 영적인 죄가 밖으로 나타난 것을 의미합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몸은 영혼의 옷이요 덮개이기 때문에 옷에 나타난 병이란 그 마음속의 모든 악한 것들이 그 몸으로 행한 죄들로 나타난 것을 의미하는데 본문에서 의복에 발한 문둥병을 다루는 것은 영적 더럽힘을 교회생활로 나타내는 것을 비유들로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1). 의복의 세 가지 종류.
(가). 털옷- 어떤 경우에 털옷은 에서와 같이 짐승같이 거칠고 무지한 행실로 나타나는 누구의 교회생활(신자의 삶-언행)을 의미하나 또 연약한 인간이 당해야 하는 추위를 견디게 해주는 따스한 덮개도 되므로 문장에 따라 양면 해석을 해야 합니다.
(나). 베옷- 온유하고 부드러운 언행으로 나타나는 교회생활(삶-언행)을 의미합니다.
(다). 가죽옷- 은혜를 받아 구속을 확실히 체험한 신자에게서 나오는 긍휼의 마음이 나타나는 교회생활의-언행을 의미하는데 아담 부부에게 무화과나무 잎 재료로 만든 치마를 대신하는 짐승 가죽으로 친히 덮개를 지어 입혀주신 말씀에 기인합니다.
가죽옷을 입혀주심을 받은 그는 언제나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마음 가죽을 베는 산 체험을 통해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외식의 치마를 벗기시고 완전한 가죽옷으로 입혀주신 하나님의 구속을 누리며 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믿어 이미 구속받은 성도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위엄과 인자를 함께 깨닫고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가되 교만하거나 높은 마음을 품지 말아서 끝까지 하나님의 인자에 의지하며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롬11:20-22).
라. 가죽으로 만든 물건- 유대인 사회는 짐승 가죽을 이용한 물건들이 많이 사용되는데 성막 덮개, 사람들이 야영 생활을 위한 천막, 가죽 부대 등은 필수용품이었으므로 무두장이가 많았고 바울과 동역한 아굴라의 직업이 천막을 만드는 업이었습니다(행18:3).
2). 성경에 나타나는 의복을 만든 옷감의 날줄과 씨줄
날줄이나 씨줄이라는 낱말은 원래 지구의 남북을 가상적으로 잇는 선을 경선(經線) 혹은 날줄이라 하고 지구의 적도 부분을 동서로 잇는 선을 위선(緯線) 혹은 씨줄이라 하는 데서 따온 용어입니다.
의복을 만드는 천을 직조할 때는 반드시 날줄 곧 경선(經線)을 먼저 늘여놓고 경선의 폭만큼 어떤 길이의 천을 만들기 위해서 위선 혹은 날줄로 차근차근 엮어서 짜야 합니다.
복음을 믿는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여기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형제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진리를 모르는 자들의 종교 생활을 따라서 실행하게 됩니다.
(가). 의복을 만든 천의 날줄
성경의 예표로 볼 때 성도들에게 입혀주신 새 옷을 지은 옷감의 날줄은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과 은혜로 구속받은 성도들의 양심과 마음 사이의 수직관계를 의미하므로 주님과 신자들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기본적으로 구속 곧 죄들의 사함을 받는다거나 정결케 된다는 용어들은 타락한 사람의 양심과 마음이 근본적으로 더럽고 부패하였기 때문에 복음을 들을 때 자신이 큰 죄인임을 깨닫고 선한 양심으로 거룩하고 정결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회개를 근거로 육신의 마음으로 행한 범죄들과 모든 인간적인 허물들을 용서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통회하는 영이 부어져 진솔하게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용서받아서 값없는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말하는데 복음을 마음에 믿을 때 어린양의 피를 양심에 뿌림을 받아 깨끗한 양심과 새로워진 마음이 되어 자신에 생명의 근원자인 신을 찾아 만나는 영적 체험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가장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과의 수직관계를 정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더러운 양심이 보배로운 피로 씻김을 받아 그 영이 소성(蘇醒)되어야 합니다.
구속받아 깨끗해진 영의 빛을 받아 소성된 마음에 진리의 말씀이 씨로 심어져 생명이신 주님을 만나 신의 생명을 부여받고 위로부터 심령이 새로 소성함을 받는 영적 출생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 후로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서로 상치됨이 없이 흐르는 물과 같이 영적으로 깨달아지기 시작하여 그 혼이 점점 온전케 되어서 더 깊고 높고 넓은 하늘들의 세계로 들려 올라(위로 이끌려 올라)가는 승천을 체험하게 마련입니다.
복음을 믿어 양심과 마음에 피 뿌림이 적용되어 영과 혼이 깨끗해진 사람의 속 부분들에 신의 생명을 부여받아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영적 생명이 성장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흔히 성화의 과정, 자라는 과정, 주의 집으로 세워져 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소위 말하는 성화의 과정을 성경의 표현대로는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함, 온전케 됨, 장성한 자로 자람 등등 여러 가지의 표현들을 사용하여 신성한 품성과 신성한 인격으로 높여지는 승천을 설명하시므로 어느 한 면만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은 너무 단편적일 수가 있습니다.
영적 생명이 자라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여러 가지의 요인들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큰 요인은 육신의 마음인 천성적인 인간의 자아와 부분적인 진리의 지식에 붙들리고 그 자리에 머무는 위험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생명이 어릴 때는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을 수밖에 없으므로 성경의 진리들을 오해하고도 그릇된 지식이 굳어지면 완악한 혼이 되어 완전한데 나아가는 진리의 도를 훼방(毁謗)하고 복음을 대적하는 자로 나타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가장 혼란을 일으키는 진리 중 하나는 마음으로 복음이 증거하는 참 이웃인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는 계시 된 믿음과 믿음으로 진리 안에서 행하는 문제의 상호관계입니다.
처음에 복음을 듣고 마음에 믿어서 영의 구원을 받으면 혼의 온전함을 이루고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완전한 구원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많은 경우 영의 구원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의 바탕인 혼의 구원이나 영적 생명을 표현하는 몸의 실행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영이 거듭난 후에는 반드시 성화의 과정인 혼의 구원을 이루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며 최종적인 믿음의 결국은 몸의 구속인 영의 몸으로 영광중에 나타나는 영화롭게 되는 마지막 단계의 구원입니다.
복음 진리를 마음에 믿어서 구원을 얻는 문제와 조문/의문에 따라 종교의식을 행하는 율법 행위에 의지하는 문제에 대한 분명한 구분이 없고 믿음으로 행하는 문제와 육체의 마음을 따라 (천성적인 사람의 육적 자아 즉 육신의 생각대로) 행하는 문제를 구분하지 못하면 믿음의 도가 훼방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분명한 진리의 분별이 없다는 뜻은 그의 양심과 마음을 씻음받지 못했으며 신의 생명을 부여받은 적이 없거나 영적 생명이 아주 어려서 진리의 지식을 얻은 것이 매우 부분적이면서도 문자대로 아는 성경지식에 사로잡혀서 그 영과 마음이 헛되이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딛1:14-16- .........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손할례당들인) 저희가 (육체의 마음을 따라 다른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히9:8-10-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현재 실현된 참 장막인 주 안에서 단번에 이루어진 참 제사에 대한) 비유니
이에(율법적인 성전 곧 모형적인 성소에서 짐승의 피로 드리던 제사에) 의지하여 드리는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섬기는 자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온전한 영과 정신의 사람으로 구원할 수 없나니)......
히9: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더욱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우리로 죽은 행실에서 떠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딤전1:19-20-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네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딛1:15-과 대비하라).-
딤전3:8-10-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
(라). 의복을 만든 옷감의 씨줄
성경의 예표로 볼 때 성도들의 새 옷을 만든 천의 씨줄(위선-緯線)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함께 구속받은 성도의 상호관계를 상징하는데 영적인 이웃의 관계인 형제 사랑의 교회생활을 실행할 때 좋은 품질의 새 천이 직조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를 나의 생명과 구원의 주로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수직관계를 바르게 정립해야 할 뿐 아니라 형제들과의 수평관계를 바르게 정립하여 진리 안에서 연락하고 상합해야만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집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면서 형제와의 관계를 소홀히 여기고 교회생활을 함부로 행할 때 그는 독선적인 바리새인의 거짓 신앙으로 변질되거나 당을 짓는 교리주의자로 타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고 분부하신 주님의 새 계명을 실현할 때 율법의 모든 요구가 인간 세상에 실현됩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믿은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은 당신의 생명을 바쳐 죽기까지 사랑하신 것인데 주님을 믿는 형제들이 서로 상대를 위하여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기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곧 형제를 위하여 나의 교만하고 완악한 자아를 죽음에 내주기까지 진리의 사랑으로 지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과 자비와 한없는 사랑으로 대하여 주신 것과 같이 값없는 은혜로 구속을 받은 형제들 사이가 진리와 성령의 사랑이 흐르는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교회생활을 하지 않고 율법 생활로 돌아가면 구속의 피 흘림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악한 자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히10:26-31).
율법의 가장 큰 강령(기둥)은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인데 신약에서는 아들의 영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혼 속에 모신 형제들이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서로 사랑하므로 두 강령으로 대표되는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는 것입니다(롬13:8-10, 갈5:13-14).
3). 의복에 푸르거나 불그스름한 병색이 발현되어 나타남(레13:49)
성도의 일상적인 교회생활 가운데서 자기만의 이론과 매우 인간적인 사람의 아집에서 나오는 선한 주장을 관철하고자 하는 육체의 야망에 사로잡혀 비정상적인 언행으로 형제들 사이를 이간시켜 멀어지게 하는 악행을 의미합니다.
옷에 발한 문둥병의 색깔이 푸르거나 붉다는 것은 그의 생명인 혈의 기운이 나타난다는 뜻으로서 색점이 붉으락 푸르락하는 상태는 그 사람의 영이 악의 영에게 완전히 점령된 상태를 밖으로 나타내는 것을 묘사한 말씀입니다.
본문에서는 악한 영이 발작을 일으켜서 영적으로 대적하느라고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의 영적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의 상태를 표현할 때 푸르거나 붉은 색깔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비유하였습니다.
다). 푸르거나 붉은 병색이 옷에 퍼지면 악성(惡性) 문둥병(레13:51, 55).
푸르거나 붉은 병색이 옷에 퍼진다는 뜻은 악한 영에게 점령당한 어떤 자의 악한 영이 다른 성도들에게 전염된다는 뜻인데 근본적으로 다른 영을 받은 사람에게 접촉되면 순진하고 어리석은 어린아이 신자들은 자기 나름의 판단을 하므로 쉽게 악의 영에게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진리의 지식을 구비하여 영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기까지는 악성 문둥병을 옮기는 자들과 진리의 영으로 양육하는 자들을 스스로 분별하여 어떤 말씀을 받고 어떤 말씀을 버릴 것을 확정하기가 어렵고 혹시 다른 영에게 미혹당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처음 신앙생활의 시작에서 어떤 영을 받느냐 또는 어떤 말씀이 그 마음 중심에 심어지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데 굳어지면 나중에 진리의 영으로 교정받기가 쉽지 않은데 신앙의 개종이란 그 사람의 하나님을 바꾸는 것이니 실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영적 가르침을 받을 때 사단의 영과 진리의 영을 분별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높아져서 쉽게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교만한 사람이냐 혹은 그 마음이 낮아졌고 겸손한 영으로 오직 죄인 된 사람들을 대할 때 주 예수께서 세리와 창기와 모든 죄인을 대하시듯이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냐를 따라 분별해야 합니다.
겉으로 볼 때는 매우 인간적이고 착하고 의로우며 좋은 사람일지라도 진리를 바르게 해석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영일 수 있고 그 영이 교만하고 그 마음은 하늘보다 더 높아져 있을 수도 있으므로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할 때 외모만 보고 함부로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의복에 발한 악성 문둥병을 다루는 문제는 머리와 수염에 발한 문둥병에 대한 진리의 연장선에 있는 말씀이므로 처음에 어떤 교훈을 받아 그 영이 더럽혀지고 마음이 교만해지면 결국 그가 믿는 교리대로 종교적인 권위 의식이 나타나는 발람과 니골라 당의 행위를 하게 마련임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종교적인 권위에 대한 야망이 충만한 사람은 겉으로 볼 때 너무도 겸손하고 지성적인 인간으로 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의복에 발한 문둥병을 악성 문둥병이라고 특별히 지적하신 뜻은 발람의 행위와 니골라 당의 행위는 악성 문둥병으로서 하나님의 경륜을 크게 훼방하며 교회를 심각하게 손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실행하며 마치 그들의 행위가 진리를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당연한 일을 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가르치기 때문에 어리고 약한 신자들은 무턱대고 어떤 사람의 교훈을 따라 그 사람에게 맹종하다가 함께 멸망의 구덩이에 빠집니다.
저런 자들에게 그 영이 더럽힘을 받으면 성도의 교회생활에 있어서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소극적인 말로 교회를 허물되 진리의 증인을 동역하는 신앙생활의 실행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영을 가진 훼방자로 발전하게 됩니다.
의복에 발한 문둥병 증세를 나타내는 사람은 동일한 은혜를 받은 형제들이 진리를 따라 성령안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한 몸을 건축하는 것을 훼방하는 등 자아를 처리 받지 못한 악한 본성이 점점 증가하여 문둥병 증세가 형제들의 눈에 확연히 드러나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둥병자가 입었던 옷을 불사름(레13:52)-
유1: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이미 구속받은 형제라도 교회생활 가운데서 악한 영에 접촉되어 영적으로 더럽혀진 후에 육으로 행한 모든 영적 악행들을 완전히 벗게 하고 육신의 생각을 소멸해서 다시는 육신의 죄와 영적인 죄에 떨어지지 말게 하고자 함입니다.
문둥병자의 옷을 불사르는 것은 전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으면서 교만해진 자가 악의 영에게 전염되어 교회 안에서 방자히 행하지 못하도록 소멸하는 불로 임하신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는 엄한 징계를 받아 육성의 아집과 교만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색점이 퍼지지 않은 의복을 빠는 것(레13:53-54)- 성도의 교회생활에 있어서 문둥병자와 접촉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진리의 말씀으로 그 영혼을 씻어내어 혹시라도 영적인 더럽힘이 교회의 누구에게도 전염되지 말게 하라는 뜻입니다.
교회생활을 실행하다 보면 순진하고 어리석은 여자들을 가만히 유인하여 문둥병을 옮기는 자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며 그들의 악한 행위를 쉽게 본받아 미혹 당하는 자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므로 문둥병의 악한 공기가 지나간 후에는 반드시 진리의 말씀으로 모든 성도의 영혼이 깨끗함을 받도록 각자의 옷을 말씀의 물로 빨아야 합니다.
악성 나병에 걸리지 않은 성도들의 옷을 빠는 것은 면역을 위한 자생력을 길러주는 문제이기 때문에 성도들의 옷을 빨 때 그들은 매우 분명하게 진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생기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일단 그 옷을 빤 후에 또 칠일 동안 푸르거나 붉은 색점이 있는 옷을 간직하고 살펴 본 후에도 그 색점의 빛이 변치 않았으면 근본적인 문둥병임(레13:55)
색점이 발견된 사람의 옷을 칠일 동안 간직하였다가 빨게 한 후 그 색점이 퍼지지 않았을지라도 다시 칠일을 더 살펴본 후에 그 색점 있던 자리를 살펴보아 그 색점이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라는 것은 사실 그의 근원적인 문둥병 증세가 빨아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을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옷을 빨고 칠 일이 지난 후에도 그 색점이 지워지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문둥병 증세를 치료하고 씻어내는 가르침을 사실은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않고 속으로는 자기의 이론과 교리를 여전히 굳게 붙잡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므로 그는 쉽게 치료할 수 없는 근원적인 악성 문둥병 환자라는 뜻입니다.
근원적인 악성 문둥병 환자의 경우 자기 이론과 자기 교리에 굳게 잡혀 있어서 그 누구에게도 가르침 받는 것을 사실은 거부하고 자기의 판단대로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은 부분적인 말씀들로 자기를 세우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그 사람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새 출발을 하려면 반드시 이미 받은 거짓 교리로 굳어진 관념들이 그의 내면에서 씻어져야 하고 견고한 진이 무너져야 하므로 육신의 마음으로 받은 다른 교훈으로 굳게 세워진 사람은 영의 새로운 것을 들을 때 푸르거나 붉은 색깔을 나타내며 대항하며 훼방하는 날이 반드시 이르게 됩니다.
근본적인 영적 교만의 뿌리가 싹을 낸 후에 점점 더 자라면 양심이 아주 화인을 맞게 되어 무뎌지므로 일반적인 회개나 자백만으로는 치유 될 수 없는 중한 상태로 병이 발전되어 새 살이 돋아서 영과 혼이 소성함을 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게 되는 것입니다(마18:15-17).
이런 자는 이방인과 같이 생각하고 진 밖으로 쫓아내야 하는데 사도들은 이런 자들을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고 기록하였으며 하나님의 엄위(嚴威)하신 징계의 손에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고 경계하였습니다(고전5:5, 과 딤전1:19-20-을 대조).
의복을 빤 후에 엷어진 색점을 찢어 버림(56절)
교회 안에서 함부로 행한 언행을 돌이킨 후에도 그의 양심을 살펴서 미심쩍거나 여전히 남은 낡은 관념이나 혼잡한 영적 지식으로 더러운 찌꺼기들을 성령의 불로 말미암는 십자가의 주관적인 체험을 통해서 완전히 처리하여 없애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악성 문둥병에 관한 것은 미심쩍은 것까지 분명하게 처리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스스로 머리가 되기를 좋아하는 악성 문둥병 환자의 경우는 방치하면 후에 교회에 큰 해악을 끼치게 되므로 철저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나 마지막 사사였던 사울도 그 자식들의 문제를 알면서도 엄히 바로잡아주지 못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에 미치니 결국은 노년에 감당할 수 없는 곤경을 당했는데 인생사들은 교회생활로 나타나는 표적이 됩니다.
교회를 해치는 악한 가르침에 점령당한 악성 문둥병자에게 그 영이 접촉되면 그의 병은 인간적인 죄와 허물에 비유될 수 없을 정도로 악한 영적 중병에 전염되므로 의심되는 부분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빨고 나서도 다시 확실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재발하여 다른 성도들에게 악한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병이 있는 색점을 찢어 버린 후에 의복에 다시 병이 재발한 경우도 있음(57절)
모든 형제는 교회생활에서 영이 더럽힘을 당한 자와 입을 맞추어 접촉한 경우 악한 영의 찌끼가 육체의 마음속에 남아 있으므로 늘 전염되었던 자의 미심쩍은 언행들을 살펴보고 불로 태우시는 성령의 역사를 주관적으로 체험하여 마음의 할례를 통해서 완벽하게 처리하도록 돕지 않으면 언제라도 재발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둥병의 치료는 오직 하나님의 엄한 손으로 주와 함께 매를 맞아야만 되는 것이며 주님께서 우리의 병을 고치시기 위해서 매를 맞았다는 사실을 교리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자기 자신이 주와 함께 연합하여 침 뱉음과 옷 벗김을 당하고 더러운 악인들의 손으로 치는 뺨을 맞으며 쇠갈고리 채찍으로 무자비하게 매를 맞아보지 않으면 완전하게 치료가 되지 않는 중병입니다.
주님께서 당하신 모든 고난이 인생의 주관적인 체험을 통해서 나의 것이 될 때만 근원적인 악성 문둥이였던 내가 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이제 후로는 새사람이 된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말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성도는 분명하게 구원을 받은 사람이요 이제 후로는 절대로 남의 죄와 허물들에 대하여 함부로 비방하거나 수군거리지 못할 것이며 진리와 성령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되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것과 같이 어떤 지체들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남의 혼을 불쌍히 여기는 진리의 사랑은 나병으로 인하여 주의 손으로 매질을 당해보지 않은 천연적인 사람에게서는 절대로 나올 수가 없고 여전히 문둥병 환자이면서도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은 자연스럽게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혹은 열심 당의 신앙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 병색이 제거(除去) 된 후에도 그 의복을 다시 빠는 것은(58절)?-
처음에 진리의 말씀을 믿어서 지난날의 모든 죄과들을 처리 받은 후에도 이 육신의 장막을 벗기까지는 계속하여 교회생활을 통해서 흐르는 맑은 물로 씻고 받은 말씀이 육신이 되는 불 시험의 산 체험을 통해서 혈과 육이 처리를 받아 온전함에 이르도록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단 문둥병에 전염되어 성령을 훼방하느라고 푸르거나 붉은 색점이 돋아났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또 다른 교훈을 가진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귀가 엷어서 즉시 또 넘어지고 그 사람에게 잡혀가는 일을 반복하여 유리(遊離)하는 별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그가 근본적으로 진리의 말씀 안에 있는 거룩한 물로 확실하게 씻지 않았거나 미심쩍은 것을 그 마음에서 분명하게 버리지 못하고 은근히 그 속에 갖고 있었다는 증거이며 씻는 말씀의 가르침을 실제로는 신뢰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