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없으면 유고 연방도 없다?!
§ 본 연재는 차후 진행될 RPG, “공산당 없으면 유고 연방도 없다?!“의 세계관을 정립하는 프리퀄입니다.
§ 본작의 연재예상일은 빠르면 11월 말, 늦어도 12월 중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 프리퀄의 연재빈도는 부정기이며, 연재예정일보다 프리퀄 완결이 늦어지더라도 본작 연재를 우선시합니다.
12. 아프리카의 뿔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압제를 물리치고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영도 아래 아프리카의 중심으로 올라선 에티오피아 제국은 1970년대 들어 급속도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1958년부터 무려 십수년을 끌었던 북부 지방의 가뭄, 여러 차례의 크고작은 유가 파동들, 서아프리카 대전쟁의 여파로 급증한 난민 등은 제국을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만들었죠. 1973년부터 이듬해인 1974년까지 이어진 경제붕괴 국면에서는 전 신민의 존경을 받‘던’ 셀라시에 황제 역시 버틸 수 없었고, 결국 이는 아만 미카엘 안돔 장군이 이끄는 임시군사행정위원회(데르그)의 쿠데타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왕가를 포함한) 대지주들에게서 토지를 몰수해 분배하고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를 입안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죠.
그렇게 차근차근 진행됐다면 좋았겠으나, 한 국가의 혼란은 이웃에게는 절호의 기회로 다가오는 법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 동부 오가덴 지역의 소말리인들을 자국의 품으로 끌어오고 싶었던 소말리아의 시아드 바레 정권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사실 내부 부족갈등과 여러 경제적 어려움들을 대소말리주의적 열망으로 억누르던 바레 대통령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겠지만요.
하일레 마리암 멩기스투의 극좌 쿠데타가 소련의 냉담한 반응으로 실패로 돌아간 1976년 봄, 소말리아는 에티오피아를 대대적으로 침공했습니다. 소련의 입장에서 아프리카의 뿔 지역은 지중해-인도양 수운을 틀어막을 절호의 요충지였고, 자기들끼리 마르크스주의니 개발우선주의니 왕정복고니 하며 유치한 병정놀이나 하던 에티오피아보다는 적어도 강군을 키워낼만한 저력을 가진 소말리아가 적절한 체스말로 보였을 터입니다. 소련,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등지에서 보낸 지원군이 속속들이 도착했고, 소말리아는 오가덴 지역을 넘어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의 지척까지 군사를 밀어넣으며 안돔 장군에게 항복을 강요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1976년 9월 4일, 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5개월만에 소말리아는 오가덴의 거대한 땅덩어리를 획득할 수 있었죠.
소말리아-에티오피아 간 카타니아 조약은 아프리카에서 ‘국경선 신성의 원칙’이란 휴짓조각에 불과하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서아프리카 대전쟁 이후 UN과 강대국들의 주도로 대륙 서편의 국경선이 완전히 재편된 상황에서, 그러한 일이 ‘특수한 예외’라는 전제가 무너져내린 것이었죠. 아프리카 곳곳에서 “대아프리카주의” 내지는 “민족발흥주의“가 완벽하게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근현대‘는 너무나 압축된 형태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13. 페르세폴리스
1978년 11월 9일, 주이란 미국 대사관에서 국무부로 보낸 전문에는 꽤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이른바 ‘백색혁명’을 주도하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이 항암치료 이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사실상 국정을 방기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정권이 곧 ‘끝장날’ 것이라는 이야기였죠. 주이란대사 윌리엄 설리번은 팔라비의 신변을 안전하게 인도받기 위해 주요 반대파인 시아 신정주의자 ‘전투적 성직자회’와 접근, 출구전략을 고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국무장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그리고 백악관 부수석 리처드 ‘딕’ 체니는 즉각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당시 이란의 수상은 샤푸르 바크티아르라는 인물로, 국무부와 백악관은 그를 ‘지나치게 성급한 인물’, ‘미국의 방향성에 맞지 않는 인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백악관은 국왕에게 안전한 망명을 조건으로 퇴위를 종용하고, 군부를 이용해 바크티아르 수상을 실각시킴과 동시에 군부, 전문관료, 온건파 성직자로 구성된 친미 거국행정내각을 구성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물론 호메이니의 경우 마치 인도의 간디와 같은 ‘정신적 지도자’로 세운다는 조건도 함께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계획은 ‘일단’ 멋지게 먹혀들었습니다. 소련이 좌익 투데(Tudeh)당을 통해 이런저런 공작을 시도하는 동안 미국은 테헤란에 특사를 파견해 호메이니의 측근 모하마드 베헤슈티와 사항을 조율했습니다. 또한 바크티아르를 내쫓고 친미 성향의 외무장관이던 카림 산자비를 새 총리로 세우는 데에도 성공했죠. 프랑스에 체류하던 호메이니의 귀국을 은밀하게 방해해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한하는 데까지 멋지게 성공한 미 국무부와 CIA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미국도, 프랑스도, 심지어 소련마저도 한 인간의 정서적 불안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퇴위 조건으로 바크티아르의 수상직 유지를 내걸었던 팔라비는 이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모사데그 총리를 끌어내렸을 때처럼, 자신의 비밀경찰(SAVAK)과 군부 내 최측근들을 이용해 ‘거국행정내각’을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이었죠. 작은 차이가 있다면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미국이나 영국을 비롯해 그 어떤 외부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지만, 극심한 우울증과 정서불안에 시달리던 샤에게 그건 사소한 불편에 불과했습니다.
미국이 고집쟁이 국왕을 가택연금하고 그의 아들을 강제로 옹립해 계획을 속행시키는 플랜-B를 만지작거리던 1979년 2월, 프랑스 내무부는 ”더 이상 호메이니를 붙잡아둘 명분이 없다“면서 그의 여권과 출국비자를 발급해주었습니다. 이로써 호메이니가 도착하기 전에 판을 깔아두어 그를 뒷방 늙은이로 만들려는 계획은 크게 틀어지게 되었죠. 더 큰 문제는 팔라비 국왕이 심복들을 동원해 백주대낮에 호메이니를 귀국장에서 암살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물론 팔라비 본인도 군부의 손에 암살당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거국행정내각은 그날로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이란은 내전의 불길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내전은 소련이 후원하는 투데당 좌익반군, 미국이 후원하는 이란 제국 구국군사위원회, 이슬람 혁명군의 삼파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남동부의 발루치스탄 해방전선, 북서부의 쿠르드 해방군, 그리고 투데당의 주력이자 사실상 소련의 직속병력이나 다름없는 아제리인 ‘민병대’의 존재까지 덧붙여져 이란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죠. 유가는 폭등하고, 세계 경제는 전후 최악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기초체력이 부족한 국가들이 그 타격을 온몸으로 껴안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였죠..
14. 경제 재앙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은 전임 민주당 매카시 행정부의 경제 실패와 외교 실패를 강력히 비판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포부 아래 집권했습니다. 특히 1973년의 금태환 정지선언으로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지고 미국이 동맹국들의 불신을 받게 된 사건에 대해서는 “경제적 재앙”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죠. 그러나 이란 내전으로 촉발된 유례없는 고유가 상황은 세계 경제에 불을 질러놓기 충분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오는 율례없는 상황 속에서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 정적들의 공격이 이어졌죠.
레이건에게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중동발 경제위기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은 쪽이 다름아닌 동구권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심지어 유고슬라비아까지 서구권과의 차관거래로 시장사회주의 산업개발에 힘쓰고 있는 상황에서 불경기가 닥치자 투자은행과 펀드들은 일제히 만기연장을 거부했고, 이는 그대로 동구권 국가들을 빚더미에앉게 만들었습니다. 그나마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던 소련은 어느정도 버티는 모양새였으나, 그들 역시 사정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레이건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곧바로 재무장관에 통화주의자 돈 리건을 임명하고 고강도 긴축에 나서는 한편 어떻게든 경제위기의 파장을 동구권으로 떠넘기기 위해 사력을 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럽공동체(EC)와 일본에게 환율조정을 종용하여 무역수지 개선을 꾀했고, 소위 ‘대항군 전략’을 채택해 소련에게 반하는 이들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방책을 취했죠. 그 수혜자는 이스라엘국의 이르군 반군부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정권과의 유착관계가 강하게 의심되는)아프리카의 대짐바브웨 연방 정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습니다.
소련의 포드고르니 총서기 역시 바보는 아니었기에 나름대로 이 상황에 대응하고자 했습니다. 2차 신경제정책 10년의 성과는 빈말이 아니기도 했고, 동구권은 어쨌든간에 소련이 먹여살려야 할 ‘식구’였으니 말입니다. 다만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포드고르니-코시긴-키릴렌코의 트로이카는 고령으로 인해 정력적인 활동이 어려웠고, 안드로포프나 체르넨코 등 중앙위원회의 다른 주요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점을 인식한 고위간부들은 그리고리 로마노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니콜라이 리즈코프, 빅토르 체브리코프, 예고르 리가초프 등 젊은 정치인들을 대거 등용해 서로 경쟁케 했습니다. 물론 이들이 추구하는 대내외 노선은 꽤나 차이가 있기에, 불과 얼마 뒤로 예정된 당대회에서 누가 후계자로 인정받게 될지가 앞으로의 행보를 좌우하게 된다는 사실은 자명했습니다.
아프리카의 대준동, 아랍민족주의의 성공, ’가지지 못한 자들의 연대‘ 움직임 등은 제3세계 운동에 무한한 잠재력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외부적 충격은 동서 양 진영으로 하여금 ’자기 나와바리‘만을 챙기게 만들었고, 그 사이에서 ’편을 정하지 못한‘ 이들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라도 편을 확실히 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지, 아니면 인고의 시간을 견뎌 화려한 부상을 노릴지는 그들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 Prelude, Fin.
@931117 내전은 개혁파가 이겼습니다. 핵은 내중문없 중국 내전처럼 서로 핵 쏘지 말자고 밀약을 맺어서 안썼고요.
@931117 그... 말하고 있던게 91년이랑은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돈이 곧 진리 ...그럼 지도자가 옐친인겁니까?
+ 아니 그게 아니라 내전중인데 핵이 고스란이 소련 전역에 안전하게 있을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중국 핵은 그렇다 쳐도
@dear0904 전 아예 모든 후보군 언급 했는데요 뭐.ㅋㅋㅋㅋ
@931117 옐친은 70년대에 술퍼마시다 간경화로 일찍 죽었고(...) 91년 현재 소련 지도자는 리즈코픕니다.
@돈이 곧 진리 실제 행적에서 크림 합병 지지했다는걸 보면 뭐 소련이 현실 푸틴의 러시아와 크게 달라질것도 없어보이는듯한...
그리고 내전이면 저기에 다른 독립 의향 국가들도 다 이탈할것 같은데...당장 체첸 반란 터지고 안그랬어요?
+ 찾아보니 국민투표 기준 반대국가들은 다 나간거네요.근데 그럼 얼마안가 통합전쟁...?
이번 RPG는 끼지 않고 쉬는게 나을까 고민 중입니다. 제 RPG 2부 구상도 존재하고.. (이번에는 참가신청을 캐릭터로 받는게 아니라 캐릭터들을 아예 골라서 받을 생각입니다.)
ㅋㅋㅋ... 쉴때는 쉬어야죠. 이게 참가 한번 하면 거의 한달? 한달 반이기도 하고... 저야 고민 거의 안하고 외주 주는데, 아닌 사람은 확실히 피로도가 높겠더라구요?
@dear0904 전 오히려 이렇게 할게 없는 상황이면 더 쉽게 미쳐버리는것 같은...그나마 요즘은 뭐 볼거나 할게 있으니 망정이지 그것도 별로라고 느끼는 상황 오면...
@931117 워커홀릭 성향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취미에 워커홀릭 붙이는게 맞는지는 몰라도 ㅋㅋ...
@dear0904 그냥 뻑하면 안좋은 기억이 떠올라지고 불안감에 휩싸이니 다른곳으로 풀게 필요한거죠.
다르게 말하면 요즘이 신기할정도로 풀거리가 그나마 좀 나는거라는거.
평소엔 80년 설정들 대충 짤라서 보여준거 보면 아시겠지만 그런걸로 풀정도...
사실 가나안 2부가 일찍 연재된다면 본작 연재를 미룰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정비해야 할 것도 많고 해서… ㅋㅋ
+ 골라서 받는다는게, 일단 캐릭터를 내면 심의 후 통과여부를 통보하는 형식일까요?
@E.E.샤츠슈나이더 어 유고 끝나면 저도 다시 진행에 도전해볼까 생각중이었는데... 주제는 이전과 전혀 다르고요.
아.... 저도 이때쯤에...생각해보니 매번 비슷하게 말했던것 같지만(..) 참여하기 힘든 때가 생겨서 고민해봐야겠다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저만 고민중인게 아니군요 ㄷㄷ
마침 어려워서 양심의 가책도 덜했는데요(..)
@E.E.샤츠슈나이더 그렇게 빨리 나올지는 모르겠네요 ㅋㅋ
+ 맞습니다
@렌지파일 저게... 자연 국경이라구요? 번역이 잘못 된건가?
@렌지파일 이… 이게 뭔가요… ㄷㄷ
시즌2 목표가 저거 다 수복(???)하는 건가요? ㅋㅋㅋ
@통장 저도 이후 일정을 받아봐야 대충 윤곽이 나오는 입장이라, 확정적으로 언제 시작할거다 하는 게 어렵긴 합니다. 결정되면 모두에게 알려드리겠지만… ㅋㅋㅋ
@E.E.샤츠슈나이더 아니면 ㅋㅋㅋ... 시즌 2 시작 시점에 저 상태로 전쟁중이고, 그거 수습 치는게 목표일수도 있고, 아님 종전 이후 영토가 저모냥이고 안정화 해야 할수도 있겠네요 ㅋㅋㅋ.
@dear0904 대가나안주의 ㄷㄷㄷ
차기작 후보군이었던 바이마르 독일 RPG 목표가 대강 저런 느낌이었는데 말이죠… ㅋㅋㅋㅋㅋㅋ
@E.E.샤츠슈나이더 엌ㅋㅋㅋㅋ.... 폴란드를 내륙국으로 만들고... 알자스-로트링겐을 되찾고...
@dear0904 ”소가나안의 낙원에서 사느니 대가나안의 진창에서 죽겠다!“
이 마인드를 기본으로 탑재해야 하는걸까요 ㄷㄷ
@dear0904 국경 모티프는 하슈모나이 왕조, 헤롯(헤로데)의 이스라엘과 고전시대 이스라엘왕국입니다..
@E.E.샤츠슈나이더 아니 심지어 그건 최소한 영토 뜯기고 나서 나온 말이기라도 하지, 이건 뺏어가고서 안 주겠다고 하는 마인드라 더 개새끼네요 ㅋㅋㅋ
@렌지파일 ... 고증은 있네요. 아니 이게 왜 고증이 있냐고(...)
@dear0904 “약속의 땅”의 ‘약속’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많이 달라지겠군요.
???: 누가 칼 들고 영토 달라고 협박함? 아ㅋㅋ 꼬우면 처신 잘했어야지 ㅋㅋ
@E.E.샤츠슈나이더 ??? : 이 언약은 피로써 쓰여졌으며, 피로써 쓰여질것입니다... 우리는 피로 이 언약을 지킬것입니다! 이런건가요? ㅋㅋㅋ...
@렌지파일 캐릭터 컷(…)의 기준이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면 더 기대가 되네요…
@dear0904 그것도 있겠네요. 저는 이런걸 생각했습니다 ㅋㅋ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11.07 21:13
@E.E.샤츠슈나이더 아 ㅋㅋㅋ 2000년동안 남의 땅을 빌려갔으면 돌려줘야지(?)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11.07 21:14
@dear0904 원래는 선한 역을 맡아볼까 했는데 피카레스크물이 되겠군요 ㅋㅋㅋ…
표트르처럼 다 떠나고 1인의 로동자로 돌아가겠다! 하지 않는 이상..?
대짐바브웨 연방
Federation of Great Zimbabwe
대짐바브웨 연방, 옛 명칭으로 ‘로디지아-니아살란드 연방’은 영연방 소속의 명목상 자치령이자 실질적 독립국입니다. 1960년 로이 웰렌스키(Roy Welensky) 경이 이끄는 로디지아 국민당(RNP)이 밸모럴 협정을 통해 연방의 존속과 자치령 지위 획득을 이끈 이래 연방은 백인 우위의 국가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1969년 영국의 윌슨 노동당 내각이 연방의 백인우위정책을 문제삼자 이언 스미스의 민족전선(NF)을 중심으로 독립 움직임이 일었으나, 웰렌스키는 ”1999년까지의 유예기간을 두자“는 런던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강경파를 억누를 수 있었습니다.
웰렌스키의 후임 아언 팰리(Ahrn Palley)는 점점 증가하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투쟁압력과 백인 강경파의 불만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합니다. ANC 짐바브웨 지부의 지도자 아벨 무조레와 주교와의 협상으로 ’다수 지배‘로의 점진적 이행을 약속하고 국명도 대짐바브웨 연방으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숙제는 쌓여 있습니다.
연방은 풍부한 자연자원과 발달된 농업, 영국 및 남아공의 지원에 힘입어 상당한 수준의 공업화를 달성할 수 있었으나, 그 수혜는 아직까지 주로 백인 지배층에게만 돌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1975년 팰리-반다 각서를 통해 국가자치자문회의(일명 ‘흑인 의회’)가 설치되고 흑인 관료들이 등용되는 등의 변화는 있었지만, 좌익 민족주의 성향의 ANC보다는 헤이스팅스 반다가 이끄는 반공주의 성향 짐바브웨-니아살란드 의회당(ZNCP)의 영향력이 훨씬 강한 상태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노골적인 흑백분리 정책으로 비난의 한가운데 서있는 와중에, 짐바브웨는 그들로부터 ‘약간은’ 비껴서 있습니다. 영국의 대처, 그리고 미국의 레이건은 70년대 후반부터 시행된 대항군 전략의 일환으로 짐바브웨의 (주로) 백인 병력을 사실상의 반공 용병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대가로 이들에게 공업원조를 제공중입니다.
이런 점만 본다면 짐바브웨의 앞날은 밝아보이나, 이들이 언제까지 ‘시대적 모순’을 무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다수 지배, 즉 다수인종인 흑인들에게 주도권을 돌려주는 일은 지금 당장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권리를 돌려받은 이들이 (1960-70년대의 이주장려정책으로 불어난) 백인들을 어떻게 다루게 될까요? 백인들은 그 공포를 억누르고 흑인들을 신뢰하여 권력을 이양할 수 있을까요?
허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누구도 옳은 일을 하려 나서지 않는다면, 피비린내나는 유혈 혁명이 그들의 문간을 두드릴 것입니다.
이나라는 무조건 멸망시키고 싶은 심정이군요...
1980년, 아프리카…
저 서아프리카 합중국은 혹시 상카라 각한가요?
@돈이 곧 진리 위치상 아닌듯
@돈이 곧 진리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펠릭스 우부에푸아니 등이 주요 지도자로 있는 친프랑스 국가독점자본주의(즉 반공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아래 아프리카 소련(…)이 은크루마 등의 유지를 이은 진퉁 공산국가입니다.
@E.E.샤츠슈나이더 샹카라라고 보기엔 위치상으로 보이는 국호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샹카라라면 사회주의 성향일텐데 아래에 버젓이 공산국가가 따로 있으니 아닐거라 봤는데 역시나
@E.E.샤츠슈나이더 부르키나파소가 있어서 상카라 각하께서 여기서도 꿈을 이루신 줄 알았더니...
@돈이 곧 진리 만약 상카라였다면 굳이 아래에 따로 사회주의 공화국이 들어섰을리가 없었으니까요.
따로 있다는건 둘이 서로 다른 이념이라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