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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제8장 일생일대사건과 기약 없는 뉴욕(2)
4. 정신없이 지나간 뉴욕의 첫 주일
“중령출신인데 여기 오기 전까지 정보부에 근무했어! 월남에서 그 양반이 대대장할 때 내가 부관으로 있었지!”
버터 롤 한 개를 먹어치운 매니저아저씨는 양이 차지 않은지 크림치즈가 듬뿍 발린 베이글(Bagel)을 씹으며 말했다.
‘정보부? 이거 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하네!’
유학생정도로 알고 있을 그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난 말이야! 대위로 전역하구 지상사직원으로 파견을 나왔다가 저 양반을 만나 그냥 눌러앉았지!”
푸념하듯 한숨을 내쉬며 그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미스터 김! 슬슬 쉬어가면서 일 좀 해! 옆에 있는 나까지 못살겠다! 정말!”
내가 오기 전까지는 주인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느긋하게 일했는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걸 보고는 슬슬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손님이 물건을 찾을라치면 나는 일하다 멈추고는 재빨리 뛰어나갔다.
계산대 앞에 서서 마치 하인을 부리듯 이것저것을 주문하는 손님들도 있기 때문이다.
고급동네라서 그런지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와 영국신사처럼 보이는 노인들이 많았다.
때로는 필요한 야채과일을 적은 메모지를 건네주는 손님도 있다.
그럴 때면 대신 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보듯 계산까지 해서 봉투에다 담아 주어야한다.
그런 손님은 으레 내 몫으로 알아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아저씨는 움직일 생각조차 없다.
대부분의 동네손님은 조그만 야채 한두 개와 과일도 몇 개만 고른다.
그날그날 먹을 신선한 것만 사가는 지 매일처럼 들린다.
보모나 식모들이 조금씩 사가기도 하지만, 배달만해도 하루에 스무 건이 넘었다.
쇼핑카트에 야채과일봉투를 가득 담고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배달을 다녀야 한다.
보통 서너 군데가 되면 한꺼번에 돌아오지만 고객의 성화에 서둘러 갖다 주어야 할 곳도 생긴다.
멀어야 네 블록정도거리지만 때로는 열 블록이상 한참을 걸어야 하는 곳도 있다.
아저씨는 아무리 바쁜 중에도 배달만 생기면 잽싸게 쇼핑카트를 끌고 튀었다.
처음에는 왜 그런가했는데 알고 보니 꽤 짭짤한 팁이 있었다.
그는 주소만 보고도 팁이 얼마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배달이 나오면 서울에 두고 온 가족에게 매달 돈을 부치는 그에게 일부러 양보했다.
“아저씨! 배달가야 되는데요!”
배달 한 곳이 들어왔음에도 그는 못들은 척하고 있다.
빨리 갖다 주어야 할 것 같아 씻고 있던 시금치를 그대로 놓아둔 채 주소를 찾아 나섰다.
무려 열 블록이나 걸어 십층 아파트까지 올라가는 곳이었다.
“하우 캄 유 쏘 레이트, 가드!”(How come you so late, God!)
달려오느라 땀에 젖은 나에게 눈알을 우로 굴리며 버럭 신경질부터 내었다.
속이 훤히 비치는 옷매무새의 젊은 백인여인은 쿼터동전 한 개를 적선하듯 나에게 던져주었다.
배달 팁은 아무리 가까워도 최소한 일 달러에서 많게는 오 달러까지 주는 고급동네다.
강변고급아파트에 사는 그녀는 언제나 쿼터동전 한 닢이었다.
야채배달트럭은 매일오전 열한시경이면 어김없이 가게로 도착한다.
핸드트럭으로 무거운 수박(Watermelon)과 켄탈로우프(Cantaloupe)나 허니두(Honey Dew) 같은 멜론종류
수십 박스를 냉장고에 먼저 들여놓은 다음 채소과일 백 여 박스를 순서대로 옮긴다.
다듬어야 할 야채박스를 손쉽게 꺼내기 위해 넣기 전에 미리 자리를 염두에 두어야한다.
배달트럭이 왔다간 다음에도 때때로 주인아저씨가 밴 트럭에 따로 물건을 실어올 때가 있다.
졸면서 출근한 서브웨이는 돌아오는 길에도 저절로 눈이 감겼다.
최소한 아침 여섯시 삼십분에는 일어나야 했다.
브루클린에서 지하철로 두 번이나 갈아타야하는 맨해튼가게까지 한 시간이상 걸렸다.
오후 여덟시에 문을 닫지만 정리하다 보면 삼십분이 훌쩍 가버린다.
그대로 돌아와서 씻고 어영부영하다보면 금세 열한시가 되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텔레비전을 잠깐 보다가 그대로 소파에 고꾸라져 버리기 십상이다.
또 감긴 눈으로 대충 샤워만 하고는 서브웨이로 달리는 다람쥐쳇바퀴 돌듯 피곤한 일상이었다.
그런 한주가 어느 새 후딱 지나가 버렸다.
일주일에 한번 쉬는 화요일이라 뉴욕시내구경을 나섰다.
사촌동생을 따라 촌놈오빠가 들뜬 마음에 따라 나선 꼴이다.
“오빠는 디자인 전공했으니까 미국잡지 같은데서 뉴욕사진 많이 봤잖아! 뭐 대충 그런 곳이야! 특별히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말해봐! 안내해 줄께!”
어렸을 적 업어주기도 했던 사촌동생은 벌써 시집갈 처녀가 다 되어 있었다.
남산방송국드라마센터까지 오르막길을 업고 올라갔던 기억이 엊그제만 같았다.
텔레비전방송국성우들의 드라마 음성더빙을 담당하던 외삼촌작업실이 방송국 옆에 있었다.
“말보로 킹 싸이즈! 플리이즈!”(Marlboro King size, please!)
길거리에서 담배 사는 것까지 동생더러 시킬 수 없어 큰소리로 외쳤다.
담뱃가게주인이 레귤러를 주었다.
“노! 노! 킹 싸이즈!”(No! No! King size!)
나는 가게주인에게 되돌려주면서 약간 소릴 높였다.
“뎃츠 킹 싸이즈! 맨!”(That's King size! Man!)
가게주인이 귀찮은 듯 다시 좌판에다 담배를 던졌다.
‘누굴 놀리나, 저기 큰 게 있는데, 왜 자꾸 이걸 주는 거야’
약간 약이 오른 나는 가게주인을 노려보며 다시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김미! 말-보-로-킹! 킹! 싸이즈! 오브 데어! 유노우!”(Gimme! Marl-bo-ro- King! King! size! Over there! You know!)
이번에는 신경질을 내며 각종담배가 꽂혀진 진열대를 손가락질로 가리켰다.
가게주인은 맛이 간 녀석인가 하는 투로 나를 한심하게 째려보았다.
“히 원츠 어 헌드래드! 영 맨!”(He wants a hundred! Youngman!)
옆에서 신문을 뒤적거리던 백인노인이 가게주인에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큰 것은 무조건 킹사이즈로만 알았던 나는 보통을 그렇게 부르고 기다란 것은 십 센티라 헌드래드라고 부르는 것을 몰랐다.
얼마 후에 킹사이즈로 주문한 침대를 퀸 사이즈로 바꾸어 반품한 적이 있었다.
“미스터 김! 저 강변도로가 왜 FDR 인지 알아? 저게 화이어 디파트먼트 로드(Fire Department Road)의 약자야!”
미국에 온지 일 년이 된 부관아저씨는 가게 한 블록건너 허드슨동쪽강변 고속도로를 소방도로인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대통령의 이름을 약자로 표기한 것이었다.
국내선 라가디아공항도 동물이름을 딴 것 같아 한동안 뭔지 몰랐는데 전직뉴욕시장 이름이었다.
미국대도시 주요도로와 특정지역은 유명인사의 명칭을 따다 붙인 곳이 많다.
이를테면 세종로 을지로 하는 식으로 거리명칭이나 문화예술장소는 역사인물을 명명하여 기리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시골과 마찬가지로 힐싸이드(Hillside, 고갯마루)나 써니싸이드(Sunnyside, 양지골)처럼 단순하게 붙여진 동네이름에다 지역특징을 살려 베어마운틴(곰산, Beat Mountain)이나 화이트스톤(백석, Whitestone)으로 부르는 지명도 있다.
5. 사촌동생과 뉴욕시내구경을 나서고
나는 사촌동생을 따라 맨해튼중심가 이곳저곳을 하루 온종일 돌아다녔다.
미국자연사박물관(아메리칸 내추럴 히스토리 뮤지엄, American Natural History Museum)을 둘러보며 거대한 공룡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인디언의 생활모습이 모형으로 꾸며진 곳과 너른 벌판의 센트럴파크(Central Park) 스케이트장을 배경으로 포즈까지 잡았다.
말똥냄새가 진동하는 센트럴파크입구에서 마차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오빠 핏짜(Pizza) 먹을래?”
약간 출출했던 참이었다.
“핏짜가 뭐야?”
“오빠 피자 몰라? 맛있는 건데 사가지구 걸어가면서 먹자!”
처음 보는 나는 허옇고 멀건데다 불그죽죽한 게 징그럽게 보였다.
“이거 뭐 가죽껍질같이 생겼잖아!”
피자라는 걸 명동 구디구디 스탠드바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그런 것과는 다르게 생겨 길거리에서 들고 먹기는 처음이었다.
“어! 생긴 것 하구 다른 게 짭짤하고 맛있네!”
이름 모를 동상 앞을 지나 메트로폴리탄오페라하우스가 있는 링컨센터와 줄리아드음악학교를 돌아보았다.
다시 브로드웨이를 따라 수년 동안 같은 프로공연만하는 뮤지컬극장가를 지나쳤다.
휘황찬란한 네온이 사방천지에서 오르락내리락 번쩍거리는 사십이 번가 타임스퀘어에 섰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두리번거리는데 사촌동생이 물었다.
“오빠! 영화보고 싶어?”
양쪽 길가에 각종영화포스터가 즐비하게 붙은 수십 개의 영화관이 줄지어 늘어서있다.
“그래! 하나 보자! 아무거나!”
처음 가보는 극장에는 낮이라서 그런 지 관객이 별로 없어도 영화는 끊임없이 상영되고 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영화화면에서 갑자기 벌거벗은 여성들이 튀어나왔다.
다음부터 특별한 의미도 없이 그들의 성기가 적나라하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영화관에는 세 군데 입구마다 각기 다른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제목도 보지 않고 무작정 들어온 곳이 하필이면 아무 스토리도 없는 섹스영화였다.
내용이란 게 오직 주요부위가 클로즈업되거나 남녀가 동물처럼 뒤엉킨 성행위장면일색뿐이다.
저만치서 멀쩡한 백인노인이 화면에 빠져 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아랫도리를 꺼내 잡아 흔들고 있다.
사촌여동생이 있어 민망했지만 이런 영화는 처음이라 은근슬쩍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오빠! 더 볼 거야? 그만 나가자!”
참다못한 그녀가 일어서서 소리를 질렀다.
“그래! 영화 잘못 골랐다!”
다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사촌동생이 다니는 학교까지 걸었다.
패션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 다니는 그녀가 오후수업시간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강의실에 함께 들어간 그녀가 지도교수를 소개시켜 주었다.
“저희 외사촌오빠 미스터 김이에요! 한국에서 미술학교를 나와 얼마 전에 왔어요!”(This is my Nephew Mr. Kim! He was graduated from Art School at Korea, and just came to few days ago!)
“하아유 두잉 미스터 킴! 아이 엠 허버트! 디스 클래스 윌 비 실크스크린프린팅 테크니컬 프렉티스 쎄쎤, 우듀 라이크 투 조인 아스, 이프 유 돈 마인드?“(How are you doing Mr. Kim, I am Herbert! This class will be Silk Screen Printing technical practice session, Would you like to join us, if you don't mind?)
핸섬하게 생긴 사십대 교수가 실크스크린실습시간에 함께 있어도 좋다고 했다.
그놈의 실크스크린 때문에 기획사무실이 문을 닫게 되었던 게 새삼 떠올라 우울해졌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의 실습시간 덕분에 오히려 인쇄기술과 잉크재질에 약간의 지식을 보태게 되었다.
암실에서 세밀한 실크망사 틀에 유약을 발라 드라이어로 말린 다음 흑백필름을 밀착시켜 형광판에다 전사시킨 후 스프레이 물로 쏘아 씻어낸다.
디자인된 부위가 벗겨져나가 드라이어로 말리면 실크스크린 판이 완성되는 것이다.
실크스크린 틀을 암실에서 들고 나온 교수가 학생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먼저 시범을 보였다.
그가 하얀 티셔츠에다 실크 판을 올려놓고는 잉크를 부어 고무스퀴즈(Rubber Squeezer)로 짜내듯 밀었다.
전사로 뚫려진 망사틈새로 잉크가 배어나와 도안된 모양그대로 찍혀졌다.
학생들이 제각기 준비해 온 하얀 티셔츠와 실크스크린 판으로 실습이 시작됐다.
인쇄가 제대로 먹혀들 리 없어 몇 학생의 티셔츠가 못 쓰게 되어버렸다.
실크스크린 핸드프린팅(Hand Printing)은 스퀴즈로 미는 게 숙달되어야 인쇄를 제대로 할 수 있다.
아무나 하루 이틀사이에 할 수 없는 손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교수가 한번 밀어보겠느냐고 스퀴즈를 내게 내밀었다.
몇 학생의 티셔츠를 받은 내가 능숙한 솜씨로 멋진 프린트를 뽑아내자 모두들 놀라워했다.
나는 진영이가 가르쳐주어 수십 장의 매끈한 종이에 정교한 디자인을 샘플인쇄해본 적이 있었다.
티셔츠 따위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졸지에 나는 숙달된 시범조교가 되어 학생들에게 둘러싸였다.
한 학생이 가져온 판으로 빨간 애플모양에 아이 러브 뉴욕(I love New York)글자가 하얀 티셔츠에 멋지게 새겨졌다.
학생들이 감탄하며 제각기 스퀴지를 들고 나를 따라 열심히 밀어대기 시작했다.
여간 익숙하지 않고는 선명하게 밀어낼 수가 없어 그들은 애꿎은 티셔츠만 계속 망쳐놓았다.
스퀴즈는 약간 눕혀서 적당한 잉크로 부드럽게 덮어 누르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수업이 끝난 다음 그녀는 멋진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자면서 그리니치빌리지로 나를 데리고 갔다.
“오 헨리가 이 카페에 자주 들렀대!”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는 휘가로카페에서 파스타와 샐러드를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오빠! 팝(Pop)이나 롹 뮤직(Rock Music) 좋아해?”
장발의 나뿐만 아니라 모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생음악카페가 근처에 여러 군데 있었다.
6. 금발의 스카이블루아이 유학생
백 펜스(Back Fence)라는 라이브카페(Live Cafe)에 들어갔다.
통기타와 드럼의 자그마한 무대에서 아마추어 팝 싱어들이 생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삼십 여명이면 꽉 들어찰 스탠드바주위로 생맥주잔을 든 남녀학생들이 밀착될 만큼 북적거렸다.
대여섯 남짓한 무대 앞 테이블은 서서 마시는 것보다 값이 비싸 그런지 비어있었다.
“장장장장 장자장자장장! 썸 원 톨 미 롱 어고우!”(Someone told me long ago!)
귀에 익은 록그룹 씨씨알(CCR)의‘헤브 유 에버 씬 더 레인’(Have you ever seen the rain)을 이름 없는 가수가 너무나 멋지게 불러 내가 듣기에도 오리지널 버전처럼 들렸다.
“아 원 노우 헤브 유 에버 씬 더 레인!”(I want know have you ever seen the rain!)
후렴에서는 모두들 합창으로 열을 올리는 바람에 나도 따라 불렀다.
“오빠! 이 노래 알아? 옛날 노랜데?”
그녀는 이곳으로 나를 데려오기 잘했다는 표정이다.
“웬만한 팝송은 대충 부를 줄 알지! 야! 나 미국 들어올 때도 노래한곡 부르고 들어왔어! 쪽 팔리게!"
"어이쿠, 아이 엠 쏘리!”
흥에 겨워 잔을 쳐들다 그만 곁에 붙어선 아가씨의 가슴께에다 맥주를 쏟아버렸다.
“아이 엠 쏘리! 쏘리!”
그녀의 셔츠단추가 풀려져 드러난 가슴으로 맥주가 흘러들어간 모양이다.
그렇다고 닦아줄 수도 없어 당황한 나는 거듭 쏘리만 연발하며 어쩔 줄 몰라 할 뿐이다.
“잇츠 오케이! 잇츠 파인! 네버 마인!”(Its OK! It's fine! Never mind!)
그녀는 너무 미안해하는 것을 나를 보고는 괜찮다면서 미소를 지으며 냅킨으로 닦아내었다.
오히려 그녀가 얼굴이 붉어지며 더욱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아 순진하게 보였다.
번쩍이는 금발에다 이글거리는 스카이블루의 눈동자가 신비스럽게 보였다.
“너! 저 여자한테 미안하다고 하면서 오빠가 한잔 사겠다고 해봐!”
어이없어 할 사촌동생은 아랑곳없이 나도 몰래 서슴없이 튀어나왔다.
“오빠! 웃긴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 말 시키라고 하고!”
약간 눈을 흘기던 동생이 무어라 말을 건넸는지 비어 있는 무대 앞자리에 그녀와 함께 앉게 되었다.
대충 이것저것을 물어보다 막히면 중간에서 사촌동생이 통역을 해주었다.
촛불이 하늘거리는 테이블에서 빨려들 것 같은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보면서 나는 황홀하기만 했다.
자그마한 무대에서 무명가수가 사이먼과 가픈걸의 복서(Boxer)를 부르면서 수준 높은 통기타솜씨로 은은하게 연주하고 있다.
프랑스소르본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그녀는 이름이 니꼴(Nicolle)이며 뉴욕대학원 유학생이다.
“소르본느? 어디서 많이 듣던 유명한 대학이름인데? 니클이라니 이름이 오 센트 동전이야!”
그녀를 주시하며 내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촌동생이 동시통역을 했다.
“오빠! 니클이 아니고 니꼴이래! 그리고 소르본은 특정대학이 아니라 국립대학을 그렇게 부른대!”
고교시절 제이외국어로 불어점수가 좋았던 데다 대학에서도 불어강의를 들었음에도 나는 단어나 떠듬거릴 뿐 그녀와의 대화자체가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어쨌든 사촌동생덕분에 그녀와 다음주일에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이 되었다.
약속장소는 그녀가 가르쳐 준 기숙사로 내가 전화해 주기로 했다.
물론 사촌동생도 함께 만나기로 했다.
“오빠! 당구 칠 줄 알아? 당구장에 한번 가볼래? 테이블포켓에다 공을 집어넣은 건데 재미있어!”<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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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뻐서 이제서야 읽어 봅니다......
제발 이번에는 금발의 스카이블루아이 님과 잘 되시기를 바라며.............다음편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