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 하늘보기 외 7편
백영희
모슬포와 마라도의 바다 속에 앉았다
잠수함 기계소리에 놀라
바다는 고기를 데리고
더 먼 바다로 잠수했다
텅 빈 바다의 창에 얼굴을 붙이며
물속에서 하늘을 본다
눈부시다
햇살이 파도에 부딪쳐
꽃망울을 터트리는 빛의 살결들
엉덩이를 흔들며 춤추눈 푸른 몸짓들
바람이 주물러 일곱 색의 햇살가지로
꽃동산을 만드는 시간
뇌의 주파수는 가지를 뻗으며
턱 뼈를 고정 시켰다
아아, 바다가 하늘을 삼키는 신음소리를
몸속에서 듣는다
그날 이후
날마다 물속에서 하늘을 본다
칠전도에서
칠전도 순환도로에 앉은 동백꽃
추위에 붉은 빛 숨기며
잎들 긴 한숨이다
무료함에 굴을 따는 칼은
바다를 깎고
파도를 삼키는 자유로움에
금빛 고요가 목이 매인다
둔덕의 청마생가, 연구포의 노을
갈비뼈 안쪽에
집을 지은 조각들이
여자의 가슴을 열어
겹겹이 싹을 틔우고 있다
섬은 꼬불꼬불 모래밭과
마을을 숨기고
삼월의 바람은 가슴을 뚫었다
바다가 끌고 온 인연의 색은 붉다
동백꽃이 아프다
새벽에 하얀 꽃 세상을 점령하다
동백꽃 투명의 눈빛 꺼낸 순간
얼음의 지문이 박혀
동박새 울음들 널려있다
눈꽃에 붉은 몸 숨기며
온몸으로 퍼 올리는 봄의 기운
눈을 감고 뒤꿈치를 높여 숨을 멈춘다
하얀 마음의 달콤한 말에
바다가 뒤엉킨 바람과 햇살가지들
열정의 손짓 보내고 있다
안으로 웅크린 동백꽃
바다 냄새에 몸을 기대며
삼월의 아픈 마음에 겹겹이 쌓인다
이화원
빗물에 벽 속의 여자가
소리 없이 웃고 있다
꽃이 핀 긴 낭하를 걸으며
꽃밭에 앉는다
꽃 속에 추락하는 남정네의 비명소리
순간에 얼어붙은 발자국
널려있는 욕망들, 동굴에 갇힌다
멍울의 몸뚱이를 가진 여자
열정과 권력이 세상의 독설에 부서진다
그림자들 웅성거리는 소리
햇빛에 말려 가방에 밀어 넣었다
벽에 만개한 꽃들
여자의 가슴에 줄줄이 피어
황후의 미소가
입가에 따라와 꽃의 향기가 된다
갯벌이 땅으로 서다
새만금 갯벌의 해설피에
계화산을 배경으로
흑두루미 다서 마리 날아간다
청태가 갯벌을 덮었고
동진강의 담수가 염도를 낮추어 엎드렸다
잔잔한 파도와 노을아래
먹이 사슬의 끝마디인
좁쌀 무늬고동의 수관이 바쁘게 움직이며
살찐 백합은 푸른 녹조에 자리를 주고
생명의 발자국소리 멀어져
갯벌은 땅으로 서서 떨고 있다
흙의 뿌리로 막힌
슬픈 이야기는 바다에 떠 있다
보름달을 건지다
윤칠월 백중사리 물때에
달을 건지려 일광 바다에 섰다
수평선의 구름 떼가
보름달을 삼켜
하늘과 바다는 어두웠다
발목에 부딪치는 파도
모래가 묻은 손
계수나무 잎이 달빛에 젖기 전
달을 삼킨 구름이 월계관을 만들었다
돌아오는 길의 오륜대
물고기는 등을 달빛에 말리고
불덩이 가슴에 타 올라
여자는 온몸으로
투망을 던져
뚝뚝 흐르는 달을 건졌다
전화
첫사랑이었다는 말에 전화를 끊었다
누군가의 가슴에 간절함으로 남은
기억을 뒤지다
눈을 감으니 희뿌연 줄무늬다
한번도 불지 않은 남풍에
베란다 문을 열었다
잡초 사이에 풀꽃이 보이며
바람에 따스한 햇살이 내린다
바닷가의 파도소리에
신열이 들떠 풍덩 손을 담가
시골국수를 건진다, 젓가락도 없이
벌거숭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파도가 다 들려준다, 파랗게 더 파랗게
울퉁불퉁한 창틀에 먼지를 닦으며
행여 남풍이 보일까
유리창을 닦는다
송도 앞바다
하얀 벽의 암 병동
1013호, 낮게
세상의 흐느낌보다 더 낮게
엄마의 가슴에
눈물의 바다가 길을 열었다
송도 앞바다의 깊은 밤
솟아오르는 힘의 빛을 바다에 뿌려
밤배는 별꽃으로 만발했다
병동에 이어진
하늘과 바다는 꽃밭이 되고
엄마의 가슴에는 나팔꽃을 심었다
하얀 벽에 올라 온 꽃줄기
야윈 엄마의 얼굴로
창틀에 높게 매달려
아침이면 색색의 꽃잎을 열었다
- 시집 『바람의 씨앗』(두손컴, 2011)
* 백영희 : 경남 삼랑진 출생. 1994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갇힘 그리고 자유의 노래』,『물속에서 하늘보기』,『바람의 씨앗』등이 있음. 부산시인협회 부회장 역임. 현 부산시문학시인회 회장.
출처: 함께하는 시인들 The Poet`s Garden 원문보기 글쓴이: 박정원
첫댓글 박회장님 고마워요 이렇게 챙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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