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도전하는 신앙 (단 6장 6-10절)
요즘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이 가사가 드라마를 타고 요즘 많은 사람들이 유행어처럼 사용하는 것을 봅니다. 이 말의 뜻은 우리가 달 알듯이 서로가 살아 있을 때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잘해야지 떠나고 없으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있으시면서 보호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에 감사하면서 더욱 열심히 충성하며 잘해야 했었는데 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솔로몬 왕 때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뉘어졌습니다. 그 나라는 오래 가지 못하고 북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아수르(앗시리아)에게 멸망을 당하고 남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아들 벨사살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통치 할 수 있는 권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여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그 왕성했던 바벨론 왕국은 메데 바사국에 정복을 당하게 되고 메데 바사국의 다리오 왕이 통치하는 시대를 맞게 됩니다.
시대적으로 이렇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시대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니엘이 등장을 합니다. 다니엘은 악한 시대에 편승하여 목숨을 연명한 사람이 아니라 악한 상황에서도 환경에 도전하여 승리함으로 바벨론과 메데 바사국에 하나님만이 이 땅 가운데 참 하나님임을 알게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다니엘의 환경에 도전하는 신앙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 도전하라
다니엘의 도전적인 신앙은 인간의 참소나 말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이 주변의 공격과 참소에 맞설 수 있었던 신앙은 말씀에 대한 확신과 일관성 있는 그의 믿음의 행동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바벨론이 아닌 메데 바사국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기며 교만하여지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하여 남 유다를 정복하게 하십니다. 느부갓네살 왕 역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 할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였지만 결국 교만하여 져서 자기에게 모든 영광을 돌림으로 왕궁에서 쫓겨나 짐승처럼 들에서 살다 그가 회개하자 마지막에 다시 그를 회복시켜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습니다.
그 이후 그의 아들 벨사살 왕이 통치할 때에 귀족들 천명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 때에 그의 아버지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해온 온 금 은 그릇에 술을 따라 마시고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는데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석회 벽에 글을 쓰는데 왕이 그 글로 인하여 겁을 먹고 떨었습니다. 벨사살 왕은 만약 이 글의 뜻을 해석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높여 셋째 통치 자리에 오르게 하겠다고 해도 아무도 그 글의 뜻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태후의 추천으로 다니엘이 와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 말의 뜻을 해석합니다.
이 말의 뜻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하여 바벨론 나라는 끝나고 이 나라의 통치권이 메데와 바사에게 돌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약속대로 셋째의 통치 자리에 오르고 그날 밤에 벨사살 왕은 죽고 메데 바사의 통치 시대로 들어갑니다.
메데의 다리오 왕은 200명의 고관들을 세우고 세 명의 총리를 세웠는데 다니엘이 수석 총리로 세움을 받아 온 땅을 다스리고자 했습니다. 이와 같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에게 인정을 받자 200명의 고관들과 총리들이 다니엘을 참소하기 위하여 근거를 찾았는데 찾지 못하자 결국 다음과 같은 음모를 꾸밉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구하지 못하도록 조서를 만들고 만약 어기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입니다.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전국에 반포하여 금령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다니엘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단 6장 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일국의 제도나 규율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그의 신앙에 있어서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비중을 두는 사람은 어떠한 제도나 어떠한 규율이나 어떠한 참소가 억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체의 타협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환경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기독교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회의에 러시아 교회에서 3명의 목사님들이 대표로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변증할 수 있느냐?”
이런 주제를 가지고 사흘 동안 토의를 하는데 러시아 교회 3명의 목사님들은 전혀 아무 소리를 안 하였습니다. 마지막에 그들에게 소감을 얘기하라고 했더니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사흘 동안 이 회의를 여는 이유를 이해 못하겠습니다. 말씀대로 살다보면 말씀이 오류가 없다는 것을 저절로 알 텐데 그런 것 가지고 뭘 회의를 하고 앉아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이 너무나 숙연해져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참소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인간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환경에 도전하십시오! 마귀에게 도전하십시오! 가난의 저주에 도전하라!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좋은 말씀도 아니고, 옳은 말씀도 아니고, 아름다운 말씀도 아니고, 재미있는 말씀도 아닙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히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더욱 확실한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 나아갈 때 우리 앞에 있는 환경의 걸림돌은 제거되어지고 요단강은 둘로 갈라질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와 같이 생각지도 않는 고난과 어려움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과 타협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찰 때가 다가올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세상을 거슬러 도전하는 다니엘의 도전적인 영성을 배워야 합니다. 그 뿌리가 어디에서 오느냐 그것은 말씀에 초점을 고정할 때 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인간적 수단보다는 기도함으로 도전하라.
다니엘의 두 번째 교훈은 기도로 환경에 도전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에서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최고로 신뢰하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다른 총리나 고관들 보다 뛰어났다고 했습니다.(단6:3) 그래서 저는 다니엘이 그들의 음모를 사전에 다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이 왕에게 바로 나아가 그들의 악한 음모를 사전에 알려서 계획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로 탄원하고 환경에 도전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다니엘은 어명에 불순종하게 된 것으로 왕의 명에 의하여 사자 굴에 던져졌고 입구를 돌로 막아 왕의 도장을 찍어 어느 누구도 열지 못하게 했습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사랑했기에 그 일을 행한 후에 밤새 괴로워서 금식하고 잠을 자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굴 앞에 다니엘이 살아있음을 보고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고 감탄할 때 다니엘이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단 6장 22절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왕이 심히 기뻐서 다니엘을 굴에서 올라오게 하고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한 것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참소했던 사람들을 잡아다가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었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뼈까지 부서뜨렸다고 증언합니다.
기도의 힘이 환경 가운데 들러 싸 참소하던 원수들을 이기는 순간입니다.
살다보면 인간의 방법이 쉬워 보이고 간편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방법은 곧 마귀의 함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힘을 빌려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환경의 통치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하기 보다는 사람의 권세와 물질에 힘에 있다고 착각 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유명한 미국의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누구든지 매일 아침 15분만 기도하면 인생에서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래리 리 목사님은 청년의 때 교회 부흥을 위하여 조 용기 목사님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개인적 만남을 통하여 “교회의 부흥의 열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회장님께서는 “첫째도 기도요 둘째도 기도요, 셋째도 기도입니다.” 라고 말하고 지나가셨습니다. 그 이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책망하실 때 베드로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26:40)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한 결과 부흥이 되지 않는다는 미국이라는 환경에 도전함으로 교회의 놀라운 부흥을 가져 온 것입니다.
제임스 어윈(James Irwin)은 아폴로 15호를 타고서 인류역사상 네 번째로 달에 착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최초로 “로버(Rover)”라고 불리는 월면차를 타고서 반경 10km의 넓은 지역을 탐사를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아폴로 15호가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구로 귀환할 때였습니다. 지구에 가까워질수록 지구의 중력 때문에 우주선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집니다. 그래서 우주선을 지구에 안전하게 착륙시키기 위해서는 대형 낙하산 세 개가 펼쳐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정해진 지점에서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세 개의 낙하산 가운데 두 개만 펴지고 하나는 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스위치를 작동해도 펴지지 않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나사 본부에 급히 연락을 했습니다. 나사 본부에서도 나름대로 비상조치를 취했지만 한 개가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모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이제는 아폴로 15호가 곧 박살이 날 것이라고 공포에 쌓여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우주선 안에서 알게 된 제임스 어윈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리석고 연약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하나님 손에 맡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땅에서 회오리바람이 올라왔습니다. 그 효과가 대형 낙하산 한 개를 편 것과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아폴로 15호는 무사히 지구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일을 계기로 제임스 어윈은 목사가 되어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1972년 그는 우리나라에도 방문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든지 간에 저는 그때 그 일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셔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할렐루야!
기도로 여러분의 어려운 환경에 불가능한 환경에 도전하십시오! 하나님의 위대한 손이 역사함으로 우리 삶 가운데 기적을 일으킬 것을 믿습니다.
셋째로: 강한 믿음으로 환경에 도전하라
믿음은 신앙의 정체성을 보이는 중요한 태도입니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믿음은 강할 때 환경에 도전하게 합니다. 다니엘은 왕의 명을 거역하면 사자의 밥이 될 수 밖에 없지만 그 가운데 역사하시고 구원하시는 능력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환경에 도전한 능력이 된 것입니다.
시 91장 1-7절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에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에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 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이러한 사건들은 신약에도 많이 등장합니다.
열두 해를 혈루 증으로 알았던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리 쉬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면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환경에 도전하여 주님을 만나 치료를 받은 것입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한 집에 들어 가셔서 말씀을 증거하시는데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도 들어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님께로 왔는데 무리를 인하여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네 명의 친구들이 예수님이 계신 집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서 주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막 2장 5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결국 이 중풍 병자는 네 명의 친구의 믿음의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치료를 받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강한 믿음이 환경에 도전하여 기적을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