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콩쿠르 히어로 조성진은 누구? 스물한 살 클래식 신성의 음악과 인생2015-12-10 10:25 글 | 임언영 기자 /여성조선 10월 21일,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가 열렸다. 폴란드 국민은 조성진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날의 실황 연주가 앨범으로 발매된 당일, 강남 풍월당에 4층까지 줄을 선 팬들로 그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스물한 살 피아니스트 조성진 신드롬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2015년 10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우승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다. 마지막이라는 단서를 달고 참가한 대회였다. 그는 결선에서 심사위원 17명 가운데 1명에게는 1점을 받았지만 14명으로부터는 9점 혹은 최고점인 10점을 받았고 결국 우승을 거머쥐었다.
독보적인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쇼팽 콩쿠르. 이 대회는 피아니스트들의 등용문 역할을 꾸준히 해왔다. 저명한 거장들이 우승자와 6등까지의 입상자를 선택함으로써 수상자들은 자신의 음악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해당 국가에 대한 문화적 위상까지 알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쇼팽 콩쿠르에 도전하는 일은 그리 녹록지 않다. 재능 있는 음악인들을 뒷받침해줄 만한 시설이 미비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동양인 연주자에게 유독 평가가 냉혹한 인종차별 문제도 있다. 기회를 얻기도 어렵고 설령 나간다 해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 클래식 연주자에게 해외의 유명 콩쿠르는 놓칠 수 없는 절호의 이벤트다.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선보이는 것이 그들에겐 세계적인 연주자로서 명성을 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콩쿠르에서 입상한 몇몇 피아니스트들이 있다.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 3등을 한 임동혁·임동민 형제,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등을 한 손열음과 3등을 한 조성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여기에 조성진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쇼팽 협회 감독 아르투르 슈클레너(Artur Szklener)는 “조성진은 초월적인 연주를 선보이며 쇼팽 콩쿠르의 확실한 우승자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클래식 신성이 되기까지 조성진은 평소 강철멘탈로 유명하다. 무대에서 위축되거나 실수한 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연주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페이스대로 자신만의 음악을 풀어낸다. 그의 재능을 한국에서 먼저 알아본 이는 정명훈 예술감독이었다. 정명훈 감독은 어느 행사에서 조성진의 쇼팽 연주를 처음 본 이후 곧장 서울시향과의 협연 무대를 추진했다. 그렇게 조성진은 16살의 나이에 서울시향 공연에서 쇼팽과 베토벤을 연주하게 되었다. 오로지 그의 재능과 잠재력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후 정명훈 감독은 국내 공연에서 조성진을 주로 기용하며 고정 협연자가 되도록 했다. 국내에서 공부하며 실력을 쌓던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당당히 3위를 차지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이후 조성진은 성큼성큼 성장했다. 작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제14회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콩쿠르에서는 실황 중계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이 조성진의 우승을 예상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3위였다. 드디어 올해, 조성진은 세계 최고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인 연주자의 반열에 올랐다. 재능과 노력 그리고 기회와 운이 고루 갖춰졌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클래식 신성 조성진이 이룬 기적에 열광했고 그의 음반 판매량이 이를 생생히 증명했다. 조성진 효과, 클래식 흥행 열풍 조성진의 연주 실황 앨범이 발매됐다.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에서 쇼팽 콩쿠르 실황 음반이 나온 건 처음이다. 발매 당일인 11월 6일, 신사동 클래식 음반 전문점인 풍월당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조성진의 CD를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원래 이곳은 낮 12시에 문을 연다. 그러나 이날만 특별히 오전 9시에 열었다. 대기표 1백20장이 순식간에 동났다. 보기 드문 광경에 모두가 놀랐다. 조성진 음반은 이날 풍월당에서만 1천7백40여 장 팔려나갔다. 이뿐만 아니다.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인기 아이돌 가수들을 제치고 각종 음반 판매 순위 1위를 휩쓸었다. 음반에는 조성진이 예선과 1라운드에서 연주한 ‘녹턴 작품 48-1’, 2라운드에서 연주한 ‘피아노 소나타 작품 35’, ‘폴로네이즈 작품 53’, 3라운드에서 연주한 ‘24개의 프렐류드 작품 28’ 등이 수록됐다. 결선에서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실리지 않았다. 음반 유통을 맡은 유니버설뮤직 이용식 이사는 “쇼팽 콩쿠르 협회와 도이치 그라모폰이 조성진의 연주 중 가장 훌륭하고 수준이 뛰어난 곡으로만 담기로 협의했다. 피협 1번의 경우 조성진의 연주를 돋보이게 할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해 이번 앨범에서는 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조성진의 ‘2015 쇼팽 콩쿠르 우승 앨범’은 발매된 지 일주일 만에 5만 장이 완판됐다. 보통 국내외 유명 클래식 연주자는 2천 장 정도의 초도 물량을 찍는다. 조성진의 앨범은 무려 20배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해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유니버설뮤직은 5만 장을 추가로 발주했다. 조성진으로 인해 클래식 전체 음반 판매량도 늘었다. 온라인 쇼핑사이트 옥션은 최근 일주일간 클래식 음반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배가량 늘었다고 전했다. 이른바 ‘조성진 효과’. 클래식 음반을 사기 위해 줄까지 서는 이례적인 흥행 열풍은 대중들의 클래식에 대한 저변이 넓어지게 해주는 의미 있는 사례가 되었다. 유명세보다는 탁월한 음악가로 조성진의 수상을 다루는 언론이 뜨겁다. 조성진 신드롬에 대한 의견도 많다. 반짝 인기일 뿐이라는 사람도 있고 클래식 저변이 넓어질 거라는 사람도 있다. 한국인 최초라는 타이틀은 조금 식상하다는 사람도 많지만, 한 공중파 방송은 쇼팽 콩쿠르 대상을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비유하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이처럼 과열된 양상에 조성진은 누구보다 진중하게 응하고 있다. 조성진은 도쿄 폴란드 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유명해지는 것도 좋지만 저에게는 탁월한 음악가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음악의 깊이는 콩쿠르 순위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의 수상은 모두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단호한 의지와 노력의 결실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콩쿠르에 나가지 않는다. 조성진은 11월 20일, 21일 양일간 도쿄 NHK홀에서 NHK 교향악단과 협연한다. 23일에는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에서 콩쿠르 우승 기념 연주회가 있다. 조성진은 이 밖에도 해외 연주 일정이 이미 잡혀 있어 내년 2월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지는 갈라 콘서트에서 비로소 국내 팬들을 만나게 된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국내에 모여 공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총 2천5백 장의 갈라 콘서트 티켓은 예매 50분 만에 매진되었으며, 온라인에서는 양도 티켓을 구하기 위한 열기가 끊이지 않는다. ‘조성진 신드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성진은 쇼팽 스페셜리스트에 한정되지 않고 다른 작품에도 꾸준히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2016년 서울시향 공연 중 정명훈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의 협연자로 나설 예정이다. 벌써 그가 들려줄 슈베르트와 베토벤, 차이콥스키를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 클래식 전문가 3인이 말하는 조성진 쇼팽의 심장과 마주하다 - 피아니스트 김주영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가 지닌 무시무시한 잠재력이 발휘되며 살짝살짝 엿보인, 빙산의 일각과 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악상들이었다고 생각된다. 그가 상상하고 선보이는 음악의 규모는 매우 크고 편안함과 짜릿함의 매력을 함께 지니고 있지만, 그것이 듣는 이들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적인 공감으로 이끄는 부드러운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조성진 씨를 바라보면서 - 음악평론가 박종호 “조성진 씨의 우승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진심을 다해서 축하한다. 그와 동시에 자랑스러운 그를 보면 잘난 아들을 물가에 내놓은 듯한 심정이 된다. 걱정과 우려도 함께 들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더욱 진지한 자세로 보다 멀고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구도자적인 자세를 놓지 않기를 바란다. 예술의 완성은 결코 다른 사람이 주는 평가나 박수가 아니다. 청중은 그의 음반에 대한 사랑을 보여야 한다. 조성진, 한국의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다 - 음악평론가 박제성 “매 순간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으로서, 그의 손가락이 건반을 훑고 지나가면 탄식이 떨어졌고 그의 페달이 바닥에서 떨어지고 난 뒤에야 숨을 쉴 수 있었으며 예각적인 타건과 맹렬한 옥타브, 현란한 아고긱이 펼쳐질 때마다 온몸에 전기가 흘러가는 듯한 짜릿함이 꽂혔다. 눈물도 흘릴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음향이 필하모니 홀을 가득 메운 2악장과 시원스러우면서도 눈부신 황금빛 광채를 발산한 3악장이 끝난 뒤, 홀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내며 이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축하해주었다. 그제야 비로소 감격의 눈물이 눈에 맺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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