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1-4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헌신함에 대하여 / 성경 벌레
1.거듭났지만 밋밋한 삶의 원인?품군으로 살기로 한 것을 잊었기 때문
늘 강조하지만, 거듭남은 시작일 뿐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거듭남의 신비를 알고서 기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면 밋밋한 그들의 삶에서 이것저것 많은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구원된 삶이 이런건가 하는 회의를 느끼면서 영적인 침체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원인이 무엇일까요?
만일 우리들의 삶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진정으로 거듭났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무언가 시원치 않은 점들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어쩌면 저의 문제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소유를 얻어서 멀리 제 갈 길로 갔습니다. 멋지게 살아보려고 했으나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는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돼지들과 함께 뒹글고 생활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늘과 아버지께 득죄한 사실을 알고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위하여 마음을 돌이킬 때,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혹시 기억하고 있습니까?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써주소서 하리라 하고』(눅15:19)
아들은 아버지께 돌아가면서 품군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가 부리는 대로 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힘든 일, 더러운 일, 무슨 일이 되었든지, 이제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살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저 그렇게라도 아버지께 받아들여질 수만 있다면 하고 바랬던 것이 귀향을 하는 아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제 자신도 그랬고 아마도 여러분 중에 많은 분들이 주님 앞에서 거듭날 때, 이런 고백들을 했을 것입니다. 비록 품군이 되기를 원한다는 말은 안했어도, "주님, 이제는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그 말이 전혀 다른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말은 곧 주님이 시키는대로 하고, 주님이 가라는 대로 가고, 주님이 금하는대로 하지 않으며 주님이 경계하는 것은 멀리 하겠다는 뜻이 아닙니까?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이 처음 거듭날 때의 그 다짐들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 마음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정직하고 은혜로운 아버지의 손길을 바랬을 때 생긴 것으로 성령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그런데 만일, 거듭난 우리의 삶이 영적으로 침체되고 기쁨이나 평안이 사라졌다면 그 원인은 분명히 이 주님이 뜻대로 살기로 한 처음 다짐에 대해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품군으로 주님이 시키는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의 마음이 괴롭거나 불안하거나, 언짢지는 않을 것입니다.
2.주님이 사용하시기 위해서는 참된 헌신이 필요
1)헌신이란
시리아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을 때, 사자를 사마리아에 보내어 아합 왕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다 내 것이다."
그 때, 아합 왕은 서른 두 명의 다른 왕들을 데리고 싸우러 온 어마어마한 시리아 왕의 권세 앞에서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싸움 한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대로 나와 내 모든 것은 왕의 것이니이다."(왕상20:4)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바보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항복이 아닙니까? 일국의 왕이 어떻게 이렇게 초라해질 수가 있을까? 그러나 이 말씀은 오늘날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에게 적지 않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내 주 하나님이여, 주님의 말씀대로 나와 내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니이다"라고 고백하며 그대로 살 수 있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이 주님께 보여드려야 할 "전적인 헌신"입니다. 아합 왕도 시리아 왕에게 그렇게 했는데, 우리는 더욱 우리의 하나님께 그런 고백을 드리고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전적인 헌신이 결여된 그리스도인은 생활 속에서도 평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갈등과 내 적인 싸움 속에서 후회를 반복하고 절규를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다 내어드린 사람은 마음에 평안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 다 맡긴 사람은 오히려 그분의 위로 속에서 감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 자신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놀라게 될 것입니다.
2)주님을 위한 헌신
만일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기를 바란다면....., 만일 우리가 주님을 위한 진정한 품군이 되기를 원한다면....., 주님 뜻대로 살아가기만을 추구한다면......,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온전히 내어드려야만 합니다. 제가 지금 드리려는 말씀은 어떤 것은 주님께 바치고 어떤 것은 내 몫으로 남겨두고 하는 식의 헌신이 아니라 전부를 주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벤하닷 앞에서 아합왕이 했던 고백처럼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과거를 비롯해서 현재, 장래까지도 다 주님의 손에 내어드린 사람을 쓰십니다.
3.하나님께서 쓰시도록 헌신함을 위해 나를 버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
우리들에게 있어서 밋밋한 삶이 아닌, 그리스도를 위하여 풍요로운 삶을 경험하게 되길 원한다면, 그리고 그분을 위해 선한 일들을 많이 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내가 그동안 매어있었던 여러 가지로부터 먼저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1)이스라엘의 예(출애굽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거룩한 민족으로서 살게 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이집트땅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집트 왕 파라오의 손에서 자유로워야 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해 장자의 죽음을 면하고 온갖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그들이 이집트 사람들의 눈 안에 특별하게 여겨진다 하더라도 그들이 거기를 떠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삶은 시작될 수가 없었습니다.
2)탕자의 예(눅15장)
탕자가 아버지의 품이 풍족하다는 것을 알았다하더라도 여전히 돼지우리간에서 뒹굴렀다면 아버지의 따뜻한 영접은 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계신 집을 향해 돌아가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의 수치스러운 과거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그가 더러운 자기 실패의 과거 속에 안주하고 있었다면 아버지로부터 가락지를 선물 받았다든지 아들로서 따뜻하게 대우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3)아비가일의 예(삼상25장)
아비가일이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야비하고 행악을 일삼는 나발이란 자였습니다. 그 남편 때문에 그녀와 그녀 수하의 많은 종들이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행악자였던 남편을 치셔서 죽이셨습니다. 아비가일은 이미 이전부터 다윗에 대한 소문을 듣고 또한 그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알기로 다윗은 과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고 장차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될 인물이었습니다. 아비가일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점을 잘 알고 있더라도 다윗의 청혼을 거절했더라면 그녀는 과부로서 지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윗의 청혼을 그 즉시 받아들였으며 옛남편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당장에 따라 나섰습니다. 우리는 그 점을 생각할 때, 어쩌면 이리도 매몰찬가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오랫동안 세상의 아내로서 정욕의 노예로 살아왔습니다. 어느 날 그리스도께서 다가와 청혼을 했을 때,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를 통해 심판 당한 옛 남편인 세상에 대한 미련을 조금도 품지 않은 채,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 그것이 주님의 사람된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만일 그 아비가일이라는 여자가 행악자였던 옛 남편을 추모하고 그에게 연연했더라면, 다시말해, 그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했더라면 다윗의 아내가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자유로웠고 마침내는 왕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4)그릇의 예
어떤 그릇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그릇이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빈 그릇이 되지 않고는 다른 것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헌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 제일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그동안 나를 얽고 있었던 여러 가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버릴 것을 버릴 줄 알고, 필요 없는 것들을 과감하게 끊어내는 그런 삶....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사람이 이런 것들(불법, 딤후2:19)로부터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하게 쓰는 곧 거룩히 구별되어 주인이 쓰기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된 그릇이 되리라』(딤후2:20-21)
5)펜의 예
펜으로 글을 온전히 쓰고자 한다면 그 펜은 그 한 손 안에 쥐어져 있어야만 합니다. 다른 손 안에서는 다른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것에 붙들려 있다면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 받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설계하신 미래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재미있는 일들, 즐거움거리에 마음이 빼앗겨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쓰실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힘이 될만한 돈이나 권력, 명예 등의 욕심에 사로잡혀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쓰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멋지게 인생을 살게 되기를 바라시는 여러분, 전적으로 내어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쓰임 받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밋밋한 생활은 계속될 것이며 오히려 영적인 침체가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4.하나님께서 쓰시도록 절대적인 헌신으로 들어감
1)하나님께서 쓰신다는 의미
하나님께서 쓰신다고 하니까 꼭 교회의 일을 하게 한다는 것으로만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것도 포함합니다. 꼭 모두 선교사가 되고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주님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게 하며 편지가 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 중에서나 멸망하는 자들 중에서나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냄새니 멸망하는 자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사망의 냄새요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런 일을 감당하리요?』(고후2:14-16)
우리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위하여, 곧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면 이런 일들은 도저히 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2)내 것을 다른 누가 쓰는 경우에 대하여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적인 헌신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내 것을 다른 누가 쓰고 있는 경우는 없었습니까?
예를 들어 볼펜 한 자루를 내가 샀는데, 타인이 빌려서 쓰고 돌려주지 않는다면 어찌하시렵니까? "아, 그냥 뭐 한 자루 없는 샘 치지."라고 여러분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소장하고 읽으려고 책을 한 권 샀는데 어느 날 누군가 빌려가서 도대체 돌려주질 않습니다. 때때로 그 책을 보고 싶은데도..그 때 여러분은 무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그에게 선물한 셈치지" 아마 관대하게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돌려 받을 생각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다른 어떤 물건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약 2000만원 가량을 주고 산 차가 있다고 합시다. 하루는 어떤 친구가 가족간의 피크닉을 위해 그 차를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쉽게 빌려줄 수 있습니까? 빌려주기는 싫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고민 끝에 빌려주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 차를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당장에 내가 업무를 위해서, 혹은 집안의 급한 일을 위해서 그 차가 필요한데....그 때, 여러분은 무어라 말하겠습니까? "에이 선물한 셈치지,"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비싼 값을 치루고 샀기 때문에 또 다시 그 차를 장만하려해도 상당한 시간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볼펜 한자루쯤이야 다시 사면 되지만, 차를 다시 산다는 것은 쉽지 않고 또 몇 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없는 셈치지"라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까?
비싼 값을 치르고 산 것은 함부로 돌릴 수가 없습니다. 남에게 빌려주는 것도 많이 고민해야하고 빌려주기도 쉽지 않습니다. 설령 빌려주었더라도 바로 되찾아야만 합니다. 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주님이 날 사실 때 치르신 값이 볼펜 한 자루 값 정도인가? 그렇다면 세상에 나 자신을 빌려주는 것이 쉬울 것입니다. 쉽게 돌려 받지 못한다해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젖어 사는 것조차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주께서 자기를 사기 위해 치루어진 값을 책값정도로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어마어마하게 비싼 값을 치르고 샀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나는 세상에 빌려줄 수도 없습니다. 많은 고민을 해야하고 설령 빌려주게 되었더라도 곧바로 되찾아야만 합니다. 주님이 내 혼을 사실 때 흘리신 피값을 너무 값싸게 취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주님이 사신 사람들입니다. 주님께 드려져야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하는 사람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우리는 비싼 값을 치르고 산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려져야할 사람들입니다. 비싼 값을 치르고 산 하나님의 소유인데 나를 세상이 부리고 있다면....아마도 비싼 값을 치르신 하나님께서 속상하실 겁니다. 내가 비싼 돈을 주고 산 차를 남이 보란듯이 굴리고 돌려주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나는 우리들이 하나님께서만 쓰시는 사람이 되는데 간절한 소원을 품게 되기를 바랍니다.
3)다 드릴 수 있는 삶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은 이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위하여 우리 전생애를 내어드리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전5:14)
때문에 주님의 희생의 가치를 느끼는 사람은 더욱 주님께 헌신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죄용서 받음이 큰 은혜였음을 아는 사람은 주님께 헌신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향유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발에 부어드리고 자기 머리털로 씻긴 여자처럼.....
5.결론
1)연약한 자임을 인정하면서 도움을 간구함
주님께 나아온 자들, 그리고 주님의 위로를 통해 새로운 삶을 얻게 된 자들을 살펴봅시다. 한결같이 온전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 모두 문제가 많았으나 주님께 내어드리고 맡길 때, 그들의 삶은 변화를 받았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막9:24)라며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께 헌신하며, 또한 주님의 쓰시기에 합당한 일꾼들, 그릇들이 되기를 바란다면, 내가 연약한 자라는 것을 감추지 않아야 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시인하면서 나아와야만 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것들이 천하고, 없고, 약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고전1:26-29)
그리고 오히려 주님의 은혜가 크심에 대해 인정하고 그 은혜를 바라는 가운데 나오면 됩니다.
2)주님께서 이 헌신을 주장하신다는 사실
『이는 너희 안에 일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이니, 곧 그분께서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느니라』(빌2:13)
말씀을 보십시오.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삶,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내 주 하나님, 당신의 말씀대로 나와 내 모든 것은 내 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고백을 드리시고 또한 그대로 살기를 바랍니다. 오, 그것이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주께서는 그렇게 헌신하는 자들을 통하여 주님의 일을 하십니다.
펴온 글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