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8:10-16, 참 지혜는 어디서 오는가?
고대국가에서의 부와 권위의 상징은, 금, 은, 동, 철, 주석, 납, 수은 등 7가지 금속이었습니다. 지금도 부의 가치는 금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에서는 이 세상의 부의 척도인 금과 은을 받지 말고 지혜의 훈계를 받으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금과 은은 그 가진 만큼의 가치 외에는 그 이상의 새로운 그리고 영원한 것, 생명을 살 수도 또한 바꿀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늘의 지혜로 영원한 가치를 얻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지혜의 대한 열망은 금, 은보다 더 커야 합니다.
10-11절“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6-9절에서는 지혜의 진실성을 강조했다면 10-11절은 지혜의 고귀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 은보다 훈계를 받으라고 명령하시고 또 11절에서 진주보다 낫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은이나 정금, 진주는 그 당시의 사람들이 최고로 생각하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세상의 물질적인 최고의 가치 은보다 지혜가 주는 훈계가 더욱 값진 것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정금보다 더 지식을 얻으라고 권면하시고 있습니다. 11절에서 은, 금보다 더 귀한 것이 진주인데 그 보다 더 귀한 것이 지혜라고 훈계를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어떤 것보다 가치가 있고 귀한 것이 지혜와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지혜를 얻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세상 물질에 잡혀서 물질적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집착하는 것의 결과물로 흉악범죄나 명예욕이나 성노예, 마약노예로 전락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 고리를 끊어 내고 올바른 삶을 살기위해서 솔로몬은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그 안에서 지혜와 지식을 얻으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에게는 내가 원했던지 원하지 않았던지 간에 이미 뱀독이 들어와 중독이 되어 있어 그 독을 빼내버리고 말씀을 채워야 하는데 그러하지 않은 관계로 성도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면서 성도다운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딛1:16절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지혜의 권면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권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질은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모두다 놓고 가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지하철에서 나누어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돈만이라도 다 쓰고 죽고 싶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간암 말기의 60대 남자가 용양원엘 가방을 들고 왔습니다. 원장에게 말합니다. 나는 길어야 6개월남았습니다. 이갑속에 5000천만원 들어 있는데 이 돈만이라도 쓰고 죽고 싶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옷 장사, 안해 본 것이 거이 없이 돈만 벌수 있다면 뭐든지 해서 아들 대학보내고 시집 장가 보냈는데 이렇게 덜컥 암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아비의 돈에만 눈독을 들이고 재산 싸움만 하는 것을 보고 자식 잘못 키웠구나 하고 후회를 했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를 찾아가 내가 죽으면 이 돈은 사회에 환원할 것을 서약하고 5000만원들고 이렇게 왔습니다. 이제야 그 노인은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앞산에 진달래가 분홍색인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좀더 일찍이 이렇게 아름다움을 즐기며 살았으면 좋았을 것인데...그리고 그는 몇 달을 산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오히려 노년에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하다는 걸 보게 됩니다.
물질이 만능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러나 물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하지 못한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금, 은도 진주도 헛된 것이니 오직 성도는 말씀만을 사모하고 지혜와 지식과 명철 얻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선언했습니다. 시19:10절“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13절“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무슨 의미일까요? 악을 미워하고 혐오하며 적데시하는 것이 경건하고 의로운 삶이라 하십니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성도의 삶에 흔적이라도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다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모셨다면 다른 어떤 것도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그 분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우리는 해서도 즐겨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교만’ ‘께아’는 ‘높은체 하다, 자만하다(렘48:29, 오르다, (겔47:5, 스스로 고상하게 생각하다, 독선적이다’(시31:24), 그리고 패역하다는 말은 ‘매우 고집이 센’이라는 의미입니다. 종합해보면 ‘거만과 교만’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자만하는 것이며, ‘학한 행실과 패역’은 구체적인 행동과 말투가 뻔뻔하고 완고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마음이나 행동을 거부하고 멀리 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고백했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신부라면 주님의 뜻에서 벗어난 모든 악의 대하여 교만과 거만에 대하여 악행과 패역한 입술의 죄에 대하여 철저히 미워하고 배척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병에 독을 담고 그 겉 표면에 죽음의 표시를 해놓고 이것 먹으면 죽는다고 할 때 아무도 그 병을 가까이 하거나 옆에 놓아두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먹으면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뵈올수 없다고 죄를 가까이 하지 말라 하는데 우리는 그 죄를 끊어 버리지 못하는 걸까요? 죄에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거나 인지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12:9),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그리스도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을 미워할 뿐만 아니라 악의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암5:15절“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아멘.
성경의 말씀은 가장 훌륭한 모사입니다.
14-16절에는 지혜의 세 가지 특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도략’‘에차’는 ‘충고, 계획, 모사, 방책’ 등의 의미입니다. 이 단어가 쓰인 곳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준 조언,(출18:19), 다윗을 멸하고 왕위를 빼앗도록 압살롬을 도운 아히도벨의 모략,(삼하17장), 다윗을 도와 압살롬에 진영에 잠입한 후새, 그리고 르호보암이 노인들의 지혜로운 충고를 거부한 사건등에 쓰인 단어입니다. 이로보아 알 수 있는 것은 개인이나 공동체에 참모가 지도자에게 주는 탁월한 계책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참 지식’‘투쉬야’는 2:7절에 나오는 완전한 지혜와 동일합니다. 참 지식이란 삶에 있어 실제적으로 활용되고 응용되는 유용한 지식으로 현재의 직면한 문제들을 돌파해서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는 열쇠와 같은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명철’‘비나’는 ‘깨닫다, 분별하다, 능하다’의 의미를 지닌 ‘삔’에서 유래하여 ‘이해력과 분별력과 능숙함’으로 자신에게 닥친 어떤 문제로 난관에 부딪쳤을 때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말씀합니다.
다음으로 ‘능력’‘게부라’는 지혜의 부속된 능력입니다. ‘게부라’의 어근 ‘까메르’는 ‘강하다, 능하다, 이기다, 정복하다, 용감하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우리의 삶과 관계된 정치 경제 군사등 모든 분야에서 발휘되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을 종합해 보면 지혜는 삶을 복되게 하는 현실적 가치를 지닌 것임을 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5절을 보면 분명하게 보여 집니다.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세상에서의 왕들도 14절의 ‘도략, 참 지혜, 명철, 능력’이 왕권의 근거가 되고 치리권 행사의 바탕이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또한 지상에서의 바른 통치가 지혜에서 나온다고 하시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의 권세를 사용함에 있어 지혜로부터 오는 영적인 힘과 능력, 지혜의 가르침에 순종함으로 통치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방백들’‘라잔’은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지금으로 고위공직자들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들도 왕들의 권력 행사하는 지혜에 근거가 있음을 나태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어 16절‘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모든 의로운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백성들을 다스리고 지도하는 사법권을 가진 자들도 역시 맡은 일들을 잘 처리하는 능력은 지혜에서 나온다고 하시고 있습니다. 즐겨 있던 삼국지를 보면 방통이나 제갈량 두 사람 중에 한사람만 얻어도 천하를 도모할 수 있다는 말에서 참 모사를 찾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우리에게 가장 뛰어난 모사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지혜’라고 하십니다. 세상을 분별하는 능력, 세상에서 성공으로 이끄는 능력, 먼 미래를 내다보는 ‘심모원려’의 능력은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혜를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울은 딤후3:15-17절에서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 구원에 이르게 하고 이 세상에서 온전한 삶, 바르고 의로운 삶, 지혜로운 삶을 살도록 이끄는 유일한 방편이 성경이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소유하기를 원하십니까?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아이가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가르치고 그리 살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19:7-8)
성경이야말로 세상이 줄수 없는 무한한 지식과 명철과 도략과 능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고 말씀을 가까이 하는 성도들이 다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
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