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자침훈(貴子針訓)-귀한 자녀를 훈계하는 침(귀한 자녀를 침으로 찌르듯 훈계한다) 이상호(전 천안아산경실련대표, 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1. 자녀를 잘못 키워 망신당하는 사람들 정치적으로 잘 나가던 사람이 자녀로 인해 정치적 활로가 막히고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가수사본부장이란 막대한 자리에 내정되었던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 폭력 관련 사건으로 낙마했다. 어느 국회의원은 자녀의 비행 문제로 사람들의 이마를 찌푸리게 했고 잘 나가던 어떤 이는 자녀의 입시 비리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그 어머니는 지금도 수감 중이다. 또 어느 정치인은 지방자치단체장을 하였지만, 자녀 문제로 정치적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이 모두가 자녀를 잘못 키운 탓이다. 그 잘못 키운 중심에 자녀가 어린 시절 부모의 잘못된 양육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모든 부모는 귀자((貴子-귀한 자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잘해주고 싶고, 더 잘 가르치고 싶고, 더 귀하게 여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은 사교육비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최고를 달리고 있으며 학교 교육에 부모들이 깊이 개입한다. 그 과정에서 자녀에게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히고 고생을 덜 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고생 없이 이루어지는 것도 없고 고생 없이 지켜지는 것도 없다. 귀한 자녀들은 부모의 덕택으로 고생을 모르고 자라면서 특권의식으로 겸허를 잃고 오만해지며, 근면과 성실을 몸에 익히지 못하고 사치와 낭비, 향락을 몸에 익히며 타인 위에 군림하는 것을 먼저 배운다. 자기 실력으로 노력하여 재화나 지위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 기대어 얻으려 하는 이른바 ‘부모 찬스’를 활용한다. 거기에 상당수의 부모는 동참하여 ‘부모 찬스’를 활용하더라도 자녀를 어떤 위치에 올려놓으려 한다. 그러나 그 재물과 권세가 많은 권세가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 부모가 준 오만의 대가로 저지르는 폐해는 일반 서민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 옛날에는 그것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은 통하지 않는다.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 의식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공정에 대한 의식이 발달하면서 분노하게 된다. 이 자녀들은 모두 부모의 재산과 권력을 믿고 오만하게 자라난 탓으로 결국엔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옛날부터 가문을 바로 세우고 권세를 이어가려면 자식 교육을 잘하라 하였으며 자식을 가르칠 때는 귀할수록 채찍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홍만종은 <순오지>에서 권세가들 집안의 자녀들이 사치와 향락에 젖어 지내는 것을 개탄하면서 귀한 자녀를 가르침에 있어서 침(針)으로 찌르는 것 같은 훈육으로 덕업을 쌓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2. 귀자침훈(貴子針訓)을 풍자한 시 귀자침훈(貴子針訓)에서 귀자(貴子)는 귀한 자녀를 일컫는다. 이를테면 재물과 지위와 권세가 있는 집의 자녀들이다. 침훈(針訓)은 침(針)으로 훈계한다는 것이다. 침은 날카롭고 예리한 찌르는 도구이다. 자녀를 훈계(가르침)에 있어서 침으로 찌르듯이 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그 침은 무엇을 상징할까? 총체적으로 표현하면 그 침은 덕업(德業)이다. 그 덕업을 위한 겸허와 성실과 근면이다. 홍만종이 소개하는 시를 보자
父兄勞於官(부형노어관) - 부형들은 관리 노릇을 하느라 수고롭고 子弟逸於家(자제일어가) - 자제들은 집안에서 편안히 놀기만 하네 一逸己過分(일일기과분) - 한 번 편한 것도 분수에 넘는데 況乃事華奢(황내사화사) - 하물며 평생도록 사치를 일삼고 있구나 軒軒傲閭里(헌헌오려리) - 거만하게 이 마을 저 마을 오르내리고 僕僕趍縣衙(복복추현아) - 잘날 듯이 관청(현아) 문을 자주 드나드네 不知禍所偸(부지화소투) - 거기 화가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方謂世可誇(방위세가과) - 가문의 세력만 믿고 자랑질 한창일세 勢或有時歇(세혹유시헐) - 그 세력 또한 다할 때가 있고 禍或來無涯(화혹래무애) - 화도 때로는 여지없이 어느 곳에서 다가오리니 不如愼德業(불여신덕업) - 삼가하여 덕업을 닦아야만 庶幾永無譁(서기영무화) - 길이길이(오래도록) 욕됨이 없으리라 이 시는 홍만종의 자작시가 아니다. 장동해(張東海)라는 사람이 쓴 시라면서 소개하고 있다. 홍만종은 이 시를 소개하면서 ‘세상 많은 자녀가 그 부형의 재물과 권세만 믿고서 사치를 부리고, 자기를 가꾸고 근면하는 일에는 소흘히 여기며, 권세만 자랑할 줄 알고 마음대로 오만을 부리다가 재앙이 뒤따르는 줄도 모르고, 패가망신하게 되어도 자기의 허물을 깨닫지 못하는 자가 많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부귀와 권세가 있는 집안의 자녀일수록 덕업(德業)을 쌓는 일에 매진하여야 길이길이 욕됨이 없을 것’이라 하였다. ‘미운 자식 밥 한 그릇 더 주고 귀한 자식일수록 매 한 대 더 때리라’는 옛 말이 있다. 옛 선인들은 자녀를 기르고 가르침에 있어서 그 자녀가 귀할수록 채찍을 가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귀한 자녀일수록 채찍을 가하기는커녕 그 역성을 들어 주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많았음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특히 재물이 많고 지위가 높고 권세가 클수록 그 재물과 지위와 권세를 자녀들이 즐기도록 하게 한다. 그 결과는 자녀들이 오만하게 되고 사치와 방탕, 향락에 빠져들게 하고, 심지어는 부모의 은덕조차 모르고 살아가게 만든다. 그것은 부모들의 잘못된 자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3.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 어떻게 보면 자녀의 학교 폭력으로 낙마한 정순신이나, 자녀의 비행으로 구설에 오른 정치인들, 자녀로 인해 곤욕을 치르는 많은 정치인, 이들은 모두 자녀 교육에 있어서 잘 가르치려는 욕심으로 귀자침훈(貴子針訓) 하지 못하고 자녀의 기를 돋운다는 마음으로 그들의 역성을 들어주고 특권의식으로 오만하게 만든 탓일 가능성이 크다. 자녀를 잘 키운다는 것은 자녀가 화려하게 살도록 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자력으로 모든 일을 수행하도록 하며 세상과 조화롭게 살면서 부모와 형제 이웃을 알고 살필 줄 아는 염치를 아는 자녀로 키우는 일일 것이다. 나아가 능력이 뛰어난 자녀라면 세상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일일 것이다. 부귀와 공명은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할 일이다. 이를 위하여 자녀들에게 절제와 겸허함과 근면과 성실을 마음과 몸에 익히도록 가르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세계적인 영재교육기관인 <아트 앤 사이언스(Art & Science)>가 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상당수의 학자, 그리고 이스라엘을 이끄는 상당수의 영재가 이곳 출신이라 한다. 그들은 극소수의 지식 엘리트들이다. 그런데 이 학교를 방문한 사람들은 이 학교의 시설과 학생들의 생활 복지에 대해 놀란다. 교실은 최첨단 시설과 실험 장비들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의 기숙사는 서민 수준이며 식사 또한 매우 간소한 영양식이다. 그러한 기숙사 시설과 식사에 의아한 방문자들은 질문을 한다. 이 똑똑한 아이들에게 최고의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여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때 학교 측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 아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0.1% 이내의 아주 뛰어난 달란트(재주, 재능)를 부여받았습니다. 따라서 이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큰일을 하여야 합니다. 그것을 위하여 이들은 겸허함을 배우고 생활에 익혀야 합니다. 만약 이 아이들이 화려한 생활을 하면 오만해져서 향락과 자기 출세에만 매진하게 되어 하나님이 준 달란트에 보답하지 못합니다. 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겸허한 마음으로 성실과 근면을 몸에 익혀 평생을 탐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영재교육기관은 학생들에게 겸허와 성실과 근면을 우선하여 가르치며 특권의식을 몸에 익히지 못하도록 하므로 그들이 평생 인류를 위하 봉사할 수 있도록 한다. 세상에 기여하고 봉사할 수 있는 마음과 행동은 평범함의 소중함과 겸허함에서 출발하지 특권의식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특권의식은 오히려 오만을 부르고 오만은 사치와 향락을 가져오게 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학교의 교육 과정과 실험시설 등보다는 급식과 기숙사의 시설에 더 주목한다. 학생과 부모들은 학교의 교육 과정과 내용보다는 급식과 복지에만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영재교육 기관일수록 최고의 시설과 식단을 제공해 주기를 원한다. 학창 시절부터 특권의식을 몸에 배도록 하며 특권의식으로 무장되도록 한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수많은 어린 영재들은 뒷날 빛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은 사치와 향락 권력과 권세, 돈에 빠지면 더 이상 깊이 있는 탐구의 노력을 하지 않는경향이 있다. 마음과 몸이 겸허를 잃은 탓이며 근면과 성실을 저버린 탓이다. 그래서 자녀 교육에 있어서 겸허함과 근면과 성실이 몸에 배도록 하고 권세와 오만, 사치와 향락을 멀리하도록 훈침(訓針)을 하여야 한다. 특히 자녀가 귀할수록 귀한 집안의 자녀일수록 그 재물과 권세를 이용하여 오만하게 되지 않도록 겸허와 근면과 성실의 침(針)으로 훈육하여야 한다. 그때 세상도 평화롭고 많은 타인에게 상처도 주지 않으며, 그 가정도 대를 이어 융성할 수 있다. 대를 이어 존경받아 온 경주 최부잣집의 가훈과 그 교육을 가정마다 새겨봄도 좋으리라. 귀자침훈(貴子針訓) 즉 귀한 자녀일수록(자녀가 귀할수록) 침으로 찌르듯 훈계(가르칠)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침은 겸허와 성실과 근면 등이다. **참고 사항 :한자 연구** 逸(달아날 일, 일탈하다, 마음대로 놀다) 過(지나치다, 심하다) 分(분별하다) 過分(분수를 잃다) 況(하물며 황) 奢(사치할 사, 자랑하다) 軒(추녀 헌, 집) 傲(거만할 오) 閭(이문 려, 마을의 문)僕(종 복, 자신의 겸칭) 趍(추창할 추, 달리다) 衙(마을 아) 禍(재앙 화) 偸(훔칠 투) 謂(이를 위, 설명하다) 誇(자랑할 과) 勢(기세 세, 세력) 歇(쉴 헐, 다하다, 마르다) 涯(물가 애, 어느 곳) 愼(삼갈 신) 永(길 영, 오래다) 譁(시끄러울 화, 욕될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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