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불 속(薮の中)」
(1922, 1) 『新潮』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1892-1927)
다이쇼(大正)시대를 대표하는 단편소설 작가입니다. 다이쇼 시대는 단편소설이라는 형식을 완성한 시대입니다. 근대소설의 주류를 이루는 경향은 사실주의(写実主義)이고, 이 주의는 장편소설을 요구했기 때문에 각국은 단편이라는 장르에서는 그다지 대표적인 작가를 낳고 있지 못합니다. 단편작가는 모파상과 체홉 정도입니다. 근대 시대는 장편소설 시대입니다.
아쿠타가와는 어릴 때부터 책으로 공부했습니다. 여기에는 이모인 후키의 지도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체험만을 의지하여 글을 쓴 동시대 사소설 작가와 다른 것입니다.
1915년 「라쇼몽(羅生門)」을 『帝国文学』에 발표하였지만 반향이 없었습니다. 작품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랬다고 생각됩니다.
1916년 「코(鼻)」가 『新思潮』에 발표되었습니다. 『新思潮』는 소세키(漱石) 문하에 모인 도쿄대 학생들이 소세키에게 읽히기 위하여 만든 잡지입니다. 소세키가 제1의 독자였습니다. 이 작품이 소세키에 절찬되어 비로소 아쿠타가와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 후 그는 소세키의 추천으로 문단에서 고속출세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쿠타가와는 2명의 아버지와 4명의 어머니를 가진다고 합니다. 그는 일생 자신의 복잡한 가족사에 고민하였습니다.
당시 남자 42세와 여자 33세는 소위 액년(厄年)으로 아이를 낳으면 버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가 양자로 갔던 곳은 어머니의 남동생 집이었습니다. 양아버지이지요.
그에게 어머니는 미쳐서 죽은 실모(フク), 양어머니인(トモ), 실제로 그를 기른 어머니의 언니인(フキ), 그리고 이모로 아버지의 후처가 된(フユ)의 4명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실모는 그가 8개월째에 발광하여 10세 때에 죽습니다. 그도 어머니의 영향으로 미쳐서 죽는 것에 대하여 내내 고민하였습니다. 양부모에 길러진 그는 극도로 가족에 배려하면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 문학이라는 비현실의 세계의 그 가공의 공간에서 자신을 해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쿠타가와는 근대인의 복잡한 심리를 추구한 작가입니다. 그는 고전에서 소재를 취재하여 그것에 근대적인 해석을 하였습니다. 『곤자쿠 이야기(今昔物語集)』의 가치를 발견한 것은 국문학자가 아니고 아쿠타가와 였습니다.
그는 대두하는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자살합니다. ‘막연한 불안(ぼんやりした不安)’을 느끼고 자살합니다. 그의 죽음과 함께 대정시대 문학이 끝납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아쿠타가와 상(芥川賞)이 제정됩니다. 신진작가에게 1년에 2번 수상하는데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이 상을 받으면 한 사람의 신진작가로서 인정을 받게 됩니다.
「덤불 속」은 『今昔物語集』의 29집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것입니다.
부부가 여행 중 아내가 남편 앞에서 강간당한 사실을 빌려서 창작한 것입니다. 원문에는 부부는 여행을 계속한다, 남편은 한심하다고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아쿠타가와가 이야기를 창작한 것입니다.
작품에서 도적과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가 전부 다릅니다.
사건에 대한 진술이 각각의 입장에 따라 전연 다릅니다. 이미 죽은 남편조차 사무라이의 얼굴을 세우기 위하여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누가 사실인가.
모두에게 모순이 있습니다.
사실 검사관이 보면 금방 압니다.
큰칼로 찔려죽었는지 단도로 찔려 죽었는지 또 그것이 찌른 방향에 따라 자신이 찔렀는지 상대방이 찔렀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적과 아내를 대질심문하여도 사건의 진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은 사무라이는 이미 죽었으니 의미가 없구요,
물론 이러한 것을 천재인 작가가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요컨대 아쿠타가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누가 범인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겠지요. 인간의 이기주의와 자신의 명예, 그리고 인간의 자기합리화를 위한 본성(本性)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사건에 대하여 당사자들조차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인간의 잔상(残像)은 그 일부분만 잡을 수 있고 전체를 잡는 것은 어렵다는 것, 그리고 제3자의 눈에는 알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도 정직하지 않다는 인간의 본성을 예리하게 관찰한 작품입니다.
도적의 경우, 이미 살인을 많이 해서 잡히면 어차피 사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공명심을 높이기 위해 정당하게 칼싸움을 해서 죽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가 이전의 사건이 없었고 초범이었으면 살인을 부인했을 것입니다.
아내의 경우, 남자보다 승벽이 많은 성격이니 자존감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죽였다고 하면 살인죄가 되는데도 죽였다고 말합니다. 자존감이 높은 여자라고 생각됩니다. 남편은 이미 죽었고, 남편이 도적과 칼싸움에 져서 죽은 것보다 자신이 죽였다고 하는 게 두 사람의 명예를 높이기에 자신이 죽였다고 합니다.
「薮の中」는 구로사와 아키라(黒沢明) 감독에 의하여 영화로 만들어져 195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일전에 조사한 세계 영화의 10대 감독에 선정되었습니다. 그의 영화에서 사용한 영화기법이 나중에 할리우드 영화에서 사용됩니다. 영화는 「羅生門」이라는 타이틀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羅生門」이 대표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설에서는 나무꾼의 증언을 그대로 신용하지만 영화에서는 나무꾼의 증언에서 거짓말이 나옵니다. 구로사와 감독의 대단한 부분입니다. 또 영화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아기를 등장시켜 난세 중에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감독, 각색, 촬영감독, 예술 감독, 그리고 배우 등이 모두 능력이 있는 스태프로 구성되어야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습니다. 「羅生門」은 바로 그러한 영화였고 이들은 계속 함께 작업하여 일본영화의 황금시대를 만들게 됩니다.
「薮の中」에서 도둑은
‘남자를 죽이는 일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일이 아니다. 어차피 여자를 빼앗으려면 반드시 남자를 죽여야만 된다. 단지 나는 죽일 때에 칼을 사용하지만 당신들은 칼을 사용하지 않는다. 권력으로 죽인다. 돈으로 죽인다. 어쩌면 위해주는 척하는 말만으로도 죽이겠지. 과연 피는 나지 않는다. 남자는 훌륭하게 살아있다. - 그러나 그래도 죽인 것이다. 죄의 깊이를 생각해 보면 당신네 쪽이 나쁜가 내가 나쁜가 어느 쪽이 나쁜가는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비웃는 미소를 짓습니다.
이것은 정말 예리한 지적으로 아쿠타가와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은 또 하나의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한국사회에서 자살이 많아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타살인 경우가 많지요. 도적의 말처럼 현실적으로 살인을 하고서도 나쁜 사람들은 아무런 죄의식도 가지지 않습니다. 검사들의 고발사주, 곽모 씨의 퇴직금 50억 원 등은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습니다.
아쿠타가와는 자살하고 난 뒤 자신의 작품을 이와나미(岩波)서점에서 출판해 줄 것을 유서에 써놓았습니다. 이와나미 서점은 당시 소세키의 작품을 출판하고 있는 출판사로서 죽어서도 스승과 같은 출판사에서 출판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그가 얼마나 소세키를 존경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근대문학자 3인은 위 두 사람과 ‘은하철도의 밤’을 쓴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