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우리는 그라운드에서 손쉽게 접하는 배팅(Bating) 즉, 타격을 일컬어 '예술(藝術)'의 영역이라고들 이야기한다. 탁구나 테니스처럼 라켓의 면이 평평한 경우는 그 볼이 시속 150km의 빠른 속도로 날라오더라도 제대로 타격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타격을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배트가 둥글며 그 배트로 맞춰야하는 공도 둥글기 때문'이다. 원형의 두 물체가 충돌하면서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은 단 한곳. 여기에 배팅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게다가, 타격을 예술에 근접한 신기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다른 이유는 바로 배트와 공의 규격과 타격을 위해 부여되는 '시간적 한계'에 존재한다.
◎ 타격, 그 30%의 어려움
우선 배트 헤드의 최대 지름은 규정상 2.75인치(7㎝)를 넘을 수 없지만 야구공의 지름은 최대 2.868인치(7.29㎝)다. 미묘한 차이에 불과하겠지만, 보다 작은 배트로 큰 공을 정확한 스윗 스팟(Sweet Spot)에서 가격하기란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
다음 문제는 시간적인 여유 문제. 투수들이 던지는 시속 145km대의 직구가 홈플레이트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약 0.4초 정도다. 투수 플레이트에서 홈플레이트 간의 거리가 60피트 6인치(18.44m)지만, 투수들의 딜리버리 동작으로 힌해 약 1m 이상 홈플레이트쪽으로 중심이동한 상황에서 볼을 뿌리게 되므로 실제 비행거리는 60피트(18.288m)도 되지 않는다.
강속구가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인지하고 스윙을 할지 아니면 그냥 통과시킬 것인지 선택하는 시간이 약 0.15초 정도 소요(所要)된다. 일단 타격하기로 뇌가 결정하게 되면 타격을 위한 운동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신경세포를 따라 명령이 전달되고 근육과 신경의 경계점에 타격명령 신호가 도달하면 근육은 타격을 위한 운동을 비로소 시작한다.
투수가 던진 볼의 궤적을 따라가며 볼에 대한 조정행위(Adjustment)를 통해 볼을 맞추기 위한 시간적 여유는 불과 '0.25초내'에서 결정된다는 것.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이 모든 예술적 행위가 작품이 될지, 아니면 실패작이 될지 결정된다. 여기에 타격의 예술적 의미가 깃들여져 있는 것.
'3할만 치더라도' 성공한 타자로 평가받는 그라운드에서 데드 라인인 3할을 넘기기 위한 타자들이 기울인 각고의 노력은 그야말로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다.
1961년 타율 .361로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을 차지하며 41홈런 132타점의 황금기를 구가한 놈 캐쉬(디트로이트 타이거스)처럼 스스로 코르크 배트를 손수 제작하는 등, 정당치 못한 방법을 동원하는 경우도 있으며 캐쉬의 경우와는 달리 정당한 방법으로 '마의 3할'을 돌파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근원적인 수단이 바로 투수의 '구질 예측'이다. 만약, 구질 예측만 제대로 맞아들어간다면 그 선수는 제 아무리 타격에 재질이 없다고 하더라도 3할을 넘기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타자들 중에서 구질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타격하는 습성을 지닌 선수를 '게스 히터(Guess Hitter)'라고 일컫는다.
게스 히터들은 그야말로 노림수 타격으로 '도 아니면 모'식의 타격을 하는 타자들. 그 대표적인 타자로 자신 스스로가 '게스 히터'였다고 주장했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를 꼽을 수 있다.(내셔널리그는 뉴욕 자이언츠의 빌 테리다.)
윌리엄스처럼 게스 히팅을 타격 지론으로 삼아 성공신화를 이룬 선수가 있는 반면, 전혀 상대 투수의 구질 예상없이 타격하는 선수도 존재한다. 윌리엄스에 이어 레드삭스 강타자 계보를 잇는 바로 '타점 머신' 매니 라미레스(보스턴 레드삭스)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
◎ 테드 윌리엄스의 '게스 히팅'
테드 윌리엄스는 그야말로 수비 포메이션의 일대 혁신을 몰고온 장본인. 1941년 타율 .406을 기록, 메이저리그 최후의 4할타자로 기억되고 있는 윌리엄스는 당시 아메리칸리그의 상대 팀 감독들에게는 요주의 인물.
결국,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루 부드로 감독은 1946년에 이르러, 지나치게 잡아당기는 배팅을 고집하는 윌리엄스를 낚아내기 위해 '부드로 쉬프트(Boudreau Shift)'라는 수비 쉬프트를 창안해 낸다. 수비수들을 센터 라인을 중심으로 라이트 필드에다 죄다 배치한 것. 이게 바로 특정 선수들 대상으로 한 수비 쉬프트의 최초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부드로 쉬프트를 만들어 낸 요인이 바로 윌리엄스의 '게스 히팅'이었던 것. 구질에 따라 스윙 메카니즘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노림수에 의한 타격으로 자신의 당겨치는 스윙 메카니즘을 구사한 것. 윌리엄스는 살아 생전 CNNSI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윌리엄스 자신이 가진 세가지 행운 중의 하나가 바로 '뛰어난 게스 히터'였다는 것을 꼽을 정도.
처음 자신은 낮은쪽 공을 잘치는 타자(Low-Ball Hitter)라는 평가가 상대 투수들에게 내려진 걸 알고는 자신의 파워 포지션을 높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변경하고 타격을 했다고 실토했다. 윌리엄스 특유의 '게스 히팅'이 최초로 진가를 발휘한 셈.
이후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메이저리그에는 신구종이 개발되어 투수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 최고의 상종가를 구가한 구종이 바로 슬라이더. 현재는 가장 흔해빠진 구종으로 전락했지만 그 당시는 슬라이더보다 더 효과적인 구질은 없었던 것.
투수가 더 이상 자신에게 던질 곳이 없어졌다고 판단한 윌리엄스는 투수 스스로가 비장의 무기라고 여기던 슬라이더만 노리고 타석에 들어선 것. 윌리엄스는 슬라이더의 궤도만 머릿속에 입력시키고 있다가 냅다 배트를 휘두르기만 하면 모든게 이뤄졌던 것이다.
2차대전 이전까지 투수들이 던질 수 있는 구종은 직구와 커브 그리고 체인지업등에 불과했기에 윌리엄스의 노림수 타격, 즉 게스 히팅은 대성공을 거둔 셈. 하지만, 마리아노 리베라(뉴욕 양키스)처럼 직구 구종만 4가지(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 스위퍼)를 구사하는 시점에서 게스 히팅(Guess Hitting)의 성공 빈도는 상당히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현재 윌리엄스가 타석에 들어선다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게스 히팅'으로 당시에 비해 다양한 구종으로 승부하는 투수들을 상대로 3할대 중반 타율이라도 쳐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가져본다.
◎ 매니 라미레스의 '무심타법(無心打法)'
ALDS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시리즈 5차전, 6회초 터트린 3점 홈런 한방으로 보스턴 레드삭스가 루비콘 강을 건너게 해 준 '타점머신' 매니 라미레스. 슬러거임에도 불구, 그의 스윙에서 장타만 노리는 듯한 인상을 포착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흔히들 그의 스윙 메카니즘을 일컬어 '버터를 바른듯한' 스윙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곤 한다. 이는 국내에서는 '물 흐르는 듯한'이라는 스윙과 유사한 표현. 라미레스의 스윙에는 버터를 바른듯 매끄럽게 스윙 메카니즘이 이뤄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라미레스의 스윙 메카니즘 상의 특성이며 그의 타격에 관한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다.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의 '보이지 않는' 타격 메카니즘은 바로 게스 히팅을 지극히도 싫어한다는 점이다.
라미레스는 좀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야구에 관한 한 외곬수적인 삶을 고집하고 있다. 야구 이외의 분야에 정신을 파는 것을 자신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투수와의 수싸움에는 그런 집중력이 투입되지 않는다는 것.
즉, 자신이 상대할 투수의 구질이나 투구 모션과 습관, 컨디션등을 체크ㆍ분석하는 작업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야구만 생각하는 그의 생활 방식과 비교해 볼 때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부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가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있다. 바로 '단순함(Simplicity)의 미학(美學)'이 그것. 생활 그 자체의 야구만 생각하는 '단순함'과 타석에서 투수와의 두뇌 싸움에 집중력을 허비하기 보다는 '공' 그 자체에만 집중시킬 수 있는 '단순함'에 더 큰 비중을 둔다는 점이 바로 라미레스의 타격 지론인 '무심타법(無心打法)'인 것이다.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즉,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되는 것이다. 타자가 안타만 치면 되는 것이지 방법론적인 옳고그름은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윌리엄스가 특유의 게스 히팅으로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에 올랐듯이 라미레스도 2002년 타율 .349로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에 등극한 것이 이에 대한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 '상황적응적(Contingent)', 그리고 '볼 카운트에 따른' 타격
라미레스의 무심타법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투구의 최고 스피드와 최저스피드의 중립지점을 잡는다는 점이다. 즉, 재러드 에르난데스의 시속 89km대의 너클볼의 스피드와 패스트볼의 스피드의 편차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두뇌에 입력시켜 둔다는 것. 그리고, 중립의 스피드를 염두에 두고 스윙을 시작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반면, 윌리엄스는 그렇지 않다. 최고 스피드의 볼을 노리거나 최저 스피드의 변화구 둘 중의 하나만 대비한다는 것.
어떤 관점에서는 라미레스의 타격 지론인 무심타법이 윌리엄스의 게스 히팅보다 현대 야구의 트렌드 상 오히려 더 경쟁력있는 타격 지론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전에 올린 '레벨스윙의 새로운 접근'이란 제목의 글에서 레벨스윙의 관점에서 이제는 형식적인 의미와 포수-투수의 연장선 상의 레벨스윙보다는 '상황적응적(Contingent)인 레벨스윙 즉, 볼 궤적과의 레벨스윙 구사여부가 선수의 자생적인 경쟁력 확보와 직결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현대 야구에서 구사되는 투수의 구종은 흔히들 108 번뇌라고 일컫는 야구공의 땀(Stitch) 갯수(108) 만큼이나 다양하다. '상황적응(Contingency)'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때, 윌리엄스의 '게스 히팅'과 라미레스의 '무심타법' 중에서 논리상 더 가까운 쪽은 라미레스의 무심타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라미레스의 무심타법에 큰 호응을 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상대 투수들의 연구와 분석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부분.
결국, 양 극단(極端)을 향해 치닫는 윌리엄스의 게스 히팅과 라미레스의 무심타법 지론이 가장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에 현대 야구에서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타격 지론이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레벨 스윙에서는 상황적응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었다. 이번 '게스 히팅(Guess Hitting)과 무심타법(無心打法)'에 관해서 즉, 예상 타격의 유무에 관해서는 '볼 카운트에 따른' 타격 지론(持論)을 주장하고 싶다. 투 스트라이크 이전까지는 윌리엄스의 게스 히팅을 적용하고 투 스트라이크 이후는 라미레스의 무심타법에 의존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타격 지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스포츠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