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소연 정순자의 시 세계
존재와 자연의 교감 그 시적 진실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생활의 원동력 혹은 체험의 승화(昇華)
현대시의 발상에서부터 이미지의 추출(抽出)에는 그 시인의 체험을 가장 중요시하는 경향은 예나 지금이나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기 상재(上梓)하는 소연(素蓮) 정순자 시인의 첫 시집 『』을 일별(一瞥)하면서 새롭지도 않은 체험 재생의 화두(話頭)를 먼저 상기하느냐 하면 이 시집 전체에서 흐르는 의식(consciousness)이 정순자 시인의 내면에서 용암(鎔巖)으로 분출하는 원천(源泉)이 바로 그가 간직한 소중한 체험에서 발원(發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정순자 시인이 탐색하려는 시적 지향점이나 이미지의 투영(投影)은 그가 살아온 과거와 현재의 생활 속에서 재생하고 그것들을 재창조한 실생활(real life)과 거기에서 창출한 생명성이 시적인 진실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할 수가 없게 한다.
우선 그의 생활 원동력은 바로 그 체험들을 승화함으로써 자아(自我)를 성찰하거나 존재의 오묘(奧妙)한 문제들까지 그의 시상(詩想-poetical sentiment)으로 정리하여 시의 본령(本領)으로 정립하고 있어서 현실적인 생활 자체와 자연 경관 등 그 주변에서 생성하는 지적인 혜안(慧眼)을 통한 주제를 창조하려는 정서의 향방을 엿보게 하고 있다.
이러한 체험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획득된 다양한 삶의 현장이 포괄되어 있다. 이는 태어나서 유년기, 소년기, 청소년기, 중년, 노년을 거치면서 전개된 삶의 현상이나 겪었던 사건들에서 감응(感應)하거나 감지(感知)한 의식의 중심에는 현재라는 시간성과 교감하면서 여러 분류의 이미지를 생추출(抽出)하게 된다.
이것을 직접체험이라고 한다면 미지의 세계나 미답(未踏)의 여러 형상들은 선각자나 선지자들이 저술한 많은 지적인 영양소를 독서를 통해서 흡수하는 간접체험도 현대시에서 작용하는 이미지나 주제의 투영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주목하게 한다.
아름다운 면
싫어하는 면
두 얼굴 가진 너
무슨 힘 가지고 있기에
아름다울 때는 모두
즐거움 주는 멋쟁이
간혹 토라지면
고통 주는 너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는
너의 힘
양면성 가진
보이지 않는 요술쟁이.
--「바람」전문
이 작품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아름다운 면’과 ‘싫어하는 면’과 ‘웃게도 하고 / 울게도 하는’ ‘양면성’은 바로 현실적인 고뇌가 작품으로 형상화해서 그 진면목을 제시하는 정순자 시인의 진솔한 진실이며 이의 타개(打開)와 극복(克服)을 위한 사유(思惟)의 일단이 ‘바람’이라는 흔들림의 실체로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두 얼굴을 가진 너’와 ‘고통을 주는 너’ 그리고 ‘너의 힘’이라는 화자(話者-persona) ‘너’는 바로 흔들리는 ‘바람’의 의인화(擬人化)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바람=너’라는 등식(等式)으로 구성해보면 ‘너’라는 2인칭의 객관성은 현실적인 모든 사회상이 우리 인간들과의 모순, 불합리 등의 갈등요소들과 일차적으로 내면에서 심리적인 화해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에 뿌연 망을 쳐 놓아
시야가 흐려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신의 조화인가
알 수 없는 흐릿함
안개꽃 꽃다발 뒤
잘 보이지 않게 하는 일
안개 정국이란 표현
불확실한 미래
손에 잡혀지지 않는 그 무엇
해가 떠오르며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 너
어쩐지 이런 날은 불안해지네
--「안개」전문
그러나 이 ‘안개’에서는 ‘안개 정국’이나 ‘불확실한 미래’라는 어조(語調-tone)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어쩐지 이런 날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사유의 지향은 ‘안개꽃 꽃다발 뒤’에서 시야를 흐리게 하고 있어서 더욱 불투명하거나 불명확한 현실의 고뇌가 적시(摘示)되고 있다.
이러한 ‘불안’은 ‘안개’(사물)와 동일한 관점에서 시와의 접점을 모색하는 것은 정순자 시인이 사물에서 투영하는 이미지와 주제의 투명성을 더욱 명징(明澄)하게 보여주는 지적인 사유에서 이를 이해하게 된다.
맑은 하늘 산들바람
억새꽃 은빛, 연보라빛 물결
멋진 등산복 차림의 덕성시원 친구들
하늘 공원 품속에 안기여
젊음으로 돌아간다
코스모스 꽃만 감상해도
동심으로 돌아가
예쁜 추억을 만들 사진 남긴다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가
억새꽃 아름다움 스며들었나
오래 기억될 기분 좋은 순간들.
--「즐거운 하루」전문
보라. 여기에서는 지금까지의 불안요소들이 말끔하게 해소되는 정서를 알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앞에서 보아온 양면성과 불합리성 등이 융합(融合)하고 동행(同行)함으로써 현실적인 사회성을 다원적(多元的)으로 현현(顯現)하고 있어서 그가 집중하는 사유의 중심축(中心軸)의 범주(範疇)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사유의 생성은 우리 인간이 소유한 칠정(七情-喜怒哀樂愛惡慾)에서 발원하여 이를 체험과 동일성으로 융합할 때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칠정에서도 분노와 슬픔(怒哀), 사랑과 악함, 그리고 욕심(愛惡慾)에서 많은 심리적인 분사(噴射)를 모색하는데 기쁨이나 즐거움 등은 우리 문학(특히 시에서)에서 즐겨 다루지 않는 점을 종종 읽을 수 있게 한다.
정순자 시인은 이처럼 실생활과 연관되는 작품을 많이 구사(驅使)하는 특징을 읽게 하는데 이는 그의 연륜과 현실적인 인식이 ‘물과 나무가 있어야 / 사람 살아가는 원동력이네(「나무」중에서)’라는 진정한 사유의 결론을 메시지로 나타내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2. 고향, 어머니 등 모태의 정적인 언어
정순자 시인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잊지 못하는 정서의 진원지가 있다. 고향의 풍경과 추억이다. 거기에는 고향의 산하(山河)가 있고 가족들의 흔적이 있고 ‘어머니’가 있어서 그의 인간적, 문학적인 모태(母胎)로서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뒷뜰 뽕나무 오디 줄줄이 매달리고
뜰 앞 감나무 감이 주렁주렁
장독 가 맨드라미 봉숭아꽃 붉게 피는데
뒷문 밖 대나무 숲 강물보다 푸르네
뜰엔 암닭 병아리 몰고 다니며
소 우리 송아지 엄마 젖 먹고
부엌 맛있는 냄새 구수하며
방엔 술 익는 냄새 향기롭네
안방 할머니 물레질 소리
사랑방 할아버지 시조 읊은 소리
--「고향집 . 2」전문
우선 그의 고향 정경(情景)에서 감응할 수 있는 부분은 외적(外的)인 풍경 이외에도 ‘술 익는 냄새’와 ‘물레질 소리’ 그리고 할아버지 시조 읊는 소리‘가 그의 내면(內面)에서 솟아나는 후각(嗅覺), 청각(聽覺)의 정감(情感)으로서 이로 인해서 그가 탐색하고 구현하려는 시적 상황(situation)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가 직접 생생한 체험을 근원으로 해서 추출한 고향 이미지들이 다양한 형태로 흡인(吸引)되고 있다. 그는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와 ’칠남매 우리 형제 / 울고 웃으며 살았네(「고향집 . 1」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가족 구성원들을 모두 적시하여 고향과 가족의 정서가 ‘그리움’으로 승화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작품「설 . 1」「설 . 2」「음력 대보름달」「우리집 약주」등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풍겨오는 정황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고향의 이미지는 고향과 주변의 일상들 또는 가족 구성원들, 산천의 정경들이 모두 그의 시적 소재이며 주제의 원류가 되고 이다.
풀 먹여 빳빳한 홑이불 덮고
어렸을 때 어머니의 팔 베고
뜰 멍석에 누워
밤하늘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수많은
별들을 세면서 물었지요
저 별들은 뉘별이며
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지
우리가 죽으면 저 별 중에
하나가 된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지요
유난히 반짝거리는
어머니별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
오늘밤도 뜰 앞에 나섰습니다
--「어머니 . 1」전문
제가 이제 어머니 되어
어머니의 힘들었던 삶을 깨닫게 되었을 땐
이미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아니 계시어
그리워 슬피 웁니다
--「어머니 . 2」중에서
이처럼 ‘고향’에 관한 이미지는 ‘어머니’와 동류(同類)의 개념으로 각인(刻印) 된다. 정순자 시인의 ‘어머니’는 우선 유년시절에 나누었던 대화중에서 ‘우리가 죽으면 저 별 중에 / 하나가 된다’는 전설 같은 어조로 시작하고 있다. 이는 그가 결론적으로 ‘유난히 반짝거리는 / 저별이 어머니별인가’라는 의문형으로 ‘어머니별’을 찾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밤도 뜰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또한 그는 ‘이제 어머니가 되어’ 그 시절을 회상하지만, ‘이미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아니 계시어 / 그리워 슬피’ 울고 있다는 시적 형상은 바로 그 작품의 끝 행에서 적시한 ‘극락왕생하소서’라는 불교적인 기원으로 결론을 마무리하고 있어서 그가 사모곡(思母曲)으로 부르는 노래는 다양한 시적 형상화로 현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어머니’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애틋한 사랑의 흠모(欽慕)가 각 시편에서 발현하고 있어서 그가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내면의 정서를 짐작하게 한다.
- 아련히 떠오르는 어릴 때 고향에서 / 어머니 담아 주신 / 고들빼기김치 맛 그리워라 (「고들빼기」중에서)
- 합장하고 기도 올리시는 / 거룩한 어머니의 손 / 손 중에서 자식 위해 기도하시는 / 어머 니 손이 제일일세.(「고마운 손」중에서)
- 어머니의 고운 모습 /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며 / 청초하게 피었네(「들국화」중에서)
- 어머니 새참 머리에 이고 / 손에 술 주전자 들었네 / 바둑이 뒤따라가고 있었네(「오월의 고향」중에서)
정순자 시인의 고향과 어머니 등에 대한 정적 언어는 그의 상상력(imagination)에서 재생하는 시적 구도를 더욱 공감으로 유로(流露)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일찍이 김남조 시인은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지체 없이 격렬한 전류가 온다. 아픈 전기이다. 아프고 뜨겁고 견딜 수 없는 전기이다.’라고 그의 글 「그 먼 길의 길벗」중에서 말했다. 이러한 모성적인 발현은 정순자 시인에게서도 그 원천적인 생명성을 감지할 수 있는데 그는 이미 수필집『그리운 어머니의 향기』에서 모성적인 동일한 정감으로 천착(穿鑿)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3. 자아의 인식과 생명성 감응(感應)
다시 정순자 시인의 의식에서 살필 수 있는 것은 자아 인식이다. 그 인식에서 생성하는 생명성은 정순자 시학(詩學)의 정점(頂點)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는 그가 작품을 통해서 구가(謳歌)하면서 정립하려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 그에게 내재(內在)한 의식(혹은 관념)의 중심축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나 사물이 존재하는 것을 작품으로 표착하여 중요한 자신의 마음으로 환원(還元)하는 시법이 특징적으로 탐구되고 있다.
긴 여름 매미 소리 따라
살며시 여행 떠나고
귀뚜라미 소리 천천히 손잡고
가을을 데려 오고 있구려
고추잠자리 옛 추억 그리워
허공을 나는 춤사위
논두렁 너머 곡식 여무는 소리
수확의 기쁜 소식 들려오는데
나도 성숙해 가는 것인가
영혼의 한 자락이 다가오는
세월 따라 단풍이 든다.
--「가을이 오는 소리」전문
희망을 가질 수 있어서
오늘이 감사하네
하루 시간을 소중히 하는
내일 향한 조급함 버리고
천천히 자성(自省)으로 살고 싶어
할 일 미루지 않은
노력하는 삶
마무리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고 싶어
깊은 여유로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넉넉한 마음으로 살고 싶어
살아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것을
깨닫는 이 순간이 좋아.
--「오늘」전문
그렇다. 정순자 시인은 자아 인식을 위해서 우선 ‘나는 성숙해 가는 것인가’라는 의문의 어조로 스스로 자신을 확인하면서 계절적인 가을과 ‘세월’에서 ‘수확의 기쁜 소식’이 자신의 ‘성숙’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허공’이라는 무한(無限)의 상상적 공간과 ‘영혼의 한 자락이’라는 상상적 시간의 융합(融合)이 대칭을 이루고 있어서 그가 구현(具現)하려는 시적 인식이 궁극적(窮極的)으로 존재의 문제에 까지 그의 시정신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천천히 자성(自省)으로 살고 싶어’라거나 ‘깊은 여유로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 넉넉한 마음으로 살고 싶어’라는 화자의 어조는 바로 ‘노력하는 삶’을 위한 소박한 기원으로 현현되고 있다.
그의 자아 인식은 ‘밤하늘 / 은하수 강물에 / 멱을 감으며 /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 은하수밭에 시(詩) 모종 뿌려 / 하늘나라에 시가 흐르는 / 시(詩) 밭 만들어 볼거나.(「별밭 만들어」전문)’ 혹은 ‘가을이 소리 없이 / 옷깃으로 스며드는 이때 / 『갈대연가』 수필 2집은 / 부족하지만 나에게는 / 어여쁜 옥동자 / 무사히 해산하였음을 / 고개 숙여 감사하네 / 쉬지 않고 문학의 힘든 길 / 한 발짝 / 한 발짝 천천히 / 내디디어 보려네.(「아름다운 수확」전문)’라는 어조와 같이 ‘시(詩) 밭’을 만들거나 부족한 수필집 ‘『갈대연가』’를 계기로 문학의 길을 확고하게 정립하려는 의지가 굳건하다.
정순자 시인의 자아는 바로 이러한 존재문제와 상통(相通)한 의식이 충만하고 있는데 대체로 그 경로의 확인에는 인식과 성찰에서 야기(惹起)된 현실성(reality)과의 갈등(혹은 고뇌(苦惱))이 해소되는 융합과 화해의 해법을 탐구하고 있다. 이러한 명징한 화해는 그가 여과(濾過)한 갈등의 요소들이 결국 그의 진정한 기원의 의지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그가 심취(深趣)하면서 절대적인 신심(信心)으로 정착시킨 불교와의 인연도 그의 내면에서 숙성된 인생관으로 시정신(poetry)과 일치하려는 문학성을 예감하게 한다. ‘스님 목탁 소리 맞추어 / 신도들 무릎 꿇어 합장 절하건만 / 다리 아파 나만이 / 따라 절할 수 없어 / 앉아 절하며 서서 절하고 있네(「정초 기도」중에서)’라거나 ‘그곳에 오래 머무르지 마시고 / 사바세계에 다시 오셔서 / 못다 이룬 일 이루시어 / 오래토록 / 중생 깨우치는 법문하여 주소서(「지관 스님에게」중에서)’ 등의 불심(佛心)에서 창출한 작품들은 더욱 신선한 감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녹음 속에 침묵한 길상사
법정스님 떠나신 곳
신도들 묵언 중 여전한 참배
무소유(無所有) 깊게 품으니
발걸음 가벼워지네
길상화 화주 비석 앞
졸졸 흐르는 개울물
그녀의 눈물인가
숲 속에서 구슬피 우는
뻐꾸기 백석의 혼백인가
무릎 꿇고 참회하는 중생들
무소유의 합장 앞에서
기원의 모습
천태만상이어라.
--「성북동 길상사」전문
그렇다. 정순자 시인이 인식하는 ‘나’는 어쩌면 사찰(寺刹)에서, 또는 부처님에게서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법정스님이 떠나간 곳’이지만, 그는 지금도 ‘무소유의 합장 앞에서 / 기원’하고 참배하면서 그 법문을 경청(傾聽)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를 찾는 일은 우리들의 귀중한 생명과의 함수(函數)관계를 더욱 공고(鞏固)하게 정리함으로써 정순자 시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그가 추구하는 가치관의 규범(規範)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도 부처님 성지 녹야원’을 방문하기도 하고 ‘법정스님 다비식’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일찍이 프랑스의 여류작가 보부아르는 ‘내가 나로 인해서 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그리고 내가 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참여하고 있는 현실적인 경우입니다. 객체가 나에게 속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나로 인해서 세워질 필요가 있습니다.’라는 명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 자신의 존재’는 자아의 인식을 더욱 차원 높게 설정하는 인생이며 문학인 것이다.
4. 자연 풍광에서 접목한 서정
우리 시의 원류는 인간이나 자연 모두에게서 서정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현대시의 위의(威儀)나 본령(本領)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들의 존재를 탐미(眈美)하는 시적 진실의 발현이라면 우리 시문학이 갈망하는 진정한 지향점은 바로 서정적인 시법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순자 시인은 먼저 자연 풍광에 심취해서 그 자연 속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하도 거기에서 파생하는 섭리(攝理)에 동화(同化)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가 시각적으로 응시한 사물들(자연)이 그가 간직한 내재적 정서와의 순환(循環)이 어떻게 변화하고 또는 융화(融和)하고 있는가를 시적으로 구명(究明)하는 시법이기도 하다.
(1) 철 따라 아름다운 자태
뽐내던 호수
오늘은 꽁꽁 얼어 붙었네
얼음 위에
누가 하트 모양
그려 놓아 시선 끄네
호수에 흰눈 남아
철 늦은 갈대 칼바람
떨며 수영하던 새들 어디로 갔을까
침묵으로 봄을 기다리고 있네
--「호수」전문
(2) 그대와 강가를 거니네
강 건너 아파트 숲 속으로
황금빛 해가 숨어 버리네
넘어간 해가 억울했는지
하늘에 넓게 노을 토해 내네
여인의 고운 치마폭 펼쳐 놓았네
붉게 녹아든 강물
노을에 물들어 상기된 얼굴로
두 사람은 걷네
이제 넘어가는 노을은
우리들 가슴 속에서
침묵으로 다시 꿈꾸네.
--「저녁 노을」전문
(3) 땅속에서 따뜻한 기운 올라오는 입춘
지난 지 며칠 되었건만
마당가 잘 싸매논 놓은 수도꼭지
혹한에 얼어붙어 풀리지 않네
남쪽 매화꽃 곱게 피었는가
바람 한 줄기 멀리서 소식 전해 오는데
집 앞 매화나무 가지 꽃눈은
아직도 소식이 들리지 않네.
--「입춘」전문
이 작품들은 자연 정경(호수)과 시간성에 따른 자연의 변화(노을), 그리고 계절(입춘)이 적시하는 메시지들은 곧 정순자 시인의 정서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메시지들의 온화한 소리들을 엿듣고 있는듯 하다.
고 김준오 교수의 유명한 『시론(詩論)』에 따르면 시인과 사물, 사건, 상황 등이 통일의 상태를 이루게 되는 것을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감상적 오류(誤謬)’라고 하는 자연의 인격화에는 동화(同化-assimilation)와 투사(投射-project)라는 두 원리가 작용하게 되는데 동화는 시인이 모든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하는 것이고 투사는 시인이란 정체가 없기 때문에 그가 계속해서 어떤 다른 존재를 채우는 것, 곧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원리를 말한다.
이것은 낭만적 자연관의 두 가지 현상인데 정순자 시인이 관찰하는 자연도 이러한 두 가지 형태에 정서의 근원을 두고 서정적 심원(深遠)을 동화하거나 투사하는 시법을 적절하게 탐색하고 있어서 그가 창조하고자 하는 시적 진실 혹은 인생적 진실을 자연 서정과의 교감(交感)을 통해서 구현하려는 의식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것은 (1)의 작품에서 ‘호수’는 ‘침묵으로 봄을 기다리’는 자연(‘아름다운 자태’와 ‘철늦은 갈대 칼바람’ 등)이 정순자 시인의 정서에서 객관적 상관물로서 동화하고 있으며 (2)는 ‘그대와 강가를 거’닐거나 ‘우리들 가슴 속에서 / 침묵으로 다시 꿈꾸’는 투사의 경우가 확연하게 시적 구도를 형상화하고 있다.
다음 (3)에서는 사계 중에서 ‘입춘’이라는 무형의 시간성에서 ‘매화나무 가지 꽃눈’을 기다리는 형상은 우리 인간들이 자연 속에 묻혀서 그것에 동화하고 때로는 투사하는 함축(含蓄-comprehed)이 적시되어 있어서 그의 내면에 잠재된 인생관이 더욱 돋보이게 현현되고 있다.
이 밖에도 작품「봄은 오고 있네」에서 ‘실내 꽃들 생기 되살아나 / 봄은 정녕 사랑의 향기를 피우네.’라거나 작품「단풍잎 고르기」에서 ‘단풍잎 사이로 빛나는 가을 햇살 / 온산에 가득 뿌려진다.‘, 작품「북한산」에서 ’산울림으로 계곡에 웃음꽃 피어 / 아름답게 온산에 메아리치네‘ 등과 같이 만유(萬有)의 자연을 감흥(感興)하면서 투영한 시심(詩心)들이 공감을 유로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순자 시인은 자연을 통해서 실생활에서 실질적으로 호소하고 싶은 기원의 의지는 무엇일까. 다음 작품「자연」전문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인간이 지구를 학대하고 상처 내면
자연이 분노하여 폭발하고 무너져
여기저기 수많은 인공적 구조물이
맥없이 매몰되고 파괴되었다
인명이 살상되고
가옥, 재산 잃은 이재민이 떠돌고 있는데
자연 속 진리를 망각한 채
그 동안 착취만 하였으니
자연인들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는가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자연 친화적인 삶을 영위해서
자연 생태문학에 귀기울이며
자연 사랑 주제의 글을 써야겠다.
보라. 정순자 시인의 비장한 자연 사랑의 다짐이다. 자연을 오염시키거나 파괴하면 결국 우리 인간들도 생명을 보전(保全)하지 못하는 위기의식에서 발현한 ‘자연 생태문학’에의 깊은 성찰과 ‘자연 사랑 주제의 글’을 앞으로 창작해서 계도(啓導)하려는 시 정신에 근원을 두고 있다.
정순자 시인은 어쩔 수 없는 서정 시인이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형상화하면서 창조하는 시 정신뿐만 아니라, 그가 평소에 간직한 삶의 방식이나 그 형태는 우리 시문학이 갈구(渴求)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humanism)의 철저한 신봉(信奉)으로 그의 진정한 정순자 시학으로 승화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정순자 시집『』에 대한 시 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시의 발상이나 이미지의 추출 그리고 주제의 투영 모두가 그 시인의 체험에서 비롯되고 그 체험이 중요한 상상력으로 발산하여 한 편의 작품으로 형상화하게 된다.
정순자 시인도 이제 어쩔 수 없이 희수(喜壽)라는 숙성된 인생 체험이 진액(津液)으로 분사해서 그가 기원하고 여망하는 생애의 진실을 시 속에서 탐색하는 노년(老年)의 인생관이 더욱 정갈하고 순박한 감동의 언어로 현현되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비평가 리처즈는 우리의 일상생활의 정서생활과 시의 소재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기교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것만이 단지 근본적인 차이일 뿐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시적 소재나 주제의 설정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체험되고 실제로 살아오면서 지각한 다변적인 현실적 요소들이 언어를 매체로 해서 공감대를 유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시의 흐름은 우리들의 정감에서 기쁨이든 슬픔이든 항상 그 자체 속에서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보들레르(프랑스의 근대 탁월한 시인이며 상징주의의 비조(鼻祖))의 명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시가 우리들의 영혼과 교감하는 음악이 한 자락 바람결과 같이 항상 인간의 희비(喜悲)가 넘쳐 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슬픔과 아픔의 비가 / 내 마음에 내린다 // 마음의 하늘이 파래지고 / 새싹 돋아날 봄이 오면 // 모든 고통 걷어 내고 / 가슴 공간에 묘목을 심어 // 알찬 열매 열리는 / 나무로 자라게 하리.(「비」전문)’라는 비장한 각오와 같이 ‘나’의 존재에 대한 스스로의 여망이 그의 심중에서 시와 동행하는 시적 진실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의 창조는 정순자 시인이 평소에 심저(心底)에 녹아 흐르게 하는 그의 심리적인 안온이 자연과 인간이 서로 화해하고 융합하는 해법을 위해서 그의 평상심이 바로 시로 승화하는 시법을 공감하게 하는 그의 지향적인 문학성을 열정적으로 분사하는 강렬한 신념의 결실이기도 하다.
그것이 존재의 이유이며 자아와 동시에 자연을 교감하는 그의 시적 진실이기 때문이다. 시집 출간을 축하하면서 그의 건강을 기원한다.*
*시집 제목이 결정되는대로 명기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