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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이나 신화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빛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형상대로 신을 만든 것이라 믿는 편인 나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리라. --책 머리에
조셉 캠벨은 실락원의 인간적 의의를 이렇게 표현했다.
선악을 아는 것이 왜 아담과 이브에게 금지되어야 했던가요?
그것을 모르고 있었더라면 인류는 삶의 조건에 동참하지 못한 채로 아직도 에덴동산에서 멍청한 아이처럼 살고 있을 테지요.
결국 여자가 이 세상의 삶을 일군 것입니다.
이브는 이 속세의 어머니입니다.
꿈같은 낙원 에덴동산은 시간도 없고, 탄생도 없고 죽음도 없는 곳입니다.
그것만 없습니까? 삶도 없습니다. 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여성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도 니체가 세워 놓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는 대립적 정식을 문화분석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
겉으로 보기엔 서로 비슷한 여러 인디언 부족의 문화 안에서도 사실은 완전히 판이한 문화유형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아메리카 평원에 사는 대부분의 인디언 부족은 디오니소스형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격렬한 경험, 즉 인간으로 하여금 일상적인 궤도를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수단들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단식이나 고행, 약물, 알콜을 통해서 환상 상태에 이르려 하고, 환상 속에서 어떤 초자연적인 계시를 받고자 한다. 그들에겐 무엇에든지 열광하고 몰입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며 그런 덕목을 갖춘 전투적인 사람을 존경한다.
반면에 뉴멕시코주의 고원지대에 사는 주니 족은 그와 대단히 상반되는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매사에 중용을 중시하며 무엇이든 지나치거나 과도한 것은 불신하고 경멸한다. 용감하고 정열적인 사람은 비난받고, 붙임성 있고 온화하며 남 앞에 잘 나서려 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존경받는다. 어떤 경우에도 감정적인 흥분이라든가 화를 내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사랑이든 증오이든 질투이든 감정을 지나치게 드러나는 것도 역시 혐오의 대상이다. 베네딕트는 이러한 주니 족의 문화를 전형적인 아폴론 형의 문화라고 설명하였다.
신프로이트 학파의 일원으로서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대해서 프로이트와는 다른 견해를 내 놓았기 때문이다.
프롬은 아이들이 유달리 어머니에게 집착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았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어머니는 아이에겐 세계의 전부이다. 아이는 어머니 속에서 어머니의 일부로 자라나, 출생한 뒤에도 역시 어머니의 보호와 보살핌 아래에서 성장한다. 어머니야말로 아이에겐 생명을 주고, 생명을 좌우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어머니에 대한 애저오가 의존심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인물에 대한 집착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낙원, 즉 절대적인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어떠한 책임도 질 필요가 없었던 행복한 상황에 대한 동경심이다. 어른이 된 뒤에도 어떤 사람들은 그 행복한 낙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데 그것은 곧 신경증으로 이어진다. 그 집착을 끊고 홀로 설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이것을 단순히 성적인 문제로 환원하여 설명했다는 것이다.
부친에 대한 적대감 역시 프롬은 프로이트와 다르게 해석했다.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은 어머니에 대한 성적인 욕구와 관련된 게 아니라 사회의 권위주의적인 부자 관계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완전히 예속되어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소유물이며 그의 운명은 아버지에게 완전히 예속되어 있다.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마음에 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 굴복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러한 억압은 자연스레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낳고, 억압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만들며 극단적으로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이러한 갈등 역시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성의 대결로 왜곡시켜 버렸다고 프롬은 비판했다.
나르시시즘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기대한 칭찬을 받는 데 성공하면 더 없이 행복해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데 실패하면 즉 나르시시즘에 구멍이 뚫리면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위축되고 만다. 또 제어할 길 없는 격분에 사로잡힌다. 나르시시즘에 상처를 받으면 우울증이나 증오심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특성과 관련하여 프롬은 특히 '집단적인 나르시시즘'의 위험을 심각하게 경고했다. 어떤 한 개인이 "나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깨끗하고 가장 현명하고 가장 유능하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유능한 사람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당장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나'가 '내가 속한 단체, 집단, 지역, 종교, 국가, 민족' 으로 대치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우리들만이 진리의 소유자'이고 '우리 종교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며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문화적이며 가장 평화를 사랑하고 가장 재능이 뛰어난 민족'이라는 주장이 실제로 공공연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이 집단적 나르시시즘 앞에서는 아무도 한 우스꽝스런 개인 앞에서 했던 것처럼 쉽사리 웃지 않는다. 섣불리 비판했다간 되려 큰 봉변을 당할 수 도 있다.
집단적 나르시시즘이 가장 위력을 떨칠 때는 전쟁 때- 열전이건 냉전이건-이다.
'우리 국민은 선량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인도적인데 적군은 사악하고 이중적이며 잔혹하다. 우리는 자유와 정의의 투사인데 적군은 악의 화신들이다.'는 식이다. 정치가들에 의해 조작되거나 선동되지 일쑤인 이런 집단적 나르시시즘은 극단적인 배타와 광신, 증오를 낳고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말살하려는 광증을 낳는다. 그래서 프롬은 집단적인 나르시시즘을 '이성을 잠재우는 치명적인 독약'이라고 갈파했다.
책 머리에
1
내가 속한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아마 다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하여 내 머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자유교양 읽기 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자유교양 읽기에 포함된 필독서였다. 학교 대표로 뽑혀 자유교양 읽기대회에 출전해야 했던 까닭에, 어쩌면 재미있었을 수도 있는 그 책을 나는 아주 지긋지긋해 하며 읽었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길고도 낯선 이름들을 외우고, 얽히고설킨 사건들의 선후와 인과 관계를 따지느라 말이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교양을 넉넉히 쌓을 수 있었던 지라 그 뒤로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련된 인물이나 사건이 나오면 어느 자리에서나 잘난 척을 할 수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머리에 박힌 것은 그리스 문화는 기독교와 더불어 서구문명을 꽃피운 두 뿌리 중 하나 라는, 중고교를 다니면서 수도 없이 들은 대명제였다. 그리스 문화의 정신이 무엇인지, 그와 대립된다는 기독교 정신은 무엇인지, 그것들이 어떻게 서구문명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인지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그런 줄로만 알고 지냈다. 세계사 시험에 서구문명의 기둥을 이루는 두 가지 정신을 쓰시오 라는 문제가 나오면 척하니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이라고 쓰면서 말이다. 하긴 어떤 말이나 명제를 떠받치고 있는 사람살이의 퇴적층과 그 거대한 부피를 깨닫기엔 너무 어린 나이이기도 했다. 어떤 문명을 관통하는 정신의 실체와 그것의 토대인 동시에 결과로서의 삶의 구체성에 눈뜬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러니 그때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적어도 내게는 얄팍한 상식 또는 전설의 고향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대학 1학년 때 플라톤의 <항연>을 읽은 적이 있었다. 필시 지적 허영심 같은 것 때문에 책을 잡긴 잡았는데 내용이 얼른얼른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서 짜증을 내던 나는 어떤 구정 앞에서 멈칫했다. 제우스신께 맹세코라는 구절이었다. 내가 아는 제우스와 아테네 논객들의 입에서 나온 제우스는 분명히 다른 제우스였다. 내가 아는 제우스는 종잇장 같았지만 그들의 제우스는 고유한 이미지와 역사, 담론을 거느린 살아있는 제우스였다.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의 여러 신들은 저 먼 옛날에, 우리와 다른 어느 땅에서는 박제된 전설의 주인공이 아니라 경건한 섬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들을 섬겼던 옛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신화를 이해하는 깃이었다. 당연히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그때까지의 내 교양은 플라톤의 책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비로소 모든 지식이 천박한 교양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걸 부끄러이 깨달았다. 아울러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내 삶의 무게까지도. 유구한 삶 앞에 나는 아직 유치한 어린아이 였던 것이다.
2
예로부터 서구의 문학과 예술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수많은 예증과 상징, 영감을 빌어 왔다. 정신분석학은 물론이고, 심리학, 교육학 같은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심심찮게 신화 속의 사건이나 인물을 원용하였다. 그런 저런 독서 편력과 그보다 더욱 중요하게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한 인간으로 살아오면서 내가 깨달은 것들에 기대어, 그리스 문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중신주의 이다. 흔히들 고대 그리스 문화의 정신으로 세 가지를 든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로 언표되는 인간 중심주의, 이성과 절제, 중용을 높이 산 합리주의, 민주주의 하는 정치체제를 이룩한 독특한 공동체 문화가 그것이다.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나로선 길게 논할 능력도 자격도 없다. 다만 그리스인들의 인간 중심주의에 대해 인간을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한 인간으로서 내가 이해한 바는 이렇다.
인간이 몸담고 있는 현실의 세계는 늘 모순과 갈등, 탐욕과 다툼으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세계를 더러운 곳으로 부정하고 저 먼 어딘가에 있는 이상향이나 아니면 신이 다스리는 천상의 세계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리스 인들은 비록 불완전하고 모순투성이지만 현실의 세계를 기꺼이 긍정하였다. 또한 그 속에서 곤고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을 귀중히 여겨 모든 것의 중심에 놓았다. 현실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꿈의 나라로 도망가지 않았고 인간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그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영원하고 장엄한 것보다 유한하고 자연적인 것을 사랑하였다.
신화야말로 그들의 그런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그들의 신은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절대적으로 선하지도 않다. 그들의 신은 인간을 확대시킨 존재에 불과했다. 인간이 그렇듯 그들의 신도 결점 많고 연약한, 선악의 이름 아래 인간을 경배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문화는 낙천적이고 명랑하여 생동하는 개성으로 가득 차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 문화를 서구 문명의 뿌리로서뿐만 아니라 전체의 빛나는 유산으로 스스럼없이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3
이 책의 성격을 말하기 위해서는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경위를 좀 밝혀야 될 듯하다. 3년이나 전에 어느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그리스 신화를 단서로 한 교양서를 한 번 써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남에게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번듯하게 소개할 만한 게 없었다. 그런데도 내 친구가 그런 제안을 한 것은 아마도 내가 이것저것 책을 많이 읽었고 또 그간 번역, 취재 같은, 글쓰기와 관련된 호구지책을 이어왔으므로 제가 아는 것을 남에게 전달할 글솜씨는 있지 않겠나 하는 마음에서였으리라.
친구의 격려에 힘입어 그럼 한 번 해 볼까 하던 참에 그 친구가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었다. 내가 무슨 책을... 하는 주저와 머뭇거림에 좋은 명분이 생긴 셈이어서 나는 책의 내용을 놓고 뒤적뒤적 이어가던 생각을 멈추고 말았다.
그런데 그 참에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교양서를 기획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그 출판사가 청소년 교양 잡지를 창간하는 중이어서 얼떨결에 거기다 글을 연재하게 되었다. 그래서 멈추었던 생각을 다시 이으며 쓰기 시작했던 글이 이 책으로 묶이게 되었다. 반쯤은 잡지에 연재되었던 것이고 반쯤은 새로 쓴 것이다. 다 써 놓고 보니 영락없이 친구의 표현 그대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단서로 한 교양서가 된 것 같다.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와 그것을 이유, 원용한 문학, 예술 및 여타 학문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 놓은 책이다. 예컨대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실마리 삼아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실마리 삼아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훑어보는 식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역사, 철학, 고고학, 여성학, 교육학 등등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은 내가 읽은 책들 가운데서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된 부분을 추려내어 신화의 이야기와 짝을 지어준 것이다. 그러니 만큼 이 책은 그다지 창의력 있는 저술은 아니다. 내가 읽거나 알고 있는 것들을 다른 분들이 읽기 좋도록 잘 구성하고 엮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나의 해석과 설명도 약간 붙어 있다.
하지만 나는 신화를 깊이 있게 연구한 학자가 아니니 만큼 그 해석과 설명은 인간을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한 인간의 해석과 설명일 뿐이다.
또 이 책은 신이나 신화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빚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형상대로 신을 만든 것이라 믿는 편인 나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리라. 꽤나 잡다한 이야기가 망라되어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이 책의이에는 한계가 있다. 각 꼭지마다의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은 분들은 보다 전문적인 저서를 찾아보기 바란다.
4
마냥 부끄러울 줄로만 알았는데 원고를 끝내고 나니 약간은 기쁜 마음도 든다. 책을 쓰라고 권유했던 친구 젬마, 연제의 기회를 준 한샘 출판사에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평생 이런 책을 쓸 마음을 내지 못했을 것이고, 마음을 냈다 한들 시작하지도, 더욱이 끝마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쓰면서 참고한, 일일이 밝힐 수 없이 많은 책들의 저자들에게도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특히 탁월한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이윤기 씨의 여러 역서들에서 큰 도움을 받았음을 밝힌다. 읽고 나서 책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만 되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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