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
최명애
한 학기를 마치면서 청도에 있는 목언예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함께 공부하고 있는 문우의 남편분이 운영하는 갤러리다. 시조시인으로 활동하며 화가이기도 한 그 분은 열정과 집념으로 목표를 향해 작품활동과 전시회를 열며 전시 공간을 가꾸고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푸른 산과 하천을 끼고 2차선 도로를 달리다 보니 팻말이 보였다. 이에르바 카페 팻말도 보인다. 골목 안쪽에 주차장에서 문우들과 만나 카페 출입구를 들어갔다. 카페 안은 통창으로 보이는 산과 하천을 마주하고 있어 가슴이 뻥 뚫린다. 약속이나 한 듯 일행들은 통창으로 보이는 풍광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산과 하천의 조화로움에 눈이 멎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멋진 곳에 넓은 땅을 마련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관리를 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닐 터이다. 곧 문학관도 짓는다고 한다. 큰 뜻을 품고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는 부부의 모습에 응원을 보낸다.
글쓰기에 대한 담소를 나누던 중에 작가님도 함께했다. 작업을 하다 팔에 파스를 붙인 채로 오신 모양이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짚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특강을 듣는 느낌이었다. 작품세계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어렵고 힘든 스트레스도 있을 텐데 긍정적인 에너지를 팡팡 뿜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열정 가득한 교수님은 방학 숙제를 8편을 내주신다. 두 달간의 방학 동안 2번을 만나서 단합도 하고 과제 점검도 해보자고 하신다. 진짜 마침표를 찍을까 염려되시나 보다. 한 학기의 마침표는 다음 학기를 위한 쉼표라고 생각한다. 쉬는 동안 책도 읽고 이미 써 놓은 글의 퇴고도 하면서 보내기로 해보자.
담소 후에 작품전시관을 둘러보려고 나갔다. 평생 문학과 그림을 일군 작가님의 공간에서 한 학기 종강을 맞게 되어 뜻깊었다. 글쓰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관심을 두고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겠기에 기대해 본다.
상록 수필과의 인연은 몇 년 전에 시작되었었다. 퇴직 후에 친구와 연금공단에 신청했었다. 매주 강의 시간에 맞추어 다녀 보니 생각보다 교통편이 원활하지 않았고, 시간이 오래 걸려 계속 다닐 수가 없었다. 마침, 올해 모집 공고에 장소가 명덕역이었다. 교통편이 좋아서 바로 신청하였다. 역시 만날 인연은 만나지나보다. 불교 용어에 ‘시절 인연’이란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의 현상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분들과의 인연을 받아들이고 함께 나아가면 좋은 시절 인연이 되지 않을까.
교직에 있으면서 마침표를 수없이 찍었었다.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반성하고 다짐하고, 재충전하고 다시 시작하고…. 보람도 있었다. 최선을 다해 인간적으로 아이들을 사랑으로 지도한 것에는 후회는 없다. 아이들이 좋았고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개구쟁이 아이들의 부대낌 속에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지금까지 온 것을 보니 천직이었나 보다. 매일 부딪치는 모든 것들이 내가 만나야 할 시절 인연이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용기를 내어 바꾸는 태도로 생활했다. 요즘 교육 현장이 힘들고, 어렵지만 현명하고 유능한 후배 선생님도 잘해 나가리라 생각한다.
교사의 길을 38년을 지내고 퇴직했다. 조금은 아쉽기도 했지만 다시 시작하는 인생 2모작을 위해 쉬고 싶었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당연하듯이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으니까. 여러 선생님의 축하 속에 퇴임식을 하게 되어 기뻤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존경의 대상이면서 감시의 대상이 되고 교사 신분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였기에, 학교와 가정과 사회에서 늘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생의 2막은 옷 한 겹을 벗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회에 봉사하고, 나 자신을 위한 삶으로 가꾸어 가려고 한다. 마침표를 찍는 동시에 쉼표도 있고 새로운 시작도 있다.
돌아보니 즐겁고 기뻤던 일 보람 있었던 시간도 많았다. 크게 자랑할 만한 자취를 남기지 못했지만 제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 생각하고 욕심 없이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온 것은 자랑스럽다. 지나온 흔적들과 추억을 소환하여 글쓰기에 마음을 담아보고 싶다.
종강 선물로 작가의 문학 앨범을 한 권씩 받았다. 묵언예원과 이에르바에서의 종강은 글쓰기로 맺어진 참 좋은 인연이었다. 목표를 가지고 집념과 열정으로 달려왔고, 작가로서의 소명을 다하는 모습이 책 속에 담겨있었다.
‘힘겹다고 함부로/ 마침표 찍지 마라/ 그리움도 설레임도/ 낡고 삭아 지겹지만/ 끝나도 끝나지 않은/ 상처 안에 길 있으니’ 마침표라는 시조다. 한 학기를 마치며 쉼과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게 된다.
첫댓글 명애선생님 글을 잘 풀었습니다 반드시 훌륭한 작가가 되시어 더욱 좋은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끝이 시작이고 시작이 끝인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목언예원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소소한 공간이라 마뜩치 않은 부분도 아직은 많지만 저희들 여력이 그렇게 밖에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늘 신실하시고 겸손하신 명애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