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
본문 : 이사야9:1~7
일시 : 2015. 12. 6. 주일오전예배
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는”이라고 하는 단어의 의미는 “앞에서 이야기한 모든 내용들의 결론은”이라는 겁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모든 내용들은 결국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일들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여기서 ‘한 아기’는 ‘한 아들’과 동급으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어떤 분으로 오실 것인지를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나신, 아니 나실 한 아기는 어떤 분이실까요? 그분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걸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의 이름을 통해 그분이 어떤 분으로 우리에게 오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분의 사역을 통해 그분이 어떤 분으로 우리에게 오시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분의 이름과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는 어떤 분이신지 함께 알아봅시다.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는 기묘자(wonders / 히 ‘펠레’)입니다. =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 역전과 반전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1절,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역전과 반전이 일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옛적에는... 멸시를 당하게 하셨고, 후에는...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 역시 역전과 반전을 행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이름은 기묘자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키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고통을 받던 자들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흑암에 있던 자들에게 인생역전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전혀 상상치 못했던 일을 행하시는 기묘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십시오.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시며, 귀신들을 쫓아내시는 예수님의 사역들은 모두가 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가 다 놀랐습니다.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능력에 놀랐습니다. 삶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이 다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기묘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이 오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삶에 놀라운 일을 행하시려고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 교회에 오십니다. 우리 가정에 오십니다. 이 나라에 오십니다. 병든 지구촌에 오십니다. 역전과 반전을 행하시며 놀라운 일을 행하시려고 오십니다.
저는 우리 아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우리 아들이 중앙대에 들어가고 싶어서 수시원서를 두 개를 중대에 넣었습니다. 하나는 가능성이 있는 전형으로 넣었고, 하나는 특목고 학생들이 몰리는 전형으로서 거의 합격을 기대할 수 없는 전형이었습니다.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전형에서 1차 합격을 했고, 면접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최종에서 경희대 1차와 함께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실망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저희는 뭐라고 말할 수 없이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전혀 바라지도 않았던 중대 전형에서 최종 발표가 났는데 합격통지서가 날라온 겁니다. 아들은 흥분해 가지고 어쩔 줄 몰라하면서 좋아했습니다. 저도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바라지도 않았던 전형에서 합격을 하게 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고 아들은 말하지만, 그렇게 합격할 수 있는 이유대로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역전과 반전의 드라마를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분이 오십니다.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시려고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시려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 그분은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기묘자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는 모사(counselor / 히 ‘야아츠’)입니다. = 지혜로운 상담자입니다.
2절,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심으로 말미암아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빛으로 행하게 됩니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추입니다. 그래서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들이 빛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렇게 한 아기는 빛이 되십니다. 흑암에 행하는 자들에게 빛이 되십니다. 사망의 그늘에 거주하던 자들에게 빛이 되십니다. 그래서 흑암에서 행하던 자들과, 사망의 그늘에 거주하던 자들을 빛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는 흑암에 행하던 자들, 사망의 그늘에 거주하던 자들을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는 지혜로운 상담자가 되십니다. 멘토가 되십니다. 모사가 되십니다. 지혜로운 상담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만 하면 흑암에서 빛으로, 사망의 그늘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고린도전서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지혜이고, 예수님의 사역이 지혜이며, 예수님의 삶이 전부 지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로 이 땅에 오셔서 흑암에 행하고, 사망의 그늘에 거하던 우리에게 지혜로운 상담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빛으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카운슬러가 되셨습니다. 인간의 제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로운 것도 하나님의 가장 미련한 것만 못합니다. 하나님의 지혜,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어리석고 미련한 인간들의 모사로, 지혜로운 상담자로, 멘토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어릴 때는 모르는 것이 많아서 가르침이 필요하고요. 십대에는 올바른 관점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조언자가 필요하고, 진로 문제 때문에 상담자가 필요합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할 때 인생선배들에게 조언이 필요하고요. 결혼을 할 때에도 여러 사람들에게 상담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결혼 후에는 부부의 갈등 때문에 상담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이렇게 죽을 때까지 조언자, 상담자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가 바로 우리 인생의 최고의 카운슬러가 되십니다. 우리는 지금 그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을 나의 인생의 최고의 카울슬러로 모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는 전능자(Mighty one / 히 ‘깁보르’)입니다. =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는 능력자입니다.
4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는 어떤 분이십니까? 당신의 백성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어깨의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드렸듯이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는 역전과 반전의 기묘자이십니다.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는 흑암에서 행하던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시고, 사망의 그늘에 거주하던 우리를 빛으로 이끄시는 지혜로운 상담자시며, 멘토시며, 모사가 되십니다.
그리고 4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무겁게 멘 멍에, 어깨의 채찍,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어 버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 곧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자가 되십니다. 능력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간은 강하고 지혜로운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연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를 기다립니다. 그분은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는 영원한 아버지(Everlasting father / 히 ‘아브’ / 아람어 ‘아바’)십니다. = 즐거움과 행복을 보장해 주는 아버지십니다.
3절,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 말씀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창성하게 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자녀들에게 즐거움을 더하게 하시는 아버지, 추수하는 즐거움을 주시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탈취 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과 같은 행복을 주는 아버지, 그래서 자녀들이 모두 그분 앞에서 즐거워하게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는 우리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보장해 주시는 아버지가 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영원한 아버지’가 되신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시는 아버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라는 겁니다. 그분은 우리가 잠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즐거움과 행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들어가서도 즐거움과 행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 주시는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를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112장 3절 “이 괴롬 많은 세상에 짐 지고 사는 자, 그 험산 준령 넘느라 온 몸이 곤하나,
2절, 이 슬픔 많은 세상에 큰 위로 넘치고, 온 세상 기뻐 뛰놀며 다 찬송하도다.“
이 슬픔 많은 세상에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 그분이 바로 우리에게 나신 바 된 한 아기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는 평화의 왕(Prince of peace / 히 ‘샬롬’)입니다. = 전쟁과 분쟁이 끝나고 평화가 임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5절,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모든 적들을 물리치고 승리함으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심으로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그분은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온 세계는 불안과 두려움에 싸여 있습니다. 수많은 난민들이 생겨나고 갈 곳이 없어 고통하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무서운 자연 재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류에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이 평화통일을 이루고, 노조가 하나가 되어 평화를 누리고, 정부와 민노총이 하나가 되어 평화를 이루는 날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도 건강의 문제, 자녀의 문제, 부부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문제 문제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강을 잃어버린 채 염려와 걱정과 한숨지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삶에 평강이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립니다.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를 기다립니다. 그분은 바로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오셔야 합니다. 이 세상에 오셔야 합니다. 이 나라에 오셔야 합니다. 나의 마음의 중심에, 나의 삶의 중심에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세상은 모두 그분을 영접해야 합니다. 평강의 왕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지구촌의 모든 전쟁과 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평화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평화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평화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립니다.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를 말입니다. 평강의 왕이신 한 아기의 탄생을 우리는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우리에게 나실 한 아기를 기다립시다. 사모합시다. 기묘자이신 그분, 상담자이신 그분, 저능자이신 그분, 영원한 아버지가 되시는 그분, 평강의 왕이신 그분을 사모하며 기다립시다. 그분을 영접할 준비를 합시다. 조용히, 경건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차분하고도 경건한 마음으로 그분을 기다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