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제주 대정교회에서 만주 명동교회까지
오래된 예배당이 간직한 문화와 역사를 새기며
진정한 삶의 가치와 종교의 본질을 탐색하다
예수가 흘린 눈물에 감화되어 길을 떠났다
그곳에 아름다운 세계가 감춰져 있었다
두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자 계명대학교 타불라라라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인 서영처 씨가 우리나라의 오래된 예배당을 순례하며 그곳에 담긴 문화와 역사를 돌아보는 에세이 『예배당 순례』를 발간했다. 전공인 음악과 문학을 베이스로 인문학의 여러 분야를 폭넓게 접목한 교양 에세이를 꾸준히 펴내고 있는 저자가 이번에는 작은 교회, 예배당에 눈길을 주었다. 저자는 제주도 대정교회에서 만주 명동교회까지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되어온 예배당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처음 정신을 지켜가는 예배당과 그곳을 가꾸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순례의 발걸음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 선과 악, 삶과 죽음 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져 진정한 삶의 가치와 종교의 의미를 탐색하는 데로 나아간다.
“예수께서 우셨더라(Jesus wept.).” 저자는 어느 날 무심코 읽은 이 구절에 감화되어 길을 떠난다. 지극히 인간적인 예수의 눈물에 동질감을 느끼고, 혼탁한 세상에서 진리의 빛을 찾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진 까닭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 있는 오래된 예배당들을 찾아 나선 순례는 수년에 걸쳐 느리게 이루어지지만 그는 그곳에서 이 시대의 교회가 잃어가고 있는 본질적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거기에는 이름도 빛도 없는 초라한 예배당과 그곳을 지키며 믿음을 실천해 나가는 소박한 사람들이 있었다. 도시의 화려한 대형교회와 달리 작은 예배당은 하나같이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경계하거나 용건을 묻는 사람도 없었다. 들어가 잠시 묵상하거나 눈을 감고 앉아 여독을 풀 수도 있었다. (중략) 그곳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아름다운 세계가 감춰져 있었다. 물질을 기준으로 재편되는 세상에서도 소유와 소비의 속물적인 삶을 벗어나 본질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프롤로그’에서
🏫 저자 소개
서영처
대학과 대학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으며 국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 계간 『문학/판』에 이인성의 추천으로 시 5편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데뷔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피아노 악어』와 『말뚝에 묶인 피아노』, 인문학을 바탕으로 클래식 음악을 소개한 에세이 『지금은 클래식을 들을 시간』, 노래를 통해 시대정신과 대중의 욕망을 해석한 『노래의 시대』 등이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목차
프롤로그: 예배당 순례를 나서며-예수께서 우셨더라
1. 나를 키운 것은 주일학교
2. 가난한 종지기의 예배당-안동 일직교회
3. 나주평야를 굽어보다-나주 광암교회
4. 윤동주의 십자가-명동촌 명동교회
5. 양동마을의 엎드린 교회-양동교회
6. 그대를 향한 사랑처럼 푸르다면-최용신의 샘골교회
7. 아늑한 산골짜기의 작은 교회-봉화 척곡교회
8.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언덕-청라언덕과 제일교회
9. 가을 햇살 쏟아지는 밀양-마산교회
10. 천국은 숲의 모습일까-지리산 노고단의 수양관
11.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여수 애양교회
12. 당신들의 천국(賤國), 당신들의 천국(天國)-소록도 교회
13. 줄리언 반스의 방주 이야기-제주도 방주교회와 대정교회
14. 유관순의 만세운동-충남 매봉교회
15. 숲속의 예배당
에필로그: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로 갈 것인가?
📖 책 속으로
일직교회를 다녀온 후 권정생의 작품을 다시 읽었다. 그의 동화와 산문은 하나같이 찢어질 듯 가슴 아픈 사연과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는 감동이 있었다.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은 모두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그들의 위축된 모습을 보며 내가 지나온 가장 슬프고 아픈 시간들을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모습이었고 과거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다.
권정생은 가난이 만들어놓은 온갖 불행을 겪으며 가장 낮은 곳에 임하는 예수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것을 작품으로 쏟아냈다. 그의 동화는 세상의 가장 미천한 존재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보여주며 이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전하고 있다. 그것은 가장 낮고 천한 자리까지 내려가본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37쪽)
명동촌은 유학을 숭상하는 전형적인 반촌이었다. 그러나 유림들은 신학문과 민족교육을 위해 세계 열강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만주에서 일본의 감시를 어느 정도 따돌리며 구국 활동을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을 고민했고, 사흘 밤낮에 걸친 격론 끝에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명동촌은 보다 큰 목적을 위해 유구하게 지켜오던 유교적 전통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기독교로 집단 개종을 단행했다. 명동촌의 유림들은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실학자적 인물들이었다. 이들의 사상적 전환은 당시 유례없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68쪽)
척곡교회는 지명을 따서 이름을 지었고 명동서숙은 마을 이름을 따서 교명을 지었다. 척곡리는 양지마을 또는 명동(明洞)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밝을 명(明) 자는 산과 하늘이 높은 척곡리를 뜻한다. 이곳은 건문골(建文谷)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름으로 미루어 보아 이 골짜기는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둔 사람들이 많았던 곳이다. 명동서숙(明洞書塾)은 김약연 등이 용정 명동촌에 세운 명동서숙(明東書塾)과도 관련이 깊다. 척곡리의 명동서숙과 북간도의 명동서숙은 비슷한 시기에 설립한 민족교육과 민족운동의 산실이다. 명동(明洞)과 명동(明東)은 둘 다 조선을 밝히는 빛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담은 이름이다. (114쪽)
마산교회는 신사참배를 단호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마산교회 이인제 전도사는 신사참배로 사직한 한상동 목사를 청빙하고 자신은 마산교회를 떠나 남북을 오가며 은밀하게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펼쳤다. 마산교회는 한상동 목사와 박수민 장로가 중심이 되어 신사참배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일본 순사들의 예배 방해가 집요했다. 그러나 교회는 끝까지 신사참배와 동방요배를 거부했다. 두 사람은 밀양경찰서에 불려가 온갖 구타와 모욕을 당한 끝에 한상동 목사는 평양형무소로 끌려가고 박수민 장로는 구타로 청력을 잃은 채 석방되었다. (145~146쪽)
순교할 일은 없지만 어떤 시대보다 예수를 믿고 그 믿음대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시대이다.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신장되어 누군가에게 함부로 간섭할 수 없고, 즉물적인 감각과 쾌락을 추구하는 시대인 만큼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들이 도처에 있다. 늘 스스로를 돌아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
최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루터대학교에 재직 중인 독일 출신의 이말테 교수가 한국 교회의 위기와 희망을 역설한 바 있다. 그는 한국 교회의 위기에 대해 율법주의와 교권주의, 돈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현세주의, 도덕적 타락 등을 지적했다. 지금 한국의 개신교회가 루터 시대의 가톨릭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개혁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이라는 뜻이다. (151쪽)
국가와 이웃, 친척과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은 백정과 한센병 환자, 결핵 환자, 부랑자를 돌본 이도 선교사들이었다. 선교사들은 조선에서 가장 천대받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치료해주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 인간은 신분과 지위,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그 자체로서 정당성을 가지는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먼 나라의 낯설고 불편한 환경에서 미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신앙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의 믿음과 희생, 헌신과 봉사는 하늘과 사람 사이의 담을 허무는 이사무애(理事無碍)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을 허무는 사사무애(私事無碍)의 마음이며, 우리 전통사상이자 교육의 기본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과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정신에 가닿는 것이었다. (167쪽)
손양원 목사의 신앙 덕목은 충직과 일관성이었다. 그를 생각하다 보니 브래드 피트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중의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다. 도박꾼들의 폭력에 아들을 잃고 순식간에 늙어버린 매클린 목사는 마지막 예배에서 이런 설교를 한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 참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참 인간이 된다는 뜻이다. 손양원 목사는 삶이 도전받을 때마다 사랑과 믿음으로 응전했다. 손양원 목사의 삶은 욥의 역경을 연상시킨다. 그들이 당한 일은 그들의 악덕으로 야기된 일이 아니었으며, 삶과 죽음, 명성과 불명예, 고통과 쾌락, 부와 가난은 선한 자에게도 악한 자에게도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다. 선과 악, 생과 사는 양극에 있으면서도 한쪽이 다른 한쪽을 불러들일 때 더욱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는 모순적이면서도 포괄적인 구도이다. (185~186쪽)
믿음은 들음의 영역이다. 오래된 사원은 숲의 형식을 하고 있으며 들음을 강조한다. 높은 궁륭은 성가가 퍼져 나갈 수 있는 공명의 공간을 고려했다. 대사원이 모방하고자 한 숲의 소리는 새소리,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나뭇잎 소리, 시냇물 소리, 번개와 천둥, 폭풍우 치는 소리였다. 이것은 생명의 소리이며 인간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자연의 소리이다. 자연 속에는 신성이 깃들어 있다. 자연의 소리는 신의 음성에 가장 가까운 소리이다. 숲이 한 권의 방대한 책이라면 대성당 또한 수많은 도상과 상징으로 가득 찬 한 권의 두꺼운 책이며 노래로 가득 찬 악보이자 악기이다. (250쪽)
🖋 출판사 서평
한국 교회에 참된 기독교 정신을 일깨우는
유서 깊은 예배당과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
동화 작가 권정생(1937~2007)의 발자취가 살아 있는 안동 일직교회에서 시작된 순례는 남으로는 제주도, 북으로는 만주 조선족자치주까지 이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소설가인 박화성(1903~1988)의 작품 「한귀(旱鬼)」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나주 광암교회, 일제강점기 만주 지역의 기독교 공동체로서 민족교육과 항일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 명동촌과 명동교회, 전통 속에 숨어 전통과 조화를 이루는 양동마을의 양동교회,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 최용신(1909~1935)이 농촌계몽운동을 펼친 안산의 샘골교회, 예배와 교육을 중심에 두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민족교회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봉화 척곡교회가 차례로 소개된다. 뒤를 이어, 기독교가 대구 지역에 뿌리내리는 데 중심 역할을 한 청라언덕과 그곳에 세워진 대구경북 지역 최초의 교회인 제일교회,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거점으로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와 열사를 배출한 밀양 마산교회,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돌아보게 하는 지리산 노고단 수양관, 근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용서와 사랑을 보여준 손양원(1902~1950) 목사와 여수 애양교회, 한센병 환자들이 고통의 세월을 이겨낸 ‘당신들의 천국(天國)’ 소록도 교회, 재일동포 건축가 아타미 준이 구약성경의 내용을 모티프로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해 지은 제주도의 방주교회와 제주도 첫 목사인 이도종 목사가 사역한 대정교회, 독립운동가 유관순의 모 교회이자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모의한 충남 매봉교회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속에는 세상에 몸을 던져 불의에 저항하고 민중 곁에서 사랑을 실천한 초기 기독교의 역사가 생생히 담겨 있을뿐더러 오늘도 그 정신을 지키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이들 교회 및 예배당의 역사적 내력과 현재 모습을 시와 소설, 노래 등 문화예술 작품과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답사하며 찍은 사진도 함께 실어 현장감을 더했다.
기독교는 한국의 근대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구의 근대가 기독교와의 단절에서 시작된 반면 한국의 근대는 기독교의 전개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한 한국의 기독교는 하층 민중과 함께 했다는 데에 의미가 크다. 기독교가 주로 미국 선교사를 통해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청교도정신을 강조하게 되었고, 술 담배와 축첩, 놀음을 금지했으며 근면 검약하는 생활태도를 권장했다. (47~48쪽)
개신교는 활발한 교육운동을 전개했고 예배를 통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전파하고 일제의 침략에 맞서는 애국기도회 등을 개최하며 청년들을 적극적인 항쟁으로 이끌었다. 일제는 개신교를 배일집단으로 간주했다. 1907년 도산 안창호가 서북 기독청년을 중심으로 설립한 애국비밀단체인 신민회의 활동, 1910년 무관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독립자금을 모으던 황해도 지역의 기독교 애국인사 160명이 검거된 안악사건, 같은 해 12월에 일어난 데라우치 총독 암살사건, 1911년 105인 사건 등은 기본적으로 항일의 성격을 띤 기독교 단체들의 투쟁 활동이었다. 일제는 기독교인과 선교사들을 탄압해 저항세력을 해산하고 일체의 항일운동을 근절시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166~167쪽)
하나님 앞에 홀로인 고독하고 가난한 처소,
오래된 예배당에서 종교의 의미와 삶의 길을 묻다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된 지 100년이 넘었다. 그간 기독교는 선교, 교육, 의료, 한글보급, 문맹퇴치, 애국계몽운동, 여성운동 등 여러 분야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유서 깊은 교회들에서 3ㆍ1운동 참여, 신사참배 거부, 순교 사례를 접하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현재 기독교는 여러 측면에서 사회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교권주의와 대형화, 돈에 대한 지나친 관심, 도덕적 타락 등 예수가 피 흘리며 희생하여 가르친 본질과 멀어져가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한 비판을 곳곳에 담고 있다. 저자는 내적 성장을 멈춘 한국 교회가 내부에서 자정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예전에 기독교는 성실함과 건전함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어느새 부패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순교할 일도 박해받을 일도 없는 기독교가 태평성대를 누리다 보니 물질추구와 탐욕, 타락의 길로 들어서버렸다.”(150~151쪽) 저자는 한국 교회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낮은 자세로 섬김의 미덕을 보여주어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한다.
예배당 순례는 우리 삶에서 종교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음악을 전공한 시인인 저자는 종교와 예술의 유사점을 읽어낸다. “종교와 예술은 전혀 새로운 지평을 접촉하는 통로이며 새로운 감동과 새로운 해석이 만나는 장이다. 인간은 새로운 세계를 직관하고 느낄 때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256~257쪽) 그러하기에 우리는 삶에 새로운 지평을 선사하는 종교라는 초월적 세계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풀이하는 과정을 거듭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삶을, 그리고 믿음을 늘 새롭고 가치 있는 것으로 빛나게 해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