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0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하나님의 깃발
요 12:32~36
<깃발>
요즘 채널A에서 ‘강철 부대’를 방영합니다.
한국에 있는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들이 출연하여 극강 체력을 자랑합니다.
눈밭에 뒹굴고 철조망을 통과하고, 40키로 짜리 타이어를 들고 뛰고, 외줄을 탑니다.
강철 부대에서 이들이 팀미션 수행 때 반드시 들고 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뭔가요? ~ 깃발입니다. 특전사, UDT, HID 각 팀은 자기 부대 깃발을 들고 뜁니다.
골인 지점에 들어오면, 이 깃발을 제 자리에 딱 세워야, ‘미션 완결’입니다.
☞ 전쟁이 터지면 깃발이 정말 중요합니다.
자기 부대 깃발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바라보고 찾아가야 합니다.
그 깃발을 뺏기면 어떻게 됩니까? 전쟁에서 패배를 의미합니다.
☞ 오늘 설교는 ‘깃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① “깃발을 높이 들어라!” 깃발은 높이 들어야 합니다.
② “깃발 아래 모여라!” 깃발을 높이 드는 것은 그걸 보고 모이라는 뜻입니다.
☞ 외국 관광을 가면, 가이드가 깃발을 하나 들고 앞서갑니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가 보면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곳에서 길을 잃으면 되돌아오기 어렵습니다. 깃발을 잘 따라가야 합니다.
☞ 우리는 한평생 살면서 깃발을 잘 구별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깃발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없습니다.”
어떤 깃발이든지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올바른 깃발을 따르면 올바른 인생이 됩니다.
잘못된 깃발을 따라가면 잘못된 인생이 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은 애당초 이렇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깃발을 따라가는 나그네 길입니다!”
☞ 세상에는 수많은 깃발이 있습니다.
오늘 잠시 묵상해 봅니다.
모두 눈을 감고 “나는 지금까지 어떤 깃발을 따라왔는가?”
그 깃발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설교자의 고백 ~ 내일이라는 깃발>
저는 어린 시절 무척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이때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이 있었습니다.
“내일”을 향한 꿈, 기대, 희망이었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지겠지!
“내일”이 없다면, “미래”가 없다면, 오늘을 정말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이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 참아야 한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제가 좋아하는 격언입니다.
성경 말씀도 “오래 참아라, 오래 참는 것이 사랑의 첫 번째 덕목이다!”
맞는 말씀이고 진리의 말씀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따라 온 깃발을 확인했습니다.
그것은 “내일”이라는 깃발이었습니다.
오늘 설교 준비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내일”에 올인하면서 오늘을 사는 것이 올바른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것이 온당한가?
평생을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나에게 과연 “오늘”이 있겠는가?
사실 “내일”은 기대치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것은 늘, 언제나, “오늘”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내일”이라는 깃발을 쫓아가면서 “오늘”을 희생시키는 것이 성경적일까요?
“내일”에 대한 희망은 간직해야 됩니다.
그러나 “내일”이 나를 이끄는 깃발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오늘 누리고 즐겨야 할 것은 오늘 누려야 합니다.
“오늘 누려야 할 행복은 오늘 누려야 합니다. 행복은 내일로 미루면 안 됩니다!”
☞ 오늘, “내일”이 아닌 어떤 깃발을 따라가야 하는지 잘 들으시고 은혜 누리시기를~
<내가 땅에서 들리면>
지난주 설교 제목, 기억나십니까? “내가 땅에서 들리면”
(32절)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문자적으로는 이런 뜻입니다.
“내가 땅에서 십자가 위에 못 박히면, 너희가 나를 바라보고 구원을 받으리라~”
이 말씀을 우리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이 말씀은, “내가 땅에서 깃발처럼 들리면”입니다.
깃발은 높이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멀리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깃발처럼 높이 매달리면” 이 뜻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내가 깃발처럼 높이 매달려 펄럭거리겠다.
“깃발이 된 나를 보고 모든 사람을 깃발 아래로 모이도록 하겠다!” 이 뜻입니다.
“내가 깃발처럼 들리면,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모으리라!”
2천 년 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는 다름 아니라 깃발입니다. 할렐루야~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은 바로 깃발입니다.
누가 만든 깃발입니까?
누가 연출한 깃발입니까?
☞ 하나님이 만들고 하나님이 연출한 깃발인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십자가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깃발”입니다.
☞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깃발이다!”라고 선포하십니다.
☞ 하나님도 깃발을 만들어 높이 들어 올립니다.
하나님도 “깃발을 높이 드시고, 그 아래 모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하나님의 깃발”입니다.
<세상의 깃발 vs 하나님의 깃발>
하나님의 깃발은 사람이 만드는 깃발과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천으로 깃발을 만듭니다. 각 나라의 국기도 깃발입니다.
국기를 높이 매달기 위해서 깃대를 세웁니다. 깃대 위에 깃봉을 꽂고 깃발을 답니다.
☞ 하나님은 어떻게 깃발을 만드십니까?
하나님은 십자가를, 깃발을 게양하기 위한 깃대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깃발을 천으로 만들지 않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깃발로 삼았습니다.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깃발”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깃발”인 줄 알고 말씀하십니다.
(32~33절)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아직 사람들은 “하나님의 깃발”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질문합니다.
(34절)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구약 성경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하리라고 선포합니다.
그런데 예수, 당신이 그리스도라 하면서, 죽는다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이냐?
사람들의 의아심은 두 가지입니다.
① “죽어서 어떻게 영원한 깃발이 될 수 있느냐?”
② “당신이 인자, 인자, 하는데 인자가 누구냐?”
세상의 깃발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깃발이 영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세우시는 깃발은 영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금 죽어서 깃발이 되겠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인자는 누구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인자”가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의 깃발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인자와 하나님의 깃발>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면 스스로 지칭하기를 인자라고 했습니다.
인자는 사람 인(人) 아들 자(子)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 외아들입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가 이 땅에 사람의 아들로 왔습니다.
사람과 똑같은 모습과 성정으로 왔습니다.
육신으로 요셉과 마리아 부부의 아들로 왔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강조합니다. 인자(人子)
예수님이 인자라는 표현 이면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 함의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된 본체로서 하나님이지만 이 땅에는 사람의 아들로 왔습니다.
그러니 너희가 나를 사람의 아들로 대하면 된다.
예수님은 그래서 스스로를 지칭할 때 늘 인자라는 칭호를 씁니다.
하나님은 ‘인자’ 예수님이 말씀하는 ‘인자’로 “하나님은 깃발”을 세우려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천으로 깃발을 만들어 세웁니다.
천에다가 자기 부대 명칭을 새겨서 깃발을 만듭니다.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부터 군부대, 회사, 학교, 모든 깃발은 천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은요?
하나님은 깃발을 ‘인자’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깃발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깃발을 만들어 기둥 끝에 매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인자를 매달아서 깃발을 만드십니다.
사람이 만든 깃발이 영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만드시는 깃발이 영원하겠습니까?
사람이 만드는 깃발은 유한합니다. 오래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드는 깃발은 영원합니다. 이 세상 끝까지 갑니다. 그 깃발이 십자가입니다.
<“들림”의 3중주>
예수님이 “내가 땅에서 들리면”이라고 하셨습니다.
“들리면”의 명사형은 “들림”입니다. 이 “들림”에는 세 번의 들림이 함의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들림은 십자가 위로 “들림”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들렸습니다.
“두번째 들림”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고 돌무덤에 장사 되었습니다.
무덤에 있는 예수님을 하나님은 다시 들어 올립니다. 부활입니다.
“세번째 들림”이 있습니다. 이는 “공중부양”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들려 구름 속으로 가려졌습니다.
십자가를 깃대 삼아, 인자 예수 그리스도를 깃발로 못 박았습니다.
돌무덤에 묻힌 예수님을 하나님은 들어올리십니다. 두 번째 들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성부 하나님은 세 번째 들어 올려 하늘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세 번의 들림으로 “하나님의 깃발이 완성” 되었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깃발”입니다.
이 깃발 아래 모이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백성” “기독교인” “크리스천”입니다.
구원받은 백성, 천국 시민, 교회 공동체입니다. 할렐루야~
제가 그동안 제가 바라보고 따라온 깃발은 “내일”이라는 깃발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내일”이라는 깃발은 “하나님의 깃발”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묵상해야 할 것은 십자가, 부활, 승천의 3중주로 완성된 “하나님의 깃발”입니다.
세상의 깃발은 유한할 뿐 아니라 거기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진리가 없으므로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의 깃발을 열심히 쫓아갑니다. 거기서 돌아서야 합니다.
천으로 만들지 않은 하나님의 깃발,
인자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깃발,
세 번의 ‘들림’으로 완결된 하나님의 깃발!
그 깃발 아래 모이고, 그 깃발을 따라가야 합니다.
(36절)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하나님의 깃발” 아래 모이는 성도가 빛의 아들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깃발”이 빛입니다. 빛이 “하나님의 깃발”입니다!
“하나님의 깃발” 아래서 빛의 아들 됨의 가장 중요한 일이 예배입니다.
예배가 중요합니다. 예배가 “하나님의 깃발” 아래 모이는 거룩한 의례입니다.
한 번 한 번의 예배에도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빛의 자녀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