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문화일보에 실릴 칼럼입니다.
이곳에 먼저 올립니다
우리 사투리가 고생하고 있다
이순원(소설가)
요즘 자주 드나드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 강원도 사투리를 일상어처럼 쓰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강원도 사투리’ 카페이다. 그곳에 가면 아침마다 인사 한마디에 이런 글들이 올라와 있다.
‘정제 실공에더거 옥시끼 쪄노코, 마롱에더거 감제쪄서 베보제기 덮어노코 가니 머커 쉬시미 드서요. 지는 할루 어데르 즘 추릅하고 올꺼니요. 지거 안뵈키드래두 찾지 마시우야. 읠때는 저짝 사랑 문지방 밑에더거 감춰노코 가요.’ (*오랍닙 글)
해석을 하자면 이렇다. ‘부엌 선반에 옥수수를 쪄놓고, 마루에다가 감자를 쪄서 베 보자기로 덮어놓고 가니 모두 쉬면서 드세요. 저는 하루 어디를 좀 다녀올게요. 제가 안 보이더라도 찾지 마세요. 열쇠는 저쪽 사랑 문지방 밑에 감춰놓고 가요.’
고향을 떠난 지 20년 30년 되는 사람들이 어린 시절 쓰던 우리의 탯말을 잊지 말자고 모인 모임이다. 그 카페에 전국의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들이 ‘이런 말을 강원도 사투리로는 어떻게 하느냐?’ ‘또 저런 말은 어떻게 하느냐?’ 하는 질문들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질문도 끊이지 않는다. 때로는 창작하는 사람들까지도 자신이 쓰는 소설의 한 부분과 대본의 한 부분을 올려 강원도 사투리의 쓰임에 대한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우리 어린 시절엔 이런 탯말이 마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써서는 안 되는 말처럼 취급당했다. 그래서 집에서 아버지가 ‘누구야’ 하고 부르는 말에는 ‘야’하고 대답하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누구야’ 하고 부르는 말엔 ‘예’하고 구분하여 대답했다.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쓰는 탯말이 우리가 알지도 못할 서울말에 비해 처음부터 옳지 않은 말, 틀린 말, 우리끼리 감춰가며 써야 하는 말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투리가 이제 햇빛 아래로 나와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제법 환영받고 대접받는 모양이다. 방송국마다 사투리 경진대회랄지 사투리 알림 프로그램 같은 것이 있다. 그런데 내 고향말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그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저절로 분통이 터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프로그램은 대개 이러이러한 지역 사투리를 표준말로는 어떻게 부르느냐, 하는 걸 출연자들이 맞추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그러다 보니 정겹고 재미있는 사투리를 알려주겠다는 애초의 취지는 사라지고 오로지 출연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못 맞추게 하겠다는 엽기적인 문제들만 판을 치게 되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테전'이라고 부르는 강원도 일부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말을 강원도 사투리라고 방송하는 식이다. 그러면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일부 사람들도 '테전'이라고 부르는 건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 그것은 사투리가 아니라 단지 잘못 부르는 외래어일 뿐인 것이다.
또 '마늘'을 강원도에서는 '곰가재'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강원도 사람 백 명 중 한명이 그렇게 알까 말까 한 말이다. 해석을 하자면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이 먹던 과자라는 뜻인데, 이 정도 되면 사투리가 아니라 마늘에 대한 은어이고, 재치문답형의 수수께끼인 것이다.
강원도에서는 상대에게 잘못을 빌 때 쓰는 말이 ‘할으벙이, 할으벙이’란다. 그러나 강원도 말에 ‘할으벙이’는 없다. 할아버지를 ‘하라버이’거나 ‘하르버이’라고 부르는데, 그 말은 상대에게 할아버지 대접을 할 만큼 극진한 태도로 빌었다는 뜻이지, 무릎을 꿇고 입으로 연신 ‘할,으,벙,이. 할,으,벙,이’하며 빈다는 뜻이 아니다.
교양 프로그램이든 뉴스 프로그램이든 시청률에 신경써야 하는 방송의 속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을, 또 출연자들이 쉽게 맞출 수 없게 속여먹을까만 궁리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게 프로그램 제작진과 우리가 같은 사투리를 바라보는 시각과 접근 방식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나눈다면 '그 말 속에 살아온 삶 속의 애정'과 '오로지 시청률을 위한 희화'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우리 고향말이 뒤늦게 인기를 얻어 여러 가지로 고생을 하고 있다.
첫댓글 역시 이샘님이십니다....근데 지거 했던말이 증말 신문에 실리는기래요?ㅎㅎㅎ
신문 스크랩해서... 보관하시고....... 또.... 한턱 내야 된다니요.
얼음냉수를 마신것처럼 아주 시원합니다, 머 알어요?
잘 정리하셨습니다. 야~ 오랍님이 출세르 하게 생겠다니요. (귓속말... 이샘님 좌오우비라 하셨는데, 오랍님 글만 올레 주시믄 비둘기님이 전 난리치실 텐데 감당하시겠어요? ㅋㅋㅋ)
처음엔 두 분의 글을 다 인용을 했는데, 그러면 둘 다 해석을 해야 하고, 그러고 나니 두 분의 글 인용만으로도 지면이 좁아서 비둘기님 글은 다음에 다른 신문에 인용하기로 했어요. ^^
좌오우비--진짜 말되네요 --
이글이 신문에 실린뒤에 방송국에서 어떻게 나올까 그기 궁금해지내요 -그날신문은 스크렙 해놓을 겁니다
읽고 나니 속이 씨언 합니다. 이제 암마또 모해요.
저도... 속이 다 후련합니다....
강원도 특히 강릉쪽 사투리에서는 할머니에게 "할머이 어데 가슈?""아재, 잘 가게"이러 말하는게 상식이다. 모르는 사람보면 처 죽일놈이 되겟지만 그래도 우린 그렇게 쓴다. 그러나 남자대 남자끼리 연장자에게는 하우가 필수적이다."이기 머이래요?"...즉 "~시우"는 동성간이나 여자가 남자한테 쓸수 있으나 "~게.~세"는 동성 또는 남자가 여자, 연장자가 연하자, 신분이 높은 분이 낮은 사람에게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서술형 종결어미입니다.
아무리 표준어를 쓰는 측면에서 천하게 흘려보는 사투리라 치부하겠지만 사용해야할 곳과 대상에 대해서 정확하게 짚어가며 마치 우리만의 헌법이라고 생성한듯 지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그런데 갑자기 흥미와 재미로 빠져든 일부 몰염치한 방송매체에서 이러한 률에 대한 이해조차 못한체 마구마구 깨뜨리니 참으로 애석타 할 것입니다.
우리 고향말에 대한... 정서 없이, 그져 얻어들은 지식으로는 이런 세세한 부분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꺼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신문이라서 이샘님 성격이 안나오신듯 해요 ㅋㅋㅋㅋ 아무튼 시원하네요.
오랍님요~~ 머이라도 한턱을 내야겠잔쏘...이샘님의 표현이 아주 시원합니다.
오랍들 님의 촌구가 참 좋다고 생각 했는데 이샘님이 칼럼으로 요리를 멋지게 해주시니 아주 보기좋습니다.
내고향이 자랑스럽습니다
마늘=곰가재 그런뜻이 있었군요.
아하...그래요 ..암마뚜안할깨요.............수고하셋어요.............
상관하지 말구 그냥 우리찌리 핀하게 합시다
야.....
고생하는 고향 마를 우리가 나세서 올 바르게 잡아 나갑시다
옛친구들을 많이 만나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