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이 어렵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쉴 수 있고 잘 수 있는 주일날 예배드리러 나오고, 이것 저것 신경 쓸 것도 많고, 그리고 주어지는 말씀, 계명들은 쏟아져 나옵니다. 처음엔 예수만 믿으라고 하더니 헌금도 내야 된다고 하고, 말씀도 읽어야 한다고 하고, 기도도 해야 한다고 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아예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합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장 힘든 계명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아니 상대방이 좋으면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할 것이고, 그저 그런 사람을 억지로 사랑할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런데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더니 급기야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내 몸과 뜻과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어떤 아이가 이 구절을 듣더니 "하나님은 부모님께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나봐요. 애정 결핍 증상이 있는거 같아요" 라고 말했다는 소리를 어떤 목사님께 듣고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서로 봉사하라고 하며 이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봉사해서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 마치 연약한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든 무엇이든 빼앗아 가서 만족하는 탐욕스러운 왕의 모습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봉사하라고 하는가? 왜 사랑하라고 하시는가? 왜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시는가? 더 나아가 왜 이 세상을 만드셨는가? 왜 아브라함을 택하고 이스라엘을 택하셨는가? 왜 우리를 자녀삼으시며 계명을 주시고 말씀을 주셨는가?
사랑하는 삶, 섬기는 삶이 가장 기쁘고 즐겁고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가족들이랑 동상이몽 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자녀와 부모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를 아이의 관점에서, 부모의 관점에서 시청하면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고 회복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
중학생 딸이 아버지가 나를 식모처럼 대한다. 잔소리가 너무 심하다며 아버지를 끌고 나왔습니다.
집에서는 설겆이며, 청소, 동생 목욕, 거기다가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합니다. 친구랑 노래방에 놀러갔는데 아버지가 와서 친구를 남기고 딸래미 혼자 데려가는 장면도 나옵니다. 함께 참여한 참석자들이 모두 너무한다며 부모를 나무랐습니다 .
이제 아버지 입장에서의 화면으로 바뀝니다 . 알고 보니 이 딸이 6살 때에 두 딸을 가진 엄마와 결혼한 새 아빠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빠도 한 부모 가정에서 자라서 상처가 있었는데 두 딸을 데리고 살아가는 아내를 보면서 이 엄마는 절대로 아이를 안버리겠구나, 내가 이 여자를 도와주고, 두 딸을 지켜 주어야겠구나 해서 결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새 아빠 소리 안듣기 위해 더 아이에게 신겯쓰고, 더군다나 사춘기에 빠진 딸아이가 잘못되지 않도록, 어떻게 아이에게 바른 아빠가 될까 늘 마음 속에 딸에 대한 생각 뿐입니다. 그러면서 난 그 아이를 끝까지 책임질 것입니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아빠의 말을 듣고 딸도 울고, 참여했던 모든 진행자와 방청객들도 아빠의 마음에 감동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가진 사랑을 함께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가진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섬김이고 봉사이고 사랑입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하나님의 삶, 하나님이 감정,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이것은 사랑이요, 섬김이요, 봉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땅을 정복하라. 다스려라"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말씀을 우리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구나 하면서 자연을 인간 마음대로 죽이고, 먹고, 낭비하고, 결국은 모든 자연 만물을 위기에 처하게 했습니다.
여러분 부모가 어떤 아이를 입양했다고 합시다. 이제 어린 아이이 모든 권한은 새 부모에게 달려 있습니다 . 그런데 입양한 부모가 만일 아이를 학대하고 일만 시키고 부모로서 해야할 사랑을 공급하지 않는다면 세상사람들 조차 아이를 입양한 그 부모를 비난하거나 신고하거나 할 것입니다.
아니 자기가 입양한 자녀를 어떻게 하건 다른 사람이 간섭할 수 없지 않습니까? 아니지요. 사회가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이를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좋은 부모, 아니 최소한의 부모 역할을 잘 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 키워서 부모를 닮은, 적어도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께끔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신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
자연 만물을 우리가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지어주며 그들의 쓰임을 알려주고, 잘 돌보고 가꾸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청지기 사명입니다.
사람의 삶이 참 긴 것 같지만 단순합니다 . 어릴적에는 부모로부터 사랑받으며, 부모를 보면서 자랍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 공급받습니다.
커서는 부모로 부터 독립해서 자기의 가정을 만들고 또 자기의 자녀를 낳게 됩니다. 부모가 한 것처럼 자기 자녀에게 모든 정성을 쏟습니다. 자기 인생을 위해서 자녀에게 옷 안사주고, 자기 먹을 것을 위해서 자녀 먹이지 않고, 자기 쓸 것을 위해서 자녀의 학비를 안대주는 부모는 없습니다. 힘이 들지만 다 그렇게 삽니다.
그리고 늙어서는 자기의 자녀들이 또 다른 자녀를 낳고 사는 것을 보며 즐거워합니다. 이러한 삶을 보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없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행복이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 사람을 사랑하셨기 때문이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그 사랑의 삶, 돌봄의 삶, 봉사의 삶을 나누어 주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짐이 아니라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자 사랑의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면 돌보고, 섬기고, 나누어야 하는데 사랑이 정욕이 되고 탐욕이 되니까 주기보다 받기만 원하고, 결국은 돈을, 우상을, 게임을, 사람보다, 가족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을 보는 것보다 행복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봉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헌금을 드리고, 봉사하고, 예배하고, 섬겨야지만 만족하시고 살아가시는 무의탁 노인같은 분이 아닙니다 .
그 분은 불쌍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사랑이 없어도, 헌신이 없어도 스스로 충만하시고 만족하시며 행복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에게 예배하도록, 헌신하도록, 봉사하도록 요구하시는가? 하나님이 그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사랑을 알고 이 세상에 하나님 자녀답게, 하나님 닮은 삶을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비타트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세계의 집없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집을 지어주는 단체입니다. 지금까지 세계 8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12만 가구의 집을 지어 가난한 가정에 집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단체를 설립한 사람은 말라드 풀러 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20 대 후반이 이미 변호사로, 사업가로 성공하여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호수를 낀 엄청난 규모의 저택에는 가정부와 비서가 여러 명 있었고, 최고급 자동차를 비롯, 보트와 자가용 비행기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은 가정에 어느덧 아내가 편지를 써 두고 가출을 했습니다.
“당신은 차라리 돈과 결혼하는 편이 나았어요.남을 위해 조금도 봉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이제 갈라설 때가 됐어요”편지를 남기고 떠나버렸습니다."
이 편지를 받기전 그는 이유모를 불면증과 우울증도 겪고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버림받고서 그는 자기 인생을 되돌아 보기 시작합니다 . 아내를 찾아가 진지하게 용서를 구하고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테니 도와달라고 합니다. 전 재산을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선교사, 시민운동가로 살던 그들이 76년부터 시작한 사업이 해비타트 운동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베드로가 핍박을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고 있는 편지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30여년이 지난 AD 64년, 로마에 거대한 화재가 일어나 로마 전체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에는 네로 황제가 이 도시를 자기 뜻대로 건설하기 위해서 일부러 화재를 내었다는 소문이 돌아 화재를 바라보면서 네로 황제가 수금을 타며 노래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이 흉흉했습니다. 이 민심을 달래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 기독교인들입니다. 네로는 황제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하는 기독교인들이 로마를 불타게 했다면서 이후 100여년간 극심한 핍박을 가하며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죽이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의 수제자이자 교회의 수장이었던 베드로가 곳곳에서 핍박당하고 있는 그리스도 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벧전 4:7)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 위기의 순간에 먼저 한 것은 정신 차리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왜 기도해야 합니까? 정신차리기 위해서입니다. 파도와도 같은 고난이 다가오면 정신줄 놓치고 파도에 휩쌀리게 됩니다. 우왕좌왕 하다가 현재의 고난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는 모든 현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벧전 4:12-14절 고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보여 줍니다.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때에 살인아니 도둘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다가 고난 당하지 말라고 합니다. 고난이 자기 잘못으로 당하는 고난이 있는데 그런 고난은 어리석은 고난이니 피하고 의로운 고난을 당하거든 이상히 여기거나 부끄러워 하지 말고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7절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은 교회에서부터 오는데 우리가 이 정도 심판을 당하면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은 어떨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벧전 4:8)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이 고난의 때에 기도하면서 힘쓸 것은 역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해 우리 스스로도 죄에서 멀어지며 또한 우리 주위에 퍼져 있는 죄의 영향력으로부터도 가려지게 됩니다. 사랑의 반대는 죄입니다. 죄의 반대는 사랑입니다. 그러면서 9절부터 11절까지 봉사하는 삶, 서로 섬기는 삶,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가장 극심한 고통의 순간에 가장 기본적인 삶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적인 삶 기도의 삶이고 사랑의 삶이고, 그것은 결국 섬김, 봉사의 삶입니다.
며칠 전 뉴스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92세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기자 회견을 했습니다 간암 투병 중이셨는데 이제 간암이 뇌까지 전이 되어 살아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 삶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삶은 이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난 이제 새로운 모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퇴임 대통령이 기자 회견을 한 것도 미국 역사상 유일한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더 큰 감동은 그 다음 주일날 뉴스를 보고 입니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도 "나는 대통령보다 주일 학교 교사의 직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고 하면서 쉬지 않고 해 왔다는 주일학교 교사의 역할을 92세의 카터 대통령이 암이 뇌로 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자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선 것입니다.
81년 대통령에 퇴임하고 나선 매주 성경공부를 인도해오고 있는데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성경을 인도한 것입니다. 매주 30명 가량이 참여해서 그들을 인도하는데 이 주에는 전국에서 그의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성경공부에 참여하고자 10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규모가 안되어서 400백여 명만이 그 성경공부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무엇이 그와 같은 삶을 살게 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고 봉사이고 섬김입니다.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입니까? 다름아닌 그 분의 마음을 나누고 닮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흔히들 지금의 시대를 말세 지말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세는 예수의 승천부터 재림때 까지의 시대를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시대가 말세 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세 중에서도 끝 말세의 끝이 된 시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선 참 사랑을 살펴 볼 수 없고 심지어 부모 자식 간에도 그 기본적인 사랑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이 서로 만나 교제하는 것을 대신하고, 애완견을 사랑하는 것이 오히려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이젠 낯설지 않은 시대입니다.
이럴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정신 차리고 깨어서 기도해라.
뜨겁게 서로 사랑해라. 너희는 이 시대의 은혜를 맡은 자다. 은혜를 맡은 청지기다.
봉사해라.
봉사는 섬기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자기 몸은 산 제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참 예배는 바로 봉사입니다. 그것이 우리 은혜를 맡은 자들이 이 마지막 시대에 세상을 향해, 그리고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고 예배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