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관련 서적 왜 잘 팔리나
`기도'관련 서적의 인기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종로서적, 영풍문고, 교보문고, 등 일반 서점이 선정한 기독교 서적 중 `5만 번 응답받은 뮬러의 기도비밀'(생명의 말씀사)이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기도비밀'의 인기는 작년 한 해 동안 종로서적, 영풍문고, 생명의 말씀사 등에서 종교 부문 최고 판매부수를 기록한 리처드 바크의 `기도' (두란노 출판)에 이은 것이어서 더 주목된다.
이처럼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기도'관련 서적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시대적 상황과 작품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종로서적 김남식 홍보담당자는 "지난 한해는 삼풍사고 등 유난히 잦은 대형사고와 전직대통령의 유례없는 구속사건, 그리고 5.18 광주항쟁의 역사적 평가와 첨단미디어의 음란. 퇴폐물 성행 등 어지러운 격변기였다"면서 "가치관의 부재와 가치평가의 혼란 등이 크리스천들로부터 기도를 하게 했고 상대적으로 이에 관한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고 분석했다.
도서출판 `두란노'의 노항규 전도사는 "글을 읽다보면 기도하고 싶다는 욕구가 절로 생기고 예전의 `기도 간련' 서적들이 딱딱하거나 서술적 기술에 그친 반면 리처드 바크의 `기도'는 수필 같은 느낌을 준다"면서 "개인별 상황에 맞는 기도의 형태와 종류 등이 독자의 욕구에 부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도'는 지난 93-94년 QT책 `생명의 삶'에 연재되어 95년 2월 초판, 96년 2월 현재 7만부를 발행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5만 번 응답받은 뮬러의 기도 비밀'은 발간 5개월 만에 2만부가 넘게 팔렸으며 지난 11월부터 종로서적 기독교부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CAS(Come Aad See)선교회에서 편저하고 주필자인 영산교회 협동목사이자 월간 `목회' 편집부장인 홍일권목사가 뮬러의 생애를 3년간 연구한 끝에 지은 것으로 뮬러의 삶을 통해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을 소개하고 있다.
28이라는 숫자
2*8은 학생들은 16이라 하지만 노처녀는 2*8은 "청춘"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학부모 교인이 자녀를 위해 헌금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28만원을 꾸어서 헌금을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집의 아이가 입시일이 되어서 시험을 보는데 과목마다 결정적으로 어려운 문제에 있어서는 '이것이 답이야'라는 강한 음성을 들고는 거기에 답을 하였는데 신기하게도 답들이 맞아서 대학에 무난히 합격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후에 알아보니 그의 합격석차는 28등으로서 장학생의 대상이 되어 있더라고 한다.
2*8은 16이고 2*8은 청춘이겠지만 믿음의 부모에게 28은 '기도의 응답이요 장학생이었음을 상기하시라'
가장 안전한 곳
영국의 어떤 가정에 한 처녀가 있었는데 이 처녀는 어두워지면 무서워서 밖에 못 나가는 공포증에 시달렸습니다. 이 공포증이 점점 깊어져 이 처녀는 나중에 불을 켜고 잠을 자야 하는 심한 노이로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처녀가 부흥 성회에 참석했다가 목사님으로부터 "성령님께서는 평안과 기쁨과 자유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면 모든 공포와 절망을 극복하고 영광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바람과 같으신 인격자로서 어디에나 계시며 부모처럼 형제처럼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라는 말씀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고 이 깨달음을 통해 성령 충만을 받아 공포증과 노이로제를 극복했습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이 처녀는 놀라운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날 밤 이 처녀는 불을 끄고 평안히 잠을 잤습니다. 이 사실을 안 부모가 다음 날 아침 원인을 묻자 처녀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제 안에는 성령님께서 계신 걸요. 저는 이제 무섭지 않아요. 성령님께서 저를 보호해 주시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보혜사로 계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보내심을 받아 복음을 증거할 때 귀신이 소리치며 떠나가고 병든 자가 낫고, 포로 된 자가 자유를 얻으며 가난한 자가 복을 받고 진리에 눈먼 자가 눈을 뜨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님께서는 구만리 장천에 계시지 않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늘 기도함으로 성령을 소멸치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 ★출 25~26/마 21:1~22
...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시 108:12,13.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니이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시 119:73~75.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시 125:1,2.
어려움을 만날 때 도움을 구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능한 한 모든 친구들을 찾아가 실망하게 된 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전자(前者)를 택합니다. 그리고 심한 상처를 받고 난 후에야 하나님밖에 의지할 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전자를 택하게 되던 후자(後者)를 택하게 되던 결국 하나님을 찾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면 후자를 택하는 쪽이 훨씬 더 현명하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 마음 가운데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께 아뢴 후가 아니면 절대로 어떤 일이든 시작하지 않겠다!
주님, 저희가 어떤 일을 시작하든, 어떤 일을 만나든 주님께 먼저 아뢸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지금 뭔가를 시작하려 하십니까? 또는 어떤 어려움 가운데 계시지는 않는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먼저 찾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빠른 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가장 빠른 길은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가짜울음 진짜울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입에서 건성으로 흘러나오는 기도와 가슴 깊은 곳 에서부터 울려나오는 간절한 기도를 구별하여 들으십니다. 아이들을 넷이나 키운 나와 내 부인은 이제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식별하는데 제법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한밤중에 들려오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가짜울음'과 '진짜 울음'으로 구별하여 부릅니다. 가짜 울음은 어린 아이들이 잠자다가 뒤척거리면서 칭얼칭얼하며 울어대는 소리입니다. 이러한 울음소리는 별로 크지도 않고 간절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울음소리를 듣게 될 때 부모들은 즉시 찾아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잠시 칭얼거리다가 곧 잠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짜 울음은 아주 다릅니다. 이 울음소리는 아주 크고 진지하며 간절합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가 이렇게 울기 시작하면 차라리 우리 둘 가운데 한 사람이 먼저 일어나 아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우 어린 아이는 자기가 바라는 것이 만족하게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하여 큰소리로 울어대기 때문입니다.
부모들도 어린 아이들의 진짜 울음소리를 식별할 줄 아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야 우리의 기도소리를 얼마나 잘 구별하시겠습니까. 어린 아이와 같이 간절한 심령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응답하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심을 품을지라도 그것이 간절하고 진실 된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언제나 환영합니다. 그러나 건성으로 드리는 기도와 습관적인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보다 더 나쁘게 여기십니다.
간구와 응답
우리는 기도하되 낙망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이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었는데 한 과부가 이 재판관에게 끊임없이 찾아가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라고 탄원했습니다. 이 과부가 얼마나 재판관 에게 찾아가 호소를 했던지 나중에 재판관이 지치고 말았습니다. 재판관은 끝내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 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마치신 다음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누가복음18:6, 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끈질기게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심으로 모든 [위협의 요소]들이 사라지고 평화와 질서가 깃들이게 될 것입니다.
감옥에서의 전도
한 목사님이 복음을 전해보기도 전에 14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가 감옥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감옥을 자신의 선교지로 주셨다고 믿었다. 그는 그 안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자를 찾아보았다. 그가 기도하면서 노력을 기울인 사람은 살인자였는데 그 사람은 너무나 잔인해서 그 감옥의 간수들조차 두려워했다. 감옥에서는 하루 12시간씩 노동하는 것이 의무로 규정되어 있는데. 그 목사님은 금식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만이 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겠구나. 생각하고. 계속해서 중노동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교도소 음식을 거절했다. 다른 사람들이 지쳐서 잠에 곯아떨어졌을 때 그 목사님은 침대에서 내려와 마룻바닥에 엎드려 그 살인자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
한번은 밤에 그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려가며 기도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그의 뒤에 서 있음을 느꼈다. 그가 돌아보자 그 살인자가 그의 얼굴을 주시하며. “당신 뭐하고 있는 거야.”라고 물었다. “기도하는 중이오”라고 그가 대답하자 “무엇을 위해 기도하지.” 하면서 그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소”라고 목사님이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곧 그 살인자는 그의 마음을 주님께 드렸다.
그의 변화가 너무나 엄청났기에 그 소문은 교도소 전체로 퍼져 나갔다. 마침내 교도소 소장이 도대체 그 살인자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묻기 위해 그를 불렀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그저 그를 위해 기도했을 뿐이고 그를 변화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대답이었다.
갈급해야 배울 수 있는 것
지혜와 학식을 배우기를 원하는 한 청년이 소크라테스에게 찾아왔다. 소크라테스는 그 젊은이를 바닷가로 데리고 나가 물이 허리를 찰 때까지 들어가 갑자기 젊은이의 머리를 휘어잡아 물속에 밀어 넣었다. 젊은이가 놀라 숨이 차서 발버둥 쳤으나 그대로 붙들고 계속 물속에 처박았다. 한참 후에 숨이 차서 정신을 못 차리는 젊은이를 모래사장에 누여놓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젊은이가 소크라테스를 다시 찾아 와서는 자기를 바다에 처넣은 이유를 따져 물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물속에 있을 때 자네가 가장 갈급한 것이 무엇이든가?
숨을 쉬고 싶었습니다.
자네가 물속에서 숨을 쉬고 싶었던 것만큼이나 지혜와 학식을 갈구한다면 그걸 가르쳐 달라고 누구에게도 간청할 필요가 없네.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까?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원하는 만큼 구하십시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8)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리라(시107:9)
개혁의 도구
우리의 만남 중에서 가장 위대한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우리의 영혼은 이성을 초월한 놀라운 변화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은 가장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존경심, 즉 자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감추어진 약점은 아무에게도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약점은 부모에게도, 처자에게도, 절친한 친구에게 도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만일 약점이 타인에 의해 드러나서 자존심을 잃게 되면 자살까지도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어떠한 악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죄를 용서받아 새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떤 가정이라도 가족이 함께 기도하면 행복한 가정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라도 국민이 힘을 합쳐 기도하면 부강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흑암의 세력을 물리치며, 불안과 공포를 제하고,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위대한 개혁의 도구입니다.
거룩한 뜻
위대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에게 후레드릭 미코니우스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으나 루터에게는 더할 수 없는 격려와 위로와 기쁨을 주는 친구였습니다. 종교 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후레드릭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친구 루터에게 최후의 유서를 보냈습니다. 이를 받은 루터는 깊은 감회에 빠졌으나 곧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하루를 온전히 기도함으로 성령께서는 사랑하는 친구가 아직 죽을 때가 안 되었다는 사실을 루터의 마음속에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루터는 후레드릭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살 것을 명령한다. 왜냐하면 종교를 개혁하는 하나의 사역에 있어서 아직도 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결코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나로 하여금 듣지 않게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나는 하나님의 뜻이 네게서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자 추구하므로 이를 확신한다."
이 편지를 받은 후레드릭의 병은 신속히 회복되어 의사가 선언한 불치의 병에서 소생되어 6년을 더 살며 루터를 도와 종교 개혁의 위대한 사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거룩한 못자국의 흔적
사랑의 성자라고 불리는 아시스의 성 프랜시스는 수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그 중에도 가장 기이하고 유명한 일화가 있으니 그것은 프랜시스가 예수님이 받으신 못자국 같은 거룩한 못자국을 받은 일이다.
1224년 9월 프랜시스가 43세 되던 해에 그는 라벨티어라고 하는 경치 좋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실을 짓고 거기에서 기도하기를 시작하였다. 그 때 프랜시스가 기도한 기도의 제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주께서 친히 당하신 수난의 고통을 자신의 몸과 영혼에 맛보게 해 달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주께서 죄인을 위하여 받으신 그 수난을 기쁨으로 참으신 그 불타는 끝없는 사랑을 알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이 나타나셨는데 그 모습을 본 그의 마음에는 한없는 기쁨과 십자가의 한없는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 후 그의 몸에는 못자국과 창자국의 흔적으로 고통스러워해야 했다
고귀한 사명
허드슨 테일러가 한번은 어느 선교사들의 집회에서 설교를 하였다. 집회가 끝나자 한 성도가 그를 찾아 나아와 다정하게 말을 붙였다. 어느 선교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선교사에 대하여 어찌나 자세한 일들까지 알고 있는지 테일러는 그에게. “당신은 어떻게 그 선교사에 대하여 그렇게도 자세히 알고 있소”라고 물었다.
그 성도는. “예. 말씀드리지요. 저는 그 선교사님과 여러 해 전부터 기도의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이건 무슨 일이건 제가 기도로 도와드릴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시기만 하면 저는 그 일을 위하여 꼭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기도의 동지를 얻음으로 그 선교사는 성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받은바 은사가 다르다. 그러나 서로 서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각기 자기가 맡은 사명을 다 한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된 생활을 할 것이다. 우리가 받은 은사는 각기 다르다 할지라도 기도하는 사명은 모두가 공통된 사명일 것이다. 아직도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신자라 할지라도 주의 종들을 위하여. 세계 각처에 흩어져 일하는 선교사들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은 가능한 것이다. 사실 기도하는 것 이상 더 큰 사명 완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 고귀한 기도의 사명을 오늘부터 실천에 옮기지 않겠는가. 당신의 교회 목사를 위하여 당신의 교회 근처에 오셔서 일하시는 외국인 선교사들을 위하여. 복음을 들고 각처로 나가는 주님의 종들을 위하여 기도하자. 성도들의 기도의 힘만큼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해 주실 것이다.
고난을 극복하는 힘을 준다.
미국에서 냉동음식 관련 사업을 하며 훌륭한 요리책과 강습회를 인도하는 엘라나라는 부인이 있다. 이 부인이 처음에는 평범한 음식점을 했었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눈이 멀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있어 전혀 보지 못하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그녀는 암흑의 세계에서 홀로 남아 수 주간을 멍한 상태에서 실신한 사람처럼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이 부인은 기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몇 일간을 밥도 먹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부인은 크고 강한 손이 자기를 붙잡아 올리는 것 같은 느낌은 체험하게 되었다. 그 부인의 부정적 생이 적극적 생으로, 비관하던 자리에서 낙관의 자리로, 원망에서 감사하는 자리고 옮기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강한 신앙의 경험은 그의 슬픔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게 하였다.
고통스러운 기도
화가 알베르트와 그의 친구와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화가 지망생들이었지만 너무나 가난하여서 그림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알베르트와 그의 친구는 오랫동안 궁리한 끝에 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그림 공부를 하고, 그동안 다른 한 사람은 돈을 벌어서 그림 공부를 하는 친구를 돕자는 것이었습니다.
알베르트가 먼저 그림 공부를 하기로 하고, 친구는 잠시 그림을 뒤로 하고 일터로 나갔습니다. 한 친구는 열심히 일을 해서 알베르트의 학비를 도왔고, 알베르트는 열심히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드디어 알베르트는 이름 있는 화가로 성장했습니다. 이제 알베르트의 친구가 공부해야 할 차례입니다. "이제 자네 차례야, 그동안 고생이 많았네. 내 그림이 이제는 꽤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으니 돈 걱정은 말고 그림 공부에 전념하게."
친구는 기쁜 마음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새로운 실망과 좌절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고 일만 해왔기 때문에 손이 굳어져 세밀한 그림을 그리는 데는 이제 쓸모없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실망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친구도 원망하였지만, 결국 그는 신앙으로 슬픔을 이기고 하나님께 오히려 그의 친구를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알베르트는 그림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친구의 화실에 들어가려 할 때, 화실 안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기도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흐느끼면서 자신의 현실을 안타깝게 하나님께 호소하며, 그러나 알베르트를 용서하고 오히려 알베르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친구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알베르트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문틈으로 보이던 친구의 거친 손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이 유명한 '기도하는 손'이라는 알베르트의 대표작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 기도하는 손의 주인공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과부의 기도
어떤 가련한 과부는 많은 액수의 요금 청구서를 받아들고 큰 낙담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녀가 요금을 이미 다 치렀는데도 청구서가 다시 날아왔던 것입니다. 그녀는 이미 치룬 영수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요금을 다시 지불해야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녀가 가진 돈은 자기 남편의 장례비로 거의 다 써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영수증을 찾게 해달라고 주님께 특별히 기도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수금원이 그 과부의 집을 방문하여. 만일 그녀가 며칠 안으로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법정에 고소하겠다고 윽박질렀습니다. 바로 그 때 나비 한 마리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 들어왔습니다. 이걸 본 그녀의 어린 아들은 그것을 잡아 학습 과제물에 보탤 욕심으로 그것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이 그것을 잡으려 하자 나비는 소파의 등 위에 내려앉았다가 그 뒤로 기어들어가 버렸습니다. 소년은 그 무거운 가구를 혼자 옮길 수 없었기 때문에 수금원에게 자기를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가구를 밀어젖히자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것을 집어든 과부의 눈은 기쁨과 흥분으로 동그랗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영수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간절한 믿음의 기도를 존귀케 하셨던 것입니다.
교역자의 위험
교역자를 삼켜 버리는 두 종류의 마귀가 있는데 하나는 기도를 적게 하도록 만드는 마귀요, 다른 하나는 기도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귀다. 이 두 마귀 중에서 기도를 안하게 하는 마귀보다도 기도를 적게 하도록 하는 마귀가 더욱 무서운 것이다. 왜냐하면 드리는 듯 마시는 듯 하는 기도로서 양심의 자위물(自慰物)로 삼기가 쉬운데 이러한 자위야말로 무엇보다도 유해(有害)한 치명적인 허위의 생활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 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이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5-15)
교회 부흥은 기도로
지난 10년간 미국 교회에서는 12개의 큰 교회 중 8개가 한국 교회였고, 1991년도에 와서는 20여개의 큰 교회는 모두가 한국 교회이었습니다. 같은 성경책, 같은 돈, 같은 목적인데, 한국 교회는 선장하고, 미국 교회는 황폐되었습니다.
1980년 미국 목사의 기도 시간은 하루에 8분 이었고, 한국은 30분 이었습니다. 다른 점은 바로 이것 이었습니다.
목회로 교회를 일으키려고 하기 전에 정말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 합니다. 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기도했고, 사도행전 1장 14절에 더불어 몸과 마음과 뜻을 합쳐 전혀 기도에 힘스니라.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의 백성이 더하게 하셨다고 했다.
교회 부흥의 원인
전에 평양 남문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에 무식한 목사가 부임해왔습니다. 이 목사님은 말도 잘 못하고 학식도 없지만 기도는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계속 부흥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인들이 말하기를, 무식한 목사님이 목회해도 부흥이 되었는데 이제는 미국 갔다 온 목사님을 모셔오면 더 부흥이 되겠다고 하면서 먼저 목사님을 내쫓고 새로운 목사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해 온 목사님은 학식도 많고 말도 잘하고, 모든 것이 뛰어난데 왠지 교회는 점점 냉랭하게 되어갔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안타까워 하다가 사찰한테 묻기를 "전에 있던 목사님과 나와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사찰이 대답하기를 "전에 있던 목사님은 강단에서나, 지하실에서나 엎드려 있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목사님은 한 번도 그런 것을 못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는 깨닫고 담요를 싸가지고 산에 올라가 바위를 붙잡고 낙엽이 온 몸을 뒤덮을 정도로 며칠 동안 부르짖어 기도하고 내려와 목회를 하는데 교인들이 변화되고 교회는 계속 부흥되었다고 합니다.
구원의 요청
옛날에 어느 임금이 사람을 많이 고용해서 융단과 옷을 짜게 했습니다. 그중에 어린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소년은 베를 짜는 솜씨가 뛰어났습니다. 임금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비단실과 견본을 주고 언제든지 문제가 있으면 곧 자기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일렀습니다. 그 소년은 조용히, 그리고 꾸준하게 일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자꾸 틀려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하루는 사람들이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그렇게 일을 잘 해내고 또 즐겁게 하는데, 왜 우리의 일은 항상 순조롭지 않지? 우리가 짠 것은 꼬이지 않으면 견본과 달라지니 말이야.” 소년은 대답하길 “임금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못하세요. 언제든지 필요하면 도움을 청하라고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물론 임금님께 도움을 했지만 일들은 헝클어지고, 잘못된 것을 해결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단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소년은 “제가 임금님을 몇 번이나 불러야 했는지 아세요.”하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알지. 그렇지만 그분은 바빠서 그렇게 자주 방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소년은 “저는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했으며, 그 분은 그 때마다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환난 날”에 그를 부르기를 원하십니다(시편50편 15절).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더러 우리의 삶이 꼬이기도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활이 그 분의 뜻에서 멀어지기 전에 도와주십니다. 오늘 그분의 도움을 청해 내일의 큰 문제를 피하십시오.
구체적인 기도
어느 지성인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비 오지 않기를 혹은 비 오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성경적인 기도입니까? 그러면서 그는 비오기를 혹은 비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은 주술적이며 기복적인 것이므로 그런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이 무엇인지, 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지성과 합리를 앞세우는 오만한 사람입니다. 비 오기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문제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스가랴서 10장 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성경은 마땅히 구해야 할 만한 때에 비를 구하는 것이 조금도 무리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계를 주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어린 아이처럼 갖고 싶은 것을 달라고 구할 수 있습니다. 결혼식 날 날씨가 화창하도록 기도하십시오. 저는 곧 결혼식을 올릴 남녀를 위해서 예행연습을 할 때마다 꼭 그 문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인생의 첫날이 화창한 날씨 속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 문제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일기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계절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필요할 때 비도 구하시고 태양도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한 곳에는 비를 주시고 똑같은 시간에 다른 곳은 비를 주시지 않을 수 있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며 주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확신되는 일이라면 비든 눈이든 태양이든 열심히 구하십시오. 여기에 주술적이라거나 기복적이라는 말을 붙이지 마십시오.
"막연하게 기도하면 막연하게 응답하시고 구체적으로 기도하면 구체적으로 응답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기도
제2차 세계 대전 중 남태평양의 한 섬에서 철수하던 어떤 선교사에 대한 로버트 쿡의 예화를 들어봅시다. 그 선교사는 화물선을 타고 적의 해협을 지나 지그재그로 나아가고 있었는데. 하루는 배 바로 앞쪽에. 적의 잠수함의 잠망경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내가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배웠던 때입니다라고 선교사는 말했습니다. 적이 우리 배를 살피고 있는 동안 우리를 침몰시킬까를 결정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잠수함의 각 부분에 대해 기도했습니다.
주님. 모터가 고장이 나게 해 주소서.
어뢰 발사기관이 움직이지 않게 해 주소서.
키가 파열되게 해 주소서.
그 선교사는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구체적인 필요를 가지고 있었고. 그의 생명은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꼭 길어야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이 하신 기도의 대부분은 몇 마디의 기도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도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하지 않은 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바로 그 곁에 강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아주 가까이에 있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였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조차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놀라운 일입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에 기억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는 구원 받았습니다. 한편 한 사람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그분께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내 구원을 거절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제나 그러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도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합왕 시대에는 그 땅에 3년 6개월 동안이나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알에게 팔려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런 행동이 서운하였을 것입니다. 평소에 목이 곧아서 자존심을 세우고 결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슥10:1)
그 때에 이스라엘 엘리야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 선지자는 하나님께 비를 구했습니다. 하늘에서 이윽고 큰 비가 내렸습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때에도 그분에게 무관심했던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구경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자신을 부탁하며 구원을 청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누구는 구원받고 누구는 구원을 못 받았습니다. 그 구별은 바로 지나가는 예수님께 부르짖어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
이제 부흥회를 통해 주님이 우리 가까이에 오십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이번 기회에 간절히 사모하여 주님의 구원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한 사람이라도 무관심하게 지내므로 기회를 놓쳐서도 안 되겠습니다.
귀를 기울여 들읍시다.
불란서 파리에서 가난한 노동자들과 빈민가의 청소년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실제로 거리에서 목회했던 미쉘 파스트 신부의 '전화'라는 제목의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막상 전화를 놓고 보니 그 사람이 왜 전화했는지, 또 무엇을 말하려고 했었는지도 모른 채 끝나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를 주님 앞에서 돌이켜보는 것입니다. 들으려고 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혼자서만 말하려고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지 못한 채 통화가 끝나 버리고 말았다는 그의 고백은 바로 우리 자신의 고백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명령하는 사람' 충고하는 사람, 호소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쏟아가며 우리의 기쁨과 고통과 염려를 하나님께 말씀드리기 원하듯이,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뭔가를 말씀하시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 주시기 바라듯, 주님 또한 당신의 말씀을 우리들이 들어 주기 바라십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그는 듣고 계신다
런던에 있는 성 바울 사원을 찾는 이는 누구나 안내자의 속삭이는 소리가 저 부드러운 벽에 부딪쳐 다시 돌아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누구든지 벽에 귀를 갖다 대면 저편에서 아무리 조용하게 말하는 것도 다 들을 수 있다.
어느 가난한 구둣방 청년이 이 사원에서 자기의 사랑하는 애인에게 가죽을 살 돈도 없으니 장사가 안 되므로 결혼할 수 없노라고 말했다. 이에 여인은 울고만 있었다. 이때 한 신사가 구둣방 청년의 흐느끼는 기도소리를 듣고 그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이 구둣방 청년이 기도를 마치고 사원을 떠나자 이 신사는 그의 뒤를 밟아 장소를 알아 둔 후 그의 가게로 가죽을 많이 보내 주었다. 이 가난한 청년의 기쁨이 오죽했겠는가? 그는 이 선물을 잘 사용하여 사업이 번창함에 따라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여인과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청년이 이 이름 모를 신사의 이름을 알기까지는 2-3년이 지난 후였다.
그는 영국의 수상 W. E. Galdstone이었다. 우리 위에는 항상 우리의 속삭이는 고통과 기도를 듣고서 이것을 실천에 옮겨주시는 분이 계신다. 우리가 아무리 나직하게 속삭여도 그는 듣고 계신다. 우리 인간적인 친구들에게 우리의 사정을 다 말할 수는 없어도 하나님은 언제나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기도로 무엇이든지 아뢰며, 그는 이를 듣고 들어주신다(빌 4:6).
그럴 줄 알았어
우리 형과 그의 크리스천 친구들이 나의 회심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기로 작정을 한 것은 1926년의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만약 알았다면 보나마나 대단한 신경질을 부렸을 것이다.
당시 나는 교회에 참석하는 것도 종교서적을 읽는 것도 모두 거부하고 있었다. 외적으로 보면 나는 영적인 일에는 점점 더 무관심해갔고 기회만 있으면 형의 신앙을 조롱하곤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은 끈질기게 믿음으로 쉬지 않고 기도했다. 그즈음 몇 달 동안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내 안에 영적인 갈급함을 심어주기 시작하셨다. 조용한 내 방에서 혼자 무릎을 꿇고 참으로 오래오래 씨름을 한 끝에 나는 드디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김을 받게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즉각적으로 성령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서 형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라.” “안 돼요, 주님 그것만은 안 됩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형을 조롱했었는데 어떻게….” 그러나 좀더 기도를 한 뒤에 나는 형 방으로 들어갔다.
형은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쓰고 있었다. 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형,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어요. 지금 막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나는 형이 내 말을 믿지 않거나 아니면 깜짝 놀라 충격을 받거나, 이 둘 중 한 가지 일이 벌어지리라고 생각 했었다. 그러나 정작 충격을 받아야 하는 것은 나였다. 형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아주 천천히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나는 소리쳤다. “그럴 줄 알았다고요?” “그럼, 그럴 줄 알았고말고. 너도 알잖아. 내가 너를 위해서 기도해왔다는 걸.” 바로 이런 기도가 주님께서 기뻐 들으시는 기도이다. 응답이 안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는 기도, 당연히 그럴 줄로 아는 기도!
그치지 않는 하나님의 기적
여러분은 기도모임을 기적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으신지요? 제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어느 날 저녁 교회에서 소그룹으로 나누어서 기도모임을 가진 후입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소리를 내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기도들은 서로 뒤범벅이 된 말들이었습니다. 처음 나온 사람에게는 그 기도들이 무질서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기도를 듣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을 믿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자기들의 언어로 드리는 기도를 다 듣고 계셨습니다.
오늘도 세계 도처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는 기적이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명상 : 하늘로 연결된 기도 선에 통화중일 때가 한 번도 없다.
끈질긴 기도
유명했던 권투선수인 조 프레이저는 1964년 동경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런데 당시 준결승에서 오른손 손가락이 하나 부러졌습니다. 그는 호텔에 돌아와 부러진 손가락을 붙잡고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그는 아픈 손에 글러브를 끼고 열심히 싸워 상대방을 뉘어 KO승을 거두었습니다. 승리 후에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금메달을 딴것은 내 목표를 세워 놓고 끈질기게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그는 은퇴하고 훌륭한 전도사가 되어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살다보면 때로는 어렵고 힘든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 같은 상황 가운데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문제 해결의 방법은 끈질긴 기도뿐입니다.
끊어진 전선을 이어주는 것
어느 전화 가입자가 있었다. 그런데 새벽에는 전화를 걸 수도 없었고 밖에서 걸어도 걸리지 않았다. 낮 시간에는 평상시처럼 전혀 이상 없이 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밤과 새벽에는 전혀 불통이었다. 담당국에 연락을 했더니 유능한 수리 기사가 찾아왔다. 그는 송신기와 수신기를 분리시켰다가 다시 연결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시 신고를 하자 그가 다시 찾아왔다. 역시 심혈을 기울인 수리가 또 헛수고가 되자 결국은 그 부서의 최고 책임자가 직접 찾아왔다. 그러나 그도 역시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지붕 밑으로 들어가 전선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시험해 나갔다. 마침내 문제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전선은 둘로 끊어져 있었는데 밖으로 나온 덮개만 보아서는 전혀 이상이 없어 보이는 그런 지점이었다. 끊어진 양측 사이의 공간은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흐름을 차단하기에는 충분했다. 낮에 열이 있는 동안에는 전선이 늘어나 양쪽 끝이 서로 닿아 전류가 통하였지만 그러나 밤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거나 아예 날씨가 몹시 추운 날이면 전선은 수축되어서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양끝이 서로 닿게 하기 위해서는 열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기도란 바로 이와 같다. 이곳 땅에 있는 우리와 저 하늘에 계신 분과의 연결은 종종 끊어진 전선과도 같다. 그 연결에 전혀 틈이 없게 되는 그 날, 그것은 우리의 미래의 소망이 주는 기쁨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사는 동안만큼은 종종 틈이 벌어지곤 한다. 우리는 통하게 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메시지를 하나님께 보낼 수도 없고 또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을 수도 없게 된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열의 문제이다. 대화가 재개될 수 있는 심령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기다리라
나는 어렸을 때 천식이 있었다. 이 천식이 십대에는 악화가 되었고 대학 초에는 봄 학기 시험을 포기해야 할 만큼 상태가 아주 안 좋았다. 나와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치유를 위해 꾸준히 기도했고. 그 언젠가는 기름을 부으며 안수를 받기까지 했지만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다.
몇 년 후 어느 이른 아침. 그 조용한 시간에 하나님께서 기도책의 한 문장을 통해 내게 나의 기억의 치유가 필요함을 보여주셨다. 이것에는 내가 전에 경험하지 못한 더 깊은 수준의 누군가에 대한 용서가 따랐다. 나는 내 마음의 감찰과 기도로 며칠을 보냈다. 절대 나는 나의 천식문제로 기도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만 성령님께 그러한 분노와 아픈 기억을 처리해주시기를 간구했다.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천식을 앓아본 적이 없다. 천식 치유를 위해 많은 기도가 드려졌었지만. 그때까지 나의 깊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 기도 응답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삶에서 응답되지 않은 기도의 많은 부분에 대한 사실이다.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이유로 하나님이 주실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많은 성인들이 기도에는 .예. 와 .아니오. 만이 기도의 응답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주 다른 응답을 우리에게 주신다. 기다리라고 응답하실 때도 있다.
기다림과 응답
때때로 우리의 기대는 오랫동안의 기다림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기도목록 중 어떤 것들은 응답받기까지 아주 오랜 시일이 걸리는 것도 있습니다.
나의 기도목록 중에는 군대에서 정년퇴직하신 아버지의 구원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퇴직하시기 직전에 아버지께선 우리를 보기 위하여 댈러스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셨었는데. 물론 우리 아이들은 미칠 듯이 좋아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오신대, 할아버지가 멋진 군복을 입은 모습은 정말 근사해.” 아버지께서 오색찬란한 단추들이 달린 군복을 입고 비행기 문에서 모습을 보이자 막내 녀석은 할아버지를 맞으러 뛰어나갔습니다. 아버지께서 계단을 다 내려와 팔을 벌려 막내 손자를 꼭 껴안았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이르렀을 때 막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선 이미 예수님을 아시죠.” 아버지께서는 “모르겠는데. 얘야, 내가 예수를 확실히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게 왠지 어렵구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요. 그럼 할아버지께선 이제 금방 아시게 될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들이 매일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거든요.” 하지만 그때의 '금방'이란 말은 몇 해라는 기간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께선 1974년 돌아가시기 넉 달 전에야 그리스도를 영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분을 위해 42년간이나 기도해왔던 것입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몇 년씩이나 기도해왔습니까.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8) 항상 간절한 기대감을 갖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십시오.
기다림에 사는 신앙
어떤 가난한 시인이 늦은 가을에 낙엽들이 바람에 굴러가는 공원의 한 구석의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공산주의의 달콤한 선전을 생각해 봅니다. 배가 고프고 춥고 가난하고 직업이 없는 이 시인은 '빈부의 차이도 없고 실직자도 없고 골고루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사회가 얼마나 좋은 것인가! 왜 나쁘다는 것인가?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기독교의 사랑은 아무래도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공산주의에서 선전하는 배고픔과 직통하는 그런 느낌이라든가 그런 투명성이라든가 그런 직접성 같은 것은 기독교의 복음에는 없지 않을까? 또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의 여신들이 연애를 하고 질투를 하는 이야기처럼 내 말초 신경까지 짜릿하게 느껴지게는 못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저는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우리들의 생명은 사도들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소설들을 읽어 보면, 그 소설들이 전달해 주는 공감은 복음서가 전달해 주는 공감보다도 훨씬 투명하고 직접적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성경에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그림자 있는 인식'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또 다르게 말하면 몽롱한 밤에 보는 산과 같다고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질그릇 속에 보배가 담겼으니'라고도 말했습니다.
기도
* 기도란
1.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손길이 요구되는 것............마8:2-3
2. 구원해 줄 것을 외치는 한 절망자의 음...............시107:6, 13, 19, 28
3. 모든 것을 공급하는 하늘나라의 창고를 열어주는 열쇠.......행4:31
4. 원수의 배후를 지켜주는 보호의 울타리.............느6:9
5. 신령한 상태를 통하여 전체적 건강을 지켜주는 생명의 피.....빌4:6, 7
6.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풍요한 열매의 액체...........요15:7, 8
7. 찬양의 동반자..........행16:25
* 응답을 받지 못하는 기도
1. 마음에 죄악을 품은 자의 기도......시66:18, 요9:31
2. 정욕으로 쓰려고 하는 기도.........약4:3
3. 믿음 없이 하는 기도...............히11:6
4. 두 마음으로 의심하는 자의 기도....약1:6-8
5. 교만한 자의 기도..................눅18:11
6. 용서하지 않는 자의 기도...........막11:25,26
7. 순종치 않는 자의 기도...........신30:2, 삼상15:22
8. 부부 싸움 하면서 하는 기도........벧전3:7
* 어떻게 기도할까
1. 솔로몬처럼 경외하는 마음으로.......대하6:13
2. 다니엘처럼 꾸준한 자세로...........단6:10
3. 시편 기자처럼 경배함으로...........시95:6
4. 예수 그리스도처럼 복종하는 마음으로...눅22:41
5. 문둥병자처럼 간절한 마음으로.......막1:40
6. 스데반처럼 용서하는 마음으로.......행7:60
7. 베드로처럼 다비다를 위해 한 것과 같이 중보의 마음으로...행9:40
8. 바울처럼 에베소 교회를 위한 것과 같이 신실한 마음으로...행20:36
9. 사도들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은 것과 같이 명확한 마음으로.........엡3:14
기도
미국에서 911은 전화 비상호출 번호이다. 이 세 개의 숫자를 돌리면 즉시 비상 구급대원과 연결된다. 그러면 비상구급대원은 즉시로 그 사람의 전화번호, 주소, 그리고 이름까지도 모니터로 불러낼 것이다. 비록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을 하지 않더라도 - 예를 들면, 그가 심리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거나 돌연한 공포로 수화기를 통해 비명을 지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도 - 비상구급대원은 그 집이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안다. 그리고 도움의 손길이 곧 미치게 된다. "절망과 고통이 우리레게 밀어닥칠 때마다 911로 다이얼을 돌려 기도하자. 우리는 가끔 극도로 흥분되는 때가 있는데, 그럴 경우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에도 하나님은 듣고 계신다. 우리의 이름과 상황을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도움의 손길이 곧 미친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시기 시작하신다. "
기도 2
얀케후가 말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모진 비바람을 만났다. 잔뜩 겁 먹은말은 단 한 발자국도 내디디려 하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오오 하나님, 제발 아무일 없이 비바람이 자게 해 주십시오. 저의 간곡한 기도를들어 주신다면 저는 이 말을 팔아서 그 돈을 전부 이웃을 위해 쓰겠습니다."
이 기도 가 하나님께 통했던지 잠시 후 비바람은 씻은 듯이 걷혔다. 얀케후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말을 끌고 다시 시장으로 갔는데, 그의 다른 한 손에는 닭 한 마리를 들고 있었다. 이것을 본 농부가 그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여보쇼, 그 말 파실 거요?"
"그렇소이다. 하지만 닭까지 끼워서라야 팔겠소."
"그래요, 그럼 합쳐서 얼마요?"
"닭이 50루우블, 말이 1루우블이요."
기 도 3
기도의 언어는 있었으나
기도의 능력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소리는 있었으나
기도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기도의 형식은 있었으나
기도의 내용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입술은 있었으나
기도의 가슴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머리는 있었으나
기도의 발길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생각은 있었으나
기도의 손발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풀잎은 있었으나
기도의 열매는 없었습니다.
기도의 하늘은 있었으나
기도의 땅은 없었습니다.
기도 4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게 마옵시고
위험에 처하여서도 겁을 내지 말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옵시고
고통에 처하여서도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인생의 싸움터에서 동조자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옵시고
인생과 싸워서 이길 스스로의 힘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근심스러운 공포 속에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게 마옵시고
자유를 내가 싸워서 이길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겁쟁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내가 기쁘고 성공할 때 만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신다고 생각하게 마옵시고
매일매일 내가 슬프고 괴롭고 남이 나를 핍박하고 내가 배고플 때 하나님이
내 손목을 꼭 붙잡고 계신다는 것을 믿게 하옵소서.
기도가 절박한 때
한번은 오하이오 북부에 위치한 어떤 교회에서 주말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의 큰 기도제목 하나는 수년 동안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오다가 다시금 세상으로 돌아간 한 젊은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점심시간에 그 젊은이의 약혼녀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약혼자의 영혼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에 관하여 저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저는 그 여자로부터 열의와 진실성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청년으로 하여금 다시 주일 예배를 드리게 기도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당장 기도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손에 들고 있던 쟁반을 내려놓고 서로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그 기도에는 한 사람이 더 참여했는데 그 사람은 우리의 이야기를 옆에서 그냥 듣고 있는 어떤 부인이었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그곳에 서서 그 젊은이를 다시금 주일 예배로 회복시켜주시도록 아주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던 중에 우리 세 사람은 척추를 따라 오르내리는 영적인 전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일이었던 다음 날. 초청시간이 되었을 때 그 젊은이는 다시금 주께 마음을 드리기 위하여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의 필요성을 느꼈던 바로 그 시간에 기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당신은 긴급하게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기도생활에서 범하는 큰 실수 가운데 하나는 기도해야 할 필요성. 욕구 또는 절박함이 있음에도 북구하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기도를 요청해올 때. “기도해 드릴께요”라고 말하면서 슬쩍 벗어나버리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행동은 그 사람을 부당하게 대하는 셈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기도부탁을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라면 그때야말로 기도가 절박한 때이며. 우리가 기도를 채 마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임을 확신합니다.
기도는 전기와도 같다.
전기가 지극히 가까운 곳까지 접근해 와 있지만 스위치를 누르지 않으면 어둠은 물러가지 않고 불빛은 밝혀지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도 이와 같이 항상 우리의 생활을 감싸고 있다. 그러나 '주여'하고 무릎을 꿇고 간구하는 기도가 없을 때에는 언제든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작은 막이 생겨서 어려운 현실에 접하게 된다.
만일 어두운 방에 앉아서 스위치를 누를 생각을 하지 않고 어둡다고 불평하고, 나에게만 이 어두움이 유독 기습한다고 실의에 빠져 남을 원망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하면, 얼마나 우매한 일이 되겠는가.
전기는 아주 가까운 데까지 미쳤고 스위치만 누르면 빛이 방안에 가득히 비치도록 구조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움을 운명으로 체념해버리는 것은 그 자신에게 원인이 있다.
전기가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듯이, 하나님의 능력을 내 생활 속에 영향력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기도'라고 하는 스위치를 눌러야 하는 것이다. 기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문을 열게 되고, 기도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내생할 속에 이끌어 오게 되며, 기도만이 우리 삶의 허다한 문제를 하나님의 소관으로 넘겨드릴 수 있는 방법이 되기 때문에, 어두움을 몰아내기 위해서 전기의 스위치를 누르듯이 우리 생활 속에 광명이 있게 하기 위해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는 죄를 그만 짓도록
매일 충실하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보다 더 쉽게 유순함과 순결함과 순종의 정신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헨리드루몬드는 늘 이와 같이 말하곤 했다. "매일 아침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보낸 5분 -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흉금을 터놓는 교제라면 2분도 좋다 - 은 온 하루를 바꾸어 놓을 것이며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바꾸어 놓을 것이며 나 자신이나 이웃을 위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을 그리스도를 위해 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죤 번연의 유명한 말을 우리는 기억한다. "기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그만 짓도록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가 인간으로 하여금 기도를 그만 두도록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영혼의 방패요 하나님께는 희생 제물이요 사탄에게는 채찍이 되기 때문이다."
병에 반쯤 들어 있는 것을 흔들면 그 안의 내용물을 뒤섞어 놓을 수 있다. 그러나 병에 가득 차게 들어 있는 것은 흔들어도 내용물이 뒤섞이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영혼은 의심과 모든 형태의 악으로부터 보호될 수가 있다. 특별히 많은 젊은 사람들이 성경을 공격하는 책들을 읽을 시간은 할애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읽을 시간을 내지 않는 것은 매우 슬픈 사실이다.
허드슨 테일러(J.Hudson Taylor)의 말이 생각난다. "사탄은 우리 둘레에 울타리를 쳐놓고 우리가 움직이는 것을 방해할는지는 모르나, 우리 위에 지붕을 씌우고 우리가 위를 쳐다보는 것을 방해할 수는 없다."
기도는 차이를 만든다
한 조종사가 나이제리아의 어느 정글 위를 날고 있었을 때 비행기 엔진이 작동을 멈추기 시작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기도하기 시작하였을 때, 그의 눈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초록색 깃발을 보았고, 그곳을 향해 미끄러져 하강했다. 그곳은 깨끗하게 정돈된 공지였다. 착륙하면서 비행기가 조금 상하긴 했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두 달 후의 안식년에 그 사고에 대해 간증을 하였을 때 한 여성도가 사고가 난 날짜와 시간을 물었다. 바로 그 위기의 때에 주님께서 그녀를 일깨워 주신 것이 판명되었다. "나는 당신이 절박한 필요에 처해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30분쯤 당신을 위해 기도했을 때 내 마음에는 평안이 임했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한 OMF선교사가 선교비를 들고 역으로 가고 있을 때, 강도들이 그를 에워쌌다. 그러나 강도들은 곧 흩어져 도망갔다. 후에 강도 중 하R나가 구원 받았을 때, 사람들은 왜 그때 강도들이 선교사를 죽이고 돈을 탈취해 가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회개한 강도는 "우리는 군인들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고 대답했다. 기도후원그룹이 그 선교사를 위해 그때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 판명되었고 강도들이 본 군인들의 숫자는 기도후원자들의 수였던 것이 드러났다. 기도는 위기의 때에 결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기도는 해바라기 꽃
기도란 해바라기 꽃과 같다. 아침에 동쪽을 향하여 몸을 돌리는 해바라기는 어두움 속에서 찬란하게 떠오른 해를 사모하며 기다린다. 점심때가 되고 저녁노을이 질 때까지 해바라기는 계속 해를 움직인다. 해가 져서 캄캄한 밤이 되어도 해바라기는 실망하지 않는다. 내일 또 다시 해가 뜰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캄캄한 밤에도 해바라기는 쉬지않고 계속 자기의 몸을 해가 뜨는 동쪽으로 움직인다.
기도란 해바라기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사모하고 갈망하며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어 놓고 은혜와 사랑을 기다리는 상태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알려드리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아낌없이 드리고 바치는 우리의 마음,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도는 "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귀"를 요구한다. 주님을 끊임없이 사모하고 갈망하는 마음의 상태가 곧 기도이기 때문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누구에게나 실천 가능한 말씀이다.
기도라는 것
아침 묵상시간이면 내 마음은 언제나 흐트러지고 근심으로 가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이 초조해 있을 때 우리 집 고양이가 내 발 밑에서 낑낑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고양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달래보려 했지만 고양이는 어느 것도 싫다는 태도였다.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할퀴면서 내게서 빠져 나갔다. 나는 속이 상했다. 내가 저를 달래 주려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너와 하나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너를 붙들어 위로하고자 하나 네가 때로 광란하여 하나님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게 만드느니라.”
그로부터 나는 날마다 드리는 기도시간 동안에 한 가지 작은 연습을 시도해 보기로 결심했다. 하나님의 무릎 위로 기어오르는 내 모습을 그려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로 다가갔을 때, 그의 튼튼한 두 팔이 나를 감싸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는 심호흡과 더불어 그의 강한 힘이 내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옴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분의 가슴에 내 머리를 대고 귀를 기울였다. 서서히 내 마음 속의 괴로움은 사라지고 마침내 내가 추구했던 하나님과의 일체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기도로 사역에 동참하다
저술가요 제3세계 복음화에 생을 바친 전도자 존 학개는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던 한 개인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개인은 바로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자니는 태어날 때 술에 만취된 산부인과 의사의 실수로 심한 불구자가 되어 24년간을 불구 상태로 살다가 주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자니는 예라는 뜻의 “야”라는 말과 아니오 라는 뜻의 “음”이라는 두 마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혼자서 옷도 입을 수 없었고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그를 위해 삶을 온통 희생해야만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몸은 비록 불구의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자니의 마음속에는 힘찬 영의 생명이 살아 있어서 그 소임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제3세계에 선교 여행을 다녀오면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하고 계시는 모든 사역에 대해 자니에게 자세히 얘기해주었고. 자니는 구원받지 못한 그 사람들에 대해 영적으로 무거운 짐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는 전 세계의 복음화와 여러 나라에서 수행하는 그의 아버지의 사역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비록 이 세상은 그가 태어난 자체가 큰 실수요 비극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한 개인의 지속적이고 신실한 기도가 세계 복음화에 어떤 기여를 했으며. 어떻게 사탄을 물리치게 했는가를 하나님만은 아실 것입니다.
기도로 섬기는 일
어떤 부자가 교인이 자기 교회의 가난한 과부집에 병문안을 갔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다 한 끝에 "이렇게 늘 병으로 고생하는 이보다 차라리 어서 괴로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하니 "당신은 재물이 많아서 좋은 일을 많이 하였지만 나는 가난하여 물질로는 일을 못하는 대신 기도로 교회와 형제들을 위하여 아직도 할 일이 많음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좀 더 세상에 있다가 가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딤전 2:1-4)
기도시간
어느 해 겨울. 어떤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나는 여름옷을 입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 여자는 너무나 가난하여 솜을 넣은 겨울옷을 입지 못했으며 버선도 없이 맨발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여인이 너무나 불쌍하게 여겨져 입고 있던 솜 덧저고리와 치마를 벗어주었습니다. 1년 후 나와 스크랜톤 부인은 그 마을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고 반갑게도 그 여인과 또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내가 벗어준 옷을 받고 즉시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게서 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남편에게 전함으로써 드디어는 남편도 주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하는 일들도 잘 되어 아주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크랜톤 부인은 그 여인에게 “요즈음 얼마나 자주 기도하십니까.”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너무나 바빠 기도할 시간조차 가질 수 없을 때는 일하면서도 기도한답니다. 만약 빨래를 하게 되면 주여. 내가 이 옷들을 깨끗하게 빠는 동안 내속에 있는 더러운 모든 죄도 깨끗하게 씻어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논밭에서 김을 매며 잡초를 뽑을 때면 오 주여. 내 속에 있는 죄악의 풀과 가라지를 뿌리째 뽑아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누구든지 진심으로 간절하게 기도하기를 원한다면 특별한 기도시간을 따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 생활을 지속하는 비결 (김장환)
★삼상 27~29/눅 17:1~19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막 14:38.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어느 책에선가 습관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기가 막힌 선물이다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선용할 때만 적용될 말이겠지만 말입니다.
어떠한 행동을 하루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3주 동안 계속하면 그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고 합니다. 이 말은 날마다 기도하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3주 동안만은 그 시간에 꼭 기도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력만 있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그렇게 해보십시오. 분명 당신의 삶이 놀랍게 변화될 것입니다.
주님, 저희로 날마다 주님과 교제할 것을 사모하게 하옵시고 그에 합당한 의지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 당신은 규칙적인 기도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자신의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에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어라.
기도로 값을 치르자
배우자와 자녀들 외의 다른 가족들에 대해서도 보다 큰 관심과 사랑을 가질 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하십시오. 때로는어떤 한 사람에 대한 기도만이 끊이지 않고 나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생기거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십시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그 사람이 그날 특별히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도의 순서를 정해놓고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제목만 나열하게 되는 식의 기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 대신 성령께서 다른 기도제목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허락해주실 때까지 계속 그 제목을 위해 기도를 드리십시오. 만약 기도 시간이 다 지나가버렸는데 주기도문의 모든 주제들에 대해 기도를 하지 못했다면 일단 거기서 기도를 마치고 아직 다 하지 못한 기도제목들이 어떤 것인지 기억해 두십시오. 그리고 하루를 살아가는 도중 기회가 생기는 대로―차를 운전하면서, 집 주위에서 일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그것들에 대해 기도를 드리십시오.
당신의 삶이 기도의 삶이 되게 하십시오.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해 기도로 값을 치르는것을 배우십시오. 그리고 매일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다스려도 되겠느냐.고 물으신다면 기쁘게 외치십시오. 예. 예. 나라이 임하옵시며.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나 자신과 내 배우자와 내 아이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옵나이다. 나는 자신의 모든 소원들보다 당신의 뜻을 제일 앞에 두나이다.
기도로 얻는 평안
오늘날 선진사회에서의 가장 큰 사회적인 문제는 너무나 많은 사람 들이 정신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레이건 대통령과 요한 바오로 교황의 저격범이 모두 정신병자로 밝혀졌습니다.
고도로 분화된 산업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시간에 쫓겨 대화를 나누지 못하며, 인격적인 대우를 받기보다는 상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고독감7과 정신적인 부담을 견디지 못해 정신병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모든 짐을 주님께 내어 맡길 수 있습니다. 성경은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시37:5)라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아무리큰 근심과 염려가 다가와도 기도함으로써 주님께 다 맡겨 버리면 주님께 서 우리의 마음속에 평안을 가득 채워주시며 어떠한 역경에서도 승리 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헤치고 나아 갈 수 있는 힘과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 니라](베드로전서5:7).
기도로 얻는 축복
한국의 유나이티드 제약회사 사장 강덕영(姜德榮) 집사님은 현재 우리나라에 많은 약들이 수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을 만들어 선진국에 수출을 한다고 합니다.
그가 세계 일주를 하려고 세계의 나라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세계의 선진국들은 거의 하나님을 믿는 나라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나라들이 부강하고 선진국이 된다는 사실을 통해 하나님을 믿어야겠다는 것을 깨닫고 성경말씀을 읽고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함으로 개발한 신약 44제품을 선진국에 역수출을 하여 성공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수입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많아도 수출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진짜 애국자는 수출을 해서 외화를 버는 사람입니다.
아이디어를 얻어도, 계획을 세워도, 일을 하더라도,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통해서 함으로 축복받고 승리하고 성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개 성공하는 사람들은 새벽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아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봉사하며 무언가 큰일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중에도 남은 인생을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게 성공하고 크고 좋은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모두 새벽기도를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선을 베풀고, 전도하고, 하나님 앞에 주어진 사명과 능력을 가지고 앞장 선 삶을 살려면, 다른 사람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성경도 더 많이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만사에 형통하게 됩니다.
기도문
행복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옵소서.
슬플 때 주님 앞에 소망 갖게 하옵소서.
외로울 때 주님의 임재를 느끼게 하며
쓸쓸할 때 하나님의 속삭임을 듣게 하옵소서.
기쁠 때 주님 앞에서 소리 내어 찬송하게 하옵소서.
두려울 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게 하옵소서.
시련과 고난이 있을 때 주님 생각하며 인내하게 하옵소서.
미움과 분이 있을 때 주님 사랑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활과 주님의 주신 도구로서 이웃에게 늘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문(그 모습)
오~ 오 그대는 아시는가. 주님의 말씀을.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아끼지 않으시며
외치고 외치시었던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듣게 하소서. 울부짖으시었던 그 말씀을.
귀로만이 아니라 영혼과 온 마음을 합쳐서 듣게 하소서.
영광과 수치를 가리지 않으시며
울부짖으시었던 진리이신 주님의 말씀을.
진리이신 진리이신 주님의 말씀을.
어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 조상이 사랑하시던 성경책 속에
거기 거기에 있네. 예수님과 말씀이.
기도문(속죄)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 주님을 부릅니다.
씻고 씻고 또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 우리의 죄
붉고 붉은 당신의 피로
우리를 씻으시옵소서. 씻어주옵소서.
사랑의 주 은혜의 주 정의에 주님이시여
죄인을 외면 마옵소서. 붙들어 주옵소서
구원하시옵소서. 소망을 주옵소서.
주님의 오묘한 말씀 은혜의 말씀 자비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 하셨던 그 율법을
우리 어찌 잊으오리이까? 주님의 말씀을
허나 주님의 율법을 범한 죄인에게
정한수를 뿌리사 또다시 기름을 부으소서.
또 다시 흘리는 우리의 눈물 받으시옵소서.
기도문(아픔)
그 얼마나 아프셨을까. 가시면류관 쓰실 때
그 얼마나 상하셨을까. 우리 주님의 마음이
그 얼마나 아프셨을까. 양손에 못 박히실 때
그 얼마나 생각하셨을까. 우리 하나님이 예수님을
그 얼마나 아프셨을까. 허리에 창이 끼어졌을 때
그 얼마나 생각하셨을까. 예수님이 하나님을
그 얼마나 상하셨을까. 피와 물 흘리우실 때
그 얼마나 생각하셨을까.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기도문(용서와 사랑)
주님은 우리의 머리칼 한 가닥 한 가닥을 세신다고
사람들은 말을 합니다.
또한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고 사람들은 말하면서
부정을 행합니다.
참으로 어지시고 선하신 주님
우리를 구원하시옵소서.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라 하든지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보호를 기다립니다.
진실로 진실로 선하신 주님
우리가 당신의 눈을 피하려고 하면
주님은 보지 않으시려고 애를 쓰십니다.
거짓을 진실인 양 주님을 대하면
주님은 거짓을 진실로 바꾸어 주십니다.
참으로 선하시며 좋으신 주님
그 누가 우리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까.
기도문(주님의 소리)
목이 메이시고 또 목이 메이시던
우리의 주님의 소리여
그 소리 그 소리
오- 그 소리
듣게 듣게 하옵소서.
영광의 길 가기보다는
가시 면류관 쓰시고
십자가 지시고 가시면서
보여 주시었던 그 소리
죄에 빠진 영혼을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시었던 그 소리
오- 우리는 진정
그 소리를 듣는가 보는가 알고 있는가.
기도를 믿지 못한 교회
유서 깊은 무디 교회 목사인 어윈 루쩌의 "7가지 대표적 기적"이라는 에 보면 이런 유머러스하다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교회 옆에 위치한 술집 주인이 이웃교회 교인들이 자기가 경영하는 술집이 천둥벼락을 맞아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주 후 진짜 그 술집이 천둥벼락을 맞아 불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술집 주인은 변호사를 고용하여 교회를 고소하고 손해 배상을 청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교회 측을 대표하는 교회 지도자가 나와서 스스로의 입장을 변호하며 아무리 교인들이 그런 기도를 했기로서니 술집이 그 결과로 천둥벼락을 맞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는 식으로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고심하던 재판관은 마지막 최후 판결을 다음과 같이 내렸다고 합니다. ”술집주인은 기도를 믿었고, 교회는 기도를 믿지 않았음”
기도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1517년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항의 "개혁선언문"을 붙여 종교개혁의 포문을 열었다. 당시 평범했던 그가 어떻게 절대 권력의 교황의 세력과 맞설 수 있었을까. 루터는 그것이 기도라고 말한다. "만일 내가 새벽에 두 시간 이상을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나에게는 너무나 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날마다 세 시간 이상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그 기도가 모든 일을 지탱해 나가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기도소리
1890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평양선교를 개척한 마펫목사는 가정에서 매일 예배를 드렸다. 이런 경건한 정서에서 자란 다섯 형제는 모두 선교사가 되어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그의 아들 S.H .마펫은 후에 부모의 기도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 형제를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부모님은 우리 형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했는데 그 후 어려운 일을 당할 때나 결단을 할 때 그 기도소리가 큰 힘과 용기가 되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유명한 설교가인 템플 목사가 한번은 케임브리지 대학 채플에 설교자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 좋은 기회에 내일이 촉망되는 젊은이들에게 무슨 인상 깊은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가 기도를 배워 하나님 앞에 기도드릴 수 있다면 저들의 장래는 얼마나 복될 것인가라는 데 생각이 미쳐 그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 채플에서는 이런 제목의 설교는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템플은 이 대학생들의 영혼을 사랑해서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기도의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 말씀을 열심히 증거하였습니다. 채플이 끝나자 한 학생이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이 과학시대에 아직까지도 기도의 응답이라는 미신 같은 소리를 믿고 계십니까? 우연의 일치를 가지고 그리스도인은 기도의 응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템플은 말했습니다. "기도가 우연의 일치라고요? 우연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학생,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내가 기도를 그치면 그 우연도 그쳐버리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기도와 의심
사람은 회의와 의심이 찾아 올 때가 있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성경의 많은 신앙인이 다 이와 같은 경험이 있다
예 : 아브라함 -- 애굽 땅 누이동생. 세례요한 --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베드로 -- 3번부인.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의심이 찾아 올수 있으되 그 의심에 사로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의심이 생기는 이유
1. 부정적인 환경이 찾아올 때
2. 나의 기분 감상 느낌에 따를 때
3. 지나친 이성의 차거움
4. 사탄의 시험에 의하여
의심의 극복
1.약속하신하나님을 믿으라
2.신앙의 의지를 가지라...오병이어의 빌립보다는 안드레처럼 밀고 나가라.
3.과거의 체험을 되새기라...진정한 사실이 흔들리면 안 된다.
기도와 응답
어느 날 저녁 일과 후 타자기 앞에 앉아서 제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만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밤마다 저는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저는 사무실에서 모든 사람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타자기 앞에 앉아 종이를 끼워 말아 넣고 이처럼 타자를 했습니다. “저는 49세의 늙은 나이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영감이 완전히 중단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타자하기 시작했습니다. “49세의 나이에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또 유사한 작업이 반복되었습니다. 짤막한 문장 하나를 타자하고 나서 저는 속으로 '정말로 형편없군.'하고 외쳤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작가도 아니며, 작가가 될 수도 없어요.”
어느 날 밤, 저는 목사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리스도인이 된 과정을 이야기로 기록하라는 짐을 부과하셨는데, 이것이 제대로 이행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분은 누군가가 전에 제게 했던 위대한 충고 몇 마디를 했습니다.
“프란시스 여사, 다시 타자기 앞으로 가서 앉으세요. 그리고 기도하세요. 당신의 손가락들과 당신의 두뇌를 하나님께 드리고 그분이 원하시는 글을 기록하는 데 이것들을 사용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저는 전화를 끊고 타자기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것은 저의 손가락입니다. 이것은 저의 뇌입니다. 이것들 모두를 사용하셔서 당신이 쓰시고자 하는 이야기를 쓰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후에 나는 타자기에 종이 한 장을 끼워 넣었습니다. 제 손가락은 날듯이 타자기 자판 위를 움직였습니다. 타자한 글을 교정하여 재기록하지도 않았습니다. 출판사 직원이 겨우 몇 단어를 고쳤을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것들이 쓰이는 과정을 지도하셨으며, 영감이 끝났을 때 그 책이 완성되었음을 제 마음과 영혼을 다해 확신합니다. 저는 책을 쓸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구했을 뿐이며, 저의 단순한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 즉각 응답해주신 것 입니다.
기도의 결과
빈센트 필 목사가 어느 의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지금까지 의사로 살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의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 인생을 변화시켰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10%밖에 없는 매우 허약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간호사들이 수술 준비를 하는 사이에 나는 수술대 위에 있는 소녀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그때 그 소녀는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저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합니다. 지금 기도해도 괜찮겠지요? 라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마음은 너무나도 괴로웠습니다. 나는 평소에 주님을 잊고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소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소녀는 '사랑이 많으신 우리의
목자 예수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오늘밤 당신의 이 어린 양을 지켜주세요.. 그리고 예수님 ,의사선생님에게도 축복해 주세요. 그분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녀의 기도야말로 나를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나는 그때 간호사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돌아서서 난생 처음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하나님, 저를 용서하여 주시고, 이소녀의 생명을 구하게 하소서!' 결국 그 소녀는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기도의 기적
중국의 린창 시를 방문한 때의 일이었다. 한 여인이 다리를 끔찍하게 불에 덴 어린 아이를 데리고 왔다. 한쪽 발전체가 굉장히 부풀어 올랐으며 화상은 다리까지도 상당히 올라갔었다. 아이는 열에 들떠 있었고 심각한 상태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여행에서는 내가 여행 시에 늘 지니고 다니던 간단한 치료약을 잊고 가져가지 못했으므로.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그 여인에게 말해주었으나. 그녀가 너무도 가련하게 애걸하였으므로 도저히 그 아이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께서 나를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를 주님께 여쭈었다. 그런데 기도를 하던 도중에 갑자기 빵반죽 찜질약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것으로 화상을 치료한다는 것은 거의 말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라나 이런 상태에 그런 것이 치료제로 사용된다는 이야기를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것을 한번 시도해보기로 작정했다. 하루에 두 번씩 발을 깨끗이 씻은 후에 그 찜질 약에 발을 담갔다. 그랬더니 참으로 놀랍게도 화상이 나아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곳에 열흘 동안 머물렀는데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에는 발이 거의 나아 있었다. 그 아이의 부모와 그 아이 자신. 그리고 실제로 그 온 가족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뒤에 그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 나는 그 아이의 발을 살펴보았는데 상처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음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사건을 한 의사에게 이야기했는데. 그는 내 말을 듣더니 “아. 그것은 전혀 기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최근에 발견된 치료법―청결에 의하여 회복의 기회를 주는―이랍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의사 선생님. 내가 그것을 기적으로 여기는 것은 그 찜질약이 화상을 고쳤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것을 사용하도록 가르쳐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당신이 그것을 최신의 치료법이라고 말했으니 나에게 있어서 그 일은 더욱 기도의 기적으로 여겨지는군요.”
기도의 동역자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가 런던의 메트로폴리탄 교회에서 목회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교인 중에 한 나이 많은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 할머니는 주일날 교회에 나올 때마다 언제나 그날 새로 등록한 초신자 스무 명의 명단을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그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의 신앙을 위하여. 또 모든 시험을 이기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그야말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평생 기도를 했습니다.
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스펄전 목사는 장례식을 인도하면서 “그는 나의 가장 훌륭한 동역자였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교역자를 위해 기도 하는 것은 큰 동역입니다. 새로 믿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목회자에게는 큰 동역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 위대한 동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비록 사람 보기에는 작은 일 같아도 하나님께는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우리는 모릅니다. 가장 귀중한 것은 이런 영적인 것들입니다. 그래서 구역장. 권찰 그리고 교구장이 매일 교회에 나와 그 교구의 교인들을 위해. 어려운 문제를 당한 교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차례차례 기도하는 일이야말로 목회자의 큰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한 부인이 식료품 가게에 와서 성탄절 만찬에 아이들을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식료품을 달라고 했습니다.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주인이 물으니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어서 기도밖에는 정말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기도를 종이에 써주십시요. 그러면 그 무게만큼 식료품을 주겠소.” 놀랍게도 부인은 접혀진 노트 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주인에게 건네주면서 “우리 어린애가 지난밤에 아파서 옆에서 병간호를 하며 기도를 적어 두었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읽어 보지도 않은 채 주인은 구식 저울의 추를 놓은 곳에 기도가 적힌 종이를 놓고는 “자 이 기도가 얼마치의 식료품 무게가 되는지 달아 봅시다”하고 중얼거렸습니다. 놀랍게도 빵 한 덩어리를 놓았는데도 저울은 꼼짝을 안했습니다. 다른 식료품을 올려놓았는데도 저울은 움직이지 않자 주인은 더욱 당황했습니다. 드디어 저울에 더 이상 올려놓을 수 없으니 당신이 봉지에 담아 가시요. 나는 바쁘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눈물 흘리고 감사하며 그 부인은 감사 하는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저울이 고장 난 것을 얼마 후 주인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주인은 가끔 의아했습니다. 그때 일이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왜 그 부인이 미리 기도를 써가지고 왔을까? 왜 그 부인이 저울이 고장 났을 때 왔을까? 그때 그 부인이 적은 기도문은 “주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였다.
기도의 방법
기도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쉬지 말고 하는 기도가 있다. 바울과 느헤미아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순간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를 하였다.
둘째, 매일 시간을 정하여 하는 기도가 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 다윗은 일곱 번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였다.
셋째, 특별한 기도가 있다. 야곱과 예수님은 특별한 일을 앞에 두고 철야기도를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할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며, 하루를 마치면서 반성하고, 회개하고, 은혜를 감사하며, 영혼을 주께 맡기고 잠자리에 들어야 할 것이다. 기도의 열쇠로 아침 문을 열고 기도의 자물쇠로 저녁 문을 잠가야 할 것이다.
길에서 무릎을 꿇는 자가 기도의 사람이 아니며, 공식적인 자리에서 긴 기도를 하기 좋아하는 자가 기도의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기도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행하는 자가 참 기도의 사람이다.
죄인인 인간이 기도를 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신뢰를 이어갈 것이며, 약한 인간이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임의 거룩한 뜻을 행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 하나님을 가장 잘 신뢰하는 자가 가장 기도 잘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행하는 자만이 참 기도를 생활화하는 기도의 사람이다.
기도의 방해물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저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난 것이 아니냐"-약 4:1.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우리는 기도를 왜 해야 하며, 기도를 하면 어떤 축복이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기도하기를 무척 힘들어 합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기도를 방해하는 방해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방해물들은 어떤 것들일까요? 성경에 입각해서 살펴보면 이기심, 죄, 마음속의 우상, 가난한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사역에 인색한 것, 용서하지 않는 마음, 남편과 아내 사이의 잘못된 관계, 불신앙, 게으름, 사단의 공격, 말씀을 거역하는 것 등이 기도의 방해물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고 있는 요소들을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털어놓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 저희의 기도를 방해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올바로 깨달아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당신의 기도를 방해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
옷을 만드는 것은 바느질 장이가 할 일이고, 구두를 고치는 것은 구두장이가 해야 하듯 기도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 할 일이다.
기도의 사람
유다 왕 히스기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혹독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하나님 앞에 펼쳐 놓았습니다(왕하19:14-).
열왕기하 18장17절에서 우리는 앗수르 왕 살만에셀 휘하의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에 대해 읽게 됩니다. 그들은 와서 히스기야에게 가장 무시무시한 위협을 퍼부어 댔습니다. 그들은 많은 나라들이 앗수르를 대적하려 했으나, 모두 멸절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어느 하나도 앗수르의 진군을 막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히스기야에게 그가 믿는 신을 의지하는 것보다 항복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습니다(왕하18:17-35).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히스기야는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구출된 것이 왕하19:3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위대한 사람들이 바로 히스기야처럼 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나보다 더 위대하고 강하신 그분의 도움이 없이는, 이 높은 직책을 결코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바보일 것입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세계1차 대전 중에, 한 군사회의가 있었습니다. 총사령관인 프랑스의 군인 포쉬(Ferdnand Foch)원수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그를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면 그를 찾을 수 있을지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그는 그들을 조그만 황폐된 예배당으로 인도했습니다. 그곳에서 포쉬 장군은 제단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 제8군 사령관으로서, 북 아프리카 작전을 지도한 몽고메리 원수는, "매일 밤 나는, 내가 나의 장병들을 패배하지 않게 하기를 기도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삶에 있어서 그토록 자주 실패하는 까닭은, 우리 스스로가 일을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그렇듯 자주 좌절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찬송가에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해 줄 때, 그 찬송은 옳은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가장 강력한 세력과 권력을 임의대로 할 수 있는 데도 결코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안다면, 우리는 그를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만일 결코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 같은 일일 것입니다.
매일 아침 우리는 그날 그날을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늙은 영국의 장군 애스틀리(Jacob Astley) 경이 전투에 앞서서 "주님은 제가 오늘 얼마나 분주할 것인지를 알고 계시나이다. 제가 만일 주님을 잊어버리고 있다고 해도, 주님은 저를 잊지 마옵소서"하고 기도드린 것처럼 그도 드릴 시간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어떤 특별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든가, 어떤 곤란한 과업에 작변한다든가, 어떤 특별히 강한 유혹을 극복해야 하는 곤경에 부딪쳤을 때, 우리는 언제나 그것에 관해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기도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던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앙 깊은 한 친구가 그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잠시 앉아서 의자 하나를 자네 맞은편에 가져다 놓고, 하나님께 그 의자에 앉아 계시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정말ㄹ로 그분과 이야기해 보라." 그는 일생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그 후 그가 죽었을 때, 그가 침대 옆에 빈 의자를 끌어다 놓고 있는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히스기야처럼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잊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도 할 수 있게 될 힘을 발견케 될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들
그리스도를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겼던 마퀴스 디렌티가 한번은 사환 아이에게 삼십 분이 지나면 나를 불러 달라고 말하고는 골방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 사환 아이가 문틈으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찌나 거룩하고 성스럽게 보였던지 그는 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이를 알리기를 주저했다. 그의 입술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3시간 반이 지난 후에 시간이 다 되었다고 신호를 했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하는 소리가. 벌써 30분이 다 되었느냐는 것이었다.
브레이너드 감독은 매일 5시간을 기도와 말씀을 묵상함으로 보냈다. 헨리 해블록 경은 항상 매일 새벽의 두 시간을 하나님과 보냈다. 야영이 6에 시작되면 그는 4시에 일어나 기도를 했다. 얼 케언즈는 매일 6시에 일어나 성경공부와 기도로 시간을 보내고 8시 40분의 가정 예배에 임했다.
기도의 삶
배우자와 자녀들 외의 다른 가족들에 대해서도 보다 큰 관심과 사랑을 가질 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하십시오. 때로는 “어떤 한 사람”에 대한 기도만이 끊이지 않고 나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생기거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십시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그 사람이 그날 특별히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도의 순서를 정해놓고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제목만 나열하게 되는 식의 기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 대신 성령께서 다른 기도제목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허락해주실 때까지 계속 그 제목을 위해 기도를 드리십시오. 만약 기도 시간이 다 지나가버렸는데 주기도문의 모든 주제들에 대해 기도를 하지 못했다면 일단 거기서 기도를 마치고 아직 다 하지 못한 기도제목들이 어떤 것인지 기억해 두십시오. 그리고 하루를 살아가는 도중 기회가 생기는 대로―차를 운전하면서. 집 주위에서 일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그것들에 대해 기도를 드리십시오. 당신의 삶이 기도의 삶이 되게 하십시오.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해 “기도로 값을 치르는” 것을 배우십시오. 그리고 매일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다스려도 되겠느냐.”고 물으신다면 기쁘게 외치십시오. “예. 예. 나라이 임하옵시며.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나 자신과 내 배우자와 내 아이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옵나이다. 나는 자신의 모든 소원들보다 당신의 뜻을 제일 앞에 두나이다.”
기도의 승리
세계 1차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기울어져 갈 때 영국군은 천년 동안을 토이기가 지배하고 있는 팔레스틴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영국 사령관 엘넨이 장군은 본국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국항 죠지 5세에게서 공격 금지령이 하달되었는데 그 이유로는,
(1)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성성이니 공격이 볼가하다.-이는 불경죄이며.
(2) 예루살렘을 공격했던 바벨론, 파사, 로마가 멸망하였으니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장군이 반문할 때 회전이 오기를 <기도하라> 는 것이다. 그러하자 터키군 측에서는 갑자기 진격해 오던 영국군축이 죽은 듯이 고요한 것이 계속되므로 오히려 답답해서 영국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그런고로 신앙과 기도는 승리를 하게 된 것이다.
기도의 약속
주님이 믿는 자녀들을 위해서 베풀어 주신 은총과 기록들을 보면, D.J. 칸트라는 사람이 있는데 미국의 남부 철도 회사에 다니는 기관사였습니다. 그는 신실한 기독교 집사였습니다. 그를 몹시 사랑하고 있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칸트 씨가 통행하고 있는 아름다운 역 부근의 산장에 와서 묵게 되었습니다. 칸트 씨는 목사님이 묵고 있는 부근을 지날 때마다 반드시 경적을 울렸습니다. 그것은 "목사님,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십시오."하는 신호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가면서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겠다는 신호였습니다. 목사님은 칸트 씨를 위해서 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목사님이 급한 일이 있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며칠 후 큰 열차 사고가 났습니다. 많은 객차가 수십 미터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기록되었습니다. '열차 사고치고는 대사고였다. 그러나 한 사람도 치명적인 상을 당하지 않았다. 이것은 다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다.'라는 보도였습니다.
시편 91편 11-12절을 기록하여 그 목사님은 칸트 씨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천사를 보내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고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겠다고 하신 약속의 말씀을 보냈습니다. 목사님에게도 동시에 똑같은 성경 구절과 내용이 담긴 칸트 씨의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는 '목사님,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신 덕택으로 한 사람의 사고도 없었습니다. 신문에는 기적이라고 신문 기자들이 평했습니다. 이것이 천사들이 우리들을 지킨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하고 쓰여 있었습니다.
기도의 역사
오늘도 식구들이 모두 일자리를 찾아 나선 어지러운 방을 정돈하고 차 한 잔을 마시고자 식탁에 앉았다. 그러나 갑자기 대학에 다니는 큰아들에 대한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있어 급히 그의 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큰애는 마침 여름방학이라 친구와 가까운 관광지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차를 타고 나간 것이다. 신앙생활과 앞날의 진로, 사회생활 등에 대하여 그리고 오늘 하루도 지켜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드렸다. 왠지 눈물이 비 오듯 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얼마 동안이나 기도를 드렸을까? 정오가 거의 다 된 시간이었다. 그의 방에서 나와 조금 전에 마시던 찻잔을 치우는데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문을 열어보니 바로 큰애였으며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고 손과 팔목에는 긁힌 자국이 보였다. 그 순간 ‘자동차 사고구나!’하는 자식에 대하여 어머니들만이 느낄 수 있는 야릇한 영감이 왔다. 그렇다면 내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그 시간에.... 큰애는 시골의 비포장 길에서 추월하는 차를 비키려다가 논두렁에 구르기를 몇 번(?), 차체는 납작하게 찌그러져 사람이 무사하리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지경에서 무사하였으며 그 차체에서 빠져 나오느라 긁혔다고 한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위하여 어머니를 권고하시며 간절히 기도하게 하시고 이를 응답하시므로 어려움에서 건져주시는 놀라운 믿음과 기도의 역사를 이룬 것이었다.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과 은총에 대해 나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긁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를 묵상하며 큰애의 앞날을 위하여 소망과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기도의 어머니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목사 부인이었는데 감리교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가 다섯 살 때 수산나는 우리나라처럼 국어 교과서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창세기를 펴놓고 글자 하나하나를 가르쳤고 문자를 가르쳤고 성경을 가르쳐서 세 가지를 한꺼번에 공부시켰습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레는 성경을 다섯 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배웠습니다. 열일곱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수산나는 그 자녀들을 혼자 다 키우면서 저녁마다 돌아가며 한명씩 데리고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목요일 저녁에 어머니와 같이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열일곱 자녀를 다 키워서 찰스 웨슬레와 요한 웨슬레 때문에 프랑스처럼 유혈혁명도 나지 않고 영국에 영적 부흥이 일어난 것을 역사가를 통해서 우리는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라든가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 등 많은 훌륭한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무디는 내가 성취한 것 가운데 위대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모두 나의 어머니의 덕택이고 은혜이다라는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좋은 어머니가 되고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모세를 만들어내고 바울을 만들어내고 링컨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교육사업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우리도 준비하고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의 위력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흑인 노예의 자유를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남군과 북군 사이에 큰 전쟁이 벌어졌다.
이것을 소위 남. 북 전쟁이라고 말한다. 풍요를 누리던 남쪽 사람들은 노예 없이는 불편해서 하루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노예 없으면 죽음을 달라'는 비인도적인 표어를 내걸고 북군을 밀어 붙였다.
기승을 부리는 남군 앞에 북군은 가는 곳마다 쓴잔을 마셨다. 상황이 급박해진 북군들은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편이 되셔서 북군이 남군을 물리쳐 승리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를 링컨 대통령이 들었다. 그리고 링컨은 북군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이 북군 편에 서서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북군이 하나님 편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라" 진정한 기도는 사람이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있다.
기도의 위력 2
돌이켜 보면 6.25같은 전쟁은 다시 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부산까지 괴뢰군들이 들어 와서 그야말로 참외밭에 원두막같이 조금 남아 있을 때에 사람들은 이제 다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 때도 성도들이 금식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역사 하셨습니다. 6.25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군을 한국에 파병한다는 결의는 기적 중의 기적이었습니다.
소련이 거부권 행사만 하면 파병이 부결되는 찰나였습니다. 소련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하기 위해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차 가는 도중에 타고 가던 캐딜락 자동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고치느라 시간이 걸렸지요. 이사회에 도착해 보니 벌써 만장일치로 파병이 결정되고 끝난 뒤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금식하며 기도한 것이 그 기적을 낳았다고 믿습니다. 마7:7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늘 기도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원의 요청
옛날에 어느 임금이 사람을 많이 고용해서 융단과 옷을 짜게 했습니다. 그 중에 어린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소년은 베를 짜는 솜씨가 뛰어났습니다. 임금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비단실과 견본을 주고 언제든지 문제가 있으면 곧 자기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일렀습니다. 그 소년은 조용히, 그리고 꾸준하게 일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자꾸 틀려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하루는 사람들이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그렇게 일을 잘 해내고 또 즐겁게 하는데, 우리의 일은 항상 순조롭지 않지? 우리가 짠 것은 꼬이지 않으면 견본과 달라지니 말이야."
소년은 대답하길 "임금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 못하세요? 언제든지 필요하면 도움을 청하세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물론 임금님께 도움을 청했지만 일들은 헝클어지고, 잘못된 것을 해결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단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소년은 "제가 임금님을 몇 번이나 불러야 했는지 아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알지, 그렇지만 그분은 바빠서 그렇게 자주 방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소년은 "저는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했으며, 그 분은 그 때마다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환난 날"에 그를 부르기를 원하십니다(시편50편 15절). 오늘 그분의 도움을 청해 내일의 큰 문제를 피하십시오.
기도의 유치원
우리는 우리의 필요와 욕구, 해결해야 할 문제들부터 자연스럽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토대로 계획을 세웁니다. 직접 하나님을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점, 우리의 재정, 지식, 힘 그리고 달란트 등을 신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필요 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기도는 대부분의 계획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일을 시작할 때보다는 오히려 마무리할 단계에 이르러서야 기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영적인 사람들의 접근 방식과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습니까? 경건한 사람은 책상에서가 아니라 먼저 무릎으로 계획을 세웁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계산이나 측정, 교육, 돈, 좋은 전망, 경영 기술 혹은 달란트, 이런 모든 것들이 없는 상태에서 기도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선택하여 사용하십니다. 사람의 계획이나 지도자, 기타 다른 자원들을 의지하지 않고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때, 우리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됩니다. 사람이 의지할 만한 모든 자원을 버리고 하나님 섬기는 일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깨달을 때까지 우리는 여전히 기도의 유치원에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
나는 와다나베라고 하는 일본 목사님의 통역을 했던 일이 있는데 다음은 그분이 내게 들려주었던 이야기이다. 요시다 게이다로라는 정치범이 독감 방에 수감되었다. 그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감방에 비치되어 있는 서적을 주문하였으나 독감 방에는 불교서적과 성경책만이 허용되었다. 그는 불교 신자도 아니고 기독교 신자도 아니었지만 성경책을 읽기로 하였다. 처음으로 대하는 책을 뒤적였지만 아무런 깨달음이 없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통독하기로 작정하고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계속 읽어가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심취되어 하나님의 실존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음으로써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이치와 또 기도의 위력을 배웠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도 찾게 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기도하였다. 하나님, 나는 지금 독감 방에서 콩밥만 먹으니 배가 고픕니다. 지금 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배고픔이었다. 옆의 감방에는 잡범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는데 그들은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 가운데 토마토 농사를 많이 짓고 있었다. 그들도 요시다 게이다로가 독방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그분이 감방에서 배고플 테니 우리들이 토마토를 따다가 몰래 넣어주면 어떨까?하고 서로 수군거렸다. 간수의 눈을 피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잡범들은 한 사람이 토마토 한 개씩을 따가지고 들어오는 길에 요시다 게이로의 독감 방 문틈으로 넣어주었다. 하나님께서는 배고픈 죄수에게 실제로도 먹을 것을 주시는 기적을 베푸셨다.
기도 응답 2
신앙세계에 있어서 큰 일한 사람들은 모두가 기도의 사람이었고 큰일을 위한 기도일수록 응답을 늦게 받은 것을 우리는 교회사에서나 신앙인들을 통하여 많이 보게 된다.
일본 최대의 고아원을 창설한 이시이쥬지(1865-1914)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의 사랑하는 제자 도미다씨가 내게 말해준 바에 의하면 그는 곧잘 옛날 기도한 일을 읽어 주면서 몇 년 몇 월 몇 일에 기도한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고도 비라씨에게 말해주곤 했다는 것이다.
이시이 쥬지가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은 휴우가 고아원의 본관에는 그가 매일 정좌하여 기도하기 위해 돗자리가 깊이 무릎 모양만큼 파져 그 자취가 남아있는 것을 보아도 잘 알 수가 있다.
초대 메소디스트의 기도의 사람 카라바쏘는 무릎을 꿇고 기도한 때문에 무릎에 혹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큰 나무는 하루에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 한 가지로 큰 응답도 하루에 응답되지 않는다. 그러나 응답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것이다. (가가와 도요히꼬)
기도의 의미
기도회에서 종종 받는 인상 중 한 가지는 대개 청원이 기도의 주축을 이룬다는 것이며, 기도의 주된 기능을 생명의 응급상태를 처치하려는 데만 둔다는 것입니다.
포시드 박사는 다음과 같이 잘라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기도는 은혜에 의하여 저절로 타오른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하여 이끌림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찬송이 아니라 울부짖음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다정한 대화가 아니라 가부간의 의사타진입니다. 승리의 나팔소리보다도 초라하게 떠는 소리가 납니다. 강건함을 위하여 구하기보다는 근근이 유지하기 위하여 구합니다."
만일 기도를 오직 응급처치를 위해서만, 그리고 오직 청원을 위해서만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본인이 보기에는 기도의 아주 중요한 여러 가지 면들을 간과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기도는 큰 부상을 입은 후에 그 위기를 넘기기 위하여 부르는 교회의 앰뷸런스가 아닙니다. 오직 이런 방도로만 기도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가르쳐 주시는 기도의 깊은 의미를 기만하는 것이고 저해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자세
많은 사람들이 목회자에게 신앙상담을 하러 와서는 자신들의 말3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어느 성도가 신앙상담을 하려고 담당목회자를 찾아가서는 처녀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중년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습니다. 그 목회자는 중간 중간 [예, 그러세요? 그런데 요건만 말씀하시죠]라고 해도 [조금 만 더 제 얘기를 들어보세요] 하면서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했습니다. 결국 이 목회자는 그 성도의 문제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그냥 기도만 해주고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먼저 내 의견과 내 고집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내 뜻에 맞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시오]라고 한다면 결코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제 생각과 고집을 젖혀놓습니다.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의 말씀이면 제가 따르겠사오니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조용하게 경청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겨우 5분이나 10분 정도 기도하고 [시간이 없으니 말씀하시려면 빨리 해주세요] 하는 식이라면 성령님의 음성은 결코 들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한 시간 이상 3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바람이 일어 출렁이는 호수에 아 무리 달빛이 아름답게 내린다한들 그것은 아름다움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잔잔한 수면 위에 내리는 달빛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바빠서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번거로움이 다 잠잠해진 후, 고요한 시간이 되어야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진실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원한다면 성령님의 음성 듣기를 간절히 사모하여 우리의 마음을 고요하고 깨끗하게 비우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기도의 자세 2
이집트의 어느 선교사의 말을 들어보면. 이집트인들의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숙명론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집트 사회에 유행하는 말이 ‘인솨 알라’라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면’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말 자체는 굉장한 신앙을 반영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이 말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핑계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짐승들과 한 우리에서 짐승 똥 냄새 맡으면서 짐승처럼 살아가면서도 그 가난한 생활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난을 퇴치하기 위하여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약속 시간보다 서너 시간 늦게 나오면서도 ‘인솨 알라’.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책임을 배제한다고 오해하는 경우는 흔히 신앙심이 깊다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기 쉽다.
어느 신학생이 등록금이 없어서 빈 봉투를 들고 기도원에 올라갔다. 기도원에서 기도할 때 ‘제가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만일 하나님께서 이 빈 봉투에 등록금을 채워주시면 제가 신학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신학을 그만두겠습니다’고 하나님과 일방적인 계약을 맺는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기도가 끝날 때까지 신비한 손은 나타나지 않았다. 올라갈 때의 빈 봉투를 내려올 때도 그대로 들고 내려왔다. 다만 올라갈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신학공부를 그만둔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기도는 기적을 일으킨다. 그러나 인간의 할 일을 할 수 있는데도 전혀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은 극단이다. 그리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내 마음대로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그대로 되거나 안 될 경우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오해한 것이다.
기도의 제목
C.S 루이스는 그의 유명한 저서 [스크루테이프 기도]에서 그와 같은 기도에 대해 의견을 말할 때 마다 스크루테이프로 하여금 그의 대리자인 월우드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게 합니다.
그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를 못하게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기도를 무해하게 하는 수단을 가지고 있소.
그 기도가 매우 "영적"이라는 것과 그가 자기 어머니의 영혼의 상태에는 항상 관심이 있지만 그녀의 류마치스에 대해서는 결코 관심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 두십시오. 이상하게도 류마치스의 고통을 제거해 달라거나 잃어버린 콘택트렌즈를 찾게 해달라는 요구를 두렵게 생각하는 우리들은 흔히 세계 평화니, 영혼의 구원이니, 우리들 시대의 개혁 등을 우미해 기도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만일 이러한 일상생활의 기도에 하나님의 권능이 부족하다면 크고 총괄적인 탄원을 다루는 주님의 권능도 역시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도의 차이점
수년 동안 그리이스의 한 무신론자는 기독교인인 친구의 깨끗함을 부러워했다. 결국 그는 그의 친구에게 자기도 하나님으로부터 친구와 같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알게만 된다면 가능하다고 나는 믿어.” “그러나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 기독교인 친구는 관습대로 마을로부터 몇 마일 벗어나면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나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무신론자는 마을을 벗어나 산에 이르러 외쳤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아무 대답이 없자 그는 계속 같은 말을 외쳤다. 그는 이 같은 일을 몇 주일 계속하고 결국에는 포기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없고 기독교인들은 기만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내가 말한 대로 마을을 벗어났니.” “물론이지, 나는 바로 산 밑에 서서 매일 하나님을 불렀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어.” “아니, 거기에는 산이 없는데.”하고 기독교인이 말했다. “그럼 좋아. 아무튼 네가 하나님께 무엇을 말했는지 내게 말해 봐.” “나는 하나님에게 어떤 존재인지 이야기해달라고 말했어.” 그러자 기독교인은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께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달라고 기도해. 그리고 나는 죄가 많으며 순수함과 신성함은 그와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지. 그러면 하나님이 나에게 나타나시고. 나는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돼.”
다음날 아침, 무신론자는 마을을 벗어나 산 밑에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하나님,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무신론자가 머리를 들어보았을 때 산이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단지 자기 자신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이제 더 이상 그와 하나님 사이에 아무런 장애가 남아 있지 않게 되자 비로소 그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기도의 하루를 세 부분으로
1. 주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시간
(1) 주님의 임제하심을 깨닫기 위하여
(2) 죄를 자복하기 위하여
(3)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2. 다른 사람들을 위한 중보 시간
(1) 그들을 위하여 구체적인 것들을 구하십시오.
(2) 성경에 나오는 기도들을 참조하십시오.
(3) 당신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내용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십시오.
3. 자신을 위한 기도 시간
기도의 형식과 내용
고양이를 기르는 한 경건한 크리스천은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정해진 시간 동안 기도를 드렸다. 먼저 성경을 읽고, 경건서적을 읽은 다음, 조용히 묵도를 한 뒤 기도를 드리는 것이 그의 순서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도 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더 밀도 있는 시간을 꾸미게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매일 밤, 그는 잠자리에서 기도를 시작했다.
그의 고양이도 이일을 좋아했다. 고양이는 그의 품에 편안히 안겨 낑낑거리며 자신의 털을 주인의 몸에 비비곤 하였다. 이것이 그 사람의 기도를 방해했다. 그는 고양이의 목에 줄을 매고 기도 시간에 방해되지 않도록 침대 한쪽 끝에 묶어놓았다. 이렇게 하고 기도를 하자 고양이가 기도를 방해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몇 년이 흐른 뒤 이 경건한 크리스천의 딸은 아버지의 기도 시간이 아버지에게 어떤 소중한 의미를 갖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가족 전체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도 시간을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니 아버지가 하시는 방법을 따라야 했다. 말할 것도 없이 딸애 역시 고양이를 침대에 묶어두고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딸의 기도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고 날이 지남에 따라 아버지와는 달리 점점 더 짧아지게 되었다. 딸이 어른이 되고 딸의 아들이 성장하게 되자 아버지는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가문의 전통을 하나 마련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생활양식은 급속히 바뀌어서 정성을 다하는 기도 시간을 따로 갖기가 무척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묵도 시간을 줄이고 성경 읽는 시간과 기도 시간도 줄였다. 그리고 매일 밤 종교적인 전통을 전수하기 위해 고양이를 침대에 묶는 일은 빼놓지 않았다. 결국 고양이를 묶는 일은 기도 시간을 갖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기도의 힘
영국 회중교회 목사인 조지프 파커박사(1830~1902년)는 누구보다 기도를 강조한 인물이었다. 그는 기도가 역사와 공동체, 삶과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말."기도를 열심히 하는지 안하는지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얼굴이 증명해 줍니다. 매일매일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에는 영혼의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풍기는 인상이 기도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늘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에게서는 주의 정원에 피어있는 향기로운 꽃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기도의 힘 2
새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 수 있고, 배는 돛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항해하고, 기차는 화통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질주하고, 비행기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아간다.
어떤 사람이 시계에 달린 큰 추를 보고는 시계가 힘들어 하니 추를 떼어 두자고 했다. 그러나 그 추를 떼는 순간, 시계바늘은 서고 말았다.
바로 이것이다. 성도들은 피곤하고 힘들어도 매일 기도해야 산다. 성도는 기도의 힘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기도하고 기다리라
한 부인이 대 오페라 공연 극장의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에게 말하기를 지나간 밤 공연에 갔다가 아주 값비싼 다이아몬드 브로치를 잃어 버렸다고 했다. 그 지배인은 전화를 끊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수색 작업 끝에 그 불로치를 찾았다. 그래서 그가 다시 전화기로 갔을 때 그 여인은 이미 전화를 끊어버린 상태였다. 그는 그 여인이 전화를 다시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우리는 얼마나 이상하고 어리석은 사람인가?라고 말하겠지만 실은 우리가 그와 같은 태도로 기도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모든 것을 주님께 고하고 나서 수화기를 붙들고 기다리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로 응답받을 때의 기쁨을 놓치고 끈질기게 기다리는 믿음에 대한 보상과 드릴을 맛보지 못한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시기가 적절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부합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을 종종 늦춘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가 우리 마음의 소원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최선을 다했는데도 우리가 바라던 일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때이다. 우리가 침울해 있거나 죄의 속성인 자기 연민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되며 그가 완전하게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가 우리의 간구를 그의 모든 지혜안에서 응답해 주실 것을 기쁘게 기대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기도하는 것
아침 묵상시간이면 내 마음은 언제나 흐트러지고 근심으로 가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이 초조해 있을 때 우리 집 고양이가 내 발 밑에서 낑낑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고양이를 무릎위에 올려놓고 달래보려 했지만 고양이는 어느 것도 싫다는 태도였다.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할퀴면서 내게서 빠져 나갔다. 나는 속이 상했다. 내가 저를 달래 주려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너와 하나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너를 붙들어 위로하고자 하나 네가 때로 광란하여 하나님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게 만드느니라."
그로부터 나는 날마다 드리는 기도시간 동안에 한 가지 작은 연습을 시도해 보기로 결심했다. 하나님의 무릎 위로 기어오르는 내 모습을 그려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로 다가갔을 때, 그의 튼튼한 두 팔이 나를 감싸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는 심호흡과 더불어 그의 강한 힘이 내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옴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분의 가슴에 내 머리를 대고 귀를 기울였다. 서서히 내 마음 속의 괴로움은 사라지고 마침내 내가 추구했던 하나님과의 일체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기도하는 부모
어린 아이가 아빠의 무릎 위에 앉아 물었습니다. “아빠. 하나님은 죽었어요.” 아빠는 놀라서 “아니. 얘야. 왜 그런 걸 묻니.”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어린 아이의 말이 “저어 말이에요. 요즈음 아빠가 하나님과 얘기하시는 걸 한 번도 들을 수가 없거든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머리를 떨어뜨렸습니다.
당신은 지난날 어떻게 기도하였던가를 기억하십니까. 이제 기도를 완전히 그만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결코 죽지 않으셨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마치 죽은 하나님과 같습니다. 그들에게서 아무런 기도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범죄하여 사형집행을 받게 되었을 때 최후로 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올바른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났더라면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교도소에 갇힌 한 도박꾼은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가 잘못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는 내게 술과 욕지거리밖에 가르친 것이 없었습니다.”
만약 우리의 부모들이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같지 않습니다. 부모들은 하나님을 망각한 채 기도드리지 아니합니다. 그러다가 고통의 때를 맞이하면 그제야 하나님을 향해 외쳐 부르짖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최고
쉘든 고든(Sheldon D. Gord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이 말은 기도에 대해서 '말하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들이 기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자들은 시간을 내서 기도하는 자들이다. 오늘날 바로 이들이 하나님을 위해 최상의 것을 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영혼들을 구하고 문제들을 해결하며 교회를 일깨우고 세상을 좀 더 오래 향기롭게 하는 일에 있어서 최상의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도에 대치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역대하 7:14은 우리에게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고 담대히 촉구한다.
우리는 오직 죄의 심각성, 사악함과 비열함에 대해 개인적으로 집단적이며 국가적으로 슬퍼 괴로워하게 될 때만이 신앙부흥을 체험하는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도하는 습관
2차 대전 중에 자기 병영 가까이 있는 숲에서 몰래 기어가던 한 영국 병사가 붙잡혔습니다. 그는 즉시 군 상관에게 이첩되었으며 적과 소통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그가 주장한 한 마디 말은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장교가 물었습니다. "기도하는 습관이 있는가?" "네, 그렇습니다."하고 병사가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무릎을 꿇고 기도해 봐!"하고 장교가 명령하자 병사는 곧 무릎을 꿇고 기도 중에 그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았습니다. 그가 기도를 끝냈을 때 장교는 "가도 좋다. 네 말을 믿을 수 있어. 자주 기도를 해오지 않았다면 그렇게 잘 하지 못할 테니까 말야"하고 말했습니다.
기도하는 대통령
미국의 명배우 토머스 에드워드 머독은 링컨이 대통령으로 있을 당시 초청을 받고 대통령 숙소에서 하루를 보낸 일이 있다. 그때는 남북전쟁이 진행 중이서 링컨은 매우 고심하고 있었다. 한밤중에 머독은 `절제된 절규'를 듣고 소리 나는 쪽으로 가 보았다. 거기엔 기도하는 링컨의 모습이 있었다.
링컨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이 나라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지켜 주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독은 그때 확신했다. 지도자가 기도하는한 나라는 굳건하다는 것을...
기도하는 삶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을 여는 열쇠며 사탄의 침입을 막는 자물쇠다. 함께 기도하는 가정이야말로 모든 것을 함께하는 가정이다. 그러나 이를 잘 아는 사탄은 사람들에게서 기도를 빼앗아간다.
새뮤얼 차드위크는 "사탄의 한 가지 관심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악마는 기도 없는 성경공부, 기도 없는 봉사, 기도 없는 종교의식에 안심한다. 악마는 우리의 수고를 비웃고 우리의 지혜를 조소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떤다"고 말했다.
기도하며 일하는 자
전에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에 그와 가까운 친구 수도사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위해서 나서게 될 때에 그 수도사는 루터와 서로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형님은 나가서 실제로 일하세요. 나는 수도원에 남아서 형님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기도할 터이니 어서 나가서 열심히 일하세요.
그래서 루터는 나가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의 친구는 수도원에 앉아서 항상 기도합니다. 그런데 몇 해 후에 기도하던 수도사가 꿈을 한번 꾸었다고 합니다. 꿈에 보니 넓은 들에 곡식이 무르익었는데 그 가운데 추수하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단 한 사람이 낫을 가지고 그 넓은 들에서 추수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저 한 사람이 누군가.하고 가까이 가서 보았습니다. 보니 다른 이가 아니고 자기 친구인 루터였더랍니다. 그래서 그는이렇게 많은 추수를 어떻게 형님 혼자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얘기를 하다가 깼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 루터의 친구가내가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나도 나가서 같이 일해야겠다.하고는 같이 일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선교 사업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여러분 자신도 같이 일해야 합니다. 기도만 하고 일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학교
기도의 하교에 입학 허가를 얻으려면 다만 두개의 질문으로 된 입학시험만 치르면 된다. 첫째 질문은 : 당신은 정말로 필요한 상태에 있는가? 둘째 질문은 : 당신은 자신이 그 필요를 다루는데 무기력함을 인정하는가?
내가 기도에 대해서 배운 것은 그 두 질문에 모두 예라고 대답했을 때 그 결과로 온 것이다.(서문에서) 우리가 하나님으로 의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만 의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버지다운 마음의 정열까지도 의뢰하는 것이다. (19)
죤 라이스는 말하기를 "기도는 시내 관광을 하는 멋진 세단이 아니다. 기도는 곧장 창고로 가서 뒷 칸을 열고 짐을 싣고는 물건을 가지고 집으로 오는 트럭이다.(멋지고 큰 문제만을 기도하려 말라)(19)
내가 받은 기도의 응답들은 내가 아주 무기력했을 때,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나 자신도 감당하지 못했을 때 이루어졌다.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시4:1)\ 시51:17)(25)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하시기 전의 필수 조건으로 무기력함을 종용하실까?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우리 인간의 무기력함이 가장 근본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원에서 우리 마음의 욕망을 채울 수 있다고 잘못 말고 있는 한 우리는 거짓을 믿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자 기만과 거짓을 기반으로 기도에 응답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27)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카멜라이트는 말하기를 어떤 덕행이 들어나는 경우가 있을 때 마다 그는 하나님께 말씀드린다. 주님당신께서 나에게 이 일을 가능케 하시지 않았다면 나는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 그리고 나면 그는 훨씬 더 많은 능력을 받는다.(30)
기도할 밖에 도리가 없다
지난여름 나는 우리 교회 학생들과 함께 바하마 제도로 선교여행을 떠나 하루에 두 번 그곳의 공원과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꼭두각시극을 상연했다. 그런데 하루에 두 차례씩 우리의 낡은 스쿨버스는 고장이 나는 것이었다. 우리가 공연장을 향해 가고 있던 어느 햇볕 따가운 오후,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아니, 또야!” 모두들 투덜댔다. 지도교사인 빌과 대릴이 무엇이 고장 났는가를 알아보려 차 밖으로 나갔다. 그때까진 나는 버스 타박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젠 한계를 넘어선 것 같았다.
우리는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아무도 오가지 않는 황량한 길가에 꼼짝달싹 할 수없이 붙박여 있었다. 근처엔 도움을 청할 만한 공중전화 박스도 없었다. “여러분”, 대릴이 와서 보고했다. “문제가 심각합니다. 클러치가 부러졌는데 그것을 결합해주는 볼트가 길가 어디엔가 떨어져버렸어요. 예비용 볼트와 너트가 잔뜩 있지만 맞는 건 하나도 없어요. 기도할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며 열렬히 기도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다. 빌이 포도 위에 무릎을 꿇더니 아스팔트에서 주머니칼로 무엇인가를 떼 내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버스의 후드 아래로 몸을 굽히더니 만면에 미소를 띠고 우리에게로 왔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난 타이어 주변의 땅바닥을 찾아보았는데 포도 아스팔트 속에 낡은 볼트 하나가 묻혀 있었어요. 혹시나 하여 그것을 파내어 맞추어보았더니 딱 맞지 않겠어요.”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우리는 기도의 능력에 경외심을 가득 품은 채 꼭두각시 극장을 향해 달렸다.
기도할 뿐
옛날 한 수도사가 기름(oil)이 필요하여 올리브 묘목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여, 이 연약한 뿌리가 마시고 자랄 수 있는 비가 필요하니, 단비를 내려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주께서는 단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 수도사는 또 기도를 했습니다. "주여, 나의 나무는 태양이 필요합니다.
주께 기도드리오니 해를 주시옵소서." 그러자 검은 구름을 몰아버리고 해가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오! 주님, 이 나무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서리가 필요합니다"라고 수도사는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작은 나무에는 서리가 앉아 번쩍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저녁에는 죽어버렸습니다."
그 수도사는 동료 수도사의 방을 찾아가, 그의 이상한 경험을 털어 놓았습니다. "나도 역시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심어 키우고 있습니다"고 하면서 그의 동료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잘 자랍니다. 나는 나무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 나무를 만드신 하나님께요. 그는 나 같은 사람보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방법으로도 고정시키지 않습니다. 다만 '주여! 이 나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시옵소서. 강풍이든, 햇빛이든, 또한 바람이든, 비든, 서리든 주께서 때를 따라 주시옵소서. 주께서는 이것을 만드셨고, 그리고 잘 아시나이다'라고 기도할 뿐입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은혜
영국의 회중교회 목사 조세프 파커가 기독교 반대자들과 길거리에서 논쟁하게 되었다. 그 반대자 중 한 사람이 외쳤다.
"성경에 나오는 독실한 신앙인인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었을 때 그리스도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오."
그 순간 파커의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의 말이 스쳤다.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에게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기도했거든요
난 그날 아침 일어나며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느꼈다. 그날 일정표를 죽 훑어보는데 내 마음은 레나에게 고정되었다. 레나는 우리 집 앞길이 끝나는 곳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나이 지긋하고 병까지 얻은 그녀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아나가고 있었다. 전날도 난 그녀에게 음식을 갖다 주었으나 그녀는 내게 내일은 올 필요가 없다고 극구 만류했다. “여기 필요한 게 모두 있어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레나는 자부심과 존엄성을 잃지 않는 여자였고. 나도 그녀의 사생활을 존중했지만 아침 내내 내 마음은 그녀에게 가보라고 계속 나를 충동했다. 난 애들을 학교로 보내고 세탁기를 돌린 다음 아침 먹은 접시들을 개수대에 넣었으나 그녀에게 가보라는 끈질긴 요구는 멈춰지지 않았다.
마침내 난 아랫길로 내려갔다. 현관 앞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평소 같으면 문을 열고 나타날 텐데 이번에는 응답이 없었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듯하여 나는 문손잡이를 열고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레나는 힘없이 일어나지도 못한 채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녀 앞에 작은 석탄난로가 문짝이 떨어져나간 채 놓여 있었다. 벌겋게 달은 탄 덩이가 바닥에 굴러 떨어져 있었고 불길을 끌려고 레나는 누비이불이며 옷가지들. 소파에서 손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그 위로 던져놓았다. 일순간에 그것들은 불길로 타오를 수도 있었다. 내가 딱 때를 맞춰 도착한 것이었다. 탄 덩이들을 제거하고 집 안의 연기를 뽑아 낸 후에 보니 레나는 하마터면 엄청난 비극이 되었을 뻔한 이번 일에 유난히도 침착해 하는 것 같았다. “무섭지 않았나요.”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천만에요. 난 당신이 올 줄 알았어요. 기도했거든요”하고 말했다.
기도훈련
제2차 대전 후 폐허가 된 독일의 쾰른시에 케테라는 이름의 한 여자가 외롭게 살아갑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라곤 거부할 수 없는 잔인한 가난과 두 달 전 가출해 버린 전화교환수인 남편과 그리고 가난에 중독되어 창백한 세 아이뿐이었습니다.
케테는 이미 6년 동안이나 독실한 신앙인으로 알려진 후랑케 부인의 부엌에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후랑케 부인은 교회 안에서 대단한 힘을 지닌 활동가입니다 . 이 60대 여자가 소유하지 못한 것이라고는 웃음밖에 없었습니다. 단지 부인은 때 묻은 지폐를 셀 때와 지하실에 보관해 둔 3백 개의 과일쨈 병을 셀 때에는 웃었습니다. 케테의 남편 후레드는 자식들의 노랫소리에도 후랑케 부인이 화를 벌끈벌끈 낼 때 그 가련한 자식들에게서 노래마저 빼앗을 수 없는 그런 괴로운 나날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립니다. 가엾은 부부는 한 달에 한 번 거리의 더러운 여인숙에서 만납니다. 케테는 더러운 여인숙 벽에 등을 기댄 채 가난과 생의 괴로움으로 훨씬 늙어버린 남편을 향해 반문합니다.
당신은 왜 기도를 하지 않는 거죠? 기도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걸 당신은 왜 모른 척하는 거예요. 주님은 내게서 너무 멀어. 주님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아요. 기도는 많은 훈련을 필요로 해요. 자꾸 다시 시작해요. 기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강해집니다.
그녀는 기도가 훈련이라는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녀는 기도를 축복의 봇물을 터뜨리는 요술방망이로만 아는 우리에게 기도의 의미를 음미하게 합니다. 그녀는 기도란 다시 시작하는 것이며. 이것은 기도의 희망을 의미합니다. 그녀는 기도 속에서 강해진다고 하는데 이것은 기도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훈련 2
사역을 위임받아 스코틀랜드 서부의 덤바톤에 있는 한 교회의 목사로서 책임을 맡아 떠나기 몇 주일 전 나는 오랜 친구이며 목사인 티 에이 멕퀸스톤을 방문하였다. 그는 부드럽고 자상하게 내게 말하였다.
“그래함 씨(그는 항상 씨라는 호칭을 붙였다), 일과표는 빽빽하게 채우고 마음은 텅 비워놓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많은 일을 하지만 정작 왕이신 그분을 잠잠히 기다리는데 는 아주 적은 시간을 보내도록 끊임없이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분주함은 영혼의 막힘을 초래할 수 있으니 복스러운 기회를 분주함으로 대신하지 않도록 확실히 하십시오.”
내가 사역하는 동안 그의 당부를 얼마나 자주 실감하였는지 모른다. 다른 많은 일터, 때로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기도할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렸다. 시간은 차선과 최선을 뒤바꿔 놓을 수 있는 탈취자이다. 그러나 시간과 더불어 기도를 방해하는 동맹자가 있다면 아마 그것은 방만함일 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기독교가 너무나 자주 인간의 여러 문제에 대한 치료로 인식된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병원에 가라. 그러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 대해 자상한 보살핌과 관심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성경에서 병원이 아니라 병영을 발견한다. 성경은 의사가 아니라 훈련 교관이다. 여기서 우리는 연병장에서 훈련을 받는다. 우리에게는 마음의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유혹에 지지 말라. 하나님께 너 자신을 맡기라’는 교관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기쁠 때에 하는 기도
1964년 7월 6일, 그날까지 나는 사실 기쁜 날에 하는 기도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몰랐다. 그날은 내가 응모한 소설 [빙점]이 입선되었다는 전화가 왔던 날이다. 그날은 내 생애에 있어서 좀처럼 일어날 수 없는 기쁨의 날이었다.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을 때에 나는 곧 미우라에게 입선 소식을 전했다. 그날 여느 때와 같은 시간에 돌아온 미우라는 곧 나를 이층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나를 꿇어앉게 하고는 기도드리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기도였다. 그리고 그때 미우라가 나에게 천만 원의 상금을 받고 유명하게 되면 인간 바보가 되기 쉽지요라고 한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때 참으로 많은 분들에게서 축하 인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오늘, 아직도 분명하게 마음에 새겨진 것은 미우라가 말했던바보가 되기 쉽지요라는 말과 정성들여 기도해주던 모습이다. 여러 번 다른 데서도 썼지만. 인생의 위기는 사실 기쁠 때에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에 있는 것이 아닐까. 옛날부터 위험한 길에서 넘어지는 사람은 적다. 오히려 사람은 평탄한 길에서 넘어진다라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때 만일 미우라가 다만 잘했다. 우선 한 잔 할까.하고 말했다면 나는 그때 그 커다란 기쁨을 과연 차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때 미우라는 내가 우쭐할 것을 경계하여 받은 상금을 자기를 위해서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도 해주었다. 기뻐서 마음이 들떠 있을 때야말로 하나님의 인도를 기도해야만 하는 것을 나는 정말 알게 되었던 것이다.
기적(奇蹟)
10여 년 간 뇌사상태였던 열두 살 난 미국 소녀 테레사 양이 그의 어머니의 기도의 염력으로 살아나 화제가 되고 있다. 테레사 양은 두 살 때 약물 과용으로 내장 기능이 마비되어 이식수술 해도 살아날 가망이 없는 죽음의 소녀였다.
교황청은 이 회생을 '기적'으로 공식 인정했다고 CNN 방송이 보도했다. 테레사의 어머니는 슈타인 수녀를 그녀의 '수호천사'로 삼고 이 천사에게 주야로 간절히 기도한 결과로밖에 이 기적을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기적을 매개한 슈타인은 1942년 절망의 사지인 나치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헌신과 봉사를 다하다 학살당한 유태인 수녀다. 테레사의 어머니는 그 삶에 감명을 받고 수호천사로 삼았던 것이다. 교황청은 기적을 가져다준 슈타인수녀를 성인으로 추대할 참이라 한다.
가톨릭 문화권에서는 아기가 나면 기존 성인이나 천사 가운데서 수호천사를 정하게 마련이다. 성서에도 수호천사는 하늘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다했다. 곧 나와 신을 직결시키고 있는데 매체가 수호천사요 이 수호천사를 기도의 힘으로 움직였을 때 신의 배려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았다.
아일랜드에서는 아기들이 자다가 웃으면 수호천사와 대화하는 것으로 알았고 미국에서는 아기가 이유 없이 웃으면 수호천사가 손톱을 깎아주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축구시합에서 기진맥진한 한 소년이 관중 속에 앉아 응원하고 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보고 용기를 낸 이야기며 어느 한 미망인이 피할 수 없는 교통사고 직전에 죽은 남편이 나타나 핸들을 틀어 참사를 면했다는 사례 등도 수호천사의 소행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렇게 수호천사는 가까이 공존하면서 진실한 자신과 교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교황청에서 인정한 기적으로 1858년 남프랑스의 루르도의 기적이 있다. 기도하는 소녀 베르나데트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고 그 출현 현장의 샘물이 난치병을 낫게 하는 기적을 부린 것이다. 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알렉시스 카렐이 이 기적의 현장에서 의학 조사를 하고 그 기적을 인정, 생명을 가르는 의학의 한계를 천명하여 유명하다.
기도를 기적으로 응보 받는 이 소녀들의 기적을 신비차원으로 넘겨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 한다는 심정 역학일 수 있고 카렐이 천명한 것처럼 생명에는 과학으로 따져지지 않은 외포가 잔존하고 있음을 암시해 주는 테레사의 기적이다.
꺼져가는 심지
미국의 빈민굴 전도자 하드리 목사가 한 번은 빈민굴의 창녀에게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창녀는 하드리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조롱으로 응답하였습니다. 하드리는 전도하기를 중지하고 같이 기도하자고 하면서 기도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그를 빤히 쳐다보면서 조롱하던 창녀의 얼굴에 떨어졌습니다. 창녀의 얼굴에는 조소의 빛이 가셔지고, 엄숙해지고, 드디어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흘러 하드리의 눈물과 합하여 그녀의 뺨에 흘러 내려갔다고 합니다. 돌아가는 길에 하드리의 남긴 말은 "사람의 영혼이 어쩌면 이렇게 하나님을 멀리 떠날 수 있을까?" 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의 세대에는 이런 극진한 사랑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꺼져가는 심지가 되고 있습니다. 결국 현대인은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에 있어서나, 사람을 대하는 사랑에 있어서나 또 스스로 가질 소망에 있어서나 모두 불빛을 잃고 '꺼져가는 심지'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꺼져가는 심지를 그리스도는 끄지 아니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이나 사랑이나 소망이 모두 유야무야하게 약화된 것일지라도 주님은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감사하신 주님께 빈약한 자신을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주의 성령의 기름을 간단없이 공급받아 꺼져가는 심지를 돋우어 장차 오실 주님을 대망하여야 되겠습니다.
꺼진 등불 속의 새 빛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어떤 청년이 자살하려고 약을 먹었습니다. 왜 자살하려고 했느냐 하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던 것이 다 실패로 돌아가서 그는 좌절에 빠졌습니다. 돈벌이를 해보려 했지만 그것도 실패했습니다. 그는 모든 인간과 가족에게서 배신당한 것 같고 버림받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의지하고 사랑했던 여인도 그를 떠나갔읍니다. 그래서 그는 독약을 먹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잃어버린 삶의 의욕을 다시 일으킬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친구가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서 살려냈습니다. 그는 친구를 원망하면서 "나는 티끌만큼도 삶의 의욕이 없다. 그러니까 제발 내게 죽음이라는 안식을 허락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에게는 삶의 의욕이라고 하는 것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혼탁한 죽음 속에 그는 그대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인간의 말과 힘으로는 이렇게 완전히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을 살려 낼 길은 없다. 오직 생명의 주이신 창조주의 손길이 이 생명을 터치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는 그에게 같이 하나님께 기도 하자고 말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기쁨이 없었던 사람에게 기쁨을 주시고, 죽음에 처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거부를 했지만 자꾸만 그 친구가 주장하자 마지못해서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고 있는 동안 그 청년의 마음속에서는 그동안 멈추었던 거문고의 모든 줄이 울리면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꺼져 버렸던 등불이 다시 빛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생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무에서 유가 창조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은 일상생활에 종종 있습니다.
끈질긴 기도
죠지 뮬러가 가장 시간을 많이 들여 한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삶을 나누었던 5명의 친구들의 구원 문제를 위해서 기도한 일이었습니다. 뮬러는 다섯 명의 친구를 위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안 믿는 친구가 두 사람입니다. 뮬러는 이 두 친구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무려 52년간 두 친구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안 믿습니다. 뮬러는 이제 노년이 되어서 병석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날이 가까와 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오늘 우리 사랑하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십시오. 그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남은 힘을 가지고 간절하게 최후의 설교를 했습니다. 마지막 설교를 하던 그날 그의 한 친구가 거기에 참석했다가 뮬러 목사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나머지 한 친구는 안 믿었습니다. 뮬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에 그때까지 안 믿고 있었던 한 친구가 뮬러의 죽음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그는 뮬러가 자기를 위해서 52년간이나 기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뮬러가 죽은 바로 그 해 그 소식을 들은 이 친구는 결국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믿고 나서 그 친구가 전 영국 땅을 순회하면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뮬러 목사의 기도는 다 응답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최후의 응답입니다. 당신의 모든 기도도 다 응답됩니다.
나는 그를 보고 그는 나를 보고
8세기 프랑스의 성인 가운데 아루스 사제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매일 교회에 와서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 돌아가곤 하는 농부를 보게 되었는데 하루는 그 농부에게 이렇게 물었다.
“기도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는데 교회에 몇 시간씩 앉아서 무엇을 합니까?” 그러자 농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그를 보고 그는 나를 보고, 우리는 서로 행복해 하지요.” 예수님과 자신과의 신앙의 관계를 아주 분명하게 고백한 것이다.
“나는 그를 보고 그는 나를 본다”는 말이나, 그래서 “우리는 서로 행복해 한다”는 말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신앙고백이요,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이 나타난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우리들에게도 이런 깊은 관계가 이루어져, 예수님과 우리와의 깊은 교통을 누구에게나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무꾼
두 나무꾼 친구가 산에 올라갔습니다.
경쟁적으로 나무를 찍어 장작을 만들어갑니다. 한사람은 유달리 승부욕이 강했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지지 않으려고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나무를 찍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50 분 일하고 10 분 쉬는 식으로 숨을 돌러 가면서 일했습니다.
어느덧 산을 내려갈 시간이 되어 두 사람은 각자 서로가 수고한 결과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셈일까요? 쉬어가면서 일한 친구가 더 많은 장작을 장만했더랍니다.
승부욕이 강한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투덜거렸습니다.
"내가 더 열심히 했는데도 왜 자네 것이 더 많단 말인가? "그러자 다른 한 친구가 점잖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10 분씩 쉴 때마다 도끼날을 갈았다네. "
당연히 이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끼 날 무디어 지는 줄도 모르고 덮어놓고 열심만 낸다고 되겠습니까?
아무리 바쁘다 해도 경건의 시간 - 하나님 앞에서 자기 성찰의 시간은 가져야할 것입니다.
자기 존재의 상실을 경계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을 항상 지니고 기르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이 요구됩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도를 잊지 말아야합니다. 서둘러야할 시간에도 경건이 먼저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뭇가지 위에서 자라고 있는 돈
딘과 미셀 셔먼은 하와이 힐로에 살고 있는 YWAM 사역자들인데 이들은 자기 가족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을 신뢰하는 사람들이다. 마침 그들의 돈이 다 떨어지고 아기를 위한 우유까지도 바닥이 났다. 미셀은 기도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훈련 센터에서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미셀은 복잡한 길가 옆에 있는 수풀들을 응시하며 멈추어 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는 도저히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나뭇가지 위에 1달러와 5달러짜리 지폐들이 여기저기 겹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게 아닌가! 딘과 미셀이 그것들을 모두 주워서 세어 보니 35달러나 되었고 그것은 아이를 위한 우유와 미셀이 그렇게도 갖기 원했던 유모차를 살 수 있는 액수였다.
하나님은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그런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셨던 것이다. 그 렇지만 하나님은 자주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사용하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이 있지만, 조금 더 안정감을 갖기 위해, 먼저 그들의 기본적인 필요들을 채우기 위해서 주는 것을 나중으로 미루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라고 말씀하시는데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당치도 않다면서 그 생각 자체를 합리화시켜 없애버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