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행정동우회 여행클럽 5월 문화유적지 답사
일 시 : 2017. 5.12(금) 08:00 - 21:00
답사장소
1. 강원도 강릉 오죽헌 일대(오죽헌, 문성사, 사랑채, 어제각, 율곡기념관 등)
2. 선교장 (조선 후기 사대부 저택)
3. 경포대, 송정해변, 동해휴게소 등
여행인원 : 여행클럽 회원 30 여명
(인솔:부회장 신종웅, 총무:이종진, 재무:임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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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유적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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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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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문(自警門) (자기 스스로를 경계한다는 뜻)
율곡선생이 20세 때 지은 자경문(自警文)의 뜻을 기리고자 이름한 문으로 오죽헌의 외삼문(外三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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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기념 사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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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사 (율곡선생 영정을 모신 사당)
문성사 사당 율곡 영정 (카페 인천가연산악회에서 퍼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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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원권의 율곡 초상화는 원래 이 문성사 표준영정을 이종상 화백이란 분이 측면으로 약간 돌려서 다시 그린 조폐용 영정으로 1977년부터 사용되었음. 그 후 1983년에 다시 발행되어, 지금까지 유통되고 있는 지폐의 초상화는 일본에서 제작하였는데, 이때 율곡의 초상화는 1977년의 초상화를 약간 크게 하여 발행하였음 (중략)
율곡의 표준영정은 김은호 화백에 의하여 그려지고, 다시 박 전대통령의 오죽헌 정화사업에 따라 새로 지어진 문성사에 봉안되어(문성사의 현판글씨도 박 전대통령의 글씨임) 오늘에 이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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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烏竹軒) (조선초기에 지은 별당 건물로서 우측 몽룡실에서 율곡 선생이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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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매(栗谷梅) 천연기념물 제4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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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매 만발한 모습 (http://cafe.daum.net/hocheullim에서 퍼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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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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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백일홍, http://cafe.daum.net/pilapine에서 퍼온 사진)
(후기)
(1)
오죽헌(烏竹軒, 보물165호) 이야기
오죽헌은 15세기 후반 강릉 유현(儒賢)인 최치운(1390~1440)이 지은 건물로 형조참판을 지낸 아들 최응현(崔應賢)에게 물려 준 것을 후에 그의 둘때 사위 이사온(李思溫)이 물려 받은 집이다. 이사온은 다시 외동딸 용인 이씨(龍仁李氏)과 결혼한 사위 신명화(申命和, 사임당의 부친)에게 오죽헌을 물려 주었다. 신명화는 딸만 다섯을 두었다. 그 중 둘째 딸이 신사임당(申師任堂)이다. 사임당의 외할머니 용인 이씨(龍仁李氏)는 친정어머니 최씨가 병이 나자 간호를 위해 강릉에 내려와 머물러 있을 때 오죽헌에서 신사임당을 낳았다. 그후 사임당도 서울 선비 이원수(李元秀)와 혼인하였으나 아들 없이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강릉에서 지내다가 오죽헌에서 율곡을 낳았다. 사임당은 이 오죽헌을 세째 딸의 아들인 외손자 권처균에게 신씨 조상묘를 돌보라는 조건으로 물려 주었다. 권처균은 집 주위에 검은 줄기의 대나무가 많아 자신의 호를 '오죽헌(烏竹軒)'이라 지어 오죽헌(烏竹軒)이란 이름은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
(2)
오죽헌은 율곡의 외가이자 사임당의 외가이다. 흔히 경내에 자리한 별당, 안채와 바깥채, 문성사, 어제각을 합하여 오죽헌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하게는 율곡이 태어난 별당을 말한다. 오죽헌은 뜰에 줄기의 빛깔이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가 유독 많다 하여 이름 붙었다. 율곡이 태어난 방은 신사임당이 율곡을 가질 때와 출산할 때 모두 용꿈을 꾸었기 때문에 몽룡실이라 불린다. 현재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졌다.
오죽헌은 현존하는 주거용 주택 중 비교적 오래된 축에 속한다. 간결한 형식으로 지어져 평범해 보이는 건물이 어떻게 강릉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의 존재 덕분이다.
율곡은 여덟 살 때 파주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팔세부시(八歲賦時)'라는 시를 지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남달랐다. 열세 살 때 치른 진사시 초시를 시작으로 스물아홉 살 때 치른 문과에 이르기까지 아홉 번의 과거시험에서 모두 다 장원 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능히 조선 최고의 천재라 불릴 만하다. (퍼온 글)
(어제각)
1788년 정조임금은 율곡이 어렸을 때 쓰던 벼루와 친필로 쓴 '격몽요결'이 강릉 오죽헌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궁궐로 가지고 오게 하여 친히 보게 됩니다. 율곡의 뛰어난 문장에 감탕한 정조는 벼루 뒷면에 율곡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글을 새기고, 책에는 머릿글을 지어 잘 보관하라며 오죽헌으로 돌려보냅니다.
당시 임금의 명을 받아 강원도관찰사 김재찬이 이를 보관하기 위해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어제각입니다. 어제각(御製閣)이란 이름은 임금의 명을 받아 지은 집이란 뜻입니다. 어제각 내에는 율곡 이이의 벼루와 격몽요결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비록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벼루 하나, 책 한 권을 위해 이런 집을 지었다니 율곡 이이가 더더욱 위대해 보입니다. (퍼온 글)
(신사임당의 글 한 수)
⁍ 어머니와 헤어지며 (泣別慈母 읍별자모) _ 신사임당
慈親鶴髮在臨瀛 자친학발재임영/ 인자하신 어머니 백발 되어 임영에 계시는데
身向長安獨去情 신향장안독거정/ 이 몸 홀로 서울을 향해 떠나가는 심정이여!
回首北村時一望 회수북촌시일망/ 고개 돌려 어머니 계신 북촌을 바라다보니
白雲飛下暮山靑 백운비하모산청/ 흰 구름이 날아 내리고 저무는 산이 푸르네.
*임영 : 강릉
첫댓글 카페 회원님 안녕하십니까? 5.12 행정동우회 여행클럽에 얹혀서 유익하게 잘 다녀왔습니다만 마침 회장님도 가셨는데 저에게 행정동우회 여행클럽에 사진을 올리라고 말씀이 계셨습니다. 저는 지극히 아마추어이고 카메라도 휴대하고 있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미진한 것은 다른 사진도 빌려오고 해서 올렸습니다. 부족하더라도 잘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