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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지랄 총량의 법칙 (렘29:11) 61징
유아레스토스 추천 0 조회 120 14.11.29 18: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랄 총량의 법칙 (29:11) 61

 

경북대 김두식 교수의 불편해도 괜찮아에는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이른바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김 교수의 지랄 총량의 법칙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전제로 합니다. 첫째, 우리는 성장하면서 '지랄'을 떨어야 한다는 것으로, 즉 욕망을 억누르지 말고 자연스럽게 분출하면서 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합니다. 둘째, 그렇지 않으면 이 '지랄 총량의 법칙'에 따라 '훌륭한 어른'이 된 후에 (성장기에 떨지 않은) '지랄'을 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남은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죽기 전까지 그 양은 반드시 다 쓰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충고합니다. ‘지랄은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어릴 때 지랄을 떨면 "개구장이" 라 하고, 젊어서 떠는 지랄은 "청춘" 이라 하고, 중장년에 떠는 지랄은 "그냥 지랄" 이라 하고, 늙어서 떠는 지랄은 "노망" 이라고 한다는데, 언젠가 분출될 지랄이라면 어쩌면 개구쟁이가 되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른바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지랄'을 억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여전히 '45' ‘선수학습등 할 수만 있으면 아이들을 경쟁사회로 몰아붙이며 엉뚱한 행동(지랄)을 하지 못하도록 어렸을 때부터 점잖고 말 잘 듣는 아이로 양육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견디지 못하고 반항을 하거나 곁길로 조금이라도 갈려고 하면 부모들은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며 큰일이라도 생긴 양 더욱 아이를 몰아붙이고 조이기 시작하며 갈등을 키워나갑니다. 우리가 어려서 자주 들은 말 가운데 쥐도 도망갈 구멍을 놓고 쫓으라는 말이 있듯이,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조금 거리를 두고 오늘의 지랄이 내일의 평화를 위한 일시적 시련이라 생각하면 의외로 쉽게 답이 풀릴 터인데 우리는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린 시절 지랄하지 않고도 겉으로는 멀쩡한 '훌륭한 어른'이 되기도 합니다만 언젠가는 그들의 내면에 억눌려 있던 '지랄'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더 큰 낭패를 당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공한 40~50대 남성들이 여성편력을 자랑하고, 돈과 권력에서 자신들의 삶과 존재의 의미를 찾는 행태가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랄 총량의 법칙은 학문적인 입장을 떠나 많은 것을 우리에게 시사합니다. 꼭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지랄의 총량이 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지랄하고 싶은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지랄총량만 아니라 스킨십총량, 대화총량, 스트레스총량 등 모든 것은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어느 정도가 넘어가면 반드시 폭발하게 되어있고, 그것을 못하게 막으면 엉뚱한 곳에서 반드시 터지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킨십도 육아에 시달리는 아내는 남편의 스킨십을 거부하게 되고, 스트레스도 쌓아두면 우울증이나 과격하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대화도 통상 남자는 하루 15천 단어를, 여자는 2만에서 25천 단어를 말하는데 직장에서 대화총량을 다 사용한 사람은 집에서 대화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중학생 아이들을 상대하는 우리들에게 지랄총량의 법칙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지랄을 떨어도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지랄을 떨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고, 지랄 떨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오죽하면 2위키 백과에 올라 있고, ‘북한군이 남한에 쳐들어오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중2 때문이라는 우스개가 있겠습니까? 그만큼 그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가능성이자 불확실성입니다. 그러기에 지랄은 또 하나의 가능성이며, 희망의 다른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불량청소년이 인생불량품이 아니고, 모범학생이 인생모범생이 아닌 까닭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틀을 깨고 사는 그들이 훨씬 창의적이고 모험심이 많고 도전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일시적으로는 지랄할지 모르지만, 그 지속 시간은 매우 짧을뿐더러 그 지랄의 경험이 스트레스를 풀고 방황과 지랄을 통해 개과천선을 하거나, 그들의 꿈과 비전 즉 인생의 방향을 더욱 분명하게 찾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랄을 떠는 자녀들을 볼 때 불안해하거나 아니면 더욱 조이기보다는 조금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지랄이 멈출 때까지 조금만 더 인내하면서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결론적으로 지랄의 치유를 위한 특효약은 사랑과 관심그리고 기다림이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레이몬드 릴리라는 흑인 청년은 성격이 매우 포악해서 동네에 있는 교회의 모든 목사를 죽이겠다고 벽돌 한 장을 들고 예배당에 찾아갔다고 합니다. 젊은 날 지랄을 떤 것입니다.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가 혼자 남기까지 기다리다 그만 설교를 듣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날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의 지랄은 끝이 났답니다. 릴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훌륭한 목사가 되어 시카고에 카운티 병원을 세웠고, 그곳에서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료해주고 복음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그 벽돌을 간직하였고 장례식 때에도 진열해 놓았다고 합니다.

1865년 평양에서 출생한 이기풍도 괄괄한 성격으로 싸움과 술을 좋아해서 젊을 날을 허송세월하면서 서양선교사들을 박해하는 지랄을 떨던 어느 날 평양 서문통 사거리에서 노방전도를 하던 마펫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 크게 다치게 합니다. 그 후에도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원산으로 피난하여 그곳에서도 신자들을 박해하는 등 못된 짓을 골라 하던 중 바울처럼 꿈속에서 음성을 듣고 전도인 전군보(田君甫)의 전도로 결신(決信)을 하게 됩니다. 이후 1894년 스왈른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1898년부터 매서인(賣書人) 자격으로 함경도 일대에서 성경 반포·전도사업을 하다가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한국인 최초의 목사가 되어, 제주 선교사로 파송되었으며, 1938년 일제의 신사참배 반대투쟁을 하다가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순교하게 됩니다.

 

 

이처럼 유난스럽게 지랄 떠는 사람도 예수님을 만나면 얼마든지 지랄에서 해방되고, 인격이 변화되고 새사람으로 거듭납니다. 문제는 지랄 떠는 모습 때문에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며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지랄은 희망입니다. 그것 때문에 기도하고 관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을 보면 정말 교사란 신분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만 그것이 도리어 우리의 기도제목이 되고, 우리의 따스한 손길을 거쳐 세상을 뒤흔드는 위대한 지도자로 탄생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이 되게 하는 십자가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아무리 아이들이 짓궂고, 힘들게 해도 포기하지 않고 미래와 희망을 노래하는 기독교학교 정명동산이 되어지길 소망합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1312월 교직원예배:윤삼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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