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야 사이 바바(Sathya Sai Baba, 1926~2011)}
두 번째 인물로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Maharishi Mahesh Yogi, 1918~2008)를 들 수 있다. 마하리시는 1917년에 태어났는데 스와미 브라마난다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였다. 후에 스승의 요가 기술을 ‘초월명상’으로 발전시켰으며, 1957년에는 인도에서 영성혁신운동을 일으켰다. 마하리시는 자신의 ‘초월명상’을 종교라고 보는 것에 반대하고, 행위를 중심으로 한 의식(儀式)과 신비적 요소를 배제하는 한편 개인의 가능성이 완전히 펼쳐지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마하리시는 ‘영혼의 해탈’을 말하지 않고, ‘인간 의식의 해탈’을 중시하였으며, 힌두교 사상을 서양에 이식시키는 데 가장 성공한 인물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마하리시의 가르침은 심리적 성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1959년에 미국에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으며, 비틀즈가 직접 방문함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세 번째로 유명한 인물은 라즈니쉬 찬드라 모한 자인(Rajneesh Chandra Mohan Jain, 1931~1990)으로 그는 1931년에 태어났으며, 자이나교도인 조부모에 의해 양육되었다. 1958년에 자발푸르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9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는 힌두교의 윤리와 사회적·성적 억압에 대해 공격하였으며, 1967년에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라즈니쉬는 스스로 바가반(구세주)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논란을 일으켰으나 마하라슈트라에 있는 수행처에 수천 명의 추종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들과 7년을 지내면서 매일 담화를 나누고 650여권의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라즈니쉬는 인도의 요가와 서양의 정신치료기법을 혼합하였으며, 자아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다.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Maharishi Mahesh Yogi, 1918~2008)}
{라즈니쉬 찬드라 모한 자인(Rajneesh Chandra Mohan Jain, 1931~1990)}
(3) 영화의 나라 인도
인도에는 우리 상식의 허점을 찌르는 또 다른 사실이 숨어 있다. 가난한 인도가 세계 최대의 영화제작 국가라는 것이다. 인도영화는 육감적인 허리춤과 코맹맹이 노랫소리, 그 안에 담긴 소박한 사랑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또한 끊임없는 복선도 인도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인도에서는 하루에 1천5백만 명이 영화를 본다고 한다. 영화 제작 편수에서도 2000년에는 855편, 2002년에는 1천1백5십 편일 정도로 영화산업이 세계 최대인 나라이다.
(4) IT산업의 강국 인도
인도는 최근 IT 산업에서 급성장을 하고 있는 나라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산업의 특수성과 인도 고유의 사회적·문화적·역사적 조건이 잘 조화를 이루어 IT 산업에서 지속적이고도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인도철학(印度哲學, Indian philosophy)에서는 고대 인도의 성전(聖典)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활용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식의 공학’이라고 할 수 있는 논리적 사고방법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9) 이러한 특성이 현대의 컴퓨터 산업에 그대로 적용이 되고 IT 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5) 영어의 저력을 가진 인도
인도는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고 영어를 쓰는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그러나 인구비례로 따지자면 영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인구는 4~10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간단한 영어회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70퍼센트는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영어는 중앙정부의 부공용어이고, 일부 주와 연방직할지에서는 공용어 또는 부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2) 주요 연구영역
인도의 역사는 크게 보면 고대 인더스문명시대와 베다(Veda)시대, 도시국가·영역국가시대, 그리고 마우리아 왕조, 굽타 왕조, 무굴 제국시대, 영국의 식민지시대와 독립국가시대 등으로 크게 구분하여 볼 수 있다.
(1) 인더스문명시대
인더스문명은 아리아인이 인도에 침입하기 전에 형성되었던 인도 고대문명의 하나이다. 특히 인더스 강 유역의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등에서 그 유적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인더스문명은 기원전 3천 년 이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인더스문명의 사람들은 일정하면서도 정연한 도시계획을 세워서 웅장한 도시를 건설하였다. 인더스문명의 도시는 높이 치솟은 성채와 평지의 주택가로 이루어졌다. 성채는 종교의식과 정치의 중심지였으며, 평지에는 대형 목욕탕과 곡물창고가 있었다. 주택가는 도시계획이 잘 이루어진 도로로 연결되어 있었고, 급수시설과 하수구도 설치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인더스문명은 고도로 발달된 동기(銅器)문명시대였고, 후세 인도의 민간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이루고 있다.
{모헨조다로 유적}
{하라파 유적}
(2) 베다시대
{리그베다}
기원전 15세기경에 아리아인이 인도의 펀자브 지방을 침입하였고 기원전 10세기경에 정착하였다. 아리아인이 인도에 침입하고 이주한 것은 한 집단에 의해 단시일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몇 세기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아리아인이 인도를 침입한 뒤의 생활에 대해서 아리아인의 종교 찬가인 '베다(veda)'를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시대를 베다시대라고 한다.
아리아인들은 현세 지향적이고 낙천적인 기질을 가진 민족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리아인들은 현실에서 행복을 얻기 위해서 각기 가정에서 제화(祭火)를 만들어 스스로 공물을 바치고, 한편으로는 대규모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또한 종교 찬가를 만들어 바치기도 하였는데, 이들이 만들어 낸 종교 찬가가 바로 '리그베다'이다. ‘리그’는 찬가의 뜻이고, ‘베다’는 지식이라는 뜻이다. '리그베다'는 1017개의 찬가와 11개의 보유 찬가로 구성되어 있다. '리그베다'는 기독교 문화권에서 보면, 구약성서에 해당하고 중국 문화권에서는 시경이나 서경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3) 후기 베다시대
펀자브 지방에 정착하였던 아리아인은 기원전 10세기경에 동쪽으로 이주하여 야무나 강과 갠지스 강의 중간에 있는 비옥한 평원을 점거하였다. 이들은 사제 계급인 브라만(바라문)을 중심으로 농촌사회를 확립하고 고립적이면서 폐쇄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하였다. 이로써 브라만교(바라문교)의 문화를 완성하였으며, 4성제도가 이때 완성되었다. 4성이란 브라만(사제)-크샤트리아(왕족)-바이샤(평민)-수드라(노예)의 4개 계급을 의미한다.14) 이 계급은 이후 인도사회를 지배하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그러한 신분제도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브라만 가족}
{수드라 계급}
(4) 도시국가·영역국가시대
초기 불교 경전에 보면 당시 북인도에 16개의 나라가 있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에 많은 소규모의 도시국가들이 있었음을 나타내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나라들은 군주제나 부족적 색채를 지닌 공화제의 나라로 구분된다. 공화제의 형태를 가진 나라는 샤카족(석가족, 釋迦族), 말라족, 콜랴족 등이고, 군주제의 나라는 마가다, 코살라, 카쉬 등의 나라였다. 이 나라들은 어느 정도 정비된 행정력과 군사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를 도시국가·영역국가시대라고 한다.
(5) 마우리아 왕조시대
{찬드라 굽타(Chandragupta Maurya, BC 349?~298?)}
마우리아 왕조는 마가다족이 세운 왕조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 BC 356~323)은 기원전 327년에 서인도에 침입하여 여러 곳을 식민지로 삼고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군사들이 더이상 행군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갠지스 강의 평원에는 난다 왕조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마가다 출신의 찬드라 굽타(Chandragupta Maurya, BC 349?~298?)가 난다 왕조를 무너뜨리고 주위의 여러 제국을 복종시키면서 마우리아 왕조를 세우게 된 것이다.
마우리아 왕조는 인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권력을 행사하였다. 찬드라 굽타는 인도 전역에 많은 공공도로를 깔았고, 그의 손자인 아소카 왕(Ashoka the Great)은 14㎞마다 우물을 파고, 여행자를 위한 휴게소를 설치하였으며, 도로의 주요 교차점에 국가의 창고를 세웠다. 또한 운하를 파고 저수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마우리아 왕조는 인도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를 건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6) 굽타 왕조시대
인도의 쿠샨 왕조(Kushan Dynasty)와 안드라 왕조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그 세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때 옛 마가다지방에서 찬드라 굽타 1세가 320년에 즉위하여 굽타 왕조를 세웠다. 그 다음에 사무드라 굽타는 330년경에 즉위해서 여러 곳을 정복해서 굽타 왕조는 마우리아 왕조 이후 다시 통일국가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 시기에 인도의 고전문화가 발전하였고, 천문학(天文學, astronomy), 수학(數學, mathematics)도 이 시대를 전후하여 발전하였다. 그러다가 5세기경, 흉노족이 침입하여 굽타 왕조는 쇠퇴하였고, 6세기에 여러 나라로 분열되었다.
(7) 무굴 제국시대
1526년 티무르(Timur, 1336~1405)의 5대 후손인 바부르(재위 1526~1531)는 델리에 들어가서 무굴 제국을 세웠다.18) 그 이후 악바르 왕(재위 1556~1605)은 전 인도를 거의 통일하였다. 그는 관료제도를 정비하고 논밭을 측량하여 세금을 현금으로 받았다. 그는 스스로 황제라고 불렀으며, 여러 가지 종교에 대하여 관대하였다. 이슬람교의 지배자이면서도 힌두교도에게도 관직을 개방하였으며, 이슬람교도 이외의 사람에게 물리는 인두세(jizya)를 폐지하였다. 악바르 왕은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과 비견될 만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토지사용, 세금제도, 지방행정, 종교 등의 분야에서 타협을 이루어냈고, 이는 무굴 제국을 단단하고 풍요롭게 하였다.
{티무르(Timur, 1336~1405)}
{악바르(재위 1556~1605)}
(8) 영국 식민시대와 독립국가시대
영국은 1600년에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였는데, 18세기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인도 경영에 참여하여 조금씩 세력을 확장하였다. 결국 영국은 점차 프랑스 세력과 시크교 신도를 꺾고 1856년에 인도를 장악할 수 있었다. 1857년 영국인에 대한 민족적 반감이 폭발하여 ‘세포이(sepoy, 용병) 반란’이 일어났다. 오늘날 인도인들은 이 사건을 최초의 독립전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20)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영국은 잠시 곤경에 처했으나 이 사건의 조종자로 무굴 제국의 황제를 지목하고 미얀마로 추방하였다. 이로써 무굴 제국은 1858년에 멸망하고 말았다. 이후 1877년부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1819~1901)이 인도의 황제를 겸하면서 완전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885년에 인도에서는 인도 국민회의가 설립되어 초대 의장으로 수렌드라나트 바네르지(Surendranath Banerjea, 1848~1925)를 선출하였다. 1905년에 러일전쟁이 끝나자 인도에서는 민족독립운동이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틸라크(Tilak, 1856~1920)가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틸라크의 뒤를 이어서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가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비폭력주의를 주창하였다. 이를 사티야그라하(진리파지 眞理把持)라고 한다.
간디의 비폭력주의는 이후 비판으로 이어졌고, 인도 국민회의의 지도자들은 분열의 길을 가게 되었다. 사회주의가 도입되면서 무장 폭력투쟁이 등장하였으며, 1919년에는 인도 무슬림이 주도해서 킬라파트운동(Khilafat Movement)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킬라파트운동은 영국과 연합군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점령, 통치하는 것을 반대하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술탄을 보호하기 위해 일어난 것이다. 이 운동으로 힌두와 이슬람이 단합할 수 있었다. 간디의 시민 불복종운동에 반발한 무하마드 알리 진나(Muhammad Ali Jinnah, 1876~1948)는 1940년에 두 국가 이론을 기초로 해서 무슬림만을 위한 파키스탄을 세울 것을 주장하였다. 2차 세계대전은 인도의 독립운동을 더욱 성숙시켰으며, 1947년 인도는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하게 되었다.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
{무하마드 알리 진나(Muhammad Ali Jinnah, 1876~1948)}
3. 주요 용어 및 관련 직업군
1) 주요 용어
• 인도의 역사 구분: 인도의 역사는 크게 4가지로 구분하는 견해가 있다. 힌두시대와 이슬람시대, 영국 식민지시대, 그리고 오늘의 독립국가시대로 구분한다.
• 베다(Veda): 베다는 신을 찬미하기 위한 종교 찬가를 말한다. 베다 왕조에서는 신을 찬양하기 위해 종교 찬가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리그베다〉이다. ‘리그’는 찬가의 뜻이고, ‘베다’는 지식이라는 뜻이다. 〈리그베다〉는 1017개의 찬가와 11개의 보유 찬가로 구성되어 있다. 〈리그베다〉는 기독교 문화권에서 보면, 구약성서에 해당하고 중국 문화권에서는 시경이나 서경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 인도의 4성: 브라만교의 신분 계급으로 브라만(사제)-크샤트리아(왕족)-바이샤(평민)-수드라(노예)의 4개 계급을 의미한다.
• 인두세(Jizya): 이슬람교도 이외의 사람에게 물리는 세금이다.
• 킬라파트(Khilafat)운동: 킬라파트운동은 영국과 연합군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점령, 통치하는 것을 반대하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술탄을 보호하기 위해 일어난 것이다. 이 운동으로 힌두와 이슬람이 단합할 수 있었다.
2) 관련 직업군
• 역사 관련 중고등학교 교사
• 인도문화원 등의 직원
• 교육 관련 연구기관 연구원
• 인문사회 연구기관 연구원
• 해외공관원
• 무역진흥공사(KOTRA) 등 해외 관련 산하기관 직원
• 기타
<참고문헌>
이병욱(2011년), 『한권으로 만나는 인도』, 너울북.
https://youtu.be/iuQeW9Y6j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