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중국 교통문화
알다시피 중국의 교통문화는 이제 막 발전하는 단계다. 운전이 거친 것은 당연하고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우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만도 하루 평균 200여 건이 넘는다.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그날은 교통두절이라고 봐야 한다.
차들로 가득 찬 이우 도로의 모습. 차가 많고 교통문화마저 후진적이라 이우에서만 하루 평균 200여 건의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평소 만만디로 유명한 중국인들도 운전대만 잡으면 야수로 변한다. 앞차가 조금이라도 늦게 가면 경적을 울려대고 도로가 막히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인도로 달린다. 없는 길도 만들어 가는 중국인들이다. 고속도로에서도 길이 막히면 거침없이 노견으로 달린다.
역주행뿐 아니라 인도로 달리는 차도 흔히 볼 수 있다
끼어들기를 하면서도 방향지시등을 거의 켜지 않는다.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는데도 모험을 하려는 듯 마구잡이로 들어온다. 두 개 차선을 겹쳐 달리면서 다른 차의 진행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은데, 운전자는 전혀 개의치 않고 태연하게 운전한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있어도 이를 무시하고 달린다. 중국에서는 사람보다 차가 우선이다.
한 픽업트럭이 과감하게 1차로로 역주행을 하자 놀란 시로코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피하고 있다. 중국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난번에 한 외국인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차가 서지 않자 자동차의 보닛을 양손으로 내리치는 모습을 보았다. 화가 잔뜩 나 있었는데 왜 사람이 건너가고 있는데 차로 밀고 들어오느냐는 항의의 표시였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중국에 처음 온 외국인임에 틀림없다.
요즘 이우 도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위험천만한 모습. 마치 유행처럼 선루프 바깥으로 얼굴을 내미는 아이들이 많은데, 부모들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
필자는 매년 우리 회사 직원 중에서 우수사원을 뽑아 매년 한 명씩 한국으로 여행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한국으로 떠나기 전 한 남자 직원이 필자에게 “한국에 가면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차들이 서는지 안 서는지 확인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 직원은 “모든 차들이 거짓말처럼 섰다”며 놀라워했다. 횡단보도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오던 차들이 모두 정지를 하고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더라는 것이다. 우리로선 당연한 일이지만 차가 우선인 중국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으리라.
긴장된 모습으로 검문을 받고 있는 중국의 스쿠터 운전자. 중국에서는 모터사이클 검문이 대단히 엄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중국에서 운전을 하려면 눈이 4개는 있어야 한다”거나 “중국에서의 운전은 완전히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모험”이라들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차를 타면서는 아직 가벼운 접촉사고도 낸 적이 없다. 한국에서 역시 한 번도 교통사고는 낸 적이 없는 녹색면허증 소지자였다. 그러나 이 차를 몰기 전에는 두 건의 교통사고를 경험했다.
중국에서는 오토바이를 다양하게 사용한다
중국에서 경험한 아찔한 교통사고
2002년 중국에 정착하고서도 이 험한 환경에서 한동안 무사고 운전기록을 이어갔는데, 얼마 뒤 마침내 신화(?)가 깨졌다. 때는 바야흐로 2004년 설 연휴를 앞둔 무렵. 한국으로 납품할 물건을 컨테이너에 싣지 못해 칭다오로 직접 가지고 가서 선적하려고 달려가던 중이었다. 이우에서 밤새도록 운전을 해서 그 다음 날 아침 소금 생산지로 유명한 장수성 옌청(?城)에 도착했다.
부부처럼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운전사와 승객이다. 일명 오토바이택시다
그런데 안개가 짙게 깔려 5m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금은 고속도로에 안개가 짙게 끼면 진입을 시키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런 제한이 없었다. 주행선으로 거의 기어가다시피 달리고 있는데 추월선으로 시속 80km가 넘는 속도로 차들이 지나갔다. 간담이 서늘했다. “중국인들은 눈이 참 좋은 모양이다. 이런 안개 속에서 저렇게 빨리 달리 수 있으니 말이다.” 옆에 탄 직원에게 이 말을 한 뒤, 필자는 기억을 잃고 말았다.
경찰차나 군용차는 흰색 바탕에 검정색 글씨를 쓴 번호판을 달아 멀리서도 구분된다
한참을 잔 것 같은데 발목이 아파서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하얗게 보이는 병원 천장 아래서 조선족 직원과 간호사가 내 발에 엑스레이 기계를 갖다 대고 있었다. 직원 말로는 내가 전방에 고장이 나서 서 있는 고속버스를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그 순간 고속으로 뒤따라오던 다른 고속버스가 우리 차를 받았고, 이어 달려오던 다른 고속버스가 한 번 더 추돌해서 4중 추돌사고가 났다고 했다. 사고의 충격으로 내가 운전대와 의자 사이에 끼어 1시간여 동안 꼼짝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외국인 차량은 검정색 바탕에 흰색 글씨를 사용한 번호판을 쓴다. 사진은 중국과 홍콩 번호판을 모두 단 모습
이 사고로 필자는 얼굴과 팔, 다리의 일부가 찢어져 40바늘 이상을 꿰맸고 발의 뼈가 다섯 조각으로 갈라져 수술을 받아야 했다. 당시 나를 치료했던 중국인 의사의 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선생이 이 병원 개원 이래 처음 입원한 외국인이어서 병원장 이하 모든 의료진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당시 현대자동차가 그곳에 엔진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어서 한국인에 대해 특별 대우를 해주는 느낌이었다.
교육용 차량, 대형버스, 대형트럭 등 상용차의 번호판은 노란색 바탕에 검정글씨다. 사진은 원저우와 우루무치의 4,230km를 달리는 침대버스
이후 중국에서 한 번 더 사고를 경험했다. 신호를 위반하고 들어온 차에 옆구리를 받힌 것. 다행히도 큰 사고가 아니어서 심한 부상은 입지 않았다.
2층침대가 있는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어 비닐봉지에 담아 보관해야 한다. 안전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지만 4,000여km의 거리를 밤낮으로 달려 갈 수 있는 대안은 많지 않다
중국에서 자가용을 굴리려면
SM520의 차량등록세는 1년에 1,200위안(약 21만원)이다. 보험료는 2013년 기준으로 2,650위안(약 46만원)을 지불했는데 앞에서 말한 대로 자차 보상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우는 공사를 하는 곳이 많아서 먼지가 많기 때문에 비교적 세차를 자주 하는 편이다. 며칠만 세워 놓아도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는다.
살수차가 다니기는 하지만 효과가 그다지 없다
SM520의 색상이 먼지가 묻어도 지저분한 느낌이 들지 않는 컬러이지만 가능하면 항상 깨끗하다는 인상을 주려고 일주일마다 세차를 한다. 세차비용은 20위안(약 3,500원)이다.
손세차인데 내부까지 닦아주고 진공청소기까지 동원해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해준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가격이지만 지난해는 10위안(약 1,750원)이었는데 1년 사이에 배로 오른 것이다.
손세차 비용이 20위안(약 3,500원)으로 저렴한 편
중국의 차량 번호판은 파란색 바탕에 흰 글자로 한자와 영어를 같이 표기한다. 예를 들어 ‘浙A 51193’이라 표기되어 있다면 절강성 항저우에 등록된 차라는 뜻이다. 맨 앞의 한자는 해당 성(省)이고 다음 영문은 도시 그리고 아라비아 숫자는 차량번호다. 전국이 동일하게 같은 형식을 사용하고 군용과 경찰 차량은 흰색 바탕에 검정과 빨간 글자, 버스와 대형트럭 등 7인 이상이 탑승하는 차량과 연수용 차량에는 노란 바탕에 검정 글자를 사용한다.
일반 자동차의 번호판은 파란색 바탕에 흰색 글씨를 사용한다
필자의 차는 검정색 바탕에 흰색 글자로 된 번호판을 달고 있다. 검정색 번호판은 외국인이 등록한 차다. 지금은 이 외국인 번호판 제도가 폐지되어 예전에 이 번호판을 단 차들이 아주 가끔 눈에 띌 뿐이다. 앞서 말했지만 이우에는 검정색 번호판의 차가 필자의 SM520밖에 없다.
SM520은 지금은 제도가 없어진 외국인 차량용 번호판을 그대로 달고 있어 종종 특수기관 차로 오해받기도 한다
아직까지 차가 말썽을 부린 일이 없지만 만약 차에 문제가 생긴다면 필자가 이용하는 정비업소의 쉬(徐: 우리의 서씨) 사장을 호출하면 된다. 쉬 사장은 장소에 관계없이 24시간 언제든지 출동한다. 정비경력 15년의 베테랑인 그는 전에 마쓰다에서 5년간 근무했다고 한다.
정비업소의 쉬 사장
그런데 일반도로에서 고장이 나면 문제가 없는데 고속도로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일전에 우리 사무실에서 가지고 있던 빵차(한국의 다마스 같은 소형 상용차)를 가지고 타이조우(台州)에 간 적이 있다. 이우에서 타이조우까지는 약 3시간 반이 소요된다. 빵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것이 위험해서 장거리를 갈 때에는 주로 일반 승용차를 대절해서 가지만 그때는 비용을 좀 아낄 요량으로 우리 회사의 빵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빵처럼 생겼다고 해서 빵차라고 부르는 소형 승합차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2시간 정도를 갔는데 엔진오일 경고등이 들어오고 머플러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고속도로에서 달리 손쓸 방법이 없어 고속도로에 설치되어 있는 응급전화로 연락을 했더니 견인차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기다린 지 30여 분 후에 견인차가 와서 우리 차를 끌고 가는데 큰 도시의 정비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산속에 있는 허름한 정비업소로 끌어다주었다. 고속도로에서 고장이 발생한 차량은 고속도로 관리업체와 계약되어 있는 정비업소로만 갈 수 있단다. 그런데 밖을 둘러보니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에 정비도구라고는 리프트 하나 달랑 있는 정비업소여서 제대로 수리가 될지 걱정이 앞섰다.
중국의 톨게이트
엔진을 뜯어서 한참을 정비하고 다시 조립했는데 걱정했던 대로 엔진이 작동되지 않았다. 다시 엔진을 분해하고 조립하기를 세 번이나 더 한 후 밤 10시가 되어서야 수리가 끝났다. 품질이 떨어지는 중국의 엔진오일이 엔진 안에 떡처럼 눌러 붙어 있어 오일이 순환을 하지 못하도록 관을 막은 것이 고장의 원인이었다. 정비업소 사장은 수리비로 3,000위안(약 53만원)을 청구했다. 엔진을 열어서 엔진오일 찌꺼기를 털어낸 것밖에 없는데 3,000위안이라니!
정말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돈이 그 정도가 안 된다고 하니 돈을 구해와서 차를 찾아 가라며 막무가내였다. 인상도 험하고 체격도 엄청 큰 그들과 입씨름을 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인적도 없는 첩첩산중의 깜깜한 한밤중에, 더 달라고 위협하지 않는 것이 다행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겨우 사정을 해서 1,500위안(약 27만원)에 합의를 하고 수리비를 지불했다.
비용을 좀 아끼려고 빵차를 타고 가다가 몇 배나 더 많은 돈을 지불한 셈이다. 사고로 인해 그날 예정했던 일마저 처리하지 못해 인근 호텔에서 자야 했으니 이래저래 손해가 막심했다. 정말이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하루였다. 고속도로에서 차에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가장 가까운 톨게이트로 재빨리 빠져나오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앞으로 이 차를 얼마나 더 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능한 한 오랫동안 보유하려고 한다. 이 상태로 타고 다닌다면 10년 정도는 충분히 더 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때가 되면 아마 필자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사업에서 은퇴하기 전 중국을 자동차로 한 바퀴 돌아볼 작정인데 그때 이 차를 이용하는 것은 아마도 무리일까?
양인환 중국통신원
1957년 8월 서울에서 태어나 91년까지 금융권에서 일하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자동차와 함께 하는 삶에 새롭게 도전했다. 91년 국산 자동차로 미국 48개 주를 일주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것을 시작으로, 92년 아시아 록스타로 호주를 일주했다. 93년 호주 웨스턴 랠리스쿨을 이수한 뒤 호주 웨스턴 랠리 침피언십, 홍콩-북경 랠리(94년), 태국 랠리(94년) 등에서 전문 드라이버로 활동했다. 93년부터 96년까지 본지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참가한 랠리를 비롯해 세계의 다양한 자동차 경주와 시승기를 소개했다. 저서로 ‘대머리 돈키호테’, ‘차를 알고 문화를 세우는 여유로운 운전’이 있다.
11년째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양인환 통신원은 앞으로 중국을 비롯한 북미, 남미, 아시아, 유럽 등의 재미있는 여행기를 소개할 계획이다. 머지않아 미국과 호주에 이어 중국과 남미대륙을 일주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싼타페DM 자유게시판 입니다 ^^
첫댓글 선진교통문화는 의식부터 변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