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상향 청학동을 찾아서
지리산 쌍계사에서 11월 20일 <쌍계사, 우리들의 이상향 청학동을 찾아서>란 주제의 세미나를 열었다. 쌍계사와 불일폭포 일원이 명승이 된 것을 축하하는 행사와 함께 열린 이 행사는 성균관대 인문대 학장인 안대회 선생과 지리산 국립공원 경남 소장인 김종식씨, 그리고 필자가 함께한 세미나였다.
최치원과 이인로, 김종직, 김일손, 조식, 유몽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이인로의 뒤를 이어 찾았던 청학동을 어떻게 관리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종교학자들은 ‘지구의 특정 장소를 에너지가 충만한 성스러운 땅’이라고 여기는데, 그러한 땅을 지상의 어느 한 곳에 묘사한 소설이 1933년 나타났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은 지상의 선경이자 유토피아인 ‘샹그릴라’를 배경으로 했는데, 그때부터 세계 각국에서 ‘샹그릴라 호텔’ ‘샹그릴라 골프장’을 비롯 온갖 상품에 샹그릴라가 등장했다.
고비 사막 북쪽 톈산 지역에 있다고 알려진 샴발라(현대의 극락)에서 착안한 샹그리라를 티베트 사람들은 상상의 공간이 아니라 현존하는 곳으로 믿었는데, 상그리라는 티베트어(語)로 ‘마음 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샹그리라를 현실 속으로 불러낸 중국은 1997년 중국 원난성 디칭장족자치주에 있는 중덴(中旬)을 지상에서 존재하는 평화롭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 즉 샹그릴라라고 공식 발표한 뒤, 2001년 상그릴라로 개명하였다.
중국에 또 하나의 샹그릴라가 있는데, 스촨성의 야딩이 그곳이다. 하얀 설산 아래 해발 4,600m 4,700m에 위치한 우여해와 오색해가 있는 야딩은 살기에는 적당하지 않지만, 지상의 선경, 낙원 중의 낙원 중의 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아름다웠다.
중국만이 아니고, 파키스탄도 훈자라는 장수마을을 샹그릴라라고 홍보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고 있다.
근현대사 우리나라에서도 이상향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이 증산교를 창시한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이다.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구릿골에서 금산사에 이르는 공간은 그런 의미에서 증산을 믿었던 사람들의 성지였다. 이곳 용화동과 청도리 일대에만 들어오면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향, 제임스 힐턴이 말한 샹그리라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던 이곳이 바로 청도리다. 그 한가운데에 용화동이 있다.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비산비야 엄택곡부非山非野 奄宅曲阜의 지형이다. 이곳에는 이상호, 이정립 형제가 세운 증산교 본부가 있다. 그 아래로 내려가 금평저수지를 따라 들어간 금산면 청도리 구릿골에는 증산甑山 강일순이 머물렀던 김준상의 집이 있다. 그 집 2평 남짓한 방에 마련한 약방 광제국廣濟局 앞마당에서 천대받는 민중이 한울님이라고 설파한 증산은 죽기 전에 천지굿판을 벌였던 곳이다.
그렇다면, 이상향, 즉 유토피아는 무엇인가?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서 유래한 이상향 즉 유토피아(utopia)란 말은 라틴어로 ‘없다’ 또는 ‘좋다’라는 뜻도 되고 ‘어디에도 없는 나라’, ‘좋은 곳’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어디에도 없지만 좋은 나라’, ‘낙원(樂園)’이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 즉 유토피아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공허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만드는 데 전 생애를 악착같이 보내는 인간” 들의 모습에 염증을 느끼고, 신이 창조한 모든 것들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갖고 있는 “표면적이고 공허한 과시를 함으로써 남들을 따돌리고 능가하는 것을 명예로운 일이라고 여기는 그 자만심”을 통렬하게 비판하고자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 나라에서는 모든 물건들을 공유(共有)로 하고 화폐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서로서로에게 선행을 하며 즐겁게 매일 매일을 지낸다.” 라고 했지만 사람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러한 나라는 지구상에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알베르 까뮈의 스승이며 산문작가인 장 그르니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항상 꿈을 꾸게나, 꿈은 공짜라네.” 그렇다. 꿈을 꿀 때 우리가 그리워하는 유토피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카마라 대주교는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꿈은 혼자 꾸면 꿈이지만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라고. 그런 때문일까? “동쪽 울타리에서 유유히 남산(南山)을 본다.”고 노래한 도연명이 그리워한 산과는 다른, ‘무릉도원武陵桃源’ 같은 이상향을 찾아서 또는 국토의 재발견을 위해서 역사 속에 수많은 인물들이 우리 국토를 편력하고자 하였다.
사는 것이 외롭고 쓸쓸할 때는 지리산의 품에 안겨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는 말이다. 산이 흙으로 이루어진 산이고, 골짜기가 많아서 사람이 살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에는 청학동이 어떻게 실려 있을까?
지리산의 서쪽에는 화엄사華嚴寺와 연곡사燕谷寺가 있고, 그 남쪽에는 신응사神凝寺와 쌍계사雙溪寺가 있다. 이 절에는 신라 때 사람 고운 최치원崔致遠의 화상이 있다. 시냇가 석벽에는 고운이 쓴 글씨가 많이 새겨져 있다. 세상에 전해 오기를 고운이 도를 통해서, 지금도 가야산과 지리산 두 산 사이를 왕래한다는 것이다. 선조 신미년(1571)에 한 스님이 바윗돌 사이에서 종이 한 장을 주웠는데, 시 한 수가 적혀 있었다.
동쪽 나라 화개동은,
병 속의 별천지라네.
선인이 옥 베개를 밀치고 깨어보니,
세상은 홀연히 천 년이 지났는가.
그 글자의 획이 금방 쓴 듯한데, 필법이 세상에 전해 오는 고운의 필적과 같았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에 지리산 안에 만수동萬壽洞과 청학동靑鶴洞이 있다고 한다. 만수동은 지금의 구품대九品臺이고, 청학동은 지금의 매계梅溪로 요 근래에 비로소 조금씩 사람이 통하고 있다..’
이중환이 살았던 당시에도 새로운 꿈을 꾸기 위해 청학동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명승인데도 명승 대접도 받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는 보물은 항상 뒤늦게 알아보기 때문이 아닐까?
뒤늦게나마 쌍계사와 국사암, 불일평전과 불일폭포에 이르는 일원을 문화재청에서 2022년 국가 명승으로 지정하여 청학동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세상의 풍파에 찌든 도시 사람들이 찾아가 마음을 씻고 돌아온다면 좋을 명소가 쌍계사에서 불일폭포 가는 길이다.
”두류산이 우리나라 첫 번째 산이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인간 세상의 영리를 마다하고 영영 떠나려 하지 않으려 한다면, 오직 이 산만이 편히 은거할 만한 곳이리라.“
유몽인의 <두류산 유람>의 끝머리에 쓴 글이다.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샹그릴라’를 중국이나 파키스탄에서 공식으로 지명해서 관광명소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이상향을 ‘쌍계사의 청학동’으로 지정하고 ‘별 천지’ 나 ‘무릉도원, 같은 여건을 조성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쉼터와 안식처로 만들어야 할 때가 지금이다.
세파에 지친 사람들, 조금은 세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식을 찾고 싶은 사람들, 새로운 꿈을 꾸고자 하는 사람들이여, 아늑한 어머니의 품 같은 지리산 쌍계사 청학동으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