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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떡갈나무 약국 / 임수련 (본명 임외자)
밤새 앓고 난 후엔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케챱은 맛있어
인도사이다 인도사이다,
콧노랠 흥얼대며 떡갈나무약국을 찾아가죠
솜털 가운을 걸친 새들
자잘한 열매 알약들과 이슬 드링크 들고
분주하고요 떡갈잎 의자에 앉아 깔깔대는 노란 햇살들
눈꼽 씻은 바람이 흔드는 나뭇가지 소파
꼬마전구 도토리알 켜져있는 조제실 구석에선
약봉지 바스락대는 사슴벌레랑
무당벌레의 그루잠도 훔쳐볼 수 있어요
당신도 어디 아프신가요?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인도사이다,
콧노랠 흥얼거리며 향과 색과 소리들이 화답하는
떡갈나무 약국을 찾아가 보시죠
어린 살결처럼 싱싱한 푸른그늘 대기실에 앉아
깨알같이 쓰여진 마음의 처방전 읽고 있으면
어떤 상처도 아물게 한다는
까만 눈속에 당신을 태운 다람쥐 한 마리
지구보다 더 너른 나무의 세계로 안내해 드리고요
떡갈나무약국의 주인장 오색딱따구리와
구름트럭 끌고 약배달 온 빗방울의 경쾌한 대화도 들을 수 있죠
가끔 늦은 시간에 찾아가면 밤의 이마에 새겨진
따갑고 노란 눈동자들 등을 파고 들고
약국 처마의 기둥들이 굵어지는 걸 볼 수도 있는 곳
참 그곳엔 그 기둥들도 혼신으로 즙을 짜낸다는군요
마음이 푸석하게 부어올 땐,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케챱은 맛있어 인도사이다 인도사이다,
콧노랠 흥얼대며 떡갈나무약국을 찾아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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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구석서 울던 詩 꺼내 줘 감사"
나에겐 깊고 푸른 골짜기가 있어요
많은 생각과 낱말들
촉루처럼 흩어져 있는.
어떤 힘에 끌려 난 그 골짜기로 가서 자주
뒹굴고 있는 뼈들을 바라보죠
푸른 이끼 깔고 앉아 성근 이빨 꾸욱 깨물고
동굴 같은 텅 빈 눈은 들고
힘줄과 살 입히고 생기 불어넣어* 달라며
눈물 뚝뚝 흘리는 캄캄한 촉루의 눈빛
몰랐어요, 나는
어떻게 하면 그들이 살아날 수 있는지
해골과 뼈들 서로 연락하여*
인디에나존스에서처럼 후두두 일어나 몸을 이루는지
내가 가슴 저린 짝사랑을 오래 앓으면 앓을수록
알 수 없는 바람이 일고 시내가 흘러
튀어오르는 봄꽃들처럼
각기 뼈를 맞추며 몸을 입고 걸어나오는 것인지
내 사랑, 詩는 촉루로 이루어져
늘 이렇듯 난 아픈 것인가요
* 성경 에스겔서 37장
내 시를 간섭하시고 영감과 문장력을 주시는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구석진 곳에서 무릎 꿇고 울고 또 울던
제 시를 밝은 곳으로 이끌어내신 이기철, 최동호 두 분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낮은 자세로 언어와 삶을 공굴리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영혼이 맑아야만 올바른 시가 온다, 며
곁에서 제 부족한 인격과 시를 매질하시는
경주대학교 손진은 교수님께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오래 감성을 나누며 서로 격려해준 경주대학교 문창반 식구들,
한 소식 틔우기를 고대하고 고대한 방송대, 문예대 선후배들과
태중의 아기에게 시를 들려주며 딸이 시인 되기를 바라신 어머니께
저를 오랫동안 묵묵히 믿어준 남편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시를 아끼는 모든 분들과도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를 아끼는 모든 분들과도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경남 통영 출생
한국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주문예대학 수료
경주대학교 시회교육원 문예창작반 재학 중
현대중공업주최 전국백일장 시부문 은상 수상
신라문화재백일장 시 부문 최우수상 수상
방송대 학우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 수상
2003년 대전일보 시 부문 최종심
2006년 서울신문 시 부문 최종심
[심사평] "이야기시·노래시 조화 돋보여"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비교적 고른 수준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작품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불필요한 요설의 노출이 거슬리는 점이었다. 이는 아마도 신인들의 의욕 과잉이나 신춘문예의 흐름을 그릇 인식하고 있음에서 온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실험시, 현실고발시, 민중시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내면 의식과 삶에의 통찰을 노래한 시들이 많았다. 시의 풍토가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징조로 읽어도 될듯하다. 그런 가운데서 심사위원을 숙고하게 한 작품은 '칸나가 피는 가계부' '떡갈나무 약국' '먼지의 안쪽' '유방암을 앓는 여자' '치자나무의 마음' 등이었다. 이 작품들을 두고 두 심사위원은 비교적 오랜 대화를 나누어 마침내 '떡갈나무 약국'을 당선작으로 미는 데 합의했다.
'칸나가 피는 가계부'는 언어구사가 탐스럽고 현란하나 가끔은 우발적인 시행이 불필요하게 개입하고 있는 것이 흠이었지만 당선권으로밀어도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먼지의 안쪽'은 생각의 깊이와 휴머니티라고 할 인간미를 지니고 있으나 관념시로 흐를 가능성이 결함으로 지적되었고 '유방암을 앓는 여자'는 요즘 유행하는 '몸담론'을 체현하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으나 소품(小品)이고 결말 처리에 모호함이 있었다.
'치자나무의 마음'은 사물에 대한 애정과 일종의 물활론적 사유가 담겨 있으나 지나치게 소박하고 평이함이 결함으로 지적되었다. 당선작인 '떡갈나무 약국'은 시어의 경쾌한 흐름과 발랄한 상상력이 시를 읽는 마음을 견인하는 힘이 있다. 이야기시와 노래시의 양면을 함께 지니며 비약적인 어휘와 에그조틱한 상상의 모험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아마도 가볍지 않은 감각적 훈련을 쌓은 듯하다.
당선자와 그 밖의 모든 응모자에게 문운 있기를 바란다.
◇심시위원=이기철(시인·영남대 교수), 최동호(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과 심사평]
[시 당선작]
타임캡슐에 저장한 나쁜 이야기 하나 / 정태화
놋쇠숟가락 하나가 여닫이문 깊숙이 빠져 있었어 문고리 구멍에 꽂혀 타다닥 불
꽃 튀어 오르는 길 척추脊椎를 느끼는 그림자가 일렁이는 달빛 파도에 쓸리며 흐느
적거리고 있었어
사내들 깊은 밤 주막거리 화투짝 속살에 파묻혀 놀고 있는 동안 공산명월空山明月
밝은 달이 만삭滿朔의 몸 쏟아져 내리고 때때로 주인 버리고 오는 신발들이 보이는
시간
그 신발 뒷굽을 척척 빠져나온 발자국들
저희들끼리 우루루 나뭇잎 따라 구르다가
돌담장 호박넝쿨 아래로 숨어들어가 잠잠했어
이른 아침 백주에 궁둥이 까고 있는 호박덩이 몇몇에
어머니가 짚으로 엮은 똬리를 받쳐주다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오줌을 누셨어
그곳에 둥글고 하얀 어머니 궁둥이가 오래도록
내려앉아 있었어
밭두렁 무성한 잎새 바지 안에 잘 익은 오이들 매달려 있었지 이웃집 밭이랑에서
물오른 가지들이 불쑥불쑥 일어섰어 마음껏 부풀어 팽팽한 그것들과 함께 고추밭에
태양초 고추가 어찌 그리 뜨겁던지 퍼질러 앉은 밭고랑에
매끈매끈 고구마들이 얼굴 내밀고 있었어
저녁놀이 아궁이에서 왈칵 숯불을 뒤집어 놓을 때
어머니 볼 발그레 익어서 돌아오셨지
참 이쁘다 우리 어머니 태양초 고추 하나 머금은 듯 입술 붉은 어머니 고무신 탈
탈 털어낼 때쯤이면 명命 짧은 어머니의 사내가 내려놓은 울음들이 달려 나왔지
왈칵 기다림이 반가운 아이들
앞장세운 변성기의 아이 하나가
감나무 키 큰 그림자
사립문 밖 보내놓고 있었지
호롱불 밝혀야 어른어른 떠오르는 밥상
주춤주춤 아랫목이 내어놓은 보리밥 속에
언제 숨어들었나 고구마들 숨죽이고 있었지
등뼈를 쓰다듬는 어머니 능숙한 손길에
씨앗들 모두 빼앗기고 얌전해진
가지나물 오이냉채가 입맛을 당겼지
놋쇠숟가락으로 식구食口들이 밥을 먹고 있었어
[시 당선소감] "바람이 물었습니다 왜 거기 있냐고…"
[정태화]
지나가는 바람이 어린아이에게 묻습니다. 너는 왜 하필 그 곳에 쪼그리고 앉아 있니. 여기 이곳에 민들레가 보여서요. 호기심 많은 바람이 다시 묻습니다. 그래 그 동무와 지금 소꿉놀이 재미있니. 글쎄요? 그런데요 동무의 몸이 너무 가벼워 둥둥 떠오르려고 하는 것을 이렇게 말리고 있는데, 제 겨드랑이에 솜털이 막 솟아 올라오는지 자꾸 근지러워요. 이제는 지금 이 자리 떠나야 할 것 같아요 더 묻고 싶은 말은 없으세요.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마음들, 그들이 뿌리내려 걸어간, 걸어가고 있는 이야기들을 은밀히 이렇게 엿듣고 있다는 것은 내게 있어 희열이다. 알고 보면 사람도, 사람의 마음 그 열정도 한 알의 민들레 홀씨처럼 자갈밭 척박한 땅 가리지 않고 내려 마침내 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 때문에 나는 많이 눈물겹기도 하면서 또한 스스로 이해할 수 없이 기쁘기도 하다.
국제신문 신춘문예의 자리에 어느날 문득 날려와 뿌리내린 민들레 마음 하나의 꿈이 오랜 시간 참은 뒤 아하 그렇구나 무릎을 탁 치면서 마음껏 날아올라 어디론가 떠나가는 홀씨의 이름, 그 아이들이 세상을 향해 발음이 정확한 말을 걸어 갈 것이라고 믿기로 한다.
당선소식을 듣고 한참을 말없이 울먹였던 아내와 지금 막 옹알이를 시작한 딸에게 지금 한없이 행복한 마음을 전하면서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이 못난 아들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송두리째 헌납하시고도 눈물이셨던 어머니 그리고 내게 오직 하나밖에 없는 형과 동생, 나 때문에 영혼이 아팠던 수많은 그 분들에게 지금 가리늦게 '많이 죄송스러웠다'는 말 전하면서 고개를 숙입니다.
〈약력〉▲본명 정경화 ▲1958년 경남 함양 출생 ▲지리산문학회 회원 ▲주간 함양신문 편집부 근무
[시 심사평] 자연에서의 삶 개성있고 건강하게 풀어
[최하림]
시대가 어려울수록 시는 빛나는 법이다.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난 시를 읽으면 행복했다. 전국 각 지역에서, 외국에서, 고등학생과 노인들까지 다양한 작품이 투고됐으며 남성들의 투고가 많아져 신춘문예 여성화의 비율이 다소 주는 현상도 보였다. 그러나 신춘문예가 요구하는 신인의 패기와 개성,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보다는 잘 만들어진, 신춘문예의 새로운 전형을 이루는 시들이 많았다.
최종심에 '아버지, 꽃시를 심어요'(석지영·대구), '기차 떠나는 새벽'(이미정·울산), '스트랜딩 증후군'(김초영· 전남 순천), '무늬의 힘'(이현수·전북 진안), '권태'(김성순·울산) '타임캡술에 저장한 나쁜 이야기 하나'(정경화· 경남 함양)등 6편이 남았다.
[정일근]
'아버지 꽃시를…'과 '기차 떠나는 새벽'은 시적 성숙을 보여주었으나 시인의 힘이 부족해, '스트랜딩 증후군'은 신인의 힘을 가졌으나 시의 성숙이 부족해, '무늬의 힘'은 완벽한 시였으나 자신의 틀에 안주하고 있어 '권태'와 '타임캡슐에…'가 마지막 경합을 가졌다.
두 편의 시 모두 신인의 자격을 갖춘 시였다. '권태'는 물 흐르는 듯이 흘러가는 상상력이 빛났으며 '타임캡슐에…'는 싱싱한 상상력이 가득했다.
[최영철]
심사위원들은 오랜 토론을 통해 '권태'가 시적 완성도가 더 높은 작품이나, 다소 산만하지만 좀 더 가능성을 보여주는 '타임캡슐에…'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자연에서의 삶을 건강하게 풀어간 당선시는 시인이 오랜 시간 꾸준하게 독학으로 개성적인 습작을 해왔음을 짐작케 해주었다.
또한 남성적인 힘과 당당한 시적 스케일을 가지고 있어, 분명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좀더 깊어지는 용맹정진을 바란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나머지 분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심사위원 : 최하림 정일근 최영철 (시인)
[200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붉고 향기로운 실탄 / 정재영
드티봉 숲길을 타다가 느닷없이 총을 겨누고 나오는
딱총나무에게 딱 걸려 발을 뗄 수가 없다
우듬지마다 한 클립씩 장전된 다크레드의 탄환들
그 와글와글 불땀을 일으킨 잉걸 빛 열매를 따 네게 건넨다
실은 햇솜처럼 피어오르는 네 영혼을 향하여
붉게 무르익은 과육을 팡팡 쏘고 싶은 것이다
선홍빛에 조금 어둠이 밴 딱총나무 열매에 붙어
이놈들 보게, 알락수염노린재 두 마리가 꽁지를 맞대고
저희들도 한창 실탄을 장전 중이다
딱총을 쏘듯 불같은 알을 낳고 싶은 것이다
그게 네 뺨에 딱총나무 붉은 과육 빛을 번지게 해서
갑자기 확 산색이 짙어지고
내 가슴에서 때 아닌 다듬이질 소리가 들리고…
막장 같은 초록에 갇히면 누구든 한 번쯤 쏘고 싶을 것이다
새처럼 여린 가슴에 붉고 향긋한 과육의 실탄을
딱총나무만이 총알을 장전하는 게 아니라고
딱따구리가 나무둥치에 화약을 넣고
여문 외로움을 딱딱 쪼아대는 해 설핏 기운 오후
멀리서 뻐꾸기 짝을 부르는 소리 딱총나무 열매 빛 목청
딱총나무의 초록이 슬어 놓은 잉걸 빛 알들이
겨누는 위험한 숲 내 손을 꼭 잡는다.
[2007 부산일보 신춘문예 - 시] 심사평
역동적인 생명력 거대 물결 이뤄
장시간 600명에 가까운 이들의 시를 읽으면서도 그다지 지루한 줄 몰랐다. 문학의 위기니,시의 죽음이니들 해도,상당수의 투고작들이 저마다의 얼굴을 반듯하게 갖추고 있었고,저마다의 매력적인 향기를 뿜고 있었다. 전반적인 수준이 만족할 만했다.
고른 수준을 보이는 이,앞으로의 창작 활동에 대한 신뢰감을 주는 이 등을 골라서 열다섯 명을 뽑았다. 모두 손색없는 작품들이었다.
그래도 어쩌랴,서정적 진정성,언어적 숙련도와 개성의 깊이 등을 기준으로 다시 다섯 명을 뽑았다. 모두 수작들이었다. 그러나 한 편의 당선작을 위해 다섯 명의 흠을 잡아보기로 했다.
김경미씨의 투고작들은 참신한 언어감각이 돋보였다. 동시에 이 장점은 씨의 한계로 지적되기도 했다. 젊은 언어감각이 언어적 경박성으로까지 치달아 버린 것이다.
김명희씨는 사물과 일체되는 물활론적 감수성으로 단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산문적인 서술을 지양하고 보다 응축된 표현을 해야 하겠다는 주문이 따랐다.
김영건씨는 지나친 노련함과 산문성이 트집 잡혔다. 하지만 위트가 시적 재능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그의 유쾌한 상상력은 돋보였다.
정재영씨는 이들 중에서 가장 많은 시를 투고하였을 뿐 아니라 한결같이 높은 수준의 역작들을 보여주었다. 그중에서 당선작으로 정한 시 '붉고 향기로운 실탄'은 한마디로 역동적인 생명력을 보여주는 시이다. 산문적인 서술로는 이를 수 없는,말소리의 조직과 오감을 통해 서정을 주입하는 시이다. 불필요한 이인칭 청자,수사적 어법의 과용 등이 흠이 된다는 지적도 있긴 하였으나 이를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는 반대가 없었다.
한 편을 뽑는 일은 괴로웠다. 하지만 심사자 셋은 한동안 향기로운 시의 바다를 유영하고 나오는 달콤한 나른함을 나눌 수 있었다.
/시인 김종해 신진 안도현
2007 신춘문예 - 시 당선소감 / 정재영
"치열한 삶 속 시 '담금질'은 계속돼"
어느 날 갑자기 시가 내게 온 지 꼭 20년이 지났다. 시는 고향역의 대합실 벤치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잠에 빠진 노숙자의 등을 타고 내게 왔다. 시에서는 모름지기 사람 냄새가 나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기 이전에 시는 이미 그 단서를 가지고 내게 온 것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습작기의 내 의식을 지배해 온 것은 새우처럼 웅크린 노숙자의 그 등이었다. 내 시는 웅크렸던 등을 대고 잠 한번 깊이 청할 수 있는 따뜻한 구들장이 되지 못한다. 다만, 나에게 있어 시는 남루한 생의 뜯어진 옷자락 사이로 언뜻언뜻 내비치는 흰 살빛 같은 각성이면 되었다.
20년 세월, 내 지각은 너무 느려터지고 아둔했던 것일까? 내게 주어진 단서는 자명한 것이었지만 내 앞에는 늘 왜곡과 착시의 갈림길이 가지를 뻗고 있었다. 내 시에서 한 조각 살빛의 각성이 읽히고 삶의 결이 잡힐 때까지 나는 얼마나 더 내 무딤을 벼려야 하는가?
내 습작기는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다. 생의 치열한 연소 속에서 내 시의 담금질과 메질은 계속될 것이다. 시와 삶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호작용만이 내 시의 방법론임을 잘 알기에 내 범상한 일상을 탓하기에 앞서 나는 앞으로 낯설고 거친 풍경을 찾아 모험도 불사하는 생의 에너지를 키우는 쪽으로 관심을 집중할 것이다.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엎드려 감사의 말씀 올린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빗나간 내 시의 안목을 바뤄 주시느라 노심초사 애쓰시고 심려가 많으신 박제천 선생님께 큰절 올린다.
직장 동료로서 늘 격려를 마지않았던 이영식,황상순 시인님 그리고 문학아카데미 시창작반 문우들과도 당선의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아내와 두 아이들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1952년 전남 승주 출생.
광주대,한양대 행정대학원 졸업. 국세청 행정사무관, 현재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실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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